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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지연의 이중주 _ 보르헤스
독수리 단식 광대 첫 번째 시련 잡종 도시의 문장 프로메테우스 일상의 혼란 자칼과 아랍인 열한 명의 아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만리장성을 쌓을 때 작가 소개 프란츠 카프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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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을 펴내며
성서는 인류의 모든 혼돈의 기원을 바벨이라 명명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혼돈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은유이지만 또한 보르헤스에게 바벨의 도서관은 우주, 영원, 무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암호를 상징한다. 보르헤스는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단 한 권의 ‘총체적인’ 책에 다가가고자 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 책과의 조우를 기다렸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보르헤스가 그런 총체적인 책을 찾아 헤맨 흔적을 담은 여정이다. 장님 호메로스가 기억에만 의지해 「「일리아드」」를 후세에 남겼듯이 인생의 말년에 암흑의 미궁 속에 팽개쳐진 보르헤스 또한 놀라운 기억력으로 그의 환상의 도서관을 만들고 거기에 서문을 덧붙였다. 여기 보르헤스가 엄선한 스물아홉 권의 작품집은 혼돈(바벨)이 극에 달한 세상에서 인생과 우주의 의미를 찾아 떠나려는 모든 항해자들의 든든한 등대이자 믿을 만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현실에서 파생된 무한한 악몽의 계시 보르헤스는 젊은 시절 카프카의 우화들을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재미없다’고 느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보르헤스는 그 당시의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문학에 둔감했었다’고 고백한다. 문학의 판관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자학에 가까운 자책을 한 것은 보르헤스의 고백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보르헤스는 젊은 시절 카프카의 작품이 말하는 계시를 ‘스쳐 지나갔을 뿐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카프카 작품의 의미심장한 비의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르헤스조차 젊은 시절 그것을 간과했을 정도이니. 보르헤스는 카프카의 단편들이 그의 장편들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한다. 주제나 배경에서 장편과 단편은 본질적으로 같다. 그러면서도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솜씨’가 카프카의 단편들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이 주인의 손에서 채찍을 빼앗았고 그 벌로 주인으로 변신한다. 동물은 그것이 채찍에 만들어진 새로운 매듭 때문에 생긴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혹은 ‘표범들이 사원에 난입해서 술잔의 술을 마신다. 이 사건은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일어난다. 결국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된다. 이 사건은 사원의 제례 의식에 섞이고 만다’와 같은 문장들이 그러한 예이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선집한 이 카프카의 단편집이 세계문학사상 가장 독특한 작가인 카프카를 전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 단언한다. 보르헤스가 본 카프카는 유대인적인 종교성을 기반에 깔고 아버지에 대한 이상한 죄책감, 무한한 위계질서와 그로 인한 무한한 지연에 집착했고 폐결핵이 악화되자 다가올 죽음을 의식하고 그의 모든 재능을 자신이 집착하는 것들을 예리하게 가다듬는 데 집중했다. 보르헤스는 카프카의 재능이 집중된 작품들로 단편집을 만들었다고 자찬하고 있다. 이런 자찬도 보르헤스로서는 희귀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편집에는 표제작인 「독수리」를 비롯해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무한한 지연이라는 모티프는 여기 실린 단편들에서도 두루 나타나는데 가장 기억할 만한 단편 「만리장성을 쌓을 때」에서 무한은 배가된다. 무한히 멀리 있는 군대의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시공간상 무한히 멀리 있는 황제는 무한히 이어지는 세대들에게 그의 무한 제국을 둘러싼 무한한 성벽을 무한히 높이 세우라고 명령한다. 그의 장편소설 「「소송」」에서 요제프 K는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소송에 휘말리는데 자신을 심판하는 법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맞서 싸울 수도 없다. 법정의 실체를 찾으려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요제프 K는 법에 의해 처형당한다. 또 다른 장편소설 「「성」」에서 주인공 K는 측량기사로 성에 불려가지만 K는 성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며 그를 지배하는 당국으로부터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죽는다. 무한한 위계질서와 그로 인한 무한한 지연... 그 가운데 끼여 있는 카프카의 인물들은 수수께끼에 대한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하고 망각되거나 사라진다. 바벨의 도서관 - 보르헤스 세계문학 컬렉션 「바벨의 도서관」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자,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렸던 보르헤스가 선집한 독특한 세계문학 전집이다. 보르헤스가 이탈리아의 출판인 프랑코 마리아 리치와 손잡고 그를 행복하게 했던 작가 29명을 선정했고, 그들의 작품들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중단편들을 추려냈다. 각 작품집 앞에는 보르헤스가 직접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제를 실었다. 보르헤스 특유의 어법이 유감없이 구사되는 그의 해제들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문학에 대한 독특한 감상법과 그의 창?의 배경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을 대표하는 저명한 일러스트레이터로 새로운 장르의 회화를 창시했다는 찬사를 받는 툴리오 페리콜리가 그린 보르헤스를 비롯한 30명의 작가의 예술성 넘치는 일러스트가 실려 있다. 