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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헌 “너, 번역해서 먹고살 수는 있어?”
촘스키와의 인연 _ 열정을 쏟았던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시리즈 _ 생극에서 생활의 발견 _ 번역가는 저자가 될 수 없을까? _ 번역가이자 출판 에이전트로 살기 _ “우리 교회에서 설교 좀 해 주실래요?” _ 번역가로 사는 소소한 즐거움 권남희 내 인생의 행복을 불러오는 번역 이와이 슈운지의 《러브레터》 _ 무라카미 류의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_ 험난한 바다를 건너게 해준 《천사의 속삭임》 _ 행복 바이러스 《멋진 하루》 _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 _ 쑥스럽기만 한 출판사 가기 _ “엄마 이름만 있고, 내 이름은 없잖아!” _ 피해갈 수 없는 돈 이야기 _ 번역하는 사람이어서 행복해요 김춘미 번역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마루야마 겐지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다 _ 우리가 읽는 것의 4분의 3은 번역물 _ 홀대받던 일본 문학이 각광받기까지 _ 좋은 번역의 기준 세 가지 _ 번역은 나를 위한 글쓰기 - 번역하는 소설가들 _ 번역가로서 무라카미 하루키 _ 멀리 내다보는 시선과 안목 송병선 번역가이자 반역자인 말린체를 찬양하며 다양한 얼굴 _ 라틴 아메리카와 말린체 _ 번역가는 어떻게 만물박사가 되는가? _ 왜 내가 아니면 안 되는가에 대한 대답 _ 오역을 두려워 마라 _ ‘수동적’인 번역가와 ‘능동적’인 번역가 _ 독자와 소통하는 대중 서적 번역 _ 현학성을 뛰어넘는 작품 번역의 기쁨 : 보르헤스 _ 유쾌한 작품 번역의 기쁨과 어려움 : 가르시아 마르케스 _ 다양한 글쓰기와 문화의 재미 : 마누엘 푸익 _ 외국에서 더 각광받는 번역가 이종인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자의 이야기 영어 실력과 번역 실력의 차이 _ 번역가의 속앓이, 원고료 _ 번역, 할까? 말까? _ 자신을 비워라! _ 손끝에서 글자가 술술 떨어지는 순간 _ 번역가로 산다는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_ 언어로 표현되는 아름다움 _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_ 못 다한 이야기 최정수 언어를 통해 만나는 새로운 세계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문 _ 번역가는 줄타기 선수 _ 반역인가, 제2의 창작인가 _ 베스트셀러가 내게로 오다 《연금술사》 _ 2003년 10월, 독일에서 코엘료를 만나다 _ 모든 사랑은 나 자신에게로 떠나는 여행 《오, 자히르》 _ 어린이 책 : 생각은 깊게, 표현은 단순하게 _ 강렬한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_ 번역에 바치는 사랑과 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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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번역가 시대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번역의 시대’를 맞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2004년 기준) 신간 도서 중 번역서는 28.5%에 달한다. 좀 더 따지고 보면, 철학, 아동 등의 분야는 40% 안팎이고 문학, 순수과학, 종교 등이 30% 전후, 발행 부수로 따지면 그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 더욱이 문학을 비롯한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면 ‘번역의 시대’라는 말을 절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번역 출판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이 큰 요인이다.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외국의 새로운 문화와 지식, 정보를 빨리 들여와 우리의 지식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인류의 축적된 지식 창고인 고전을 읽는 데에도 번역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번역을 업으로 살아가는 번역가야말로 우리 출판계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아직 번역가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낮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들은 어떤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어떻게 스스로를 단련시킬까? 그들의 생활은 어떨까? 과연 밥벌이는 되는 걸까? 《번역은 내 운명》은 번역가 지망생은 물론 출판 관계자와 일반 독자들도 궁금해 할 법한 번역가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독자와의 소통 문제 등 번역가들의 공통된 고민과 언어를 다루는 어려움, 번역을 하게된 동기와 번역관이 생활 속 에피소드와 아카데믹한 이야기 속에 녹아 있다. 저자 6명의 개성이 살아있는 글의 전개와 문체는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은 물론 글읽기의 즐거움까지 안겨준다. 