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모친이 빨랫줄을 받치고 있는 바지랑대를 내려놓고 부산하게 빨래를 거두는 것을 목도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자랑스럽지 못한 세탁물을 널어놓고 있는데 손님이 온다고 하면 부리나케 걷어치우는 경우였다. 취학 이전의 유년기를 김유신 장군의 출생지로 알려진 충북 진천의 변두리에서 보내었다. 충북선의 통과 지점과 거리가 멀어서 평소 기적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저기압 날씨가 되면 가녀리게 들려왔다. 기적 소리가 나면 모친이 비가 올 것이라며 부지런히 의상衣裳 극빈자 같은 빨래를 치우곤 하였다. 이제는 아득한 옛이야기다. 빨랫줄이 사라졌으니 바지랑대란 말도 미구에 사라질 것이다. 1950, 60년대만 하더라도 시골 학교에서는 키다리 교사에게 바지랑대란 별명을 선사하는 일이 흔했다. 바지랑대와 대척점에 있는 교사의 별명으로는 미스터 몽탁이란 것이 있었다.
--- p.48
오랫동안 친숙한 것이라 엿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미친 척하고 엿목판에 엎어진다”는 말이 있다. 엿은 먹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 미친 척하고 엿목판에 엎어져 주인이 놀란 사이 엿을 슬쩍한다는 뜻이다. 욕심이 있어서 속 보이는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소리다. 엿장수가 고물을 받고 엿으로 바꾸어 줄 때 엄격한 기준이 없으니 “엿장수 마음대로”란 말도 생겨났다. 가위 소리 듣고 몰려온 꼬마들은 엿을 산 뒤 엿치기란 놀이를 하였다. 엿가래를 부러뜨리거나 반 동강을 낸 뒤 거기 나 있는 구멍의 수를 견주어서 많은 의 임자가 이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제 엿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없고 엿장수도 사라졌다. 엿장수뿐 아니라 방물장수나 옹기장수도 사라졌다. 그러니 그런 어사는 앞으로 옛말 사전에서나 볼 수 있게 되리라.
--- p.93
근자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말 중에 빈번히 쓰이는 것이 ‘갑질’이란 말이다. 또 목에 힘준다, 어깨에 힘준다는 말도 자주 듣게 된다. 모두 힘이 있는 사람의 곱지 않은 거동이나 태도를 힘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말이다. 평등 의식이 확산되면서 이와 비례해 퍼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쓰였으나 요즘은 좀처럼 접하지 못하는 말이 ‘곤댓짓’이다. “뽐내어 우쭐거리며 하는 고갯짓”이 곤댓짓인데 옛날 하급 벼슬아치나 시골 부자들이 하던 짓이다. 훨씬 실감 나는 말이다. 노인을 가리키는 비하성 속어인 꼰대가 사실은 곤댓짓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추측성 발언일 뿐이다.
--- pp.98~99
우리 속담에 ‘철들자 망령’이란 것이 있다. 다섯 글자로 된 지상 최고의 간결한 인간론이라 생각한다. 젊어서는 철이 안 나 지각없는 언동을 일삼다가 겨우 철이 났나 싶으면 이내 망령을 부린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인생론이기도 한데 우리 사회에선 특히 정치인의 경우에 유념해야 할 사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분야의 경우엔 이렇다 할 영향력이 별로 없다. 당사자의 불행일 뿐이다. 그러나 세상모르는 철부지와 노망 든 화상이 우리 사회를 운전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다가도 섬뜩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pp.147~148
우리 바로 위 세대들은 비위란 말을 많이 썼다. 여러 맥락에서 쓰였는데 풀이나 정의보다 예문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한결 편할 것이다. 우선 비위가 동한다고 하면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뜻이 된다. 비위를 돋우는 음식이라고도 했는데 식욕이란 말을 익히지 않은 이들이 썼음은 물론이다. 비린내 나는 것이 비위에 거슬린다며 생선을 멀리하는 이들도 있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니 어떻게 그분 비위를 맞추겠어요?”라 하면 기분을 맞추어주는 일이 된다. 남의 비위, 특히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어주는 것을 ‘보비위’라 했다. 조금은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우리 위 세대에선 흔히 썼다. 상사에게 보비위를 잘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취지의 말을 많이들 하였다.
