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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

완벽한 생애

[ 양장 ] 소설Q-11이동
조해진 | 창비 | 2021년 09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3 리뷰 31건 | 판매지수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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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288g | 128*194*17mm
ISBN13 9788936438487
ISBN10 8936438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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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떠나고 돌아오고 살아가는 일] 삶이, 사랑과 신념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 이들이 현실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으로 비로소 자신의 상처와 진심을 마주한다.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는 생애를 우리도 그들처럼 살아낼 것이다. 떠나고 또 돌아오면서, 좌절하고 흔들리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내어줄 방을 준비하면서. -소설M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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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서로에게 기대어 각자 또 같이 살아가는 일
박형욱 (kaeti@yes24.com)
2021-10-14
소설 속 인물들의 생애가 완벽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감했다. ‘완벽한 생애’라니,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완벽한 생애』는 실직하고, 이별하고, 신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며 삶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맞은 이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현실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으로, 서로에게 자신의 방을 내어주면서, 비로소 자기 안의 상처와 진심을 마주한다.

그들은 도피한다. 떠난다. 여행한다. 직장에서 자신을 부정당하고 모욕당한 윤주는 친구 미정의 제안에 제주로 향하고, 홀연히 자신을 떠난 연인을 그리던 시징은 그의 고향에 위치한 윤주의 방에 머무르기로 한다. 한편 미정은 제주에서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활동가로 살면서 스스로를 괴롭혀온 거대한 신념을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온 힘을 다해 찾아도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빠져나가려 애를 쓰면 쓸수록 눈 앞의 미로가 깊어지기만 한다면, 잠시 멈추어도 좋은 것이다. 우리는 종종 낯선 공간과 의외의 사람들에게서 다친 마음을 회복하고 생의 다음 장을 펼칠 힘을 얻는다.

내 좋은 친구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요. 친구의 그 말을 상기할수록, 그가 나와 헤어진 뒤에야 다른 사람과의 정착을 결심한 걸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이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그것이 우리 각자의 여행이겠죠. 물론 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 (151쪽)

작가의 말처럼 ‘생애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 다르게 보면 무엇을 완벽이라 할 것인지에 따라 우리 각자의 삶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미 완벽한지도 모르겠다. 좌충우돌 우당탕탕 눈물과 웃음의 고개를 넘고 또 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생애라면, 우리의 이 완벽하지 않은 생애가 바로 ‘완벽한 생애’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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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징은 성인이 된 이후로 친구나 동료의 집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그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 적도 거의 없었다. 은철을 제외하면 시징의 공간에 배어든 냄새가 남들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시징이 어떤 자세로 잠을 자고 나쁜 꿈에서 깼을 땐 어떤 얼굴을 하는지, 별다른 습관은 무엇이고 무방비의 자세는 어떠한지, 평소보다 우울하거나 고독할 땐 무얼 하며 시곗바늘의 균등한 간격을 견디는지, 그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육년 전이나 지금이나 은철뿐이었다.
--- pp.24-25

미안한 동시에, 그 미안함 뒤에 안전하게 숨어 있고 싶은 마음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떤 미안함은 편리하다는 것을 문영이 알까. 누군가를 향한 복합적인 감정 둘레에 벽을 쌓아서 자신에 대한 의심과 혐오 그리고 열등감을 사전에 차단하는 그런 미안함도 있다는 것을.
--- pp.33-34

기회가 와서 잡았을 뿐이고 애정을 갖고 노동했으며 그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아 꾸려졌던 삶…… 평범해 보이지만 그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늘 바빴고 발을 동동거리며 뛰어다녔는데, 이 세계에선 그런 삶이 언제라도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윤주를 무기력하게 했다.
--- p.54

은철을 만나면서부터 시징은 식탁에 마주 앉아 함께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의 몸을 만지며 잠드는 하루하루만으로도, 그러니까 열망이나 격정 없이도 사랑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그것만으로, 사랑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할 줄 알았다.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추억이 보호막이 되어 덜 다치고 덜 부서지며 살아갈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사랑이 끝나고 나니 생애는 사랑의 경험이 없을 때보다 훨씬 더 지루한 연극이 되어버렸다.
--- pp.72-73

궁금하기도 했다. 그 끝을 확신할 수 없는 신념은 애초에 갖지 않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고민을 거듭하고 애쓰며 투신할수록 생애는 엉망이 되는 것인지, 미정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 pp.85-86

긴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윤주는 이내 미정 맞은편에 앉았고, 그 이야기가 어떤 순서로 전해지든 마지막 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너의 잘못이 아니라는 그 말…… 그러고 보니 그 말은 시징에게 메모를 쓸 때 미처 적지 못한 문장이기도 했다. 윤주는 이제야 그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당분간은 그 말에 기대어 무서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윤주는 믿고 싶었다. 저편의 미정은 이미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하염없이 윤주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 pp.101-102

시징, 근데 그거 알아? 이 아파트에 처음 왔을 때 말이야, 몇년 전에 미술관에서 본 그림이 떠올랐어. 밀밭을 혼자 걷는 사람을 그린 풍경화였는데, 그림에는 걷는 사람의 뒷모습만 나오는데도 나는 그 얼굴을 본 것만 같았지. 시징, 너무 혼자 있지 마. 생애의 끝을 미리 가정하지도 마. 사실은 네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어.
--- pp.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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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는 섬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검은 밤 각자의 등대 빛이 서로에게 가닿는 찰나에 관한 이야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완벽한 생애에 빛을 더하는 이야기, 그 빛의 고요한 위안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완벽한 생애』는 섬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광활한 밤하늘의 별을 함께 바라보는 소설이라고. 우리는 떨어져 있지만 별은 우리 사이보다 훨씬 멀리 있기에 그곳의 당신과 이곳의 내가 바라보는 별의 크기도 밝기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헤어졌지만 동시에 같은 것을 바라보기도 한다. 희망도 기억도 추억도 아닌 현재에 당신은 있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이별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이곳을 떠나겠다는 각오.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
자립.
어제의 문을 닫고 내딛는 오늘.
나 없는 당신의 행복한 생애를 기원하는 마지막 기도.

한편으로 이별은, 이렇게도 멋진 일이다.
- 최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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