이번 1차분 10권 출간을 시작으로 ‘바벨의 도서관’은 내년까지 총 29권의 작품집을 완간할 계획이다. 1. 새롭고 다채로운 세계문학전집 ‘바벨의 도서관’은 매우 주관적인 세계문학전집이다.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장르의 태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우리 독자들에게는 낯선 C. H. 힌턴 같은 작가가 들어 있다는 것으로도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악어」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카프카의 단편들이나 카뮈의 「「이방인」」 같은 부조리한 소설의 기원이 의외로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처럼 널리 알려진 톨스토이의 걸작도 보르헤스의 안목으로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의미 속에 놓이게 된다. ‘바벨의 도서관’은 무엇보다도 발견의 즐거움을 준다. 루고네스, 힌턴, 벡퍼드, 로드 던세이니, 매켄, 파피니, 빌리에 드 릴아당, 레옹 블루아 등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익히 알려진 작가들도 ‘바벨의 도서관’에서는 보르헤스가 엄선한 단편들로 새롭게 독자들과 만난다. 보르헤스가 선정한 환상적인 단편들이라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컨셉은 독자들에게 세계문학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시각을 교정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세계문학이라는 거대한 대하를 큰 지류 몇 개만 대강 흩어보고서 판단해 왔던 것일 수 있다. 세계문학 출간 붐이라 할 수 있는 현재에도 우리는 여전히 큰 지류들 몇 개만 반복적으로 탐험할 수밖에 없었다.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대표작들 위주로 한 세계문학 전집의 구성은 필연적으로 중복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짓수는 많은 것 같지만 똑같은 재료를 써서 만든 요리만 죽 차려져 있다면 그것을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바벨의 도서관’은 세계문학이라는 대하를 이루는 작지만 흥미 있는 지류들을 탐색할 수 있게 해준다. 전인미답의 그 지류를 안내하는 사람이 바로 보르헤스라면 이 탐험은 분명 기대할 만하지 않을까. ‘바벨의 도서관’은 개별 작품 자체의 의의를 넘어서 세계문학을 다시 한 번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세계문학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2. 보르헤스 창작의 원천 20세기 중반 이후 문학뿐 아니라 현대철학 전반에 걸쳐 보르헤스보다 더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서구 지성계를 통틀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에 비견되는 사람조차 꼽기 힘들 정도로 보르헤스의 존재감은 우뚝하다. 이탈로 칼비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 20세기의 대문호들이 보르헤스에게 아낌없이 찬사를 바쳤다. 또 시간과 무한과 거울과 미로와 도서관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보르헤스의 단편들은 포스트모더니즘, 구조주의, 해체주의 등 모더니즘 이후 새로운 철학사조를 고민했던 사상가들을 자극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해외에 알려진 1960년대 이후 서구 지성계에서 근대성에 대한 고민이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보르헤스의 영향이 아주 직접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강력히 입증한다. 보르헤스는 1970년도에 문학계 저명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리서치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혔지만 정작 수상의 영광은 솔제니친에게 돌아갔다. 그 결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노벨문학상의 안목에 의심을 갖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프루스트, 조이스 등과 더불어) 중 하나로 꼽힌다. 바벨의 도서관은 그런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직접적인 단서가 된다. 어린 보르헤스를 매혹시켰던 오스카 와일드(보르헤스는 열 살 때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발표했다)부터 보르헤스가 애정을 담아 ‘아마추어’ 작가라고 한 벡퍼드, 4차원의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했던 힌턴에 이르기까지 그가 인생의 말년에 행복한 추억에 젖어 회상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은 보르헤스가 어떤 독서 편력을 거쳐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를 완성할 수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각 작가들이 보르헤스한테 끼친 영향은 작품집 앞에 실린 애정이 듬뿍 담긴 보르헤스의 해제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해제들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대문호의 독서 편력을 엿보고자 하는 호사가들의 호기심도 충족시킨다. 3. 환상 「바벨의 도서관」을 선정하면서 보르헤스는 ‘환상’이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작품 목록을 추렸다.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와 그가 여러 차례 환상문학 선집을 펴냈던 걸 감안하면 새로운 세계문학전집을 기획하면서 환상문학을 염두에 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보르헤스의 환상문학은 국내에서 통용되는 판타지 문학의 정의와는 궤를 달리한다. 멀리 「「요재지이」」나 「「천일야화」」부터(당연히 이 작품들도 ‘바벨의 도서관’ 안에 들어 있다. 게다가 「「천일야화」」는 버턴 판과 갈랑 판 두 개가 들어 있다) 각국에서 환상문학의 원조로 간주되는 카조트나 벡퍼드를 거쳐 현대의 카프카나 H. G. 웰스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 도스토옙스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잭 런던, 에드거 앨런 포 등의 작품들 중에서 환상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들을 이 ‘바벨의 도서관’ 안에 포함시켰다. 환상이라는 키워드로 익히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보면서 독자들은 낯익은 새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 환상에는 보르헤스 작품의 아우라와 보르헤스가 감상했던 환상이 중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