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9월 10일 |
---|---|
쪽수, 무게, 크기 | 1054쪽 | 806g | 126*200*51mm |
ISBN13 | 9788932440088 |
ISBN10 | 8932440085 |
발행일 | 2021년 09월 10일 |
---|---|
쪽수, 무게, 크기 | 1054쪽 | 806g | 126*200*51mm |
ISBN13 | 9788932440088 |
ISBN10 | 8932440085 |
제1권 사실과 신화 옮긴이 서문 서론 제1부 운명 1장 생물학적 조건 2장 정신분석의 관점 3장 유물사관의 관점 제2부 역사 1. 2. 3. 4. 5. 제3부 신화 1장 2장 1. 몽테를랑 또는 혐오의 빵 2. D. H. 로런스 또는 남근의 자존심 3. 클로델 또는 주의 여종 4. 브르통 또는 시 5. 스탕달 또는 소설적 진실 6. 3장 제2권 체험 서론 제1부 형성 1장 유년기 2장 젊은 처녀 3장 성 입문 4장 레즈비언 제2부 상황 5장 결혼한 여자 6장 어머니 7장 사교 생활 8장 매춘부와 고급 창녀 9장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10장 여자의 상황과 성격 제3부 정당화 11장 나르시시즘의 여자 12장 사랑에 빠진 여자 13장 신비주의 여자 제4부 해방을 향해 14장 독립한 여자 결론 해제 이정순 시몬 드 보부아르 연보 도판 출처 찾아보기 |
여자를 억압하는 원인이 가족을 영속시키고 세습재산을 고스란히 유지하려는 의지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여자가 가족을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이러한 절대적 예속에서도 벗어난다. 만일 사회가 사유재산을 부정하면서 가족을 거부한다면 그로 인해 여자의 운명은 현저하게 개선될 것이다. 공유재산제가 우세한 스파르타는 여자가 남자와 거의 동등하게 취급받은 유일한 도시국가였다. 여자아이들은 사내아이들처럼 양육되었고, 아내는 남편의 집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모든 아이가 공동으로 전체 도시국가에 귀속되기 때문에, 여자들 또한 한 명의 주인에게 예속되지 않았다. p.141
여성 해방의 선구자로 알려진 시몬 드 보부아르의 대표작 <재2의성>은 국내에는 1973년에 소개되었다. 그로부터 50여 년 만에 프랑스 저작권사와 공식 계약하고 변화한 시대에 맞추어 전면 개정하면서 오역은 물론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나 실존주의나 현상학과 동떨어진 용어 등 그동안 안고 있었던 번역의 문제점을 바로잡아 새롭게 출간되었다. 번역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디자인, 그리고 친절한 해설과 꼼꼼한 역주, 도판 50여 점 수록되어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천 페이지를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무게가 무겁지 않고, 사철제본과 PUR제본을 혼합해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어 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보부아르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고 현대 페미니즘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것 정도였다. 보부아르는 <레 망다랭>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 선생님이었고, 사르트르와 함께 정치철학 잡지를 창간한 저널리스트이자 극작가, 페미니즘 사상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정열적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1949년 여성 해방을 목표로 한 책 <제2의 성>으로 당시 프랑스의 가부장 사회에 폭탄을 던졌다. 이 책은 사회, 정치, 신화, 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와 남성이 부여한 여성 역할이나 이미지를 역사, 사회학, 철학, 인류학, 생물학, 정신분석학을 동원해 분석한다. 여성 조건에 대한 과학적이고 총체적인 연구서이자, 현대 페미니즘 사상의 모태가 된 여성학 바이블인 것이다.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생물학적?심리적?경제적 운명도 사회 속에서 인간의 암컷이 띠고 있는 모습을 규정하지 않는다. 문명 전체가 남자와 거세된 남자의 중간 산물을 공들여 만들어 내어, 그것에다 여자라는 이름을 붙인다. 오직 타인의 개입만이 한 개인을 타자로 구성할 수 있다. 어린 아이가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성적으로 구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에게 신체는 우선 주관성의 발현이며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실현하는 도구다. 그들이 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눈과 손을 통해서이지 성적 부분을 통해서가 아니다. p.389
여성들은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많은 것들 참아와야 했다.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거나,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부담을 짊어 지고 살아야 했다. 그게 여성스러운 거니까,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라는 무언의 속박이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무급으로, 저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보이지 않게 일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터는 여성을 위해 기능하지 않으니 말이다. 