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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물오리나무를 타고 온다
김영란
현대시학사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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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 시인선

목차

시인의 말

1부

청띠제비나비의 하늘 12
도롱뇽 알주머니 13
나무들의 아침 인사 14
긴요한 말 16
질 때도 동백꽃처럼 17
복수초 18
빈둥지증후군 19
우화 20
잠자리 한 마리가 하늘로 간다고 해도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줄 이 없다 22
소뎅이 마을의 봄 24
나는 솔로 25
가중나무고치나방 26
거미 28
들깨도둑 29
왕거위벌레의 산란 30

2부

담쟁이의 손바닥 34
낭도에서 조발대교 사이 36
장도를 걸으며 38
순천만정원 40
경도 풍경 42
6월 이맘때쯤 44
백일홍을 볼 때마다 46
고로쇠 47
향일암 버스에서 48
사랑 50
티라노사우루스는 마주 보고 있어 52
둔병도 54
흥국사 계곡에서 56
마래터널을 지나며 58

3부

질경이 62
월하月下 63
여름 내내 겨드랑이로 꽃송이를 피우면서 64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66
히어리 67
능소화 68
작약 70
꽃모종 심는 날 71
고요를 깨다 72
문병 가는 길 74
쓰레기차가 언덕을 오를 때 75
동백꽃 사랑 76
저수지 풍경 77
장미원에서 78
상수리나무의 여름나기 80

4부

참새 쫓는 소년 84
여름날의 삽화 86
둥지를 찾아 87
친구를 엄마라고 부른다 88
느림, 느리게 90
다육이 꽃신 92
곁가지처럼 93
낯선 풍경 94
선물 96
고단한 방에 눕다 97
겨자색 스웨터는 금세 봄을 담았다 98
수의 한 벌 100
문득 101
종자 마늘 102
카페, 화이트 바움 104
사랑은 물오리나무를 타고 온다 106

해설
사랑은 저마다의 속도로 온다 | 정재훈(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문예창작을 수료했다. 2008년 [문학저널]로 등단하였으며, 여수문인협회, 여수화요문학회, 물꽃시낭송회회원이며, 산림복지전문 유아숲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공저 시집 『한 권의 인생살이』 『아주 잠깐이거나 아득한 거리이거나』 시집 『거위벌레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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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74g | 125*188*20mm
ISBN13
9791193615232

책 속으로

능소화 넝쿨에 비가 사선을 그을 때마다
물방울을 튕기던 할머니가 보였다

사회초년생으로 목욕 봉사를 간 요양원
능소화 방 노인들이 대기표를 받고 줄을 선다
생리혈의 비릿한 기운이 욕실에 차오른다
할머니의 갈비뼈 능선을 따라 비누칠을 한다
살결 상흔들이 각질이 되어 샤워기에 쓸려내린다
허기를 면치 못한 거친 일생이 씻겨나간다
물살에 착하게 맡기고 있는 깡마른 몸
주름 뻗은 넝쿨로 수액이 돌듯
한 겹 거죽에 잎맥들이 돋아난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햇살 올로 살아나고
굽은 등에 무지개가 뜬다
노구의 육신에 능소화가 부끄럽게 피어나는 듯
머리를 곱게 빗긴다
가르마에 천상으로 향하는 길이 환하다
---「능소화」 중에서

앞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폐지를 떨군 노인이 차도로 끼어든다
신호등이 깜빡거리고 잡동사니가 사방으로 나뒹군다
굽은 허리뼈에 앙상한 손이 허공을 헤집고 있다

맞은편 덤프트럭에서
어깨를 건들대던 남자가 내리더니
떨어진 박스들을 도로변으로 나른다
벗겨진 신발 한 짝도 옮겨놓는다

숨 가쁜 출근길에 답답했던 속내가
뻥 뚫리듯 환해진다
바다 새들이 밀린 차를 호위하듯 뒤따르더니
수레바퀴에 날개를 달아주듯 골목길을 오른다
---「여름날의 삽화」 중에서

