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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묶다
가시연꽃 | 자유로에서 자유를 생각한다 | 주목나무 곁으로 간다 | 묶다 | 풀섶을 돌아보다 | 참새 곳간 | 걸어 다니는 비둘기 | 몸으로 길을 만든다 | 낭새섬 | 불빛은 깨어 있고 | 눈발은 뛰어들고 | 발자국 찍기 | 아파트 | 부부 제2부 엎드려 흐르는 물 우포 어머니 | 번영로에 간다 | 엎드려 흐르는 물 | 고양이가 있는 풍경 | 어두워지기 전 | 그늘을 찾아서 | 해국(海菊)은 피어서 | 폭우, 광장에서 | 전조 증상 | 입춘 무렵 | 무당벌레 | 전등사 지붕 아래 | 주전자 | 종이컵 제3부 폭설 연꽃 만나기 전 | ‘개’에 관한 고찰 | 벚꽃 | 여름의 끝에는 | 날개 없는 새를 읽는 저녁 |동백나무 | 하지를 지나며 | 별꽃 세상 읽기 | 선인장꽃 | 매화꽃 기다리며 | 폭설 | 상사화 피는 산 | 들깨꽃 | 꽃난장 제4부 황금분할의 공식 손 | 황금분할의 공식 | 아리랑 밥집 | 즐거운 노년 | 아버지의 등 | 감나무 곁에서 | 우산 아래 | 연날리기 | 유월, 비 | 이명(耳鳴) | 유관순 초혼묘 곁에서 | 그날 | 고속도로 | 망향의 동산 해설 | 생명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 _김정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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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을 만나러 가는 길
길가에 엎드린 작은 목숨들의 숨소리와 만났다. 자꾸만 바닥을 들여다보고 뒤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모란은 어디에 피었는지 피기는 피는 것인지 발목을 휘감는 詩를 어르고 달래며 여기까지 왔다. 꽃 농사를 지었다. 작고 못생긴 것들이어서 더욱 버릴 수 없었다. 일으켜 세우고 일으켜 세워도 주저앉는 꽃들 때문에 나는 자주 아프고 쓸쓸했다. 내 꽃밭에 우후죽순으로 돋아난 오종종한 것들 바람결에 서로 얼굴 비비며 눈빛 반짝이는 꽃송이들에 내 얼굴을 부벼본다. 다시 길을 떠나면서 낮은 곳을 사랑하는 작은 것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지극히 아끼고 사랑한다. --- 「시인의 말」중에서 저것이 연꽃이라니 가시보다 무서운 창이 가슴을 뚫고 나오는 저 치명적인 목숨에 누가 연이라 이름 붙였을까 늪 속에 잠겨 끓어오르는 심사를 삭여왔나 졸이고 졸여 핏빛으로 피었구나 세상살이 조용히 엎드려야 한다지만 들끓는 오뉴월의 뙤약볕 견디지 못하고 불쑥 꺼내든 저 뜨거운 꽃송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가시 송송 매달고 솟아오른 선연한 얼굴 제 가슴을 찢고 꽃을 꺼내 드는 무성한 자존과 생명 늪을 뒤덮었다 --- 「가시연꽃」중에서 전등사 도편수의 아픈 손가락 그 여자 지금도 눈웃음 여전하네 지붕의 무게쯤 감당할만하겠지 오래된 절집 지붕 너머 들국 흐드러지고 사람들 흘깃흘깃 수군대니 심심치도 않겠지 부처님 머리 위에 쪼그리고 앉아 훔쳐 듣는 법문이 사랑가 같으려나 그 여자 우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는데 나도 오늘은 한 말씀 보태네 쉿! 한쪽 팔을 내려 보세요 당신의 사내가 올린 지붕은 무너지지 않아요 --- 「전등사 지붕 아래」중에서 팔순의 우리 엄마 자식 신세 지지 않겠다고 노인 일자리 구해서 돈 벌러 다니신다 뽕나무 뿌리같이 구부러지고 뒤틀려진 손가락으로 고사리 같은 아이들 학교 끝나고 우르르 빠져나간 교실 책상도 닦아주고 흐트러진 의자도 바로 놓아주러 다니신다 장다리꽃 같은 자식들 어느 벌판에서 바람에 흔들리다가 엄마의 손이 늙어가는 줄도 몰랐다 땅 위로 뿌리가 드러난 뒤에야 보이는 엄마의 손 살점은 없고 심줄만 불거져 마른 나무껍질 벗겨지는 소리가 난다 불거져 나온 손마디가 늙은 소의 무릎 같다 마디마디 통증으로 밤새 뒤척이신다 바람도 없는데 문풍지 우는 소리 자는 척 눈감고 몰래 듣던 늙은 엄마의 뼈마디 삭는 소리 --- 「손」중에서 동백정 동백나무는 오백 살이나 되셨다는데 붉은 동백꽃 송이 올해도 곱게 피웠다 아직 진눈깨비 사납고 손끝 시린데 동백꽃은 동박새를 깨우고 온몸에 노란 꽃가루 흠뻑 뒤집어쓰고 이 꽃 저 꽃 정신줄 놓은 동박새는 오백 살 동백나무 꽃피우는 사연을 짐작이나 하는지 한 오백 년 사는 일이 바람 부는 언덕에 맨발로 서서 붉디붉은 꽃송이 선연하게 피었다가 툭 떨어지고 마는 일이라는 걸 해마다 봄을 보내는 일은 오백 년이 되어도 서럽기만 하여 객혈처럼 낭자한 동백꽃 수북한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른다 --- 「동백나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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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의 시에서 꽃은 미적 관상용이거나 자기위안의 대상이라기보다 자아의 또 다른 모습으로 비춰진다. 이는 「시인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으켜 세우고 일으켜 세워도 주저앉”을 만큼 “작고 못생”긴 꽃들을 자신의 처지나 상황에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 꽃이 되어 위의(威儀)와 자존을 지키려 노력한다. 점점 위축되고 왜소해지는 삶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일들”이 있을 때마다 “길가에 엎드린 작은 목숨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면 자신만의 꽃밭을 찾아 꽃들과 대화하며 위안을 받았던 것이다.
- 김정수 해설 「생명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