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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 東漢
1. 世祖光武皇帝 288 세조광무황제世祖光武皇帝(光武帝) 289 울음을 터뜨린 어린 황제 290 적미군赤眉軍이 장안長安으로 들어오다 291 먼저 탁무卓茂부터 방문하다 292 낙양洛陽을 도읍으로 정하다 293 철중쟁쟁鐵中錚錚 294 유영劉永의 항복 295 요동遼東의 돼지 296 뜻을 가진 자는 반드시 성공한다 297 도외시度外視 298 잊을 수 없는 콩죽과 보리밥 299 일 년만 빌려주십시오 300 공손술公孫述과 마원馬援 301 공손술公孫述과 촉蜀의 평정 302 만리 밖을 보는 눈 303 대왕代王 노방盧芳 304 흉노와의 화친 305 남에게 빌려줄 수 없는 대권 306 흉노가 남북으로 나뉘다 307 맥인貊人, 선비鮮卑, 오환烏桓의 입조 308 남선우南單于를 이주시키다 309 북흉노와의 화친 310 광무제의 치적과 당시의 인물들 2. 孝明皇帝 311 효명황제孝明皇帝(明帝) 312 구경꾼이 억만 명 313 동한 개국공신들의 초상 314 선한 일 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지요 315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 316 북흉노와의 싸움 317 침대 밑으로 숨어버린 약숭藥崧 3. 孝章皇帝 318 효장황제孝章皇帝(章帝) 319 반초班超의 의견을 따르다 320 북흉노의 투항 321 장제章帝의 치적 4. 孝和皇帝 322 효화황제孝和皇帝(和帝) 323 선비鮮卑의 세력이 강해지다 324 만리 밖의 날고기를 먹으리라 325 화제和帝가 죽다 5. 효상황제 326 효상황제 6. 孝安皇帝 327 효안황제孝安皇帝(安帝) 328 태후가 죽고 등즐은 자살하다 329 황헌黃憲과 진번陳蕃 330 사지四知 331 안제安帝와 태자 7. 孝順皇帝 332 효순황제孝順皇帝(順帝) 333 하나를 듣고 열을 안다는데 334 양기梁冀 335 순제順帝가 죽다 8. 효충황제 336 효충황제 9. 孝質皇帝 337 효질황제孝質皇帝(質帝) 10. 孝桓皇帝 338 효환황제孝桓皇帝(桓帝) 339 순숙荀淑과 진식陳寔 340 최식崔寔의 정론政論 341 주목朱穆이 자사가 되자 관리들이 도망가다 342 양기梁冀를 처단하다 343 당시의 멋진 인물들 344 당시의 삼공三公들 345 부들 채찍 346 환제桓帝 때의 사건들 11. 孝靈皇帝 347 효령황제孝靈皇帝(靈帝) 348 오경五經의 문자를 세우다 349 시부詩賦에 능한 사람 350 구리냄새가 납니다 351 황건적黃巾賊과 조조曹操의 등장 352 장각을 토벌하다 353 영제靈帝의 죽음 12. 孝獻皇帝 354 효헌황제孝獻皇帝(獻帝) 355 여포呂布 356 유비劉備의 등장 357 손책孫策 358 조조曹操 359 호랑이와 매 360 사치에 빠진 원술袁術 361 내가 너만 못하다 362 원소袁紹의 패배 363 조조曹操와 유비劉備, 그리고 제갈량諸葛亮 364 적벽지전赤壁之戰 365 유비劉備와 손권孫權 366 유비劉備, 방통龐統, 관우關羽 367 제위를 선양받다 (十一) 三國[漢] 附魏吳二僭國. 368 한漢나라의 정통 1. 昭烈皇帝 369 소열황제昭烈皇帝(昭烈帝 劉備) 370 유비劉備가 제위에 오르다 371 재상 제갈공명 372 종묘를 세우다 373 황후와 황태자를 세우다 374 조비曹丕도 황제가 되다 375 저보다 나은 자가 수레에 가득합니다 376 촉한蜀漢과 동오東吳의 싸움 377 위나라와 오나라의 싸움 378 유비가 죽다 2. 後皇帝 379 후황제後皇帝(後主 劉禪) 380 어쩔 수 없구나 381 칠종칠금七縱七擒 382 남북의 한계를 긋는구나 383 조비曹丕와 조예曹叡 384 처사處士 관녕管寧 385 출사표出師表 386 한나라와 위나라는 양립할 수 없다 387 오나라, 건업建業에 도읍하다 388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仲達을 도망치게 하다 389 위魏나라의 토목공사 390 명제明帝 조예가 죽다 391 제갈량이 죽은 후 392 사마씨司馬氏의 등장 393 사마사司馬師 394 손권이 죽다 395 위나라 공격 396 위주魏主의 폐위 397 사마소司馬昭 398 꿀에 쥐똥이 399 사마소司馬昭의 야심은 길가는 사람도 알고 있다 400 제갈첨諸葛瞻 부자 401 촉한蜀漢의 멸망 402 손휴孫休)가 죽다 403 진왕晉王 사마소司馬昭 404 위나라의 멸망 405 기년紀年이 없는 한 해 (十二) 西晉 1. 世祖武皇帝 406 세조무황제世祖武皇帝(武帝) 407 오吳나라와의 전투 2. 孝惠皇帝 408 효혜황제孝惠皇帝(惠帝) 409 진나라의 혼란과 팔왕八王의 난 410 우둔한 혜제惠帝 411 유연劉淵과 유요劉曜 412 성도왕成都王을 자칭하다 413 선비족鮮卑族 모용외慕容? 414 탁발씨拓跋氏의 흥기 415 혜제惠帝 시대의 마감 3. 孝懷皇帝 416 효회황제孝懷皇帝(懷帝) 417 성成나라 418 유연劉淵이 칭제하다 419 유연이 죽다 420 이런 놈은 써먹을 데가 없다 421 회제懷帝가 포로가 되다 422 회제가 죽다 4. 孝愍皇帝 423 효민황제孝愍皇帝(愍帝) 424 석륵石勒의 침입 425 서진西晉의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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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송말, 4천 년 중국역사의 보고
