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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三) 東晉
1. 中宗元皇帝 426 중종원황제中宗元皇帝 427 나보다 먼저 나설까 두렵다 428 후조後趙 429 포홍蒲洪 430 조적祖狄이 죽다 431 모용외慕容? 432 선비족鮮卑族의 흥기 433 왕돈王敦과 왕도王導 2. 肅宗明皇帝 434 숙종명황제肅宗明皇帝 435 왕도王導의 최후 436 도간陶侃 437 명제明帝가 죽다 3. 顯宗成皇帝 438 현종성황제顯宗成皇帝 439 소준蘇峻의 반란 440 전조前趙의 멸망 441 온교溫嶠 442 후조後趙의 석륵石勒 443 날개가 부러진 꿈 444 석호石虎 445 성成이 국호를 한漢으로 바꾸다 446 강성해지기 시작한 탁발씨拓跋氏 447 왕도王導와 유량庾亮 448 성城을 옮기지 말라 449 모용황을 연왕燕王에 봉하다 450 성제成帝가 죽다 4. 康皇帝 451 강황제康皇帝 452 유익庾翼과 환온桓溫 453 이수李壽가 죽다 454 강제康帝가 죽다 5. 孝宗穆皇帝 455 효종목황제孝宗穆皇帝 456 환온桓溫은 모반할 것입니다 457 한漢이 망하다 458 연왕燕王이 죽다 459 조趙나라 토벌의 실패 460 조趙나라 포홍浦洪 461 양왕凉王 장중화張重華 462 후조後趙가 국호를 위魏로 고치다 463 포홍浦洪이 성을 부씨?氏로 바꾸고 황제를 칭하다 464 연왕燕王이 황제를 칭하다 465 중원中原이 시끄러워지다 466 장중화張重華가 죽다 467 돌돌괴사 468 환온桓溫과 왕맹王猛 469 부건이 죽다 470 장조張祚가 피살되다 471 중원中原이 백년이나 침몰된 채 472 진왕秦王 부견 473 연왕燕王 모용준慕容雋이 죽다 474 사안謝安 475 목제穆帝가 죽다 6. 哀皇帝 476 애황제哀皇帝 7. 帝奕 477 제혁帝奕 478 치초 479 환온桓溫의 패배 480 모용수慕容垂 481 왕맹王猛과 부견 482 더러운 이름이라도 남겨야지 8. 簡文皇帝 483 간문황제簡文皇帝 9. 烈宗孝武皇帝 484 열종효무황제烈宗孝武皇帝 485 환온이 병으로 죽다 486 어찌 하늘이 왕맹王猛을 빼앗아가는가 487 전량의 멸망 488 부견이 대국代國을 둘로 나누다 489 북부병北府兵 490 비수지전 491 모용수慕容垂가 연왕燕王을 자칭하다 492 후진後秦 493 서연西燕 494 태연히 바둑만 두다 495 부비?丕 496 탁발규拓跋珪 497 연왕燕王 모용수慕容垂 498 서연西燕의 모용영慕容永 499 부등?登 500 후진後秦 요장姚? 501 요흥姚興 502 모용영慕容永이 죽다 503 모용보慕容寶 504 중원中原의 대란 505 만년 동안 천자노릇을 하고 싶다 506 장귀인張貴人 10. 安皇帝 507 안황제安皇帝 508 연주燕主 모용보慕容寶 509 모용덕慕容德 510 북연北燕 511 탁발규拓跋珪가 평성平城에 도읍하다 512 북량 513 유유劉裕의 기병 514 북량北?의 저거몽손沮渠蒙遜 515 양의 멸망 516 서량西? 517 유연柔然 518 손은孫恩 519 환현桓玄의 반란 520 진秦의 혁련발발赫連勃勃 521 남연南燕을 치다 522 북연北燕의 멸망 523 도무황제道武皇帝 탁발규拓跋珪 524 남연南燕의 멸망 525 유유劉裕의 활약 526 서진西秦의 걸복한귀乞伏韓歸 527 남량南凉의 멸망 528 후진後秦의 멸망 529 삼진三秦의 부로父老들 530 안제安帝를 목 졸라 죽이다 11. 恭皇帝 531 공황제恭皇帝 (十四) 南北朝 532 남북조南北朝의 개황 (가) 宋 1. 高祖武皇帝 533 고조무황제高祖武皇帝 534 서량의 멸망 535 유유劉裕가 죽다 2. 廢帝滎陽王 536 폐제형양왕廢帝滎陽王 537 북위北魏 태종太宗이 죽다 538 폐제廢帝가 죽다 3. 文皇帝 539 문황제文皇帝 540 하왕夏王 발발勃勃이 죽다 541 도연명陶淵明 542 북위北魏와 하夏의 싸움 543 하夏의 혁련정赫連定 544 서진西秦의 걸복치반乞伏熾盤 545 북연北燕의 풍발馮跋 546 서진西秦과 하夏의 멸망 547 북량의 저거몽손沮渠蒙遜 548 사령운謝靈運 549 연燕의 멸망 550 북량北凉의 멸망 551 최호崔浩를 주살하다 552 송宋과 위魏의 싸움 553 위魏나라의 종애宗愛 554 원가元嘉 시대 4. 孝武皇帝 555 효무황제孝武皇帝 5. 廢帝 556 폐제廢帝 557 위魏나라의 안정 558 폭군 폐제廢帝 6. 明皇帝 559 명황제明皇帝 7. 後廢帝 560 후폐제後廢帝 561 위魏나라 헌문제獻文帝와 송나라 후폐제後廢帝 8. 順皇帝 562 순황제順皇帝 563 남조 송宋의 멸망 (나) 齊 1. 太祖高皇帝 564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2. 武皇帝 565 무황제武皇帝 3. 廢帝鬱林王 566 폐제울림왕廢帝鬱林王 4. 廢帝海陵王 567 폐제해릉왕廢帝海陵王 5. 明皇帝 568 명황제明皇帝 6. 廢帝東昏侯 569 폐제동혼후廢帝東昏侯 570 위魏나라가 성씨를 원씨元氏로 바꾸다 571 반비潘妃와 어리석은 황제 7. 和皇帝 572 화황제和皇帝 (다) 梁 1. 