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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사냥
차인표 장편소설
차인표
해결책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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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희곡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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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간절히 바라다
2장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다
3장 그물에 걸리다
4장 갈피를 못 잡고 헤매다
5장 탐하다
6장 그물이 찢어지다
7장 칼끝을 피해 달아나다
8장 살다

작가의 말

저자 소개1

소설가이자 독서광 그리고 29년차 배우. 1994년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차인표. 극중 상대배우였던 신애라와의 결혼으로 더욱 큰 플래쉬를 받았던 그도 이제는 중견연기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 CF, 최근 인터넷 방송국의 PD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또한 그는 다양한 기부활동을 비롯 세계의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NGO단체 ‘컴패션’의 자원봉사자로 사회구호에도 열정적으로 임하며, 나눔문화의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카메라 뒤에선 한 사람의 작가로 인간의 삶을 부단히 관찰하고 본질을 탐구하며, 존재해야 할 세계와 사람과 이야기를 창조하
소설가이자 독서광 그리고 29년차 배우. 1994년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차인표. 극중 상대배우였던 신애라와의 결혼으로 더욱 큰 플래쉬를 받았던 그도 이제는 중견연기자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 CF, 최근 인터넷 방송국의 PD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또한 그는 다양한 기부활동을 비롯 세계의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NGO단체 ‘컴패션’의 자원봉사자로 사회구호에도 열정적으로 임하며, 나눔문화의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카메라 뒤에선 한 사람의 작가로 인간의 삶을 부단히 관찰하고 본질을 탐구하며, 존재해야 할 세계와 사람과 이야기를 창조하는 데 전념한다. 지은 책으로 《오늘예보》가 있다. 이외에도 구전 설화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둔 한국형 판타지 시리즈를 기획 집필 중이다.

[필모그래피]

알바트로스(1996)|주연배우
짱(1998)|주연배우
닥터 K(1998)|주연배우
아이언 팜(2002)|주연배우
보리울의 여름(2002)|보리울 성당의 주임신부
목포는 항구다(2003)|백성기
한반도(2005)|국정원 서기관 이상현
한반도(디지털상영)(2005)|주연배우
크로싱(2008)|김용수


소설가, 배우.
서울 출생. 미국 럿거스 뉴저지 주립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배우로 데뷔했다. 1994년 첫 주연을 맡은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30년 가까이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대중적 인지도와 신뢰를 공고히 쌓았다. 대표작으로 드라마 <불꽃>,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영화 <목포는 항구다>, <크로싱>, <차인표> 등이 있다. 평소 올곧은 성품과 나눔의 실천, 사회 구호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해, 모범적인 시민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 강연, 나눔과 구호 등 광범위한 활동을 거듭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며 사람과 사람 사는 세상의 본질을 치밀하게 탐구해 왔다. 이런 그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경력은 단순히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깊은 차원에서 다른 이들의 삶과 세계를 상상하는 감각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듯 오랫동안 다양한 문화 영역에 재능을 보여 주고 있지만, 그는 2009년 평단의 호평을 받은 첫 책(『잘가요 언덕』)을 낸 이후로 소설가로서의 아이덴티티와 소명 의식을 잊어 본 적이 없다. 문학이라는 완전한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세계를 만들고 서사를 따라가며 생의 진실을 발견할 때 창작자로서 큰 희열을 느낀다. 한국형 고담 시리즈뿐 아니라 시나리오, 에세이 등 전방위적으로 집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오늘예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잘가요 언덕』 개정판)이 있다.

차인표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293g | 128*188*13mm
ISBN13
9791191061987

책 속으로

숨소리 한번 크게 내지 않고 공랑의 얘기를 들은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제 발로 올 때까지 기다렸어야지. 먼저 다가가면 바다 속 깊은 곳으로 사라져 버린다고 했는데, 동글동글한 구슬로 살살 구슬려야 한다고 했는데.”
“그 아이가 동글동글한 구슬을 좋아해요?”
“그것들은 결코 사람에게 잡히지 않아. 해파리처럼 은밀하고, 황새치보다 빠르니까. 사람이 다가가면 바다 속 깊은 곳으로 꽁꽁 숨어 버려.”
서 씨 할머니는 시조를 읊듯, 노래를 하듯 알 수 없는 말을 줄줄이 이어 갔다.
“하지만 새끼는 달라. 동글동글한 구슬이 달가닥달가닥 소리를 내면 사족을 못 쓰지. 자기 손으로 꼭 만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덩어리거든. 그날도 보름달 뜬 밤바다에 새끼가 떠올랐어. 휘영청 뜬 달을 보고 정신이 팔려 물 위로 머리통을 내밀었던 게지. 동그란 달을 만져 볼 욕심에 자기 목에 올가미가 걸리는 줄도 모르고...”
--- pp.49~50

