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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돌아오고 살아가는 일] 삶이, 사랑과 신념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 이들이 현실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으로 비로소 자신의 상처와 진심을 마주한다.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는 생애를 우리도 그들처럼 살아낼 것이다. 떠나고 또 돌아오면서, 좌절하고 흔들리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내어줄 방을 준비하면서. -소설M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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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020년 1월과 2월
윤주 시징 미정 윤주 시징 미정 윤주 시징 2부 2021년 4월과 5월 미정 편지들 발문 | 최진영 작가의 말 |
저조해진
관심작가 알림신청趙海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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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기대어 각자 또 같이 살아가는 일
박형욱 (kaeti@yes24.com)
2021.10.14.
소설 속 인물들의 생애가 완벽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감했다. ‘완벽한 생애’라니,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완벽한 생애』는 실직하고, 이별하고, 신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며 삶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맞은 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현실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으로, 서로에게 자신의 방을 내어주면서, 비로소 자기 안의 상처와 진심을 마주한다.
그들은 도피한다. 떠난다. 여행한다. 직장에서 자신을 부정당하고 모욕당한 윤주는 친구 미정의 제안에 제주로 향하고, 홀연히 자신을 떠난 연인을 그리던 시징은 그의 고향에 위치한 윤주의 방에 머무르기로 한다. 한편 미정은 제주에서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활동가로 살면서 스스로를 괴롭혀온 거대한 신념을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온 힘을 다해 찾아도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빠져나가려 애를 쓰면 쓸수록 눈 앞의 미로가 깊어지기만 한다면, 잠시 멈추어도 좋은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낯선 공간과 의외의 사람들에게서 다친 마음을 회복하고 생의 다음 장을 펼칠 힘을 얻는다. 내 좋은 친구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요. 친구의 그 말을 상기할수록, 그가 나와 헤어진 뒤에야 다른 사람과의 정착을 결심한 걸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이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그것이 우리 각자의 여행이겠죠. 물론 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 (151쪽) 작가의 말처럼 ‘생애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 다르게 보면 무엇을 완벽이라 할 것인지에 따라 우리 각자의 삶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미 완벽한지도 모르겠다. 좌충우돌 우당탕탕 눈물과 웃음의 고개를 넘고 또 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생애라면, 우리의 이 완벽하지 않은 생애가 바로 ‘완벽한 생애’는 아닐까. |
시징은 성인이 된 이후로 친구나 동료의 집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그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 적도 거의 없었다. 은철을 제외하면 시징의 공간에 배어든 냄새가 남들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시징이 어떤 자세로 잠을 자고 나쁜 꿈에서 깼을 땐 어떤 얼굴을 하는지, 별다른 습관은 무엇이고 무방비의 자세는 어떠한지, 평소보다 우울하거나 고독할 땐 무얼 하며 시곗바늘의 균등한 간격을 견디는지, 그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육년 전이나 지금이나 은철뿐이었다.
--- pp.24-25 미안한 동시에, 그 미안함 뒤에 안전하게 숨어 있고 싶은 마음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떤 미안함은 편리하다는 것을 문영이 알까. 누군가를 향한 복합적인 감정 둘레에 벽을 쌓아서 자신에 대한 의심과 혐오 그리고 열등감을 사전에 차단하는 그런 미안함도 있다는 것을. --- pp.33-34 기회가 와서 잡았을 뿐이고 애정을 갖고 노동했으며 그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아 꾸려졌던 삶…… 평범해 보이지만 그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늘 바빴고 발을 동동거리며 뛰어다녔는데, 이 세계에선 그런 삶이 언제라도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윤주를 무기력하게 했다. --- p.54 은철을 만나면서부터 시징은 식탁에 마주 앉아 함께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의 몸을 만지며 잠드는 하루하루만으로도, 그러니까 열망이나 격정 없이도 사랑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그것만으로, 사랑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할 줄 알았다.