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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宋(계속)
7. 哲宗皇帝 1105 철종황제哲宗皇帝 1106 낙양洛陽으로 가지 말아 주십시오 1107 북송北宋의 이학理學 1108 왕안석王安石의 탄식 1109 장돈章惇과 한진韓縝 1110 복건福建 놈 1111 신법파新法派를 몰아내다 1112 문정공文正公 사마광司馬光 1113 소식蘇軾과 정이 1114 여대방呂大防과 범순인范純仁 1115 당파 조정調停 1116 선인성렬태황태후宣人聖烈太皇太后 1117 조정의 권력투쟁 1118 선비의 할 일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1119 철종哲宗이 죽다 8. 徽宗皇帝 1120 휘종황제徽宗皇帝 1121 한충언韓忠彦 1122 서른세 명의 복관復官 1123 태후의 수렴정치가 끝나다 1124 장돈章惇이 파면되다 1125 한충언韓忠彦과 증포曾布 1126 형서邢恕 1127 장수를 쏘려거든 말을 먼저 쏘아라 1128 왕안석王安石을 받드는 자들 1129 요遼의 도종道宗 1130 여진女眞 1131 당인黨人의 명부 1132 토목공사와 사치 1133 흉한 조짐을 상서롭다고 보고하다 1134 동관童貫과 양사성梁師成 1135 여진과 거란의 반목 1136 고려高麗의 책략 1137 기생집을 드나드는 황제 1138 요遼나라 정벌과 금金에게 조공 1139 큰 별이 나타나다 1140 신보관神保觀의 헌토獻土 1141 지진이 일어나다 1142 금金나라의 풍습 1143 작은 재이災異 1144 흉년으로 도둑이 각처에서 일어나다 1145 요遼, 금金, 송宋의 각축과 결말 9. 欽宗皇帝 1146 흠종황제欽宗皇帝 1147 여우가 임금 침상에 올라오다 1148 휘종의 피난 1149 서울 방위 1150 당인黨人 명부를 삭제하다 1151 재상을 교체하다 1152 금金과의 대대적인 전투 1153 서울이 포위되고 1154 잇따른 재상 교체 1155 정강靖康의 치욕 (十九) 南宋 1. 高宗皇帝 1156 고종황제高宗皇帝 1157 남북이 갈린 채로 있는 편이 낫다 1158 금金이 유예劉豫를 제齊나라 대제大帝로 삼아주다 1159 강회江淮의 도둑 이성李成 1160 섬서陝西 지역 1161 진회秦檜의 큰 소리 1162 화상원和尙原의 전투 1163 임안臨按으로 돌아온 고종高宗 1164 금군金軍 살리갈撒離曷 1165 제齊의 침입 1166 조정趙鼎 1167 고종高宗의 친정親征 1168 장준張浚 1169 나를 잡으려면 날아서 오너라 1170 금金의 갈라마葛?馬가 서고 몽고蒙古가 일어나다 1171 장준張浚의 활약 1172 휘종徽宗이 죽은 지 2년 후에야 알게 되다 1173 악비岳飛를 다시 기용 1174 금이 제齊나라를 폐지하다 1175 호전胡銓의 상소문 1176 금金이 땅을 돌려주다 1177 이세보李世輔의 염원 1178 금金의 내분과 화친의 결렬 1179 올출兀朮의 재침 1180 송宋, 금金, 몽고蒙古 1181 금나라 양亮이 뒤를 잇다 1182 연경燕京을 서울로 1183 진회秦檜가 죽다 1184 금의 흠종欽宗이 죽다 1185 금金과 송宋의 공방전 1186 고종高宗이 임안(항주)으로 돌아와 제위를 물려주다 2. 孝宗皇帝 1187 효종황제孝宗皇帝 1188 나를 선영에 묻지 말라 1189 소강小康 상태와 남송宋의 도학道學 1190 북방의 작은 요순堯舜 3. 光宗皇帝 1191 광종황제光宗皇帝 4. 寧宗皇帝 1192 영종황제寧宗皇帝 1193 주희朱熹가 죽고 나자 1194 한탁주와 오희吳曦 1195 오희吳曦의 모반 1196 원元 태조太祖 테무진鐵木眞 1197 금군金軍에게 대패하고 한탁주를 철퇴로 쳐죽이다 1198 원 태조의 정벌 시작 1199 한탁주 머리를 상자에 넣어 금에게 사죄하다 1200 금金 세종世宗 1201 테무진의 서하西夏 정벌 1202 금金과 원元의 국교단절 1203 태조가 해마다 금金을 공격하다 1204 공격을 받지 않는 해가 없었다 1205 금金의 쇠락 1206 원元의 목화려木華黎 1207 금을 치고 서하西夏를 공략 1208 고려高麗의 항복 1209 서역西域 친정 1210 목화려木華黎의 영토 순회 1211 금나라 화의 요청 거부 1212 목화려木華黎가 죽다 1213 다루가치達魯花赤 설치 1214 금 장종章宗 죽다 1215 각단角端이라는 이수異獸 1216 송 영종寧宗이 죽다 5. 