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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1부 눈眼의 거리 링 12 손 14 목수 16 호두 18 도시와 꿈 20 산책 21 포도 22 이명과 방 24 발 26 거울 28 틱에 관한 오해 30 단추 32 눈眼의 거리 34 생명나무 36 운동화의 낙법 38 2부 표범의 문장 발효에 대한 의심 40 무지 외반증 42 표범의 문장 44 이별 46 사과 48 장례식장에서 50 잠자는 여인 52 안부 54 형광등이라는 새 56 간격 58 불편한 자리에 대한 상상 60 사월 62 소반 64 감기 66 민들레 68 3부 백색의 구조 저수지 70 나무 72 재개발 지역 74 백색의 구조 76 사내와 날치 78 버닝burning 80 시나리오 #25 82 내 나라 84 로드 킬Road Kill 86 목장갑 88 거울 90 스캔 92 봄 94 전신주 96 밥 98 4부 물의 감정 박스 100 의자 102 풍선인형 104 모네화실 106 브레이크 108 고시래기 110 물의 감정 112 절대적 평가 114 방치된 것들 116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118 텀블러의 감정 120 중독 122 첨탑 124 뾰족하게 126 기울기 128 ** 해설 죄짓는 스무 살은 왜 아름다운가!┃여성민(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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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 구멍 사이로 크레인이 팔을 벌리고 있는데요 그는 반복해서 파이프를 옮깁니다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지 않지만 파이프를 옮기는 일이 그의 작업이니까요 반복이 그의 일입니다 팔을 올렸다 내렸다
크레인처럼 왼쪽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그가 옮기는 파이프들도 틱이 있는 그의 어깨를 따라 오르락내리락 파이프가 쏟아지기도 하는데요 시선이 닿을 수 없는 곳까지 파이프는 굴러가고 멈추지 않고 일순 부르르 떠는 몸 자재를 다 떨어뜨리고 맙니다 반복의 경계선은 어디쯤일까요 어디선가 지켜보는 총구 가까이 다가오지 마시오 경고하는데요 쏟아진 파이프에 발이 걸려 딱 멈춘 곳에서 신호수를 만납니다 깃발을 올리고 깃발을 내리고 그의 어깨도 하나의 깃발이었을까요 어깨를 올리고 어깨를 내리고 반복이 일상이라면 멈추는 것 또한 일상이지만 깃발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듯 크레인과 크레인 사이로 그는 사라지는데요 --- 「틱에 관한 오해」 중에서 창고에 갇히던 날 적중했죠 과녁처럼. 나무도 없는데 바람 가르는 소리 들렸죠 어머니가 그랬죠 그곳엔 바람 없이도 나무가 부러지고 나무 없이도 바람 부는 나무 있단다 창고는 들판 같아서 아이들을 천으로 꽁꽁 감쌌죠 무릎을 베고 칭얼대던 아이들 민담을 이불 삼아 겨우 잠들었죠 뜨거웠던 건 늑골 아래 품었던 문장 하나 표범에 관한 문장이었죠 피는 불운하다 어른들은 말했죠 살갗이 벗겨지도록 문질렀죠 더 많은 피가 나도록 피부를 닦았죠 두 번 세 번 피부를 벗기면 표범의 무늬를 얻을 수 있을까요 두 팔로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놓지 못한 이름은 어머니 어머니 내 어머니 차우파디* 옥수수 몇 알을 물에 불려 아이들 입에 넣어줬죠 저기 피어나는 연기가 아이들의 웃음은 아니겠죠 불꽃 그림자가 표범처럼 다가와요 타오르는 눈빛 타오르는 눈빛 타오르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날아가요 한 마리 표범으로 한 마디 문장으로 나무로 죽은 나무로 서 있죠 나무도 없는데 죽은 바람 소리 들렸죠 * 네팔의 생리격리 전통 관습 --- 「표범의 문장」 중에서 물에 비친 느티나무 가지가 반짝거려요 하루에 열두 번 물은 착란을 일으키죠 느티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을 물결이라고 관망의 시기였다고 믿죠 바람을 호송하는 물이 바닥을 배분하는 물이 꽃을 흘려보내고 꽃을 증식하는 물이 수면 아래 감정이라고 믿죠 물은 자기 얼굴을 볼 수 없기에 나무의 감정을 통해 자신의 표정을 읽죠 물의 표정들이 수면 밖으로 튀어나와 수십 가지 물결로 출렁거리죠 몸을 뒤척일 때마다 위태로운 물의 빛 탭댄스를 추는 진 켈리의 영상이 물 위에 흐르는 것이나 자전거 바퀴를 따라 돌고 있는 바람처럼 물은 지금 은밀하게 뭔가를 진행 중이죠 흔들리는 느티나무를 만지려고 물은 자꾸 다가서죠 탭댄스처럼 --- 「물의 감정」 중에서 벽에 걸린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인데요 나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죠 죄짓는 스무 살은 왜 아름답죠? 