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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누가 입는다고
디자이너 꿈의 양장점 콩쥐 신세 잠 못 이루던 날 굴레 경성역의 누명 세비로의 비밀 고통 뒤에 오는 것 고집 또는 진심 진실의 무게 나는 침모가 아니야 경연대회 선택은 나의 몫 세상에 없는 옷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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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옷차림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요란하고 사치스럽다는 말도 있었고, 일본에서 들여온 매국노의 옷이라는 말도 있었다. 좋은 말보다 못마땅해하는 말이 더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평가가 어찌 되었든 아욱이의 눈에 양장은 아름다워 보였다. 밥을 지어도, 옷을 지어도 양장이 눈에 아른거렸다. 자꾸만 떠오르고 보고 싶었다. 아욱이는 틈만 나면 양장을 볼 수 있는 시장으로 구경을 나갔다. 귀찮아하던 심부름을 자처하면서까지.
--- pp.8-9 아욱이는 입이 딱 벌어졌다. 세상에! 이모가 우리나라 최고의 양장점과 잘 안다니! 그걸 여태 몰랐다니! “에이, 근데 세비로는 일본인이 뒷배를 봐주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거기서 버는 돈은 다 일본으로 들어간다는 거 같던데. 그런 데 가지 말고 다른 데 한번 찾아봐.” --- p.14 공연장에 들어서자, 무대 뒤로 커다란 일장기가 걸려 있었다. 순간 아욱이의 마음이 찌릿 아렸다. 잡혀간 아버지를 찾으러 갔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맨 앞줄 정중앙엔 군복을 차려입은 일본군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위압적인 군인들의 모습에 절로 움츠러들었다. 고개를 떨구고 동순 아주머니의 발끝만 보고 쫓아 걸었다. (…) 아욱이는 홀린 듯 공연을 봤다. 그 속에서 아름답게 찰랑이는 드레스도 봤다. 세비로에서 만들 때와는 또 달랐다. 옷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아욱이는 하나하나에 감탄하며 바라봤다. 그 뿌듯함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 pp.65-66 “아까 김경천에게 뭘 준 거지?” 아욱이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냥 전보가 와서 전했을 뿐입니다.” “누구에게서 온 전보인가?” “누가 보냈는지는 안 쓰여 있었습니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형사는 매섭게 아욱이의 턱을 잡아채 흔들었다. 겁에 질린 아욱이는 벌벌 떨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기에 다른 대답은 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했지만 여전히 같은 대답을 하자, 형사는 아욱이를 일으켜 세워서는 어떤 방으로 끌고 갔다. --- pp.87-88 그동안 참아 왔던 분노와 설움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울고 나니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울음은 그쳤지만, 눈동자 돌릴 힘도 없을 만큼 무기력해졌다. 하루 종일 옴짝달싹하지 않고 누워서 천장만 바라봤다. ‘운명은 내 편이 아니구나. 나 같은 게 뭐라고. 이게 헛꿈 꾼 대가구나.’ --- p.97 “어떤 옷을 만들고 싶은데?” “동서양의 매력이 조화로운 옷을 만들고 싶어요. 양장이 우리나라 사람한테 잘 안 어울리는 일도 있고, 또 우리 옷을 입고 싶어 하지만, 소화하기 어려워하는 외국인들도 봤어요. 그래서 양장과 한복의 장점을 살린 옷을 만들고 싶어요. 세상에 없는 저만의 옷으로 사람들의 자신감을 찾아 주고 싶어요.” --- p.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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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빼앗긴 화려한 도시
일제강점기 경성으로 들어가다 일제강점기 말, 경성은 서양식 의복과 화려한 공연 등 근대 문물이 일상을 파고들며 겉으로 보기에 개방적이고 풍요로운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민족말살정책과 전시동원체제 등 민족의 정체성을 넘어 개인의 자유마저 억압하는 잔인한 현실이 숨어 있었다. 작품은 이 화려함과 억압이 공존하던 시대의 모순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주인공인 아욱이가 일하는 세비로 양장점은 유명 가수인 연정이 무대 의상을 의뢰할 만큼 당대 최고로 평가받는 곳이다. 하지만 연정이 공연을 하는 무대에는 일장기가 펄럭이고, 군복을 입고 앉아 공연을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은 굳어 있다. 그래서 컴컴한 객석에서 자신이 지은 의상이 무대 조명 아래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욱이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다. 작품은 아욱이라는 한 소녀의 시선으로 화려한 도시에 감춰진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드러낸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든 10대를 위한 책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꿈을 맞추는 시대다. 수많은 조건과 제약 앞에 꿈꾸는 일조차 망설이는 오늘날의 10대에게 무작정 꿈에 도전하라는 말은 어색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은 비단 오늘날의 고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고 이름을 빼앗기며 전쟁터로 내몰리면서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품고 살아갔다. 이 책은 그 시대, 자신의 꿈을 향해 치열하게 도전했던 아욱이라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꿈은 생각보다 그렇게 거창하지도, 그렇다고 하찮지도 않은 것이라고. 그러니 한 번쯤은 마음 다해 달려들어 볼 만하지 않겠느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