理宗皇帝 1217 이종황제理宗皇帝 (1) 양자로 이어지는 혈통 (2) 저 아이는 마치 임금 같구나 1218 이전李全의 거병 1219 사타沙陀를 넘어 1220 서하西夏를 멸하다 1221 태조 칭기즈 칸(테무진)의 유언 1222 원 태종太宗의 즉위 1223 태종 오고타이窩闊台 1224 창름을 설치하고 역驛을 세우다 1225 금나라 정벌에 나서다 1226 이전李全을 토벌하다 1227 송나라가 원나라 사신을 죽이다 1228 중서령中書令 야율초재耶律楚材 1229 금군金軍의 궤멸 1230 금의 애종哀宗이 도망가다 1231 원이 송에게 협공하여 금을 칠 것을 제의하다 1232 금의 장군 최립崔立의 항복 1233 공자묘孔子廟 수리 1234 송과 원의 협약 1235 금金의 멸망 1236 원元의 흥기 1237 고려高麗 정복 1238 경사經史의 수집과 편찬 1239 송나라가 끝없이 침략당하다 1240 세금 제도 제정 1241 경연經筵 1242 과거제도 실시 1243 원군元軍을 격파하다 1244 여문덕呂文德 1245 송나라의 작은 승리들 1246 태극서원太極書院과 조복趙復 1247 빚을 나라가 대신 갚아주다 1248 이학理學을 부흥시키다 1249 원 태종(오고타이)이 죽다 1250 사숭지史崇之 1251 야율초재耶律楚材 1252 왕세현汪世顯 1253 원의 정종定宗이 서다 1254 정종定宗이 죽다 1255 원의 헌종憲宗 몽가蒙哥 1256 대회大會를 열다 1257 여개余? 1258 태제太弟 쿠빌라이忽必烈 1259 사천택史天澤과 조벽趙璧 1260 몽가蒙哥를 저주한 황후 1261 관중關中 땅을 선택한 쿠빌라이 1262 여회余晦 1263 대리국大理國 평정 1264 송나라의 소강小康 1265 원의 개평부開平府 건설 1266 원의 안남安南 정벌 1267 안남왕安南王 1268 원군元軍이 악주鄂州를 포위하다 1269 악주鄂州를 지켜내다 1270 왕견王堅 1271 헌종(憲宗, 蒙哥)이 죽다 1272 대보大寶가 돌아올 것입니다 1273 세조世祖 쿠빌라이가 즉위하다 1274 원과의 밀약을 숨긴 가사도賈似道 1275 아리부가阿里不哥가 칭제하다 1276 연호 제정 1277 중통교초中統交? 발행 1278 아리부가阿里不哥를 토벌 1279 염희헌廉希憲 1280 국사國師 1281 『복화편福華編』 1282 송나라의 국운 1283 여문덕呂文德이 형호제치사荊湖制置使가 되다 1284 가사도賈似道로 인해 사기를 잃는 송군宋軍 1285 한림국사원翰林國史院 1286 학교관學校官 1287 아리부가阿里不哥는 달아나다 1288 연왕燕王 진금眞金 1289 여문덕呂文德의 노주瀘州 수복 1290 제군왕齊郡王 1291 왕문통王文統 1292 사천택史天澤이 제남濟南에서 1293 동문병董文炳 1294 십로十路 1295 학경 억류를 문책하다 1296 요추姚樞의 건의 1297 흑회단黑灰團 1298 치우기蚩尤旗라는 별 1299 연경燕京을 중도中都 대흥부大興府로 1300 같은 태조太祖의 후예이다 1301 행중서성行中書省 1302 송 이종理宗이 죽다 6. 度宗皇帝 1303 도종황제度宗皇帝 1304 가사도賈似道의 죄를 지적한 선비들 1305 시독侍讀, 시강侍講, 설서說書 1306 왕반王盤 1307 안동安童, 백안伯顔, 유병충劉秉忠 1308 호시互市 개설 1309 가사도賈似道의 저택 1310 제국용사사制國用使司 1311 일본日本에게 글을 내리다 1312 봉급俸給과 직전職田 1313 운남왕雲南王 1314 관리들의 물갈이 1315 양양襄陽이 포위되다 1316 삼학三學의 선비들 1317 농토 측량 1318 섭몽정葉夢鼎 1319 강만리江萬里와 마정란馬廷鸞 1320 몽고문자蒙古文字 1321 강만리江萬里 1322 양양襄陽이 포위된 지 3년 1323 교활한 가사도賈似道 1324 염희헌廉希憲과 허형許衡 1325 조의朝儀 1326 사농사司農司 1327 양양襄陽을 압박하다 1328 집현대학사국자좨주集賢大學士國子祭酒 1329 원元의 국호 제정 조칙詔勅 1330 섭몽정葉夢鼎을 재상으로 삼았으나 1331 양양襄陽이 함락되다 1332 가사도賈似道의 거짓말 1333 서안왕西安王 1334 직학사원直學士院의 문천상文天祥 1335 평지에 흰털이 나다 1336 너희들은 환속하라 1337 가사도의 어머니 장례 1338 진의중陳宜中 1339 도종度宗이 죽다 7. 孝恭懿聖皇帝 1340 효공의성황제孝恭懿聖皇帝 1341 길왕吉王과 신왕信王 1342 원元의 공신功臣들 1343 앞다투어 원나라 군사를 인도 1344 악주鄂州가 항복하다 1345 천목산天目山이 무너지다 1346 근왕병勤王兵 모집 1347 장강長江 연안이 바람에 쓰러지듯 1348 강주江州가 함락되다 1349 유정劉整의 분사憤死 1350 승진의 약속은 어찌 되었소 1351 문천상文天祥이 근왕병을 모집하다 1352 서울을 옮기려 1353 충신의 아내 1354 건강建康이 함락되다 1355 밤을 타 발꿈치를 맞대며 달아난 대신들 1356 가사도를 탄핵하다 1357 가사도의 가슴뼈를 뽑아버리다 1358 오지 않는 구원병들 1359 일식日蝕 1360 유몽염留夢炎 1361 문천상文天祥이 민병民兵을 이끌고 1362 임안臨按의 백 리 밖까지 1363 전투를 중지하라 1364 이불 1365 바닷길로 피난 1366 장세걸張世傑 1367 고정산高亭山 1368 진의중陳宜中이 밤에 달아나다 1369 문천상이 재상직을 사양하다 1370 가여경賈餘慶과 오견吳堅을 재상으로 1371 문천상文天祥이 원군에 억류당하다 1372 원군元軍이 임안臨按에 입성하자 1373 문천상의 탈출 1374 수천 명이 북으로 끌려가다 1375 황제 일행이 상도上都로 끌려가 1376 뱃길로 복주福州에 모였으나 8. 