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부 흐린 날의 커피 타임
흐린 날의 커피 타임 | 하루의 연극|디뎌 놓은 발걸음이 다 기하학적 무늬 | 그들 앞에서 어떤 아픈 소리를 내겠어 | 꽃다발을 받는다는 것은 | 지금도 꺾이지 않는 갈대 | 관심 | 풀리지 않는 매듭 | 매듭지어 놓지 못한 언어들 | 시간이 흘러가는 또 다른 한 부분 | 된장찌개를 끓이다 | 환호성을 듣는다 | 나무에 꽃을 피우다 | 정선 가는 길 | 손짓을 하다 | 맨발을 내려다보며 제2부 다초점 렌즈로 투시하기 다초점 렌즈로 투시하기 | 바람이 불어도 아파하지 않고 | 발판과 돋움이 된 괘종시계 | 내가 너를 열고 닫는 소리 | 권태기 | 이명 | 흙과의 약속 | 잊어버리는 시간 | 탁본하다 | 기다림 |족적의 무게 | 디딤돌 하나씩 내어 주는 것을 | 나에게서는 멀리 있는 것이라고 | 인연이라는 것이 살얼음과 같아 | 많은 것을 받았다 | 머리 MRI 촬영 | 걸림돌 제3부 고광나무 인사법 고광나무* 인사법 | 가벼워지기 | 인간화석 | 안개 속에서 헤매는 젊은이의 꿈조차도 -영화 《버닝》 중에서 | 녹색 불빛을 찾는 소년 -영화《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 가로수의 꿈 | 공중전화 부스에서 외국어가 빈집 1 -개오동나무집이라 불리던 집 | 빈집 2 -측백나무가 있던 집 | 빈집 3 -와송이 성성하던 집 | 꽃밭버리 | 그는 종을 네 번 울린다 | 유혹하다 | 아날로그 인심 | 길이 남을 광한전백옥루상량문 | 나도 꽃 | 삶을 지운 골목길 제4부 여유를 부리는 곡선 애기똥풀 | 꽃 진자리 | 행복과 행운 | 그와 부딪치는 소리 | 그렇게 사는 것이지 | 철길에 흐르는 바람 소리 | 다시 안겨보고 싶다 | 흙의 촉감 | 수수부꾸미 |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한 때부터 | 하얀 길 | 물 컵을 들고 | 처음 비행기를 타고 | 여유를 부리는 곡선 | 닮은꼴의 내력 | 바람 냄새 | 끝없는 새김질 해설 | 길항(拮抗)의 현상학과 언어적 전회(轉回) _엄창섭 |
|
무채색으로 안고 있던 언어들
이제는 곰삭았을까 하는 마음에 유채색을 입히려고 내놓았으나 지나가는 바람에 한참 색이 바랬습니다. 빛바랜 무채색 언어 고운 색으로 입혀 봐주시길 바랍니다. 같은 무채색으로도 볼 수 있고 오묘한 색을 입혀서 볼 수도 있습니다. 모자라는 언어 여러 가지 색을 더해 끌어안아 봅니다. --- 「시인의 말」중에서 하루의 향기가 입안에서만 오글거릴 때 커피를 내려 한 모금 입에 문다 입에 문 커피 넘기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할 때 흐린 날의 카페라테는 꽃이 피지 못한다 창밖의 날씨가 두껍고 두껍다 한 자락 늘어진 갈잎에 천 겹인 낮은 소음들이 쌓인다 그녀들이 쏟아내던 웃음소리 맑은 주렴처럼 걸어 놓았던 시간 낮은 구름이 삼켜 버린다 그들과 만남의 시간에 짙은 회색 구름이 발목을 잡아 놓는다 거실 무채색의 바다를 그린 액자 속에 그림자로 등장인물이 되어 홀로 서 있다 --- 「흐린 날의 커피 타임」중에서 빨간 우체통 대신 SNS 언어가 긴 그림자를 남길 때 기하학적 무늬를 끄집어 내온다 영혼 없는 무늬에서 짝을 잃고 헤맨다는 소식 카톡카톡 정지된 공간을 깨운다 기하학적 무늬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때를 잃어 무서리 속에 피던 구절초 마냥 볼 때마다 꼭짓점 언저리에서 위태롭게 맴돈다 늦은 가을비, 차디찬 빗방울이 가득 채워져 가고 있다 첫눈이 많이 쌓였다 흰 눈 속에 흠집 많은 자작나무가 누덕누덕 종아리를 내밀고 있다 --- 「디뎌 놓는 발걸음이 다 기하학적 무늬 」중에서 나를 끌어들이지 못한 검은 음표들이 머릿속을 흔든다 잿빛 거리에서 갈 곳을 잃어 산속을 찾았다 침엽수 잎 활엽수 잎 악기의 현으로 삼던 바람 능숙하게 꽃꽂이를 하는 창문 넘어 햇빛 결에 흔들리는 유리창의 노랫소리 같다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순수한 나뭇잎을 만져 본다 순수하다 못해 녹색이 되어버린 숲 그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껍질이 벗겨져서 내 정강이뼈처럼 드러낸 나무뿌리들 어느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운 사람들의 발걸음에 닳았을까 밟고 밟혀서 하얗게 해탈해 나가는 아픔의 소리 거미줄이 미명의 바람에 흔들려 소리 없는 울음소리를 거두어들이고 있다 --- 「그들 앞에서 어떤 아픈 소리를 내겠어」중에서 |
|
강원도 원주 태생으로 2008년 월간 [조선문학]에 시로 데뷔한 윤종희 시인은, 로컬리트를 넘어서는 문화의 지역구심주의(centripetalism)의 시간대에 몸담으면서도 누구보다 역동적인 존재감 빛나는 시인이다. 10여 년 남짓 고심한 끝에 상재하는 첫 시집『빛바랜 무채색 언어를 변주하다』([시로여는세상], 2019)은 그간에 켜켜이 쌓인 세월이 은은하게 뿜어내는 원숙미가 끝내 확증되어질뿐더러, 즉물적 현상에 관한 새로운 묵언의 응시(凝視)로 사물과 부단히 감응하며 고뇌한 결과물이기에 충직한 독자의 기대감에 거슬림이 결코 허락되지 아니한다.
무엇보다 ‘상징의 숲을 거니는 시인’은 머레이 북친의 지적처럼 생태위기를 벗어나려면 인간중심주의의 경계를 먼저 무너트려야 한다는 관점에서, 차고 처연(悽然)하되 담백한 시적 이미지는 고통을 눈 뜨게 하는 빛나는 응결체로 작동한다. 비록 서정성이 수락된 다양성이 빛나는 그 자신의 시편에 현대의 불안의식과 감각적 표현 등에 혼돈의 시간대를 걸친 내면인식의 중량감이 가해져 목가적 서정성은 한층 매혹적이다. 특히 미적 주권이 확립된 순수서정시를 쓰기가 진실로 어려운 시간대에서 삶의 매순간을 ‘꽃향기 묻어있는 식물성 언어로’, 일상의 감동을 회복시키는 담백한 시격은 알맞은 정신기후의 조성에 타당성을 지닌다. 그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 윤종희 시인의 ‘체취와 색깔, 육성’을 내세워 모의(模擬)나 아집의 모남이 없는 그의 정신지리와 낯익은 풍경의 현현(顯現)은, 사유의 추이(推移)에 의한 인식의 세계에서 시어를 담금질하는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다. -엄창섭 해설 「길항(拮抗)의 현상학과 언어적 전회(轉回)」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