인어라니. 정말 인어를 잡았단 말인가. 덕무는 고래를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배보다 더 큰, 검고 거대한 머리통이 수면 위로 치솟아 올랐을 때, 덕무는 바다가 품은 생명의 경이로움에 고개를 숙였다.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함에, 헤아릴 수 없는 신비로움에, 유구한 시간 동안 스스로 살아온 생명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평생 바다에 의지해 살아온 어부로서 덕무는 바다가 정해 준 규칙을 지키려 노력했다. 신비와 비밀을 품은 바다는 어부의 접근을 조금만 허락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부가 일평생 살기에 충분했다. 철 따라 명태, 오징어, 참치, 청어가 몰려왔다. 그것들이 물러가면 그다음에는 광어나 연어가 몰려왔다. 바다가 허락할 때 잡은 그것들은 살이 통통하게 올랐거나, 알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새끼 인어들을 잡아 배에 싣고 돌아가는 지금, 덕무는 바다가 금지한 것을 몰래 잡은 것 같아 속이 편치 않았다. 배 속에 돌멩이가 굴러다니는 것처럼 불편하고 마음이 심란했다. 남의 것을 도둑질한 도둑이 되어 급히 도망가는 심정이었다. 이내 주인이 쫓아와 “이 도둑놈아. 내 것 내놔라!” 하고 호통을 치며 뒷덜미를 잡을 것 같았다. 엄습하는 죄책감을 쫓아내기 위해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영실아, 조금만 기다려라. 아비가 약 만들어 주마. 얼른 먹고 살자, 내 딸 영실아.”
--- pp.100~101

기름을 뜨기 전에 팔팔 달구어진 쇠 가마솥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몇 시간은 기다려야 가마솥이 식고 기름을 분리해서 뜰 수 있을 텐데 마을 사람 중 그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두런두런 이어지던 대화도 칼에 썰린 듯 뚝 끊겼다.
‘내 몫은 얼마나 될까?’
가마솥을 바라보는 모두의 머릿속은 똑같은 질문으로 꽉 차 있었다. 조 씨와 함께 인어 사냥에 나섰던 일행은 물론 사냥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도 뒤늦게나마 무엇 하나라도 거들며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려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가마솥을 가져와 걸거나, 장작더미를 지고 오거나, 장작불을 지피거나 하면서 잔치라도 열 듯 부산을 떨었다.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부모였다. 저마다 오래 살아야 할 이유와 저간의 사정이 있었고, 그 사정들을 통틀어 욕망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각자의 목숨은 소중했고 사정은 절실했다. 그 소중한 개개인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인어 기름을 원했다.
--- pp.179~180

영실이 찔레에게 다가가려 하자 공 영감이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얘야, 냅둬라. 한 발자국만 더 다가가면 험한 꼴 보게 된다.”
멈춰 선 영실이 공 영감을 향해 말했다.
“영감님, 이보다 더 험한 꼴이 어디 있습니까? 영감님도 내 아부지도, 참 딱합니다. 사람처럼 생겨서, 사람처럼 먹고 사람처럼 말하는 걸 보고도 저 아이를 잡아먹겠다는 거요? 헉헉, 나더러도 잡아먹으라는 거요? 살기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사람은 나 살자고 아무거나 해도 되는 거예요?”
덕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공 영감의 성난 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귓가에 박혔다.
“아니다!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야. 물고기야! 사람 말 따라 하는 요망한 물고기라고! 네가 모르는 사이에 필경 인어에게 홀린 게야. 저 요물 때문에 제정신을 잃고 미친 거라고.”
“알았으니까 내 딸에게 소리 지르지 마소!”
덕무가 공 영감의 말을 끊으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비가 마지막으로 말하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오늘 밤 어미가 새끼들을 데리러 오지 않으면 찔레를 잡아 기름을 내겠다.”
--- p.193