나는 잠을 자고 있었죠 눈을 언제 떠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의식을 쫓듯 귀에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들을 천천히 느린 속도로 정확히 짚어내면서 스무 살은 왜 삶을 미워하지 않죠? 나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그림과 그림 사이를 오르내려요 창문 밖으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요 지금은 낮인가요 밤인가요 삶과 죽음은 봄과 겨울처럼 공전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소녀에게 길을 던져요 삶은 때론 유혹적이나 스무 살에게도 면죄될 수 없다고 진주 귀고리를 찾으러 가는 길과 같은 것이라고 바람이 불고 생각이 멈추자 눈이 살며시 떠졌죠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죠 나는 미술관 벽에 걸려 있었고 사람들이 나를 신비롭게 바라보고 있었죠 * 잠자는 여인 - 1964년 로이 리히텐슈타인 작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 1665년 베르메르 작 --- 「잠자는 여인*」 중에서 여기가 어디인가요 사람이 사는 곳마다 철재가 세워지고 페인트칠이 완성되어 집이 생기고 나는 한 그루의 나무로 시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바람은 내게 백칠십오만 개의 구멍을 뚫고 백칠십오만 개의 문장을 새겼습니다 비는 내게 백칠십오만 개의 색을 입히고 백칠십오만 개의 잎을 키웠습니다 계절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버릇처럼 나의 얼굴을 어루만집니다 사람들은 내게 뭔가를 요구합니다 하나에 하나를 하나에 하나에 또 다른 하나를 이들을 충족시킬수록 나는 서서히 야위어갑니다 백칠십사만 개 백오십삼만 개 칠십칠만 개 잎이 떨어지고 바람구멍이 사라지고 계절이 지나고 또다시 철재가 세워지고 불빛도 바람도 사람들의 발길도 백칠십오만 개의 구멍으로 흘러들어 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이 되고 사람들의 집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밤마다 문장으로 새겨진 옷을 입고 바늘로 백칠십오만 개의 잎을 다는 꿈을 꿉니다 --- 「생명나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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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뱉은 말 하나는 시인의 몸에 달린 잎 하나라는 사실. 시를 읽는 일은 그 말의 복제와 반복이라는 사실. 시를 읽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과 말을 나눠 수많은 사람들의 몸에 달릴 초록의 싱그러운 잎으로, 백칠십오만 개의 푸른 문장으로 펼쳐지는 멋진 광경을 나는 이해하며 보고 있었죠.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말이 백 명, 천 명, 오만 명의 입을 지나 백칠십사만 명, 백칠십오만 명의 언어가 되는 일. 한 사람의 입에서 핀 말, 한 시인의 몸에 달린 잎이 수많은 사람 곧 수많은 나무를 만나며 “백칠십오만 개의 잎”이 되는 일. 그것이 시를 쓰는 일이고 시를 읽는 일이라고 강현분은 말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식으로. - 여성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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