高祖武皇帝 573 고조무황제高祖武皇帝 574 북위北魏의 혼란 575 동위東魏와 서위西魏 576 후경侯景의 난과 양 무제의 죽음 2. 簡文皇帝 577 간문황제簡文皇帝 578 동위東魏의 멸망 579 서위西魏가 양왕梁王을 삼다 580 서위西魏의 보거寶炬가 죽다 581 후경侯景의 최후 3. 元皇帝 582 원황제元皇帝 583 돌궐突厥이 강해지기 시작하다 584 서위西魏 우문태宇文泰 585 만 권의 책을 읽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다 586 왕승변王僧辯과 진패선陳?先 4. 敬皇帝 587 경황제敬皇帝 588 서위西魏의 우문태宇文泰가 죽다 589 서위西魏의 멸망 590 남조 양梁나라의 멸망 (라) 陳 1. 高祖武皇帝 591 고조무황제高祖武皇帝 2. 文皇帝 592 문황제文皇帝 593 주왕周王 육毓이 황제를 칭하다 594 북제왕北齊王 595 주周나라 우문호宇文護 596 북제北齊의 혼란 597 후량後梁 598 북제北齊의 담湛 599 문제文帝의 죽음 3. 廢帝臨海王 600 폐제임해왕廢帝臨海王 601 북제北齊의 무성황제武成皇帝 602 안성왕安成王이 자립하다 4. 宣皇帝 603 선황제宣皇帝 604 주주周主 우문옹宇文邕 605 북제北齊의 멸망 606 양견楊堅의 등장과 북주北周의 멸망 607 선제宣帝의 죽음 5. 後主長城煬公 608 후주장성양공後主長城煬公 609 후량後梁의 멸망 610 양견楊堅의 진陳나라 공략 (十五) 隋 1. 高祖文皇帝 611 고조문황제高祖文皇帝 (1) 머리에는 뿔이 솟고 살에는 비늘이 돋아 (2) 양광楊廣을 태자로 삼다 612 왕통王通의 태평십이책太平十二策 613 아버지의 여자를 겁탈하려 하다니 (1) 짐승 같은 놈 (2) 문제文帝의 치적과 과실 2. 煬皇帝 614 양황제煬皇帝 615 대운하大運河의 건설 616 끝없는 토목공사와 순유巡遊 617 고구려高句麗 정벌을 준비하다 618 두건덕竇建德의 기병 619 고구려高句麗에게 대패하다 620 갈수록 문란해지는 정치 621 이씨李氏가 왕이 되리라 622 임사홍林士弘이 초제楚帝를 칭하다 623 두복위杜伏威가 역양歷陽을 점거하다 624 두건덕竇建德이 장락왕長樂王을 칭하다 625 각지의 기병 626 이밀李密 627 돌궐突厥의 흥기 628 양사도梁師都 629 설거薛擧 630 이궤李軌 631 설거薛擧가 칭제하다 632 소선蕭銑 633 이연李淵의 기병 3. 恭皇帝 634 공황제恭皇帝 635 소선蕭銑이 황제를 칭하다 636 수隋나라의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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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송말, 4천 년 중국역사의 보고
송나라 망국의 한을 십팔사략 편찬작업으로 달랬는가 저자 증선지는 깊이 들어앉아 역사를 집성했다! 역사는 거울이다, 거울을 보고 길을 찾자 『십팔사략』은 알기 쉽게 엮은 역사서이며 일반인을 위한 실용서이다. 개인의 일화를 중심으로, 치란흥망의 발자취와 인간 군상이 펼친 삶의 방식을 더듬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생생한 삶의 지혜를 터득하도록 갖가지 묘책과 방법을 제시한다. 일화와 인물 중심의 전개가 초학자로 하여금 흥미를 잃지 아니하고 전체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중국 역사의 정수만을 모은 실용적 역사서 중국에서는 거의 잊히다시피 한 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크게 유행하여 국민적 교재로서 인지도를 높이며 일상생활서 눈부시게 영향을 미쳐온 책들이 꽤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문진보』와 『명심보감』, 그리고 바로 이 『십팔사략』 등일 것이다. 그러면 이 책들이 중국에서는 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을까. 그 까닭은 이 책들이 모두 전문서가 아닌 쉬운 편집서이며, 권위를 가진 자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자료를 모아 엮은 작업이었다는 것, 그저 아동 입문용 교재라는 것 등 통속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지극히 큰 영향을 미쳐 출간되고 개편되고 증보되고, 나아가 그 틀만 유지한 채 내용은 계속하여 새롭게 단장되어 왔다. 이는 일반인을 위한 실용서로는 그만큼 쉽고 우리 환경에 알맞은 학습교재일 뿐 아니라 원만하고 합리적이며 나아가 이상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십팔사략』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책이다. 