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十七) 五代
(가) 梁(後梁) 1. 太祖皇帝 878 태조황제太祖皇帝 879 마은馬殷을 초왕楚王에 880 촉주蜀主 왕건王建 881 이극용李克用 882 회남淮南의 혼란 883 민왕?王 884 연왕燕王 885 하주夏州의 난 886 광주廣州의 유은劉隱 887 연제燕帝 888 주전충朱全忠이 죽다 2. 均王 889 균왕均王 890 연燕이 망하다 891 고계창高季昌 892 거란契丹 아보기阿保機가 칭제하다 893 월왕越王이 국호를 한漢으로 고치다 894 서온徐溫 895 촉왕蜀王 896 오왕吳王 897 오월국왕吳越國王 898 진晉나라와 양梁나라 (나) 唐(後唐) 1. 莊宗皇帝 899 장종황제莊宗皇帝 900 남평왕南平王 901 촉蜀을 멸하다 902 맹지상孟知祥 903 장종莊宗의 최후 2. 明宗皇帝 904 명종황제明宗皇帝 905 거란契丹 아보기阿保機가 죽다 906 민왕 왕심지王審知 907 오왕吳王 양부楊溥 908 남평왕南平王 고계高季 909 초왕楚王 마은馬殷 910 오월왕吳越王 전류錢? 911 하주夏主 이인복李仁福 912 촉왕蜀王 맹지상孟知祥 913 명종明宗의 인물됨 3. 閔帝 914 민제閔帝 915 맹지상孟知祥이 황제를 일컫다 916 노왕潞王이 서다 4. 潞王 917 노왕潞王 918 맹지상孟知祥이 죽다 919 이이초李彛超가 죽다 920 민의 이계붕王繼鵬 921 노왕潞王이 분신하여 죽다 (다) 晉(後晉) 1. 高祖皇帝 922 고조황제高祖皇帝 923 오吳의 서지고徐知誥가 칭제하여 남당南唐을 세우다 924 거란契丹의 국호 대료大遼 925 민의 왕희王曦 926 오월왕吳越王 전원관錢元瓘 927 남한南漢의 유공劉? 928 진주晉主가 죽다 2. 出帝 929 출제出帝 930 남당南唐의 이변 931 은제殷帝 932 남한南漢의 유성劉晟 933 민의 주문진朱文進 934 거란과의 싸움 (라) 漢(後漢) 1. 高祖皇帝 935 고조황제高祖皇帝 936 제파 937 초왕楚王 마희범馬希範 938 오월왕吳越王 전홍좌錢弘佐 939 한주漢主가 죽다 2. 隱帝 940 은제隱帝 941 조정의 명령을 거부하다 942 형남荊南 고종회高從誨 943 하중河中의 이수정李守貞 944 곽위郭威 945 초왕楚王 마희악 946 한後漢의 멸망 (마) 周(後周) 1. 太祖皇帝 947 태조황제太祖皇帝 948 거란의 내분 949 초楚가 망하다 950 초의 장군 유언劉言 951 주왕周王이 죽다 2. 世宗皇帝 952 세종황제世宗皇帝 953 북한北漢을 공략하다 954 북한北漢의 유민劉旻이 죽다 955 촉蜀을 벌하다 956 후주後周와 남당南唐 957 낭주朗州의 왕규王逵 958 남한南漢의 유성劉晟 959 거란 정벌에 나서다 960 조광윤趙匡胤의 종군 961 세종世宗이 죽다 3. 恭帝 962 공제恭帝 963 진교역陳橋驛 사건 (十八) 宋 1. 太祖皇帝 964 태조황제太祖皇帝 965 택주澤州와 노주潞州를 평정하다 966 회남淮南을 평정하다 967 형남荊南의 고보융高寶融 968 남당南唐의 유종효留從效 969 남당南唐의 군주 이경李景 970 죽은 사람에게 살을 붙여 주듯 (1) 누가 이 어려운 황제의 일을 하려 하겠는가? (2) 그대들에게 황포黃袍를 입혀준다면 971 조보趙普 972 여진女眞 973 회골과 우전 974 천주泉州의 유종효留從效 975 서평왕西平王 이이흥李彛興 976 주보권周保權 977 형남荊南의 고보욱 978 고려高麗 979 형남荊南과 호남湖南이 평정되다 980 조보趙普를 동평장사同平章事로 삼다 981 대대로 항복문서만 쓰는 이씨 집안 982 재상宰相은 모름지기 학자를 등용해야 983 나는 그러한 태평성세를 누리지 못하고 죽으리라 984 하주夏州의 이광예李光叡 985 북한北漢의 유계원劉繼元 986 솥과 냄비에도 귀가 있다 987 북한北漢 정벌에 나섰으나 988 그대가 죽기 전에는 북벌北伐하지 않겠다 989 거란의 목종穆宗 990 남한南漢의 멸망 991 교지交趾 992 재상 조보趙普의 고집 993 남당南唐 정벌 994 남당南唐의 최후 995 이 보자기를 몰래 풀어보시오 996 선조宣祖의 능을 참배하다 997 천자를 보게 되다니 998 국운이란 덕에 달려 있는 법 999 송 태조의 치적 2. 太宗皇帝 1000 태종황제太宗皇帝 1001 관리의 등급을 매기다 1002 뇌물 받은 자는 관리가 될 수 없다 1003 청망관淸望官 1004 진홍진陳洪進 1005 오월왕吳越王 전숙錢?이 투항하다 1006 북한北漢이 항복하다 1007 거란 정벌에 생긴 일 1008 학자 충방 1009 나를 비방한 자의 이름은 알아서는 안 된다 1010 희이선생希夷先生 진단陳? 1011 백성의 고혈을 발라놓은 탑 1012 서하西夏의 침입 1013 거란의 경제景帝 1014 여진女眞이 거란에 복종하다 1015 형제를 서로 싸우게 하다 1016 촉蜀의 반란과 평정 1017 교지군왕交趾郡王 1018 아우라고 눈감아 주셨으니 1019 태종太宗의 치적 3. 眞宗皇帝 1020 진종황제眞宗皇帝 1021 거란의 침입 1022 왕균王均의 반란 1023 강보예康保裔의 전사 1024 서하西夏가 변경을 괴롭히다 1025 양육랑楊六郞 1026 거란과의 전투 1027 진종眞宗이 죽다 4. 