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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시인의 말 1부 로제타 현상 이별연습 유폐를 읽는 방법 꽃이 피는 병 홍어 우슬 사막 낙타 질량 불변의 법칙 선인장 마을버스 모자 마늘밭의 시지프스 울음의 습성 2부 분꽃 설산이 그립다 석양증후군 헛꿈은 달콤하다 호박잎 잎새마다 눈물 고이는 달밤 사이의 서書 물결을 보고 있으면 슬픔도 기다려지는 때가 있다 대문 앞에 봄을 세워두고 달팽이는 싫어 비를 부르는 방식 하루살이 고백론 막차 3부 봄봄 설경雪景 설경 2 수락산 산 1번지 도깨비불 바랭이를 뽑는 시인 지지대를 세우다 처서 지나고 육묘일기 냉이씨 늦가을 노인 일기 늙어서 좋다 굽은 나무를 돌아보다 4부 바람고지에 서서 강변길 따라 동백정에서 봄을 만나다 마량포구의 저녁 풍등 근황 제주, 돌담 차귀도 일몰 금모래 해변 공원묘지에서 고향 건원릉 억새 그러니까 참새가 정처 없다는 것 해설 꽃과 아버지와 사막의 심상 | 공광규(시인) |
이순옥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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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꽃을 본적 있다
백 년에 한 번은 활짝 꽃피워 보겠다고 뼈마디 갈고 닦는다는데 한 번은 꽃피고 가리라 한사코 뻗어 오르는 집념의 발돋움으로 단 한 번 꽃피우고 서서 죽는 대나무 꽃이 피는 병이 들어 꽃이 피고 꽃이 피어서 죽어버린다니 너무 일찍 꽃피우고 오랫동안 시들어가는 것이 사는 일이고 보면 단 한 번 꽃이 피고 죽는 대나무는 진즉에 세상을 알아버린 듯하다 세상 곳곳마다 키만 키우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빽빽한데 어쩌면 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몰라 천천히 꽃피는 법을 날마다 연습 중이다 ---「꽃이 피는 병」중에서 *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차용 해마다 같은 자리에 피는 줄도 모르게 피는 꽃 꽃밭 한 귀퉁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라서 해질녘 고개 들며 환하게 웃는 꽃 화장 한 번 해 보지 못한 어머니 주고 싶어서 꽃이 필 때마다 뽀얀 분가루 모아서 단단히 여며놓은 까만 꽃주머니 하얀 분 한 통 사보지 못하고 분꽃 같은 시절 다 보낸 어머니 까만 주머니 속에 꼭꼭 담아두고 꺼내지 못하던 여자였던 어머니 단단한 씨앗 속 하얀 속살 파내어 까만 얼굴에 바르고 까르르 웃어보이던 맨발의 어머니가 환하게 핀 내 가난한 꽃밭에 달빛 퍼붓는다 ---「분꽃」중에서 도드락도드락 배가 불러오는 저 달 뻐꾸기 소리 불러들이는 한여름밤 푸른 달빛 밭두렁에 호박잎 무성하고 애호박들 도툼도툼 살이 차오르는 유월 호박잎 따서 무르게 찌고 애호박 풋고추 찌면 맛나게 잘 드시던 아버지 작년 여름에도 생신상 앞에서 활짝 웃으시던 아버지 열사흘 달빛 부드럽게 내리는 아버지 생신날 파란 잔디도 아직 터를 못 잡은 아버지 유택 찾아간다 땀으로 얼룩진 런닝셔츠 벗어 던지시고 옮겨 가신 그곳 꿈에 그리던 파란 잔디마당이 있는 집 예쁘게도 가꾸셨네요 아직도 새집을 짓느라 고생하시는지요 소주 한 잔에 마른 명태포 한 장 차렸습니다 상다리 휘어집니다 한여름밤 달이 차오르는 만큼 그리움 차올라 호박잎 잎새마다 눈물 고이는 여기서 어느쪽으로 생신상을 놓을까요 고향에서 나를 기다리는 늙으신 어머니를 찾아가 속울음이나 한 상 그득 차려내는 아버지 생신날 ---「호박잎 잎새마다 눈물 고이는」중에서 울타리가 없다 사방이 길일뿐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든 머무를 수 있다 자유의 길은 사막으로 나 있다 바람도 구름도 사막의 길을 간다 사막으로 가자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다면 사막으로 가자 끝없는 사막 천지에 가득한 길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바람의 말을 믿어보자 흩어지는 구름이 말한다 산산이 부서질 수 없다면 구름으로 살 수 없지 모래바람 분다 황사바람 속 나의 길 눈을 뜰 수 없는 ---「사막」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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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때로는 목숨줄 붙잡고 있는 부표였다가 때로는 어깨에 짐 하나 더 얹어주는 지게였다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내일로 가자고 낯설고 울퉁불퉁한 길 함께 걷다가 수시로 옆길로 빠져 혼자가 될 때마다 서럽고 쓸쓸하고 눅눅했다 너를 홀대하고 외면하던 배반의 시간들 시여 용서하시라 내가 너를 용서하듯이 깊은 가을 속에서 이순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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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 시집을 읽다 보면 “살아남는다는 것은/ 내 몸을 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엎드려 있어도 꽃이라고/ (중략) 고개 끄덕이는 꽃의 흔적들”(「로제타 현상」)이 다양한 소재의 시편 도처에서 전반적으로 보인다. 시 「호박잎 잎새마다 눈물 고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시편들이나 「분꽃」 「설경 2-서부역」같이 지나온 아픈 삶의 편린을 되돌아보되 관조하는 시인의 내면의 깊이가 느껴진다. 현실이 비록 「사막」,「낙타」 같을지라도 결국 “살점을 빚어 세운 꽃대궁들도 모두 돌아가고/ (중략)/ 거친 들녘을 견디는 꽃의 본질들”(「로제타현상」)만 남는다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육십여 평생을 지나오는 동안 꽃을 대상으로 그리고 많은 사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는 표현력을 남달리 키워온 덕분이 아닐까 싶다. 유려한 문장력이 단연 돋보이는 시집이다. - 김금용 (시인, 현대시학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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