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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코 씨 설레다
우타코 씨 맞선 보다 우타코 씨 한기를 느끼다 우타코 씨 성토하다 우타코 씨 한잔하다 우타코 씨 탐정 되다 우타코 씨 종적을 감추다 옮긴이의 말 |
Seiko Tanabe,たなべ せいこ,田邊 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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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노천탕으로 내려선다. 옷을 벗으니 떨릴 만큼 추웠지만 탕은 뜨끈했다.
젖가슴에 빨간 낙엽이 붙었다가 다시 물결에 밀려 저만치 멀어진다. 몸속까지 데워지니 어깨를 내놓아도 춥지 않았다. 나는 '설렘'이라는 온천물로 찰방찰방 몸을 씻고 있다. 그렇구나. '다쓰겐' 씨도 이제 가실 때가 된 것인가. 하지만 내게 좋은 선물을 남긴 건 사실이다. 사랑의 설렘이야말로 사람의 몸에 가장 좋은 보약이다. 무화과 관장약보다 이게 훨씬 잘 젖고 물기도 많게 하지 하고 생각하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하지만 '다쓰겐' 씨와 하루를 보낼 기회는 이제 영영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니 한기가 들듯 외로움이 마음속으로 번진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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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작품은 77세 우타코 씨의 ‘설렘’을 그렸다
재녀(才女)와 동녀(童女)가 공존하는 주인공 ‘우타코 씨’. 그녀는 77세 할멈이다. 하지만 ‘우타코 할멈’으로 결코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관련한 대활약을 통해 당찬 여자이면서도 만년 가슴 설렘을 품은 감성적 여인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느님께 ‘가슴이 뛰는 당번’ 패를 목에 받아 건 듯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 일흔일곱이나 먹어서도 이렇게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람은 나이가 얼마가 되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법이다. 휴화산도 50년에 한 번씩 분화할 수 있지 않은가. 2. 이 작품은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는 ‘인생의 용기’를 전한다. 우타코 씨는 77세, 지금이 ‘골든 에이지’라 당당히 밝힌다. 젊은 아가씨들은 탐폰 같은 걸 쓰면서 현재의 젊음이 최고라 생각하고 청춘을 구가하겠지만, 진짜 좋은 시절은 그로부터 오십 년 뒤 모든 게 끝난 다음이다. 다 빠져나간 뒤가 진정한 청춘이다. 뱃속도 사타구니도 보송보송 깨끗이 말라 시원시원 일가의 작은 마님으로서 전쟁을 겪어내며 온 힘을 다해 아이들을 길러냈고, 이제는 혼자 우아하게 살고 있는 우타코 씨. 그녀는 당분간 누구의 신세도 지고 싶지 않다. 몸도 건강하고 외롭지 않다. 이렇듯 즐거운 인생을 누리려면 우타코 씨처럼 젊을 때 부지런히 몸을 놀려 육체적?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 팔자가 좋은 예외적 노인이라 보는 시선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우연히 손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우타코 씨의 노력과 지혜가 빚어낸 결과다. 그러니까 멋진 노후, 즐거운 인생을 바란다면 자신의 젊은 날들, 한참 일할 나이의 그 시간들을 귀히 여겨 밤낮으로 지혜와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함을 가르치는 대목이다. “색정광은 또 뭐냐? 이건 로맨틱하다고 하는 거야. 나이 칠팔십 되어 아직 낭만이 살아 있으니 얼마나 훌륭하냐. 뭐가 아쉬워 손자, 증손자나 보고 있으라는 거냐? 사랑이니 연애니 찾고 있을 새가 없는 것은 너희들 같이 한참 일할 나이들이야. 너희들은 열심히 일이나 하면 돼. 그래서 늙은이들한테 노령연금이나 열심히 벌어주면 되는 거야. 칠팔십 되어서 연애를 못하면 대체 언제 하란 거냐?” 이렇듯 노인의 성?연애도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우타코 씨. 그런 우타코 씨가 공주병 혹은 왕비병 환자라 여기면 곤란하다. 그녀는 자고로 여자라면 ‘자립형’이어야 함을 늘 강조하고 있다. 남편에게 기대거나 뒤를 따르는 순종형이기보다, 남편이 쓰러져도 세상에 맞서 가게를 일구고 집안도 일으키는 당찬 여인이길 권한다. 나이 들수록 어른으로서의 ‘파이팅’이 있는 여자! 그러므로 남녀관계란 차 동무, 손수건 동무로 충분하다는 게 우타코 씨의 지론이다. 나이 들어서까지 함께 살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동안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왜 굳이 나이 들어 혼자가 되어서까지 숨은 그림자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저 ‘셀렘’을 즐기기보다 ‘생활인’이 되려는 건 “왜냐?”고 반문한다. 그랬다. 결국 그들 모두는 반려자를 찾으려는 게 아니라, 당장 빠져 죽을 것 같은 바다 위에서 떠다니는 구명대 하나를 필사적으로 챙기려는 절박한 심정일 뿐이다. 