송나라 망국의 한을 십팔사략 편찬작업으로 달랬는가 저자 증선지는 깊이 들어앉아 역사를 집성했다! 역사는 거울이다, 거울을 보고 길을 찾자 『십팔사략』은 알기 쉽게 엮은 역사서이며 일반인을 위한 실용서이다. 개인의 일화를 중심으로, 치란흥망의 발자취와 인간 군상이 펼친 삶의 방식을 더듬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생생한 삶의 지혜를 터득하도록 갖가지 묘책과 방법을 제시한다. 일화와 인물 중심의 전개가 초학자로 하여금 흥미를 잃지 아니하고 전체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중국 역사의 정수만을 모은 실용적 역사서 중국에서는 거의 잊히다시피 한 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크게 유행하여 국민적 교재로서 인지도를 높이며 일상생활서 눈부시게 영향을 미쳐온 책들이 꽤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문진보』와 『명심보감』, 그리고 바로 이 『십팔사략』 등일 것이다. 그러면 이 책들이 중국에서는 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을까. 그 까닭은 이 책들이 모두 전문서가 아닌 쉬운 편집서이며, 권위를 가진 자가 직접 저술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자료를 모아 엮은 작업이었다는 것, 그저 아동 입문용 교재라는 것 등 통속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지극히 큰 영향을 미쳐 출간되고 개편되고 증보되고, 나아가 그 틀만 유지한 채 내용은 계속하여 새롭게 단장되어 왔다. 이는 일반인을 위한 실용서로는 그만큼 쉽고 우리 환경에 알맞은 학습교재일 뿐 아니라 원만하고 합리적이며 나아가 이상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십팔사략』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책이다. 개인의 일화를 중심으로 해서 치란흥망의 발자취와 엄청난 인간 군상의 삶의 방식을 통해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지혜를 배울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또한 다른 역사서 속의 고사나 명언 등이 거의 모두 수록되어 있으므로 중국의 역사나 사상을 빠르게 아는 데에도 이보다 더 편리한 책은 있을 수 없다. 『십팔사략』의 저자 증선지 『십팔사략十八史略』은 송말宋末 원초元初의 증선지曾先之라는 사람이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중국 역사를 간추려 초학자 학습용으로 편찬한 교재이다. 중국 정사正史의 기전체를 간략히 시대순으로 재배치하여 초보적 편년체로 구성한 것이며 당시까지 있던 17사에 송대 역사를 합해 “18사”의 초략抄略이라는 뜻으로 『십팔사략』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사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며 그 밖의 여러 사서를 두루 참작하여 재미있는 내용과, 시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엮었다. 따라서 일화와 인물 중심의 전개가 초학자들이 흥미를 잃지 아니하고 전체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증선지는 송말에서 원초에 생존했던 인물이다. 자는 종야從野이며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칭 ‘전진사前進士’라 하였다. 이는 전대인 송대宋代에 진사에 올랐었다는 뜻으로 자신이 책을 쓴 원대元代에 대하여 구분하고자 칭한 것이다. 1279년 송나라가 망하고 나서는 은거한 채 『십팔사략』 찬술에 몰두하다가 92세에 생을 마쳤다. 우리나라에서 더욱 꽃피운 『십팔사략』 연구 『십팔사략』은 중국에서 싹을 틔워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선시대에 큰 나무로 자라나 꽃을 피웠다. 그러나 지금은 본격적인 연구가 드문 편이며 도리어 일본에서 그 열매를 따 먹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원 출생지인 중국에서조차 이 책에 대해 깊이 아는 이가 적으며 연구서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물론 이 책이 학술적 사학서史學書가 아니라 동몽교재 성격의 속찬俗撰, 향리사숙鄕里私塾의 교재용으로 꾸민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여하튼 우리나 일본에 그토록 영향을 주었으며 지금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의 책 이름인 점에 비해 중국에서는 너무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도리어 고향을 떠나 이웃인 우리나라에서 증보, 개편, 개선되었으니 그야말로 우리는 하찮은 박옥璞玉을 다듬어 값을 매길 수조차 없는 벽옥璧玉으로 탈바꿈시키는 재주를 가진 민족인가 보다. 특히 이 책은, 중국의 긴 역사와 그 방대한 자료를 모두 섭렵하기는 어렵고 그만한 시간도 투자할 수 없던 열악한 시대의 우리 선대들에게, 우선 중국 역사 전체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자료인 동시에 교재로써의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 내었다고 아무리 칭송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십팔사략』에 원의 역사를 넣은 『십구사략』이 나오자 이 책을 선호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만족할 수 없어 다시 스스로 명대 역사를 또 넣어 우리 책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다시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역사를 함께 병렬시켜, 중귈中華와 동국東國의 역사를 대등하게 편집하여 역사 대강의 기본 뎱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궁중 왕실 그리고 지방 각지에서 간행하고 교정 보고 언해를 하여, 문장과 내용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에 앞으로도 이 『십팔사략』을 철저히 연구하고 역주하여 더욱 한 걸음 앞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것이 적어도 조선시대 선인들의 그 피나는 노력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