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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도어락엔 새가 산다 12
역도선수가 춤을 춘다 14
슬기로운 반려 생활 1 16
반려 해변 18
무인도 19
여름이 휘어갈 때 폭염은 20
슬기로운 반려 생활 2 22
압해도 구름 사냥 24
바다를 찾니? 27
가거도 28
슬기로운 반려 생활 3 30
슬기로운 반려 생활 4 34


제2부

도넛 속으로 38
오늘 일기예보 43
잔향 44
오로라 잎사귀가 기어오를 때 46
슬기로운 반려 생활 5 48
나는 어떤 일이 생겨야 할까? 50
1983. 나의 눈동자 색 52
루이보스 안에 상어 55
악몽에서 일어난 일과 결말이 바뀐 악몽 속 사막 56
사과는 멍든 상처 하나 없이 58
나는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가 60
오렌지는 토성이다 61
내가 가진 구멍마다 꽃잎들이 흐른다 62


제3부

구름 대담 64
달의 뒷면 68
냉장고를 열면 섬마을 냄새가 난다 70
눈물 냄새 73
고래 이야기 74
기린의 심장 75
이마가 차가운 78
내 서랍 속에 사는 갈매기 80
숨어라 다 숨었니? 83
슬기로운 반려 생활 6 84
날개가 있는 새들의 이야기 86
폭우 안에서도 아름다운 것은 많다 88
해명되지 않습니다 90


제4부

물탱크에서 사는 사람92
마을로 온 북극곰 93
손에 움켜쥔 물방울 보내기 94
업사이클링 96
푸른 풍경들이 들어온다 98
흰쥐 99
계절이 사라진 도시 100
슬기로운 반려 생활 7 102
아침 햇살이 누워 있을 때 105
변기는 어떤 비밀을 먹었을까 106
사피섬 하늘 아래, 108
슬기로운 반려 생활 8 110



해  설
장은영 검고 질긴 반려의 감각

저자 소개 1

서울 출생. 문학박사. 딩아돌하 신인상을 받은 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와 『슬기로운 반려 생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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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28*188*20mm
ISBN13
9788960218659

책 속으로

슬기로운 반려 생활 3
-몽돌


1
몽돌 몸에는 바다 멍 자국이 남아 있다

몽돌은 바람이 불어오면 달려가
제 몸을 힘-껏 부딪친다
분명 무슬목에서 본 몽돌이다
누가 어두운 밤으로 데리고 왔을까
누가 슬픔이 쌓인 거리에 버리고 갔을까

파도와 부딪친 갈라진 틈 사이로 붉은 바다 냄새가 짙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를 안듯이 몽돌을 조심히 안아 집으로 데리고 온다


2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말라가는 몽돌 몸에 물을 뿌려줬다. 햇살에 비친 몽돌이 맨들맨들 반짝인다. 나의 미소를 좋아한 몽돌. 외로움을 함께한 몽돌. 우린 그렇게 서로의 슬픈 몸을 닦아주었다.

몽돌은 그늘이 없는 창가에 앉아 해바라기씨 껍질을 까서 화분에 심기를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에 몽돌은 용병 선수처럼 해바라기씨를 통으로 입에 털어 넣고 질겅질겅 씹어 먹는다. 겉껍질을 집어 이빨로 깨문 뒤 알맹이만 빼먹는다. 쉬지 않고 까먹는 속도가 다람쥐가 돌아서서 웅크리고 밤을 깎는 것 같아 나도 씨앗을 앞니로 문 채 껍질을 벗겨 몽돌 입으로 넣어주었다. 내 앞니엔 홈이 생겼다.