--- p.158
삼십육계란 말은 본시 물주가 맞히는 사람에게 살돈의 서른여섯 배 주는 노름이요 그 노름을 하는 것을 뜻한다고 사전에 나온다. ‘도망치다’와는 관련이 없는 말이다. 고대 중국의 병법에 서른여섯 가지 계략이 나오는데 위급할 때는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의 말이 있다. 우리 사이에서는 ‘삼십육계에 줄행랑이 으뜸’이라는 말로 통했고 결국 많은 계책 중에서 도망해야 할 때는 기회를 보아 도망쳐서 보신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이 단순화되어 ‘삼십육계를 놓다’가 ‘도망치다’의 뜻이 되었다는 것이다. 줄행랑은 주행走行의 음이 변하여 그리되었다고 한다.
--- p.171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있은 뒤 한참 만에 마산에서 항의 시위가 있었고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하였다. 그때 자유당 실세이자 부통령 당선자 이기붕이 “총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이 아니다”라 말했다고 보도되어 국민들의 분격을 샀다. 미구에 이기붕 가족 참사 사건이 보도되자 “그러게 입찬소리를 하는 게 아니지” 하고 혀를 차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이 지긋한 연배들의 공통 반응이었다. 두 사전 모두 “입찬소리는 무덤 앞에 가서 하라”란 속담을 적고 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나오는 “어떤 사람도 행복하다 불행하다 하지 말라. 죽을 때까지는 모르는 일이어니”란 대사와 일맥상통한다.
--- pp.177~178
‘구메구메’란 “남모르게 틈틈이”란 뜻을 가진 말이다. 가령 택택한 잔칫집에 가서 부엌일을 도와줄 때 아이를 달고 가 틈틈이 남모르게 먹을 것을 챙겨주면 “구메구메 먹여준다”는 투로 말했다. 옛 마을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구메농사라 하면 작은 규모로 짓는 농사를 가리키기도 하고, 연사年事가 고르지 않아 곳에 따라 풍작과 흉작이 같지 않은 농사를 가리키기도 한다. 구메혼인은 비밀 결혼을 말한다.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여성이 결혼을 하면 퇴직을 해야 하는 직장이 많았다. 그럴 경우 드물게 비밀 결혼을 하고 탄로가 나거나 스스로 퇴직할 때까지 버티어내는 경우가 있었다. 구메도적은 좀도적을 가리키는데 “청석골 붙박이 도적 오가가 혼자서 구메도적 할 때”라는 지문이 『임꺽정』 5권에 나온다. 구메도둑은 성질상 직업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자격증을 따거나 연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행세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 p.371
그다음으로 사내아이들이 즐긴 것은 고누 놀이이다. 『새우리말 큰사전』에는 ‘고누’가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오락의 하나. 땅, 종이 등에 여러 모형을 그려놓고 돌, 사금파리, 나뭇가지, 풀잎 등을 말로 삼아 두 편에 나누어 벌여놓고 일정한 방법에 따라 상대편의 집으로 먼저 들어가거나 상대편의 말을 따내는 것으로 승부를 겨룸. 우물고누, 네밭고누, 아홉줄고누, 연두밭고누 등이 있고 방법도 제각기 다름.” 고누는 바둑, 장기와 같은 놀이로서 가장 간소한 원시적 단계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오락상의 지위는 참으로 보잘것없고 그렇기 때문에 옛 마을의 꼬마들이 즐길 수 있었다. 다음과 같은 얘기는 고누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두 나그네가 객줏집에서 만나 그중의 하나가 상대에게 물었다.
“혹시 바둑을 두십니까?”
“바둑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장기는 두나?”
“장기도 안 둬요.”
“그럼 고누는 둘 줄 아니?”
--- pp.377~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