개인의 일화를 중심으로 해서 치란흥망의 발자취와 엄청난 인간 군상의 삶의 방식을 통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지혜를 배울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또한 다른 역사서 속의 고사나 명언 등이 거의 모두 수록되어 있으므로 중국의 역사나 사상을 빠르게 아는 데에도 이보다 더 편리한 책은 있을 수 없다. 『십팔사략』의 저자 증선지 『십팔사략十八史略』은 송말宋末 원초元初의 증선지曾先之라는 사람이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중국 역사를 간추려 초학자 학습용으로 편찬한 교재이다. 중국 정사正史의 기전체를 간략히 시대순으로 재배치하여 초보적 편년체로 구성한 것이며 당시까지 있던 17사에 송대 역사를 합해 “18사”의 초략抄略이라는 뜻으로 『십팔사략』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사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며 그 밖의 여러 사서를 두루 참작하여 재미있는 내용과, 시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엮었다. 따라서 일화와 인물 중심의 전개가 초학자들이 흥미를 잃지 아니하고 전체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증선지는 송말에서 원초에 생존했던 인물이다. 자는 종야從野이며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칭 ‘전진사前進士’라 하였다. 이는 전대인 송대宋代에 진사에 올랐었다는 뜻으로 자신이 책을 쓴 원대元代에 대하여 구분하고자 칭한 것이다. 1279년 송나라가 망하고 나서는 은거한 채 『십팔사략』 찬술에 몰두하다가 92세에 생을 마쳤다. 우리나라에서 더욱 꽃피운 『십팔사략』 연구 『십팔사략』은 중국에서 싹을 틔워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선시대에 큰 나무로 자라나 꽃을 피웠다. 그러나 지금은 본격적인 연구가 드문 편이며 도리어 일본에서 그 열매를 따 먹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원 출생지인 중국에서조차 이 책에 대해 깊이 아는 이가 적으며 연구서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물론 이 책이 학술적 사학서史學書가 아니라 동몽교재 성격의 속찬俗撰, 향리사숙鄕里私塾의 교재용으로 꾸민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여하튼 우리나 일본에 그토록 영향을 주었으며 지금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의 책 이름인 점에 비해 중국에서는 너무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도리어 고향을 떠나 이웃인 우리나라에서 증보, 개편, 개선되었으니 그야말로 우리는 하찮은 박옥璞玉을 다듬어 값을 매길 수조차 없는 벽옥璧玉으로 탈바꿈시키는 재주를 가진 민족인가 보다. 특히 이 책은, 중국의 긴 역사와 그 방대한 자료를 모두 섭렵하기는 어렵고 그만한 시간도 투자할 수 없던 열악한 시대의 우리 선대들에게, 우선 중국 역사 전체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자료인 동시에 교재로써의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 내었다고 아무리 칭송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십팔사략』에 원의 역사를 넣은 『십구사략』이 나오자 이 책을 선호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만족할 수 없어 다시 스스로 명대 역사를 또 넣어 우리 책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다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역사를 함께 병렬시켜, 중귈中華와 동국東國의 역사를 대등하게 편집하여 역사 대강의 기본 뎱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궁중 왕실 그리고 지방 각지에서 간행하고 교정 보고 언해를 하여, 문장과 내용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에 앞으로도 이 『십팔사략』을 철저히 연구하고 역주하여 더욱 한 걸음 앞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적어도 조선시대 선인들의 그 피나는 노력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