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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설에 대하여
그것은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모없다는 Ⅰ. 도덕 일반에 있어서 실천에 대한 이론의 관계에 관하여 교수 가르베 씨의 몇 가지 이의제기들에 대한 답변을 위하여 Ⅱ. 국가법에 있어서 실천에 대한 이론의 관계에 관하여 홉스에 반대하여 Ⅲ. 국제법에 있어서 실천에 대한 이론의 관계에 관하여 보편적 인간사랑의, 즉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고찰하여(모세스 멘델스존에 반대하여) 마이너 판 편집자 미주 옮긴이 해제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
Immanuel K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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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이 실천을 위하여 거의 쓸모가 없었다면, 그것은 그 이론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경험으로부터 배웠어야 했을 이론Theorie[θεωρiα 바라봄, 관찰]이 거기서 충분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고, […] 그러한 경험이 참된 이론이다. --- p.8
행복의 준칙에 따르는 의지는 자신의 동인들 사이에서 그 자신이 무엇을 결단해야 할지 흔들린다. 왜냐하면 그 의지는 성공을 바라보고, 그 성공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 p.27 주권자는 자신의 개념들에 따라 인민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여 전제군주가 된다; 인민은 자신의 행복에 대한 보편적인 인간적 요구를 빼앗기지 않으려 하여 반란자가 된다. --- p.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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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하였지만, 관건이 되는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라는 맑스의 포이어바흐 11번 테제를 염두에 두면서, 칸트의 “그것은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모없다는 속설에 대하여”를 읽어 보자!
도서출판 b의 〈b판고전〉 시리즈는,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고전의 품격을 지닌 저술을 발굴하는 ‘숨은고전찾기’와 함께, 종래의 번역본의 오류를 보다 ‘정확한 번역’을 통해 바로잡아 독자에게 양질의 독서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동서양은 물론이며 학술과 예술 등 다양한 내용으로 채워나갈 것이다. 이 책은 〈b판고전〉 기획의 셋 째 권으로 한국어로는 처음 번역 소개되는 칸트의 『속설에 대하여: 그것은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모없다는 Uber den Gemeinspruch: Das mag in der Theorie richtig sein, taugt aber nicht fur die Praxis』이다. 이 저작이 출간되던 1793년 즈음은 여전히 1789년 프랑스에서의 혁명의 소용돌이와 그 후로 이어진 혁명전쟁이 전 유럽을 강타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또한 동시에 정치계에서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그 혁명에 대하여 진보 측과 보수 측 간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에드먼드 버크는 그의 『프랑스에서의 혁명에 대한 반성들』(1790)에서 결정적으로 프랑스 혁명과 국가철학적인 논구들의 실천적인 사용에 반대하였다. 이 논문은 프리드리히 겐츠에 의해 독일어로 번역(『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들』, 1793)되었고, 칸트는 분명 이 번역본을 접했었으며, 그래서 버크의 상론은 칸트의 이 저작의 한 배경으로서 한 역할을 했었을 것이다. 독일에서의 보수주의적 사상가들 중 한명인 아우구스트 빌헬름 레베르크도 그의 한 작문에서 프랑스 혁명과 관련하여 당시의 유명한 형이상학자로서 칸트를 겨냥하여 다음과 같이 비난하였다: “형이상학은 프랑스 왕정체를 파괴하였고 전혀 들어보지 못한 하나의 혁명을 성취시켰다.” 클라우스 엡슈타인(『독일에서의 보수주의의 근원들』, 1973)에 따르면 레베르크와 프리드리히 겐츠는 “개혁보수주의자”로 명명된다. 그들은 당시의 정치적 현 상태에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프랑스 혁명에는 반대했었으며, 더욱이 그 둘은 칸트의 낙관주의가 하나의 오류라고 생각했었고, 그들의 관점에서 보아 이론은 결코 실천을 위해서 충분할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당시의 지식인 사회는 가장 현행적인 주제로서 1789년의 인권과 시민권 선언, 그리고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표어와 더불어 이론과 실천에 대한 논쟁을 가열시켰고, 칸트에게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의 입장과 관련하여 해명하는 말을 기다렸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칸트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칸트의 지지자들조차도 칸트의 이론이 혁명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물음과 관련하여 상이한 방향으로 그들의 관점을 전개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1792년 7월 30일에 칸트는 〈베를린 월보〉의 편집자인 요한 에리히 비스터에게 베를린 검열관청의 인쇄허가가 거부되었던 한 종교철학적 작문(“인간에 대한 지배를 둘러싼 선한 원리와 악한 원리의 투쟁에 관하여”)에 대한 대체물로서 “순전히 도덕철학적인” 한 논문을 예고하는데, 그 논문에서 그는 브레슬라우의 대중철학자 크리스티안 가르베가 직전에 출판한 한 저술에서 그의 도덕철학에 대해 행한 비판에 답변하고자 했다. 그 논문은 예고된 형태로는 결코 출간되지 않았다. 칸트는 그 논문을, 우리에겐 그 이유가 직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측컨대 레베르크가 제기한 비난 때문에, 국가법과 국제법의 주제들로 확장하여 그것을 1793년 9월 비스터가 담당하던 시기에 『속설에 대하여: 그것은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모없다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시켰다. 이 논문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에서 칸트는 도덕적 이론과 도덕적 실천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그는 그보다 더 보수적이었던 가르베의 반론들에 대한 대답을 기술한다. 두 번째 부분은 국가법에서의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논구하는 것이며, 명목상 홉스에 대해 반박하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국제법에서의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다룬다. 칸트는 여기서 “세계시민적” 견지를 전개하는데, 그 견지는 멘델스존을 정정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세 가지 관점들을 표현하는데, 한 사람이 세계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관점으로서: 1) 한 사인私人이나 개인과 실무자로서(도덕), 2) 한 정치인[국정인]으로서(정치), 3) 한 세계인으로서(세계시민적 고찰)의 관점들이다. 여기서 떵덕은 개별자의 안녕과, 정치는 국가의 안녕과 관계하고, 세계시민적인 관점 하에서는 더 나은 상태로의 인간류의 진보와 안녕이 주제화된다. 이러한 제목들과 더불어 이 저술의 상론의 과제와 목표는 언급된 영역들에 있어서 이론, 즉 의무개념이 실천에 대해 필연적으로 선행한다는 그 개념 자체의 내부적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맑스의 포이어바흐 11번 테제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하였지만, 관건이 되는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일 것이다”를 염두에 두면서, 칸트의 “그것은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모없다는 속설에 대하여”를 숙독해 보는 것은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해 균형감 있게 재정립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