기존에 외국 번역사와 번역가에 관한 책이 몇 권 발간되었지만, 정작 우리 번역사 또는 번역가에 관한 책이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또는 ‘번역은 반역인가’라는 오랜 논쟁과 오역 등의 문제를 지적한 번역계 책들은 요즘 독자의 욕구를 채워주기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 《번역은 내 운명》은 번역가 삶의 명암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견 번역가 6인의 에세이로, 우리 번역가에 관한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6인 6색 이야기 강주헌 “너 번역해서 먹고살 수는 있어?” 6명의 저자 중 프랑스어, 영어 번역가이자 출판 에이전트로도 활약하는 강주헌 씨는 번역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생각을 우리 나라에서 누구보다 먼저 알고, 새로운 지식을 얻는 즐거움, 게다가 간혹 저자가 틀린 것을 찾아내는 재미까지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번역으로 밥을 먹고산다는 점에서 번역가도 일반 노동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번역으로 먹고살 수 있냐는 질문에 그는 “잘 먹고 잘 산다!”고 답한다. 그는 촘스키의 저작을 가장 많이 번역한 이이기도 하다. 프랑스어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부터 20여 년 이상 된 인연이 자연스레 그를 ‘촘스키’번역가로 만들었다. 그가 번역한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는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1만 9천 부 정도 팔렸지만, 우리 나라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둬 5만 부가 팔렸다. 그는 무엇보다 “번역은 쉬워야 한다. 내용은 어렵더라도 읽어 내려갈 수는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번역하는 목적, 더구나 출판의 목적은 ‘대중화’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원서를 출판사에 소개하는 에이전시 대표이자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시리즈를 직접 기획하고 편저하기도 했으며, 저자로, 번역 강좌 강사로 활동하면서 번역가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는 번역가가 꼭 에이전트가 될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책을 기획하려는 의욕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가의 기획은 새로운 번역거리를 찾는 첩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권남희 내 인생의 행복을 불러오는 번역 현재 일본 문학을 주로 번역하고 있는 권남희 씨는 통통 튀는 글솜씨를 뽐낸다. 최근 문학부분에서 일본 소설의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는데, 무라카미 류, 아사다 지로, 다이라 아즈코, 요시다 슈이치, 온다 리쿠, 이토야마 아키고 등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권남희 씨는, 신경림의 ‘싱글맘 스토리’가 연상될 정도로, 싱글맘이자 번역가로 살아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 발랄하게 풀어놓았다. 센다이에 30년만의 폭설이 내리던 날, 영사관에 이혼서류를 제출했고, 정하와 둘이 다시 서울로 이사를 왔고, 추운 날씨에 우리 모녀가 살 둥지를 구하러 다녀야 했고, 밥그릇과 숟가락을 사러 다녀야 했고, 부모님과 가족들의 걱정과 질타를 받아내야 했고, 무엇보다 혼돈기의 내 자신을 이겨내야 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번역하는 손은 잠시도 늦추지 않았다. 이혼서류를 내던 날도 무너지는 가슴 끌어안고 사전을 뒤적거렸고, 서울가는 짐을 싸놓은 옆에서 노트북을 또닥거렸고,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종일 부동산 순례하며 방을 얻으러 다니고 온 날 밤에도 할당된 분량의 작업을 하였다. 엄마는 돈을 벌어야 되잖아. 나는 혼자 잘 놀게. 남편과 헤어지게 되리란 걸 누구보다 일찍이 감지한 정하의 의젓한 충고가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천사의 속삭임》이란 책이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번역을 하고 있으면 주위의 모든 혼란스러움을 잊을 정도로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요즘도 가끔 일을 하다말고 멍하니 시선 들어 책장에 꽂힌 《천사의 속삭임》을 바라보다 보면, 가슴이 싸해진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 내 손을 잡고 험난한 바다를 건너게 해준 고마운 책이어서. 번역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사실 번역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닐까? 일이 없을 땐 그야말로 날백수이지 않은가. 그녀의 솔직한 고백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렇게 벌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인형 눈알 박는 아르바이트라도 해야하지 않나, 종이봉투 풀칠하는 부업이 요즘도 있을까. 길 가다 ‘홀서빙 아줌마 구함’이라는 삐뚤삐뚤 쓴 글씨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번역은 여자들의 부업거리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그렇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밖에 안 되는’것으로 미리 단정짓고 하는 일은 평생 본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 마음을 다잡고, 한 달 수입은 최소한 얼마, 작업 시간은 몇 시간, 잠은 몇 시간씩 정하고 바짝 긴장하여 작업을 한 다음부터 비로소 부업이 아닌 본업으로서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번역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그녀가 던지는 충고를 들어보자. “번역은 하고 싶은데 인맥도 없고, 사방이 막혀서 도무지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거나, 이판사판 목숨 걸고 뚫어 보라. 