“네가 정녕 사실을 말하고 있느냐?”
영랑이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네, 제가 어느 분 앞이라고 거짓을 말하겠습니까요? 못 믿겠거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쇼.”
“다른 사람은 없다. 네가 유일한 생존자라 하지 않았느냐.”
“참, 그렇습죠.”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자꾸나.”
말고삐를 돌리려다 멈춘 영랑이 말했다.
“네 말대로 바다가 머리 위로 쏟아졌는데 너는 어찌 살아남았느냐?”
“...”
소년은 웃는 듯, 우는 듯 답이 없었다.
--- pp.240~241

서복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 서신에서 진시황에게 다음과 같이 고했다.
“봉래산의 불로장생약을 구할 수는 있으나, 바다 속에서 용 같은 물고기가 방해하여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바다에서 불로장생약을 찾았지만 용이 버티고 있어 가까이 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반은 참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용은 바다 속이 아닌 그의 마음속에 있었다. 그것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괴물이었다.

--- pp.262~263

출판사 리뷰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경종과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

『인어 사냥』은 2009년 『잘가요 언덕』(개정판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데뷔한 후, 한국 문학의 의외의 발견이라는 호평을 들으며 그만의 독자적 노선을 걸어온 차인표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자 한국형 판타지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먹으면 천 년을 산다는 인어 기름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과 근원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로, 신묘한 인어 기름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들의 흥미진진하고 치열한 대결을 그렸다. 판타지의 문법을 충실히 차용하면서도 서양식 판타지의 알레고리에 갇히지 않고 우리나라 고유의 한의 정서를 입혀 한국형 뉴 판타지 시리즈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 준다.

1. 왜 인어 이야기인가?_인어로 투영되는,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나라에 각기 다른 이름과 사연의 인어 이야기가 있다. 스코틀랜드의 인어는 바다에서 사는 데 필요한 가죽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육지에서 살아야 했다. 뱀과 사람을 섞어 닮은 아프리카의 인어는 물의 영혼을 지배했다. 브라질에는 아마존을 지나는 남자들을 유혹해 수장시키는 ‘이아라’라는 인어가 있었고, 뉴질랜드에는 사람 머리에 용처럼 긴 몸통을 하고 카누를 부수는 ‘마라키하우’라는 인어가 살았다. 일본의 인어는 거대한 물고기였는데 사람을 닮은 얼굴에 송곳니와 뿔이 난 괴물이었다. 이 외에도 아일랜드, 러시아, 프랑스, 노르웨이 등 전 세계의 바다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들만의 인어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처럼 인어 이야기가 국경과 인종을 넘어서 끊임없이 관심을 받고 인간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인어를 필요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압도적인 대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바다에 대한 공포심과 경외심을 투사할 대상을 만들어 두려움을 경계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인어는 각 시대, 각 지역에 신분과 정체를 달리하며 존재하게 되었다. 세이렌처럼 선원을 유혹하는 요물이었다가, 무시무시한 바다 속 괴물이 되기도 하고, 폭풍우 속 배를 지키는 물의 요정이 되었다가, 정어리나 다랑어 같은 미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수많은 인어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인어는 조선 시대의 문신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 나오는 우는 인어였다. 조선의 한 어부에게 잡힌 인어는 흰 눈물을 비처럼 쏟으며 울었다고 한다. 왜 울었을까? 혹시 누군가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행위보다 내면을 강조한 이 한 문장을 읽고 인어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나의 경우, 연민이 생겼다는 것은 글을 쓸 가치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수개월이 걸릴지, 혹은 수년이 걸릴지 모를 장편소설 쓰기라는 긴 여행을 떠날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 긴 여정의 끝에 인어는 나를 거울 앞에 데려다 놓고 나의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2. 인어와 강치로 대변되는 생명과 파괴의 도돌이표

『인어 사냥』에서는 작가의 이전 작과 궤를 같이하는 생명 존중 사상과 인간 본성에의 성찰이 담겨 있다. 그보다 더 나아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함에도 무엇이든 인간의 뜻대로만 하려고 하는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경종과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 관해 더욱 치밀하게 접근한다. 대표적인 것이 극의 초반에 나오는 독도 강치의 멸종 과정에 관한 서사로,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인간이 강치에게 그러했듯이 순전히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인어를 사냥할 때에도 인간의 이기심과 잔혹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도는 약 5만여 마리의 동해안 강치들이 길을 멈추고 쉬어 가는 강치의 천국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부들은 배를 타고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 독도의 강치들을 손을 뻗어 쓰다듬을 수 있었다. ... 그러나 인간은 단 한 순간도 기다리려 하지 않았다. 미래의 생장보다 현재의 약탈이 중요했다. 자신의 대에 모든 것을 가져야만 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이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는지 미처 알기도 전에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강치도 예외가 아니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독도의 강치는 멸종되었다. (22쪽)

