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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지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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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작하며 첫 잔
우리는 늘 아쉬우니까
구월의 공덕동 막걸리
가을과 겨울 사이 포장마차
서로의 인생에 스미는
가난의 행복을 잊고 마신 술
시월의 청하
너니까 여기 같이 온 거야
우리 어제 어떻게 들어왔지?
안녕을 묻기 어려워진 사이
술자리 녹취록 #1
그때 우리 참 좋았었는데
십이월의 도꾸리
음주 일기
우리는 오랫동안 헤어져야 해
걷다 보니 택시도 잡지 못했다
이월의 청주
삼월의 포장 생맥주
오늘의 미련스러움
술자리 녹취록 #2
서로에게 닿으려 애를 쓰던 밤
여름이니까
그렇게 술만 마시면 속 버려요
염치없는 새 칫솔
가방에 팝콘이 왜 있어
혹시 내가 어제 귀걸이 한 짝 빼줬어요?
우리는 서로를 해결할 수 없고
팔월의 산미구엘
술자리 녹취록 #3
영원처럼 비틀거리는 우리
칠월의 마티니
당신의 술과 당신의 진심
내가 너 같고 네가 나 같아서
사월의 카스
유월의 청하
갈증이 가시질 않아서
망가지고 부족한 것들이 가장 행복하다
그래야 친구들이 또 오니까
나를 기다린 너에게
헤어진 건 난데 니가 왜 울어
우리 아직 어색하니까
국화꽃 위에 마지막 술잔을 뿌리고
술자리 녹취록 #4
취하지 않고서야
술 냄새, 살냄새
그냥 좋아서 좋아
아무리 생각해도 걔는 진짜 개새끼였어
봄날의 철길을 따라 걸었다
사랑할수록 조금씩 잃어버리는
상실의 뒷모습
술자리 녹취록 #5
얼굴들
당신의 얼굴을 천천히 보았다

저자 소개 3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야기를 형태가 있는 무언가로 만드는 데에 관심이 많다.우울증과 싸우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 주변 사람들이 건네는 수많은 위로의 말들보다 그저 ‘이런 나를 이해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울증 환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주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우울증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아무것도 할 수 있는』을 엮었다. 저서로는 『오롯이, 혼자』, 『폐쇄병동으로의 휴가』, 『취하지 않고서야』(공저), 『여름밤, 비 냄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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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와 소주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마시는 걸 좋아합니다. 우리가 함께 마신 술병의 개수를 세는 걸 좋아합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시간들을 보냈다』 instagram@imrora
자신이 느끼는 행복과 불행을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타인의 행복과 불행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삶에 가진 두려움이 삶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에세이 『일일 다정함 권장량』, 『사랑과 두려움에 대하여』, 『망각과 영원에 대하여』 등, 소설 『송이송이 따다 드리리(공저)』, 『파랑을 가로질러(공저)』 등을 썼다. 2020년부터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며, 자신의 글 또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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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246g | 113*184*20mm
ISBN13
9791196394523

책 속으로

나는 사실 술은 별로 안 사랑하고 너네만 사랑해. 물론 술도 좋지. 맛 좋고 쓰고 시원한데 실은 술이 좋아서 술을 마신다기보다 술을 마신 우리가 좋은 거다.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땐 느낄 수 없는 더운 숨을 가진 서로의 촘촘한 간격, 따뜻한 눈빛, 내가 좋아하는 헐렁한 네 표정, 아무것도 못 숨기는 나, 한껏 진지하고 가볍고 쉽게 울고 웃는 그 모든 순간이. --- p.8

내 술자리가 끝나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차마 들썩이는 엉덩이를 티 낼 수가 없었다. 마주 앉은 서로의 인생에 점점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울리는 휴대전화도, 한쪽 팔만 아리도록 추운 에어컨의 바람도, 자꾸만 감기는 눈도 참아낸다. --- p.27

아껴둔 가게는 행여나 남에게 들킬까 꼭꼭 숨겨두었다가 함께하고픈 이들을 아낌없이 데려가는 쏠쏠한 재미 또한 내가 놓칠 리 없지. 나는 약속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해 고른 가게에서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만족스러워하는 상대의 모습을 보는 쾌감이 좋아서 이왕이면 노력해서 맛있게 술을 먹고 싶은 거다. --- p.37

집에 가는 길인데, 집에 가기가 싫어서 술 한잔하자고 누구 하나 불러내고 싶은데, 휴대전화 연락처를 쭉쭉 내려보고 다시 쭉쭉 올려봐도 쉽게 불러낼 사람 하나 없네 싶어서 외로웠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 덩그러니 앉아 가벼워지는 맥주 캔만 만지작거리며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이른 저녁 내내 외로웠다. 정말이지 다가올 밤을 홀로 지켜내야 하는 것 같아서, 하늘은 점점 땅으로 꺼지는데 그냥 딱 외로웠다. --- p.54~55

각자의 모양으로 서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녁.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없이 소란스러운 시간”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내가 썼던 글을 누가 여기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사랑하는 몸짓만으로 작은 공간이 가득 차는 순간.” 비좁은 가게는 고요한 소란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모두가 서로의 등을 맞댄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토록 기분 좋을 수가 있나 싶었다. --- p.88

편의점 할아버지는 내게 안주를 내어 주기 시작했다. 과자라든지 육포라든지 하는 편의점에서 파는 안주들. 아마 안주도 없이 막걸리를 병째 마시던 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편의점에서 파는 육포면 가격이 꽤 될 텐데, 모르긴 몰라도 편의점을 봐주는 한 시간 정도의 대가는 되리라. 그는 내게 번쩍거리는 포장지의 육포를 건네며 “술만 마시면 속 버려요.”라고 말했다. 그날 나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호의에 하루를 더 살아냈다. --- p.127

불안하고 우울한 밤에 술 한잔할 친구마저 없으면 그 사실이 나를 더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친구들은 바쁘거나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을 뿐일 텐데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은 알지만 여전히 늦은 밤 나를 혼자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술잔을 부딪쳐줄 누군가를 찾는다 .--- p.199

나를 먼저 버스에 태워 보낸 네가 또 먼저 잘 가고 있냐고 물어주고 오늘 고맙다는 말을 덧붙일 때, 나는 이제 정말 죄지은 사람 같아서 이러려고 부른 게 아닌데,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를 좋은 사람이고프게 만드는 사람들아, 나는 오늘도 멋진 척하려다 말아먹었지만 재도전하겠습니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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