위치에서부터 근무 시간, 규제적 표준에 이르기까지 남자들의 생활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왔고, 여자들이 하는 일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인식 또한 여전한 게 사실이고 말이다. 보부아르는 사회가 여성에게 특정한 방식의 외양과 행동 방식을 요구하며, 여성은 이에 따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말한다. 사회가 종종 여성을 '제2의 성'으로 여기고, 남성보다 열등하고 뒤떨어지는 성별로 강등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된 지 70년이 더 지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던진다.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자신의 실존적 조건을 자각하여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로 거듭날 것을 촉구하는 동시에 남자들도 타자이자 객체화된 여자의 시선에 자기를 이상화시키는 자기소외의 꿈과 그 꿈을 가능케 한 특권을 떨쳐 내기를, 그리하여 여자들이 초월성을 회복해 남녀가 함께 자유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호소한다. 엄청난 분량뿐만 아니라 다루고 있는 내용들 또한 매우 방대해서 선뜻 시작하기엔 어렵게 느껴지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여타의 여성학, 젠더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에 비해 굉장히 문학적으로 읽힌다는 점에서 가독성은 좋은 편이다. 단, 소화해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 본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역자의 해제가 꽤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에게 여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시몬 드 보부아르 회고록에서
옮기신 이정순님의 글을 읽으며 단편영화 본 듯 유사체험을 했다. 25년쯤 전에 영어책으로 일부 읽긴 했으나 거의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책을 을유문화사의 번역 출간으로 다시 읽기로 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협조적이고 호의적인 태도를 가질 때, 그는 추상적인 평등의 원리를 내세우고 그가 확인하는 구체적인 불평등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와 갈등 국면에 들어서면 상황은 역전된다.* 그는 구체적인 불평등을 내세우고 추상적인 평등을 부인하기 위해 그것을 구실로 삼기까지 할 것이다.
* 예를 들어 남자는 아내가 직업이 없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정의 임무 역시 고귀하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일단 말다툼이 일어나면 "너는 나 없으면 굶어죽을 거야"라고 소리친다.
2021년 뭐가 확연히 변했다고 자랑스럽게 분별할 사항이 딱히 없어서 끔찍하구나.
“필시 해방되려고 애쓰는 것보다도 눈 먼 노예 상태를 견뎌 내는 것이 한결 편(...)”
이 구절이 다 이해될 것 같은 기분은
필시 완독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실패의 상태를 견뎌 내는 것이 한결 편... 때문일까...
보부아르는 이 책을 어떤 소설보다 더 빨리 휘리릭 썼다는데
휘리릭 읽을 수는 없는 이유는...
“인간은 자기의 내쳐진 상태를 불안과 번민 속에서 경험한다.
자기의 자유와 주관성 속에서 도피해 전체의 한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잊고 싶어 한다.
우주적이고 범신론적인 몽상의 근원과, 망각이나 잠, 무아의 경지나 죽음에 대한 욕망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
자유과 주관성은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지키기도 어렵고
전체 속에서 자신을 잊고 사는 일은 편하고 나른하다.
문득 늦잠을 잔 적이 언제인가 싶다.
오래 잠드는 것도 못 하고
깨면 불안 초조하고...
오래 전 같은 반 친구였기 때문에 안다고 생각했고
살면서 여러 번 잠시 조우했으나
제대로 사귄 적 없는 지인처럼 느껴지는 작품이
<제2의 성>이었다. 읽었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완역본 소식이 특별했지만 펼치는 건 한참 후라고 미뤘다가
종이산책단이 산책로를 마련하고 초대해주어
시간과 체력이 되는 만큼 걸어도 좋겠단 생각을 했다.
1부에서 역사와 신화 등등의 여러 면면들을 살피며
여성의 억압을 고찰하는 내용들은
낯설진 않아도 새로운 문장들을 만나 새롭게 읽었다.
들뜨지 않는 차분하고 든든한 즐거움이 차올랐다.
2부의 구체적인 여성으로 사는 일의 경험들은
시대적 간극을 감안해도 여전한 내용들이 다시 놀라워서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지고
부당한 것들이 바로 잡는 일이
얼마나 천천히 요란한 마찰음을 내며 움직이는지...
그 모든 움직임에 삶을 내어준 분들 생각에
깊이 감사하며 읽었다.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
오늘날의 여자에게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를 잊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잊으려면
우선 지금부터라도 자기를 발견했다는 것을
단단히 확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히트 가수가 히트 곡을 안 부르는 콘서트를 어느 관객도 기대하지 않듯,
피해볼까 했던 문장을 다시 기록해본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여자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내세워야 할 것은
그녀의 상황이지
신비스러운 본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