端宗皇帝 1377 단종황제端宗皇帝 1378 겨우 행정을 꾸리기는 했으나 1379 문천상이 찾아오다 1380 도둑들조차 문천상에게 호응 1381 교수敎授 나개례羅開禮 1382 다시 바다로 나서서 피하다 1383 문천상의 저항 전투 1384 문천상에게 항복을 권유한 오준吳浚 1385 매주梅州 수복 1386 흥국현興國縣 수복 1387 조주潮州 수복 1388 송군宋軍의 회합 1389 재상 중의 진짜 재상 1390 길공吉?의 여러 현을 수복 1391 장세걸張世傑의 회군 1392 다시 배로 쫓겨 1393 문천상文天祥과 조시상趙쇣賞 1394 광주廣州 함락 1395 바다까지 찾아와 공격 1396 뇌산雷山 공격 1397 여강포麗江浦 1398 원군元軍이 민광으로 진격 1399 단종端宗이 죽다 9. 帝昺 1400 제병帝昺 1401 다시 애산厓山으로 옮겨가다 1402 별들이 떨어지다 1403 역질疫疾까지 번져 1404 행정의 형태는 갖추다 1405 자살도 못한 채 1406 단종端宗을 애산厓山에 묻다 1407 해남海南 1408 참혹한 패전 1409 송나라의 처절한 최후 1410 나라가 망하였다는데 1411 부흥 운동과 과거의 예언 1412 송나라 사직이 끝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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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송말, 4천 년 중국역사의 보고
송나라 망국의 한을 십팔사략 편찬작업으로 달랬는가 저자 증선지는 깊이 들어앉아 역사를 집성했다! 역사는 거울이다, 거울을 보고 길을 찾자 『십팔사략』은 알기 쉽게 엮은 역사서이며 일반인을 위한 실용서이다. 개인의 일화를 중심으로, 치란흥망의 발자취와 인간 군상이 펼친 삶의 방식을 더듬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생생한 삶의 지혜를 터득하도록 갖가지 묘책과 방법을 제시한다. 일화와 인물 중심의 전개가 초학자로 하여금 흥미를 잃지 아니하고 전체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중국 역사의 정수만을 모은 실용적 역사서 중국에서는 거의 잊히다시피 한 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크게 유행하여 국민적 교재로서 인지도를 높이며 일상생활서 눈부시게 영향을 미쳐온 책들이 꽤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문진보』와 『명심보감』, 그리고 바로 이 『십팔사략』 등일 것이다. 그러면 이 책들이 중국에서는 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을까. 그 까닭은 이 책들이 모두 전문서가 아닌 쉬운 편집서이며, 권위를 가진 자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자료를 모아 엮은 작업이었다는 것, 그저 아동 입문용 교재라는 것 등 통속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지극히 큰 영향을 미쳐 출간되고 개편되고 증보되고, 나아가 그 틀만 유지한 채 내용은 계속하여 새롭게 단장되어 왔다. 이는 일반인을 위한 실용서로는 그만큼 쉽고 우리 환경에 알맞은 학습교재일 뿐 아니라 원만하고 합리적이며 나아가 이상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십팔사략』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책이다. 개인의 일화를 중심으로 해서 치란흥망의 발자취와 엄청난 인간 군상의 삶의 방식을 통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지혜를 배울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또한 다른 역사서 속의 고사나 명언 등이 거의 모두 수록되어 있으므로 중국의 역사나 사상을 빠르게 아는 데에도 이보다 더 편리한 책은 있을 수 없다. 