날카로운 창의 촉이 그림자의 허리를 꿰뚫었다. 붉은 피가 왈칵 솟구치더니 물 위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배 씨가 쇠갈고리가 달린 작대기로 그림자의 등짝을 찍었다. 바다에서 다랑어를 찍어 올릴 때 쓰던 연장이었다. 혼자서는 끌고 나오기 역부족이었기에 조 씨와 심 씨까지 달려들어 셋이서 함께 작대기를 당겼다. ... 잔뜩 화가 난 전 씨가 절구 방망이만큼 두꺼운 몽둥이를 쥐고 절룩대며 다가와 아비 인어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뻐걱. 머리통이 깨진 아비 인어는 버둥거림을 멈추고 죽은 문어처럼 쭉 뻗었다. (115~116쪽)

이런 패악질은 때로는 후회를 불러와 인물들은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거나 서로 멋쩍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비슷한 일에 처하면 또다시 만행을 서슴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면서 인물과 상황과 방법만 바뀌었을 뿐 인간은, 우리는 똑같은 선택을 하고 똑같은 죄악을 향해 전진한다.

한편, 덕무의 아내 임 씨는 서사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극 중에서 일찍 급사한 것으로 나오지만 영실과 덕무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 아내 임 씨는 단지 죽은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작가는 임 씨를 통해 본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날것 그대로 생생히 전달한다고 볼 수 있다. 임 씨의 뜻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이는 딸 영실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며 살육을, 인어 기름을 거부하는 옹골찬 그의 성품은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한 삶과 대화를 통한 가르침 때문이리라. 본인도 보살핌이 필요한데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을 보필하거나 잡힌 인어 남매에게 온정을 베풀고 이름을 지어 주는 모습 등에서 영실이 가진 인류의 보편적 동의를 얻은 진리, 선한 용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판타지 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선과 악의 명징한 대결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영실이 선의 편에 서서 인간의 정의로운 마음과 믿음을 보여 준다.

“영실아, 나무는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아. 태어난 땅에서 일생을 살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지. 바람이 불면 지나갈 때까지 바람을 맞고, 눈이 내리면 녹을 때까지 가지 위에 소복하게 담아 둔단다. 나무는 태어난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며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살아 내는 거야.” (14쪽)

“영실아, 인어는 먹는 게 아니란다.”
“왜 먹으면 안 돼요?”
“자연이 허락한 게 아니니까.”
“자연이 허락한 건 어떤 것들인데요?”
“자연스러운 것들이지. 순리에 맞는 당연한 것들 말이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들? 이를테면요?”
“이를테면 바람이 불면 구름이 움직이고, 해가 뜨면 아침이 되는 것. 씨앗 한 톨이 아름드리나무로 자라서 가지에서 새들이 쉬어 가는 것. 꽃이 피면 지고, 철 따라 다시 피는 것. 누군가 일부러 꺾지만 않는다면 백 년이고 다시 피는 것. 이제 네가 말해 보렴.” (135쪽)

“아부지, 몇 번을 말해야 깨닫겠어요? 헉헉, 얼마나 후회해야 돌이키겠어요? 찔레랑 짱아는 나나 영득이랑 같아요. 어미 없는 남매란 말이요. 들어 줄 어미가 없으니 안 우는 거라구요. 헉헉, 그러니 이제 그만 보내 줘요. 얘들이라도 살게요. 나 살겠다고 못 살게 굴지 말고 제발 내버려 둡시다.”...“영감님, 이보다 더 험한 꼴이 어디 있습니까? 영감님도 내 아부지도, 참 딱합니다. 사람처럼 생겨서, 사람처럼 먹고 사람처럼 말하는 걸 보고도 저 아이를 잡아먹겠다는 거요? 살기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사람은 나 살자고 아무거나 해도 되는 거예요?” (192~193쪽)

3. 인어 기름, 구원의 다른 이름_극 속으로

여기, 인어 기름이 필요한 이들이 있다.