仁宗皇帝 1028 인종황제仁宗皇帝 1029 교지交趾의 내분과 안정 1030 거란의 성종聖宗 1031 서하西夏의 조원호趙元昊 1032 재상 여이간呂夷簡 1033 서하西夏 경략과 거란의 계속된 침입 1034 비판의 글들 1035 범중엄范仲淹 1036 문언박文彦博 1037 하국왕夏國王 조원호趙元昊 1038 진집중陳執中 1039 하송을 파면하다 1040 등롱금燈籠錦을 바쳐 재상이 되었습니다 1041 농지고를 토벌하다 1042 방적龐籍 1043 부필富弼 밖에 없겠군 1044 거란의 흥종興宗 1045 교지의 이덕정李德政 1046 한기韓琦 1047 「변간론辨姦論」 1048 사마광司馬光의 삼차三箚 1049 소식蘇軾과 소철蘇轍 1050 증공량曾公亮 1051 인종仁宗이 죽다 5. 英宗皇帝 1052 영종황제英宗皇帝 1053 생부를 어떻게 모실 것인가? 1054 거란이 국호를 대료大遼로 고치다 1055 영종英宗이 죽다 6. 神宗皇帝 1056 신종황제神宗皇帝 1057 생부 복왕?王에 대한 논의 이래로 1058 왕안석王安石이 요순堯舜을 들먹이다 1059 왕안석王安石과 신법新法 1060 농전수리農田水利 1061 의창義倉을 폐지하다 1062 균수법均輸法 1063 신법을 비판하다 1064 신법 비판이 거세지다 1065 청묘법靑苗法 1066 부필富弼과 왕안석 1067 예매법預買法 1068 조변趙? 1069 신종神宗이 친히 과거 시험을 관장하다 1070 손각孫覺과 정호程顥가 신법을 비판하다 1071 여공저呂公著와 장전張?이 신법을 비판하다 1072 사두詞頭를 격정?定하다 1073 사경온謝景溫 1074 소식蘇軾의 만언서萬言書 1075 아첨해서라도 좋은 관직을 얻겠다 1076 증공량曾公亮이 파면되다 1077 신법 비난으로 보복을 당하다 1078 범진范鎭이 신법을 반대했다가 파면되다 1079 한강韓絳과 왕안석 1080 보갑법保甲法 1081 증포曾布 1082 과거법科擧法을 고치다 1083 사마광司馬光 1084 구양수歐陽脩가 사직을 청하다 1085 부필富弼이 좌천되다 1086 양회楊繪와 유지劉摯의 신법을 비난 1087 차역법差役法과 모역법募役法 1088 태학삼사법大學三舍法 1089 시역법市易法 1090 보마법保馬法 1091 방전균세법方田均稅法 1092 변방의 경계 표지 1093 시신이 떠올라 강물을 덮다 1094 경의국經義局 1095 신법으로 인한 혼란과 고통 (1) 굶어죽는 백성들을 그림으로 그려 바치다 (2) 신법 때문입니다 (3) 천자가 알지 못하도록 하라 1096 호마법戶馬法 1097 판관判官 한기韓琦 1098 하동河東 땅 7백 리를 요遼에게 주다 1099 신법의 폐해 1100 소식蘇軾의 시화詩禍 1101 오충吳充 1102 제도 개선 1103 부필富弼의 유언 1104 사마광과 『자치통감資治通鑑』 |
|
삼황오제-송말, 4천 년 중국역사의 보고
송나라 망국의 한을 십팔사략 편찬작업으로 달랬는가 저자 증선지는 깊이 들어앉아 역사를 집성했다! 역사는 거울이다, 거울을 보고 길을 찾자 『십팔사략』은 알기 쉽게 엮은 역사서이며 일반인을 위한 실용서이다. 개인의 일화를 중심으로, 치란흥망의 발자취와 인간 군상이 펼친 삶의 방식을 더듬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생생한 삶의 지혜를 터득하도록 갖가지 묘책과 방법을 제시한다. 일화와 인물 중심의 전개가 초학자로 하여금 흥미를 잃지 아니하고 전체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중국 역사의 정수만을 모은 실용적 역사서 중국에서는 거의 잊히다시피 한 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크게 유행하여 국민적 교재로서 인지도를 높이며 일상생활서 눈부시게 영향을 미쳐온 책들이 꽤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문진보』와 『명심보감』, 그리고 바로 이 『십팔사략』 등일 것이다. 그러면 이 책들이 중국에서는 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을까. 그 까닭은 이 책들이 모두 전문서가 아닌 쉬운 편집서이며, 권위를 가진 자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자료를 모아 엮은 작업이었다는 것, 그저 아동 입문용 교재라는 것 등 통속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지극히 큰 영향을 미쳐 출간되고 개편되고 증보되고, 나아가 그 틀만 유지한 채 내용은 계속하여 새롭게 단장되어 왔다. 이는 일반인을 위한 실용서로는 그만큼 쉽고 우리 환경에 알맞은 학습교재일 뿐 아니라 원만하고 합리적이며 나아가 이상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십팔사략』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책이다. 