일이 없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은 아마 실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 번역료를 흥정할 때의 괴로움과 결제로 애 먹기도 하고, 40여 권을 번역한 중견 번역가이지만 어느 해는 대졸 초봉도 되지 않는 수입을 얻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태어나도, 또 죽어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할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보다 더 즐겁고, 이보다 더 행복한 작업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 이 정도면 ‘번역은 내 운명’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김춘미 번역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번역가이자 일본문학학회장, 일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춘미 씨. 그녀는 일본 문학 전문가로 한국에서 일본 번역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컨대 본격적으로 서양의 문학작품이 순국문으로 번역 소개된 것은 1895년 이동이 이노우에 쓰토무 역 《아라비안 나이트》를 중역한 《流獄歷傳》이며, 초기 번역물은 약간의 중국어 번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본어 번역으로부터의 중역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초창기 한국 근대문학가 대부분이 일본 유학생이었다는 사실은, 우리 근대 문학이 창작이든 번역이든 어떤 식으로든 일본 문학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사실을 간과하고는 논하기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1991년, 그녀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번역할 당시만 해도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자타가 인정하는 번역가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대학 교수에게 번역을 맡기면 비싸게 친다고 기피하고, 불과 15년 전의 일인데도 책을 10등분해서 나눠 맡기면 하룻밤에 번역서가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키 붐이 일기 전이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곧 절판되고 말았다. 이후 《해변의 카프카》 《밤의 원숭이》 등을 번역하면서 하루키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1994년에는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하였다. 마루야마 겐지는 한국 문학가와 평론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고, 독자들의 반응도 좋아 《달에 울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좁은 방의 영혼》등을 잇달아 번역하게 되었다. 김춘미 씨는 이 책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널리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를 번역가로서 소개하고 있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 작품의 전집을 비롯, 트루만 카포티, 스콧트 피츠제럴드, 셀린저, 마이클 길모아, 어슈라 그웨인, 마크 헬프린 등 엄청난 수의 미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였고 번역 해설서까지 냈다. 물론 그의 작품도 각국에서 번역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하루키는‘편견이 있는 애정’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김춘미 씨는 “편견이 있는 애정이란 번역대상이 된 작가와 작품에 대해 번역가가 자기 나름의 작가관과 애정을 지닌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 그 작품을 번역할 사람은 많겠지만 자기처럼 번역할 사람은 없다는, 환상이랄 수도 있는 일종의 확신이다. 절대로 대체가 안 되는 자기만의 작가상, 작품상을 제시하는 것이 곧 편견 있는 애정이라는 얘기이다. 동시에 하루키에게 이 일련의 번역행위는 자기 나름의 문체 생성에 무척 유효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번역가에게 ‘왜 나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송병선 번역가이자 반역가인 말린체를 찬양하며 송병선 씨는 라틴아메리카 문학 평론가이자 번역가,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제3세계 문학으로 간주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마누엘 푸익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원전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또한 민음사의 《보르헤스 전집》을 수정·감수하여 곧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예정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남미의 번역가이자 반역가인 말린체를 화두로 내세웠다. 알다시피 남미는 스페인의 침략으로 혼종과 혼합문화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가 생겼다. 그 정복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말린체’는 아스테카 부족의 공주로, 후에 스페인 장군 에르난 코르테스의 번역가이자 정부가 된다. 그녀의 번역행위는 아스테카 부족의 입장에서는 반역행위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번역가는 반역가인가? 