3
홈이 나 있는 내 앞니에서 고소한 해바라기씨가 쏟아져 나왔다. 해바라기가 자라나니 사람들이 좋아했다. 나는 겉껍질을 집어내어 혀로 속 씨앗만 빼서 질겅질겅 씹지 못하는 사람의 입에 넣어주었다. 두 번째 장마가 왔다. 긴 비가 오는데도 몽돌은 해바라기씨 껍질을 까지 않았다. 씨를 화분에 심거나 입에 털어 넣고 질겅질겅 씹어 먹지도 않았다. 내 방에는 바람에 부딪히는 몽돌 소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 흙 담장에 장미가 피었다. 몽돌 몸에 붉은 가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맨들맨들한 몽돌을 만지지 못했다.


4
분명 내 방에서 본 몽돌이다
언제 바다로 왔을까
누가 데리고 왔을까
돌밭으로 맨들맨들한 슬픔이 밀려온다

먹구름이 몰려왔고 비가 오는데도
돌은 처음 앉아 있던 자리 그 자리에서만
제 몸이 부서지도록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버렸던 맨들맨들한 미소도
얕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나는 슬플 때마다 몽돌처럼 돌아누웠다
몽돌처럼 나는 작은 방에 버려진 것일까
나의 작은 방엔 슬픈 노을이 내 발가락을 간질이면
내 몸을 노을에 힘-껏, 부딪친다

나는 어디에서 떠밀려 왔을까


5
이제 나는 내 방을 작은 반려 해변이라 부른다
붉은 몽돌, 붉은 노을, 붉은 가시 지느러미
모두 내가 키우던 것들이다

문득, 나는 몽돌이었다는 걸 안다
파도처럼 밀려든 외로움에 부딪혀
맨들맨들한 울음을 키운다

내 몸의 홈마다 해바라기씨가 자라고
내 방은 조용한 바다로 번진다

널 돌려보낸 뒤에야
나도 제자리에서 빛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내 안의 파도에 부딪치며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다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오래전부터 바다를 건너 섬을 찾았다
일곱 살, 나를 기다릴 것 같은 섬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던 날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늘 어딘가를 건너고 있었다

냉장고를 열면 섬마을 냄새가 차오르고
장롱문을 열면 밤이 쏟아졌다
그 사라짐들을 받아 적는 일이 내게는 시였다

여전히 나는 섬을 찾고 머물다가 떠나보낸다
사람과 계절을 보내고
끝내 이름 없는 마음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슬픔은 매번 낯설고 새롭게 찾아온다
그 슬픔을 내보내지 못한 채 함께 살아간다

슬기로운 반려 생활이란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슬픔을 내쫓지 않고 곁에 두는 일
뚝 하고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나란히 무릎을 꿇는 일

시의 가장자리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이해하고 싶었다
사라지는 것들 곁에서 오래 숨을 고르며
공존이라는 감각을 더듬어 적었다

이 시집이 당신에게도 그런 자리이기를 바란다
이별을 지나온 사람이 소리 없이 들어와
잠깐 앉아도 되는
따뜻하고
좁은

섬 하나.


2026년 가을 한경숙

추천평

시는 사라졌거나 사라지려는 것들을 붙잡는 손과 같다. 그 손에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는다 해도 멈추지 않는다. 내뻗은 팔을 거둬들이는 순간, 최소한의 희망조차 없어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한경숙 시인의 시도 마찬가지다.

그의 행위는 “머지않아 사라질 자신의 나라를 알리려고 역기를 드는”(「역도선수가 춤을 춘다」) 역도선수와 같다. 그렇다면, 가장 소중한 것들의 처지는 어떠한가? “계절이 사라졌고”(「계절이 사라진 도시」), “공중에도 푸른 시체들로 가득”(「고래 이야기」)한 상태다. 인간 스스로 자연과의 공존을 포기한 결과다.

앞뒤 모두 막막한 자리에서 시인은 함께하는 세상을 꿈꾼다. 그 꿈을 위해 봄바람처럼, 황폐해진 채 “잠들어 있는 해변의 발들을”(「반려 해변」)끊임없이 닦아주는 것이다. - 신덕룡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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