까마귀 떼 날고
평온해 보이는 스리랑카 숲속
코끼리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깨진 유리조각, 동물의 뼈, 달걀, 조개껍질, 파인애플, 건전
지, 광고지, 쌈장, 철, 컵라면, 폐가전, 배터리, 칫솔, 스티로
폼, 누군가 쓰고 버린 것들, 굴러떨어져 망가진 것들의
한숨들

또 한 마리 코끼리가 죽었다
겉으로 상처 하나 없지만 죽어야 꺼낼 수 있는 플라스틱
어른이 되고 싶고 아빠가 되고 싶은
꿈이 장 속에 꼬여있다

트럭이 쓰레기를 뱉어내자 그들이 달려든다
새 떼가 시커먼 하늘을 가르고
코끼리를 쫓는 환경운동가 아찰라 씨의 몸짓에
항의하듯 큰 눈망울 굴리며 몰려온다

숲과 들판의 울타리에 침묵의 전류가 흐른다
거기 숲이긴 한가요
지금도 햇살은 저렇게 환히 비추는데요
---「낯선 풍경-쓰레기 더미 속 코끼리」 중에서

빨간 벽돌 외관은 따스하고 창 넓은 테라스는 날아가는 새와 부지런한 농부를 보여 준다 정 많은 카페 사장을 닮았는데 개업 날 사장님의 부르튼 입술과 눈이 시골에서 솥 때우러 다니는 땜장이 같다며 엄마는 짠한 눈으로 쳐다본다

비 오는 날은 비 멍을 하고, 햇살 받은 날은 햇살 멍을 때리고, 오늘은 유명 배구 동호회 단체 손님이 온다며 고향에서 보낸 비파 진액까지 내줄 거라며 웃는다

학창 시절 형제들이 잠퉁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도 내가 몸살감기로 앓아누웠을 때는 김치찌개를 내오던 내 동생, 자작나무 몇 그루 옮겨 심고 빵 굽느라 자작자작 졸리는 새벽잠을 흘려보냈다는데, 소나무에 까치집을 지은 걸 보니 올해도 태풍은 무사히 지나가겠다

봄이면 동네 아이들과 의자바위와 호랑바위를 오르던 내력이 오늘 1주년을 맞은 카페 화이트 바움을 튼튼하게 해줄 것이다
---「카페, 화이트 바움」 중에서

얼음폭포가 부서져 내릴 때
쩌어억 쩌억 쩍쩍 쩍쩍 쩍
간담이 한 움큼 되었지
돌가루처럼 긴박하고 강렬해서
숲을 걷는 달팽이관의 잿빛 구름을 걷히게 하고
온갖 나무들 울음을 찾아서 집중하게 만들지

쩌어억 째 액 째 애 애 액
벽시계 태엽 늘어지듯
나무줄기에 매달려 있던 다람쥐가
겁 많은 꼬리를 꼼짝 않는다
숨을 할딱이다 호흡이 느려질 때
살살 말을 걸어보고 발걸음을 멈춘 순간
다람쥐가 나무를 내려간다
돌담 사이로 눈을 깜박인다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누군가 질펀하게 울 적에
그것이 나에게 찾아온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붙잡을 수 있을까

---「사랑은 물오리나무를 타고 온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여태껏 발 딛고 살아가는 곳,
바다와 숲과 이웃 사람들을
내 시의 원형질로 생각했다.

어디 그뿐이랴
아이들과
꽃과 곤충 이야기를 하면서
날마다 숲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행복한 일인지 알았다.

숲에서 세상을 고요히 숨 쉬고

다시
지상의 고통과 슬픔, 삶과 죽음이
뒤섞이는 언어의 길을 더듬고자 한다

2024년 겨울 김영란

추천평

김영란의 시적 세계에서 “소리”는 인간을 고개 숙이게 만들고, 발밑에 펼쳐진 작은 생명체의 움직임을 더 들여다보게 하는 일종의 계시와도 같다. “듣는다는 것은 귓속의 미로에서 소리가 사방으로 돌아다니게 허락하는 것이며,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거꾸로 그 길을 되돌아서 그 소리를 만나는 것이다.” 시인이 볼 때, 숲은 그 소리를 만나는 현장이며, 이로써 우리는 그 안에서 상상하는 것을 허락받는다. - 정재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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