번역가는 작가의 그림자인가? 이에 대한 송병선 씨의 생각을 들어보자. “모든 번역가처럼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번역가인 말린체는 실생활에서 ‘반역자’이며 동시에 ‘창조자’였다. 말린체처럼 오늘날 번역가는 서로 다른 문화들을 연결하는 가교의 중심이며 새로운 문화공간을 탐험하는 사람들이다. ” “번역이라는 행위는 하나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절대로 완전할 수 없다. 내가 옮긴 작품들도 나의 관점을 보여주는 재창조물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나의 머리와 경험에서 나온 산물, 그러니까 내가 전적으로 친권을 가진 친자식들은 아니지만, 고통 끝에 탄생시킨 나의 아이들이다. ‘눈에 보이는’번역과 내 관점에 의한 번역을 통해 나는 내가 소개하고 번역하는 작품이 단순히 ‘사본’에 불과하다는 것에 반항한다. 이런 번역은 불가피하게 반역을 통한 또 다른 산물을 창조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반역자이며 창조자인 말린체이다.” 중세 때 흑사병을 막기 위해 사용된 향긋한 과일은 무엇일까? 답은 베르가모트이다. 불수감이라고 불리는 이 과일은 배의 껍질을 지닌 오렌지이다. 그렇다면, 19세기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질병에 전염되지 않기 위해 병원이 어떤 방법을 썼을까?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보면, 침대다리를 물 항아리에 담가 놓기도 하고, 무균 처치에는 우아하게 입는 것이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면서 수술실에서 정장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잡다한 지식들은 어떻게 알게 되는 걸까? 송병선 씨는 “번역가는 번역을 통해 만물박사가 되기도 하며, 모르는 것이 나오면 알 때까지 찾아다닌다는 점에서 학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종인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자의 이야기 이종인 씨는 1994년 봄,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장을 그만두고 전문 번역가로 전업한 이후 130여 권의 책을 번역한 베테랑 번역가이다. 그는 이 책에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번역가들의 가장 고민인 고료 문제 즉 인세로 할 것인지 고료로 할 것인지, 번역하기 괴로운 타이틀을 의뢰 받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고전을 아우르는 다양한 예를 통해 번역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등 애정 어린 조언을 써 내려갔다. 그는 이 책에서 ‘번역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라는 번역관을 피력하고 있다. “번역이란 결국 저자 - 역자 - 독자의 3자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번역이 되려면 독자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자를 설득하지 못하는 번역은 아무리 원문에 충실하다고 해도 결국은 원저자와 번역자, 이렇게 두 사람만 좋은 2자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결국 번역가의 재산은 그가 지닌 말과 문장이며, 그의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따라 번역가의 능력과 자질이 판단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번역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며, 번역은 제2의 창작 혹은 아름다움의 창조가 되는 것이다.” “잘된 번역서에는 우리말 특유의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다. 번역 과정에서 외국어와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우리말의 결정체인 번역서. 거기에는 황신혜 못지 않은 한국어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있다. 남이 번역해 놓은 좋은 책을 읽는 것도 이런데 하물며 자신이 직접 한국어를 구사하여 번역하는 데 있어서랴. 이런 연유로 나는 번역을 아름다움의 추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번역가는 어떤 상태를 유지해야 할까?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집중하는 몰입의 상태이다. 이 완전한 집중 상태에 도달하면 시각과 청각의 공백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때가 바로 번역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상태, 즉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몰입은 번역가의 가장 큰 보람이며, 번역하는 매 순간 거기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번역가는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 즐거움은 번역을 위한 준비 작업에서는 아름다움의 감상으로 나타나고 최종적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는 아름다움의 창조로 완결된다.”고 한다. 최정수 언어를 통해 만나는 새로운 세계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오 자히르》를 번역하여 베스트셀러 번역가가 된 최정수 씨. 6명의 저자 중 가장 젊은 그녀는 지금까지 24권을 번역하면서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다. 