혼자 힘으로 살란 말이다, 의연하게! 사람이라는 것은 정말로 둘이 서로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일까. 홀로 노춘老春을 구가하고 있는 나는 ‘물기 모자란 여자’인가, 고집쟁이인가. 주의주장이 강한 우타코 씨이지만, 다름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주변을 보지 못하는 고집불통 할멈은 아니다. 소설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우타코 씨의 활약으로 점점 흥미를 더해 가고, 갈등 해결을 통해 변화와 다양성을 수용하는 우타코 씨를 보여준다. 유머러스하면서 시시때때로 감성적인 에피소드를 지나며, 우타코 씨 혹은 다나베 세이코의 인생에 대한 통찰은 술잔 바닥의 글씨처럼 가라앉는다. ‘타고난 소질이라는 게 뭘까, 하느님이 뿌린 소금, 인생의 소금 맛 같은 것일까.’ 내 눈앞에 희미한 님이 그 굵은 손가락으로 소금을 한 줌 집어 들어 인간세상이라는 요리 위에 뿌리고 계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소금을 골고루 뿌려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쪽에 많이 뿌리는 바람에 그쪽은 짜고 다른 쪽은 싱거워진다. 소금을 많이 맞은 사람은 소질이 넘치고, 적게 맞은 사람은 소질이 모자라게 된다. 모두 하느님이 손가락을 비벼 안배하는 데 달린 것. 짠 쪽이 싱거운 쪽을 바보 취급해서는 안 된다. 싱거운 쪽이 짠 쪽을 부러워할 것도 없다. 결국 혼자인 사람, 쓸쓸하고 고독하지만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마음 단단히 먹고 살아가길 얘기하는 우타코 씨. 그래서 영감 따위 필요 없다, 혼자서 당당히 나의 길을 가련다, 시종일관 부르짖던 우타코 씨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며 가슴 두근거리는 건 좋은 일이라 고백하고 만다. 3. 이 작품은 “홀로 서는 인생의 유쾌함’을 보여준다. 노후의 모습은 결국 그 사람의 삶의 총괄이다. 자식들을 훈육하여 좋은 학교를 졸업시키고 일류기업에 취직시켰으니 이제 마음 놓고 자신의 인생을 아이들에게 맡길 수 있겠구나 하는 계산은 머잖아 어긋나게 된다. 자식은 이제 걱정 없겠다 하고 판단하는 시점에서 부모 스스로 제 인생으로 돌아갈 결단을 할 수 없으면 커다란 상실감을 맛볼 수밖에 없다. 사실 우타코 씨가 우아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 이것이 그녀의 자립을 뒷받침해주는 물적 동기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줘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타코 씨의 교훈 제1조! 그렇게 사랑해주고 돈도 들였건만, 하고 뒤에 가서 후회하거나 허구한 날 은혜 갚으라는 소리나 되풀이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그다지 보기 좋지 않다. 장남 일가도 경제적으로 생활에 아무 불편이 없을 터. 그런데도 또 내 재산을 침이 뚝뚝 떨어질 듯한 목소리로 부러워하다니. 이것이 바로 속담에서 말하는 대로 ‘부자와 재털이는 쌓일수록 더럽다’는 것인지. “생각해준 건 참으로 고맙다만, 그러다가 또 뜻밖에 사오 년 만에 갈지도 모르잖니? 그때 ‘아차 그렇게 절약, 절약하며 궁상맞게 사는 게 아닌데, 이렇게 짧은 인생인 줄 알았으면 좀 더 신나게 화끈하게 쓸걸 그랬네.’ 할지도 모르지. 뭐, 삼십 년을 목표로 했다가 내가 만일 빨리 가기라도 하면 유산이 한참 남아서 너희들로서는 꿩 먹고 알 먹는 게 되겠지만 말이다, 세상이 그렇게 바라는 대로만은 되지 않는단다.” 그렇다고 우타코 씨가 이기적인 노인이라 볼 수도 없다. 노인으로서 홀로 서기를 강조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초연해지려 한다. 몸도 가누지 못할 반사 상태에서 생명유지 장치 따위 필요 없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제아무리 건강에 신경 쓴다 해도, 언제 어떻게 죽을지까지 준비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그걸 생각하면 이러니저러니 따질 거 없이 각오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거지. 그걸 뭐 ‘꼴딱 죽을 수 있도록’이니 ‘병치레 오래 해서 식구들한테 폐를 끼치지 않게 해달라느니’ 하며 하늘에다 빌어대고. 그런 약해빠진 마음 갖고는 안 되는 거야. 무사 조베이처럼 적 한가운데로 몸을 던지면서 ‘자, 죽여라, 마음대로 해봐.’ 그래야 하는 거라고.” 이것은 우타코 씨가 미련 없는 깔끔함, ‘자연체’로 물 흐르듯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하느님(나는 종교는 없지만 뭔가 우주의 절대의지 같은 초월자의 존재는 인정하고 있다. 그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희미하게 기척은 느끼기 때문에 ‘희미한 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그 자세가 바로 자연체 아니겠는가. 이런 우타코 씨와 전혀 다른 눈치 없고 고지식한 며느리 3종 세트라는 조연은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덕분에 우타코 씨는 더 당당하게 빛나고 가족과 인생 이야기도 진중하게 쳐지지 않은 채 유머러스하게 전달된다. 이들은 연계 릴레이를 하듯 늘 함께 등장하는데, 그러한 구성상 묘미가 콩트처럼 즐겁고 가볍지 않은 주제의식을 톡 쏘듯 일깨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