『십팔사략』의 저자 증선지 『십팔사략十八史略』은 송말宋末 원초元初의 증선지曾先之라는 사람이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중국 역사를 간추려 초학자 학습용으로 편찬한 교재이다. 중국 정사正史의 기전체를 간략히 시대순으로 재배치하여 초보적 편년체로 구성한 것이며 당시까지 있던 17사에 송대 역사를 합해 “18사”의 초략抄略이라는 뜻으로 『십팔사략』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사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며 그 밖의 여러 사서를 두루 참작하여 재미있는 내용과, 시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엮었다. 따라서 일화와 인물 중심의 전개가 초학자들이 흥미를 잃지 아니하고 전체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증선지는 송말에서 원초에 생존했던 인물이다. 자는 종야從野이며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칭 ‘전진사前進士’라 하였다. 이는 전대인 송대宋代에 진사에 올랐었다는 뜻으로 자신이 책을 쓴 원대元代에 대하여 구분하고자 칭한 것이다. 1279년 송나라가 망하고 나서는 은거한 채 『십팔사략』 찬술에 몰두하다가 92세에 생을 마쳤다. 우리나라에서 더욱 꽃피운 『십팔사략』 연구 『십팔사략』은 중국에서 싹을 틔워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선시대에 큰 나무로 자라나 꽃을 피웠다. 그러나 지금은 본격적인 연구가 드문 편이며 도리어 일본에서 그 열매를 따 먹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원 출생지인 중국에서조차 이 책에 대해 깊이 아는 이가 적으며 연구서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물론 이 책이 학술적 사학서史學書가 아니라 동몽교재 성격의 속찬俗撰, 향리사숙鄕里私塾의 교재용으로 꾸민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여하튼 우리나 일본에 그토록 영향을 주었으며 지금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의 책 이름인 점에 비해 중국에서는 너무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도리어 고향을 떠나 이웃인 우리나라에서 증보, 개편, 개선되었으니 그야말로 우리는 하찮은 박옥璞玉을 다듬어 값을 매길 수조차 없는 벽옥璧玉으로 탈바꿈시키는 재주를 가진 민족인가 보다. 특히 이 책은, 중국의 긴 역사와 그 방대한 자료를 모두 섭렵하기는 어렵고 그만한 시간도 투자할 수 없던 열악한 시대의 우리 선대들에게, 우선 중국 역사 전체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자료인 동시에 교재로써의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 내었다고 아무리 칭송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십팔사략』에 원의 역사를 넣은 『십구사략』이 나오자 이 책을 선호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만족할 수 없어 다시 스스로 명대 역사를 또 넣어 우리 책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다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역사를 함께 병렬시켜, 중귈中華와 동국東國의 역사를 대등하게 편집하여 역사 대강의 기본 뎱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궁중 왕실 그리고 지방 각지에서 간행하고 교정 보고 언해를 하여, 문장과 내용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에 앞으로도 이 『십팔사략』을 철저히 연구하고 역주하여 더욱 한 걸음 앞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적어도 조선시대 선인들의 그 피나는 노력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