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추억이 보호막이 되어 덜 다치고 덜 부서지며 살아갈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사랑이 끝나고 나니 생애는 사랑의 경험이 없을 때보다 훨씬 더 지루한 연극이 되어버렸다. --- pp.72-73 궁금하기도 했다. 그 끝을 확신할 수 없는 신념은 애초에 갖지 않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고민을 거듭하고 애쓰며 투신할수록 생애는 엉망이 되는 것인지, 미정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 pp.85-86 긴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윤주는 이내 미정 맞은편에 앉았고, 그 이야기가 어떤 순서로 전해지든 마지막 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 그러고 보니 그 말은 시징에게 메모를 쓸 때 미처 적지 못한 문장이기도 했다. 윤주는 이제야 그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당분간은 그 말에 기대어 무서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윤주는 믿고 싶었다. 저편의 미정은 이미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하염없이 윤주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 pp.101-102 시징, 근데 그거 알아? 이 아파트에 처음 왔을 때 말이야, 몇년 전에 미술관에서 본 그림이 떠올랐어. 밀밭을 혼자 걷는 사람을 그린 풍경화였는데, 그림에는 걷는 사람의 뒷모습만 나오는데도 나는 그 얼굴을 본 것만 같았지. 시징, 너무 혼자 있지 마. 생애의 끝을 미리 가정하지도 마. 사실은 네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어. --- pp.111-112 |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진심’ 직장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도망친 뒤 표류하는 배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던 윤주는, 일년 만에 전화를 걸어 온 미정에게 “실직자가 되어 거리를 배회 중이라고” 털어놓게 된다. “이참에 제주에 놀러 오라”는 미정의 제안에 윤주는 선뜻 제주행을 결심하게 된다. 제주는 십년 전, 이제는 헤어진 옛 연인인 선우와 여행 계획만 세워두고 끝내 가지 못했던 곳이다. 제주에 머물기로 약속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윤주는 자신의 방을 렌털 사이트에 등록해둔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윤주를 다시금 서울로 불러들이겠지만, 그는 “다시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방을 타인에게 대여하기로 결심한다. 그런 윤주의 방을 사이트에서 발견한 시징은 방을 빌리고 빌려주는 사이에서는 나누기 어려운 친밀한 말들을 담은 메일을 보내온다. 윤주의 방이 있는 영등포는 시징의 연인이었던 은철의 고향이다. 홀연히 곁을 떠난 은철이 영등포 어딘가에서 웃고 떠들고 자신과의 추억이 담긴 홍콩에 대해 늘어놓고 있을 것만 같아, 시징은 “희박한 가능성의 우연”에 기대어 영등포의 윤주의 방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한편 윤주를 자신이 지내는 공간으로 초대한 미정은 제주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활동가로 살고 있다. 미정은 사회를 위한 옳은 일을 해보겠다는 커다란 신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 그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했을 때 미정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제주로 내려와 “신념을 작게 나누는 절차”를 밟게 된다. 소설은 이렇듯 인물들이 각자의 생애가 기반을 두고 있던 견고함에서 도망치며 시작된다. 윤주와 시징 그리고 미정은 자신이 발을 디딘 삶에서 벗어나 ‘타인의 방’에 머물며, 그곳에서 너무도 거대하고 아름다워서 오히려 고통이 되었던 사랑과 신념을 작게 조각내는 일을 기꺼이 시도한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간 은철과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던 시징은 오랜 시간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살아야 했다. 출장 차 방문한 서울에서의 짧은 일정에도 은철을 찾아 헤매며 영등포 구석구석 눈길을 보내던 시징은, 윤주의 방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마침내 은철에 대한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베트남전에 참전해 민간인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을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둔 미정은, 자신이 옳고 그름에 대한 확신 아래 판결을 내리는 법조인이 될 수 있는가 끊임없이 물었다. 그 과정에서 커져버린 내면의 갈등은 미정을 제주로 도망치게 만드는데, 미정은 제주에서 머무는 동안 자신이 “언제까지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내려놓고 가벼워지는 연습을 하게 된다. 늘 발버둥질해왔지만 그렇게 버텨온 자신의 생애가 타인에 의해 너무도 쉽게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무너졌던 윤주는, 제주에서 미정과 지내며 그리고 시징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침내 자신과 화해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익숙한 일상에서는 기만이나 거짓으로 모른 척했던 진심”(발문)을 비로소 제대로 마주한다.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이 익숙함을 흐트러뜨릴 때, 그제야 비로소 고개를 내미는 솔직함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요.