개인의 일화를 중심으로 해서 치란흥망의 발자취와 엄청난 인간 군상의 삶의 방식을 통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지혜를 배울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또한 다른 역사서 속의 고사나 명언 등이 거의 모두 수록되어 있으므로 중국의 역사나 사상을 빠르게 아는 데에도 이보다 더 편리한 책은 있을 수 없다. 『십팔사략』의 저자 증선지 『십팔사략十八史略』은 송말宋末 원초元初의 증선지曾先之라는 사람이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중국 역사를 간추려 초학자 학습용으로 편찬한 교재이다. 중국 정사正史의 기전체를 간략히 시대순으로 재배치하여 초보적 편년체로 구성한 것이며 당시까지 있던 17사에 송대 역사를 합해 “18사”의 초략抄略이라는 뜻으로 『십팔사략』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사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며 그 밖의 여러 사서를 두루 참작하여 재미있는 내용과, 시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엮었다. 따라서 일화와 인물 중심의 전개가 초학자들이 흥미를 잃지 아니하고 전체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증선지는 송말에서 원초에 생존했던 인물이다. 자는 종야從野이며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칭 ‘전진사前進士’라 하였다. 이는 전대인 송대宋代에 진사에 올랐었다는 뜻으로 자신이 책을 쓴 원대元代에 대하여 구분하고자 칭한 것이다. 1279년 송나라가 망하고 나서는 은거한 채 『십팔사략』 찬술에 몰두하다가 92세에 생을 마쳤다. 우리나라에서 더욱 꽃피운 『십팔사략』 연구 『십팔사략』은 중국에서 싹을 틔워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선시대에 큰 나무로 자라나 꽃을 피웠다. 그러나 지금은 본격적인 연구가 드문 편이며 도리어 일본에서 그 열매를 따 먹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원 출생지인 중국에서조차 이 책에 대해 깊이 아는 이가 적으며 연구서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물론 이 책이 학술적 사학서史學書가 아니라 동몽교재 성격의 속찬俗撰, 향리사숙鄕里私塾의 교재용으로 꾸민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여하튼 우리나 일본에 그토록 영향을 주었으며 지금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의 책 이름인 점에 비해 중국에서는 너무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도리어 고향을 떠나 이웃인 우리나라에서 증보, 개편, 개선되었으니 그야말로 우리는 하찮은 박옥璞玉을 다듬어 값을 매길 수조차 없는 벽옥璧玉으로 탈바꿈시키는 재주를 가진 민족인가 보다. 특히 이 책은, 중국의 긴 역사와 그 방대한 자료를 모두 섭렵하기는 어렵고 그만한 시간도 투자할 수 없던 열악한 시대의 우리 선대들에게, 우선 중국 역사 전체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자료인 동시에 교재로써의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 내었다고 아무리 칭송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십팔사략』에 원의 역사를 넣은 『십구사략』이 나오자 이 책을 선호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만족할 수 없어 다시 스스로 명대 역사를 또 넣어 우리 책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다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역사를 함께 병렬시켜, 중귈中華와 동국東國의 역사를 대등하게 편집하여 역사 대강의 기본 뎱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궁중 왕실 그리고 지방 각지에서 간행하고 교정 보고 언해를 하여, 문장과 내용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에 앞으로도 이 『십팔사략』을 철저히 연구하고 역주하여 더욱 한 걸음 앞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적어도 조선시대 선인들의 그 피나는 노력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