그중 아무래도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 번역이 눈에 띄는데, 《연금술사》는 번역한 지 3년이 지난 작품이 뒤늦게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축하와 여러 질문으로 한동안 얼떨떨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에이전시의 철저한 관리를 믿고 중역의 위험을 감수한 채 《연금술사》를 번역했다고 한다. “동화 혹은 우화처럼 씌어진 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주옥갚은 표현 하나 하나에 무릎을 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인지 아니면 데뷔 시절 작품이어서인지 원어로 읽다 보면 문장과 문장 사이에 꽤 빈 곳이 많다. 문장을 그대로 직역했을 경우, 의미가 상당히 모호하고 작품의 맛과 울림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고심 끝에 일단 직역을 한 뒤 저자의 의도와 작품의 특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의역을 감행했다.” 《오 자히르》에는 코엘료가 평단으로부터 받은 설음과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자신감을 간간이 표출한 대목을 보면서 두루 갖춘 행복한 작가 코엘료도 마음 속 깊이 콤플렉스와 불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도 역시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번역 과정에서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작가가 배치해 놓은 은밀한 생각들을 읽어 내는 즐거움도 번역가의 행복 중 하나가 아닐까. 최정수 씨는 “파울로 코엘료가 말한 낫고 싶지 않은 질병‘사랑’, 아니 에르노가 말한 누리기 힘든 사치 ‘열정’, 이런 것들은 반드시 살아 숨쉬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살면서 어떤 대상에 사랑과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다면 그 삶은 행복한 삶일 것이다. 내겐 ‘번역’이란 작업이 그 대상.”이라고 말한다. 번역은 내 운명 번역은 정말 까다로운 작업이다. 적확한 표현에 맞는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전문 분야의 책을 통독하거나 다양한 자료를 읽어내야 한다. 또한 정답도 없다. 개그의 유행어처럼 그때그때 다르고, 직역을 할 것인가 의역을 할 것인가는 번역가가 고민하는 일부분일 뿐이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번역에 대해 한결같은 애정을 토로한다. 그래서 번역은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번역가를 지망하는 이들이 한번쯤은 새겨야 할 부분이다. 과연 이 일은 운명인가, 나의 전부를 걸만한 일인가 하고 말이다. 저자들은 번역가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어 실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우리말 실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권남희 씨는 한 작품을 끝낸 다음에는 아무리 일이 밀려있어도 우리 소설 한 권은 반드시 읽는다고 한다. 이종인 씨는 좋은 번역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 우리 글로 된 잘된 번역서를 읽는데, 국역한 《동문선》을 자주 읽는다고 한다. 또한 자기 조절은 필수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들 번역가들은 하루에 많게는 10시간, 적게는 5시간 이상을 규칙적으로 일한다. 이종인, 송병선 씨 등은 이른 새벽부터 일하는 아침형이고, 오후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강주헌 씨는 대표적인 저녁형이다. 각자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 다를 뿐 번역은 자기 통제 없이는 해나가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근래에는 의뢰 받은 책을 번역하는 수동적인 역할에서 좋은 책을 찾아 출판사에 소개하는 적극적인 번역가들이 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번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출판의 흐름을 읽고 좋은 책을 찾아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출판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강주헌 씨는 물론이고 중남미 문학과 젊은 소설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송병선 씨, 마루야마 겐지를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한 김춘미 씨,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를 처음 소개한 권남희 씨 등 이들은 모두 적극적인 번역가들이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베스트셀러 번역가들이 등장하고, 독자들도 특정 번역가의 번역사를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로 저자 못지 않게 알려진 번역가도 늘고 있다. 그러나 책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번역가의 얼굴을 볼 기회는 거의 없다. 이 책은 표지에서‘번역가는 작가의 그림자’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면서, 베스트셀러를 번역한 이들은 어떻게 생긴 사람들일까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있다. 또한 6명의 각 글마다 Q & A가 있어 번역가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표지 속의 6명은 마치 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어쩌면 원어와 우리말의 무게를 다는 같은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