“ 삶은 완벽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사랑과 견고한 신념을 지켜낸 삶은, 완벽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 전에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삶은 완벽할 필요가 있는가. 헤어진 연인인 선우를 찾아간 윤주는 멀찍이서 그의 “무방비한 행복”에 빠진 얼굴을 보고는 문득 떠올려본다. 윤주와 선우가 연인일 때도 그가 그토록 행복해한 적이 있었는가. 곧 윤주는 물음을 거둔다. 선우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을 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주는 안다. 자신의 생애에도 지나가야만 하는 어떤 과정이 분명히 있으리라는 것을. 여행지에서 종종 마주하는 예상치 못한 장면들처럼, 우리 삶에도 무수히 어긋나고 다시 맞물리는 장면들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신의 생애 속 장면들을 때로 아름답게 기억하기도 하고 때로 “망각의 영역”에 보관하기도 하며 각자의 여행을 해나갈 것이다. “만났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멀어졌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걷다가 뒤늦게 혼자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멀어졌지만 우연의 힘으로나마 다시 만나기를 바라기도 하고, 멀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오래도록 나란히 걸어가기도” 하며 “그 과정에 완벽함이란 없”(발문)음을 깊이 새기면서. 가끔 주저앉아 숨을 돌릴 때, 완벽하게 살아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음에 좌절할 때, 이 소설은 ‘괜찮다’ 말하며 곁을 내어줄 것이다. 방문을 열어 그 안에 머물게 하고 또한 다시 떠나갈 힘을 전해주기도 할 것이다. 지난 작품들에서도 꾸준히 ‘곁’의 자리를 마련해온 작가 조해진은 이번 소설에서 역시 시선을 타인에게로 돌리며 누군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 『완벽한 생애』 속 인물들은 각자 비정규직 문제, 제주 신공항 건설을 비롯한 난개발 문제, 홍콩 시위, 베트남전, 세월호참사 등 시대의 역사와 현실 속 아픔을 겪고 여전히 그 안에서 살아간다. 소설은 인물들의 생애를 통해 각자가 지닌 상처들을 담담히 그려내며, 그럼에도 훼손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혁명은 끝나도 혁명의 방식은 남는다는 믿음”으로. “타인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신념은 텅 빈 집념”이 될 수도 있다는 작가의 말을 따라 우리는 조해진이 마련한 타인의 자리에 발을 디뎌볼 수 있겠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볼 수 있는 것,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 생애의 한가운데”에서 가만히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제 그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시작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신념을 따르고 사랑에 진심일수록 상처 받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신념과 사랑이라는 단어들에 함유된 아름다움이 어째서 우리의 마음을 때때로 더 가난하게 하는지,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 생애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 그 완벽하지 않음은 또다른 투신과 좌절과 희망으로 다시 완벽으로 나아간다, 다치면서, 부서지면서, 옳은지 옳지 않은지 판단하지 못한 채 흔들리면서…… 혁명은 끝나도 혁명의 방식은 남는다는 믿음이 있다. 타인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신념은 텅 빈 집념이 되기 쉽다고 생각하며, 사랑은 추억을 남기지만 그 추억은 더 큰 외로움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이 모든 불완전성을 살아가는 윤주와 시징과 미정, 그리고 비슷한 결의 생애 속에 내던져진 소설 바깥의 독자들과 『완벽한 생애』를 나눈다면 좋겠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 생애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서로에게 ‘살아 있음’의 증인이 되어주기를 희망한다. 2021년 9월 조해진 |
『완벽한 생애』는 섬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검은 밤 각자의 등대 빛이 서로에게 가닿는 찰나에 관한 이야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완벽한 생애에 빛을 더하는 이야기, 그 빛의 고요한 위안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완벽한 생애』는 섬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광활한 밤하늘의 별을 함께 바라보는 소설이라고. 우리는 떨어져 있지만 별은 우리 사이보다 훨씬 멀리 있기에 그곳의 당신과 이곳의 내가 바라보는 별의 크기도 밝기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동시에 같은 것을 바라보기도 한다. 희망도 기억도 추억도 아닌 현재에 당신은 있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이별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이곳을 떠나겠다는 각오.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 자립. 어제의 문을 닫고 내딛는 오늘. 나 없는 당신의 행복한 생애를 기원하는 마지막 기도. 한편으로 이별은, 이렇게도 멋진 일이다. - 최진영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