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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善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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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하루였어요. 아빠가 오지 않았다면 호랑이 밥이 됐을지도 몰라요. 재모 때문에 기운이 다 빠져 버렸지만 그래도 자동차까지는 갈 수 있어요.
남의 기운을 다 빼 놓고도 재모는 잘 자고 있어요. 아줌마 등에서 태평하게 말예요. 신발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나리는 재모의 발을 못 본 척했어요. 신발이 벗겨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잃어버려도 철딱서니 없는 재모탓이니까요. 아저씨와 아빠는 채소 때문에 두 손이 무겁고, 엄마는 도시락 가방을 양손에 들었어요. 아줌마는 재모를 업었고요. 아무도 재모 신발이 발가락에 걸려 달랑거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나리도 모르는 척했어요. "툭." 기어이 신발이 떨어졌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다들 그냥 갑니다. 나리도 그냥 지나쳤어요. 가다가 돌아보았어요. 어두워지는 길에 신발 한 짝만 남았어요. 나리가 다섯 살 때 신었던 신발이에요. 너무나 작아서 겁에 질린 것처럼 보여요. 나리는 얼른 달려가 신발을 주웠어요. 그리고 부지런히 어른들을 따라갔어요. 혼자 중얼거리면서. "재모 같은 동생은 절대로 안 키워!" --- pp.7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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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리는 늘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동생이 있다면 아픈 엄마 대신 함께 놀아 주고, 돌봐 줄 자신이 있었지요. 하지만 이런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어요. 엄마한테서 나는 약 냄새가 싫었지만 역시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혹시라도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냈다가는, 분명 엄마는 ‘그 일’을 떠올리고 말 거예요. 나리 동생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작은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만 잠시 살다 가 버린 일을 말이에요. 그래서일까요? 이제 나리도 어엿한 아홉 살이 되었건만 부모님은 아직도 나리를 ‘아가’라고 해요. 그야 아주 가끔 침대에 오줌을 지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아가’라고 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하루는 기어코 엄마와 싸우고 말았어요. 하지만 참 이상해요. 엄마랑 싸운 날, 여느 때처럼 ‘아가’ 하고 부르지도, 잠들기 전에 코를 비비며 살짝 깨물어 주지도 않는 엄마에게 왜 그렇게 서운했던 걸까요. 목이 꽉 메어, 눈물을 쏟을 만큼 서운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부엌에서 열무 잎사귀를 씻던 엄마가 깜짝 놀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리가 얼른 뛰어가 보니, 글쎄 열무 잎사귀에 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 있지 않겠어요! 엄마가 말렸지만 나리는 달팽이를 키우기로 마음먹었어요. 생수 병 안에 상추를 깔고 달팽이를 넣어 두었지요. 겁이 많은 엄마 때문에 애완동물 한 번 키워 보지 못했던 나리. 바라던 동생은 아니지만 뭐 어때요. 처음에는 몹시 못마땅해하던 엄마도 이젠 나리와 함께 달팽이 돌보는 데에 정성을 쏟았지요. 나리는 달팽이가 아주 신기한 동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발이 없어도 ‘복족’이라는 것으로 옮겨 다니고, 지팡이 같은 더듬이로 보고 느끼는가 하면, 지고 다니는 집이 깨져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고쳐지니 말예요. 무엇보다 똥도 먹이와 같은 색깔로 싸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었지요. 나리도 달팽이처럼 정직하고,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강하게 자랄 수 있을까요? 《꼭 한 가지 소원》에는 별난 이야기도, 커다란 사건도 없지만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가슴을 파고드는 한 여자 아이의 하루 하루를 만날 수 있어요. 여태까지 나온 동화책들과 달리 글과 그림을 따로 편집하여, 그림만으로도 이야기 한 편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한 점이 눈길을 끄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