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직한 돌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웨이브를 넣은 듯 부드럽게 말린 감꽃을 달고 떨어진 감똑을 보면서 그 시절 저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린 제 눈길을 끌었던 건 언제나 채 영글지 못한 초록색 열매가 아니라 연노란 꽃이었기에 저는 꽤 오랫동안 감또개나 감똑이 떨어진 감꽃을 가리키는 다른 말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 p.21~22
세상에, 돌이끼를 보고 돌(바위)이 옷을 입었다고 하다니요!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두 손을 부여잡고 살래살래하면서 어쩜 이렇게 귀여운 생각을 다 했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돌옷이라는 말에는 돌도 이끼도 살뜰하게 들여다본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듯해 곱씹을수록 사랑스러워서요.
--- p.44
시선을 넓혀 땅자리를 흠집으로, 박과 식물을 모든 식물로 보아도 흠집은 곧 자연스러움입니다. 그렇기에 옛날처럼 직접 농작물을 키워 먹는 일이 일상이던 시절에야 웬만한 흠집은 결점으로도 여기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요즘처럼 농작물이 상품으로 사고 팔리는 시대에 이 ‘자연스러움’은 심각한 ‘결격 사유’가 되고 맙니다. 돈을 내고 사는 것이니만큼 기왕이면 깨끗하고 예쁜 것을 바라는 마음은 당연하지요. 다만, 먹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자그마한 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품으로서 가치를 잃고 이내 버려지는 현실은 꽤 씁쓸합니다.
--- p.51
자연에서든 사람 사회에서든 큰 틀에서 기준으로 삼는 제철은 분명히 있고, 세상은 대개 그 기 준에 맞춰 돌아갑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벼일지라도 올벼, 햇벼, 늦벼가 있듯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제철 또한 따로 있는 법입니다. 세상의 제철을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나의 제철이 언제인지를 알고, 거기에 내 삶을 맞추는 일이 아닐까요.
--- p.73
자그마한 옹두리는 옹두라지라고 합니다. 옹두리와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상처로는 옹이가 있습니다. 옹이는 자꾸 높은 곳으로 뻗어 나가려는 윗가지에 밀려 죽은 밑가지의 흔적입니다. 그러니까 옹두리가 나무의 투쟁사라면, 옹이는 나무의 성장사라고 할까요.
--- p.74
보들보들한 깃은 솜깃, 갓 태어난 아기 새의 무른 깃은 부등깃이라고 부릅니다. 어쩜 가리키는 낱말도 이리 야들야들하고 폭신폭신한 느낌인지요!
--- p.92
‘심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몹시 사랑스럽거나 멋진 대상을 봤을 때 심장이 크게 쿵쿵거릴 만큼 설렌다는 뜻으로, 특히 보들보들하고 동글동글하고 꼬물꼬물한 어린 생명에게 심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몇 해 전 지리산에서 태어난, 강보에 싸인 능소니 사진을 봤을 때 저도 어찌나 심쿵했던지요! 그런데 이토록 무해하고 앙증맞은 모습을 ‘능소니’로 검색하면 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거의 새끼 곰이라고만 부르니까요.
--- p.96
환경 오염으로 서식지가 파괴되는 탓에, 바다 바닥을 깡그리 훑으며 남획하는 탓에, 바다와 민물 가릴 것 없이 물고기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린 물고기를 ‘모이’라 부르고, 또 모이마다 따로 이름을 붙여 주고, 어쩌다 잡힌 모이는 금세 놓아주며 귀히 여기던 마음이 사라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107
우리나라에도 이런 낱말이 있었다니! 와락 반가우면서도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멧팔랑나비가 팔랑팔랑 나니 봄이 왔구나, 말매미가 차르르르 외쳐 대니 여름이 한창이구나, 왕귀뚜라미 소리가 한결 또랑또랑하니 가을이 깊었구나 했을 그 풍경, 작은 벌레의 몸짓에 눈길 주고 소리에 귀 기울이다 철벌레라고 이름 붙였을 그 마음이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었다는 걸 까맣게 모른 채 다른 나라 낱말에서만 정취를 찾았다는 사실에요.
--- p.143
가랑눈, 가루눈, 진눈깨비도 운치가 있지만, 언제나 가장 바라는 건 역시 탐스럽게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지요. 올 겨울에는 눈 풍년이 들어서 세상을 순식간에 겨울 왕국으로 바꿔 버리는 상고대도 원 없이 보고, 깨끔한 숫눈도 한껏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p.155
글자로 쓰고 보면 몇 자 아니지만 실제 산을 깎고 땅을 다지고 구들장 같은 돌을 고르고 옮기고 박았을 과정을 생각하면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제각각 물결치듯 구부러진 청산도 다랑치를 떠올리면 논배미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척박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내는 삶, 그 삶이 빚어내는 유일한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 p.167
큰비가 오기 전 저 멀리서 매지구름이 서서히 몰려오면 어떻게든 밖으로 나갑니다. 매지구름이 데려오는 물기 가득한 공기를 허파 가득 채우고 싶어서요. 매지구름이 더욱 짙은 먹장구름이 되어 그제야 힘겹다는 듯 툭, 툭 비를 한두 방울 떨어트리기 시작하는 순간이면 까닭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마음이 설렙니다.
--- p.186
사실 지구를 비롯해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같은 행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니 엄밀히 따지자면 별이라고 부를 수 없다지요. 그렇지만 우주에서 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떠돈다고 해서 떠돌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거기에서 별까지 빼 버리면 너무 쓸쓸하니 그냥 별이라고 해요, 우리. 그러고 보니 지구는 떠돌이별이자 빛을 내지 못하는 까막별이기도 하네요.
--- p.196~197
저는 여태껏 옛날보다 지금이 더욱 발달한 시대이기에 옛사람보다 현대인이 더 세상을 폭넓게 보고 깊게 이해한다고 여겨 왔습니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자연을 바라보는 눈만큼은 현대인이 옛사람보다 명백히 좁고 얕다는 걸, 자연 낱말을 찾을 때마다 깨닫습니다. 현대인이 옛사람처럼 오롯이 자연에 기대어 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연을 떠나서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을 사는 우리 나름으로 한결 자연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찾아야 합니다. 특히나 지금 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는 더욱이요.
--- p.209
햇덧이라는 낱말도 있어요. “해가 지는 짧은 동안”이자 “일하는 데에 해가 주는 혜택”을 뜻합니다. 두 번째 뜻풀이를 보면서 혼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왠지 다른 계절보다 겨울에는 일하는 게 더 버겁다 싶었거든요. 그게 다 (제가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고) 해가 짧아 햇덧이 적은 탓이었습니다.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 p.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