어부 박덕무. 그에게는 화려한 과거도 보장된 미래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꾸역꾸역 채워 나가는 한낱 가난한 어부에 불과하다. 그에게 삶은 그저 아내 임 씨와 영실, 영득 남매와 아랫목에 누워 한 이불 덮고 있으면 만사가 평온하고 아늑한 것일 뿐. 그런 그에게 불행이 닥쳤으니 아내 임 씨가 갑자기 죽고, 어린 영득에게 엄마 역할을 대신해 온 영실마저 죽을병에 걸려 살아갈 희망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던 그에게 공 영감이 찾아와 영실의 입에 넣어 준 인어 기름은 그가 다시 삶을 다잡고 가야 할 이유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공 영감. 흑암도 근처에서 상어의 공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나 커 곧 죽을 것이라는 의원의 말과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며 사라졌다. 그런 그가 덕무 앞에 나타나 영실에게 마지막 남은 인어 기름 한 방울을 먹인 후 덕무에게 위험한 제안을 한다. 상어의 공격으로 손과 다리 하나씩을 잃고 몸이 성치 않은 그에게도 인어 기름이 절실히 필요하다.

영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남은 아버지와 남동생 영득을 보살피며 힘겨운 삶을 이어 간다. 비록 가난하고 초라한 삶이지만 어머니가 알려 주신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그런 그가 죽을병에 걸려, 아버지가 인어 기름을 얻기 위해 변해 가며 공 영감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것을 보는 게 몹시 괴롭다.

공랑. 큰 추위가 닥쳐 모든 것을 얼려 버려 흉년과 기근으로 늘 굶주려 있다. 우연히 들어선 해안가 바위 절벽 속 동굴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 버릴 어린 인어를 만난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모두 인어 기름을 원해, 인어 사냥의 안내자가 될 것을 강요당하자 큰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인어의 위치를 알려 주지 않고 인어를 독차지할 수 있을까.

조 씨. 외아들 조석이 인어를 찾겠다고 함께 나섰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전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하자 더욱 인어 기름이 절실해졌다. 공랑이 쉽게 인어의 위치를 알려 주지 않자 폭력을 행사하며 인어에 집착한다. 수족처럼 부리는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인어 사냥을 주동하고 공랑을 협박해 드디어 인어 사냥에 나서게 되는데...

이렇듯 모두가 다 인어 기름이 필요하다. 모두 저간의 사정이 있고, 절박하다. 인어 기름은 단지 영생불사의 의미 자체보다는 비루한 내 인생을 구원해 줄 ‘구원자와 같은 그 무언가’일 것이다. 이것만 먹으면, 이것만 있다면, 이것만 해결된다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누구나 저마다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적 문제와 한계, 여러 어려움을 갖고 있다. 어쩌면 인어 기름은 옛날의 그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닐 터. 현대 사회에서 인어 기름은 돈, 명예, 건강, 혹은 또 다른 이름으로 나에게 강력한 필요를 요구한다. 자꾸만 먹고 싶고, 갖고 싶고, 또 찾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필경 내가 원하는 건지 내 생각이 원하는지의 경계 또한 모호하리라.

이제 작가는 묻는다.
“여기, 먹으면 영생하는 인어 기름이 있습니다. 당신은 먹겠습니까?”

여러분이 답을 찾아갈 차례다.

추천평

나도 모르게 기예르모 델 토로의 렌즈를 장착하고 읽게 되는 소설, 『인어 사냥』. 손에 들고 한번에 읽어 내리니 가슴 묵직한 판타지 영화 한 편이 완성된다. 현재를 낳게 된 과거의 이야기는 크게 판을 깔다가 점차 빨라지는 리듬을 구축하며 고조되는데, 결국에는 현재와 하나로 이어지면서 탄탄하게 피날레를 그린다. 영화적인 묘사라지만, 오로지 언어로 풀어낸 것이기에 그 말맛 또한 대단하다. 작가가 그려 낸 바다와 섬과 나무와 바람과 해일, 그 속에 사는 사람과 강치와 인어의 세계 속에서 인간과 인간을 닮은 생명들과의 관계, 그 사이에서 불거지는 추악한 욕심과 죄책감 그리고 다른 것을 끌어안는 용기를 만나게 된다. - 김영덕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인어 사냥』은 한국형 마블 시리즈의 첫걸음이다. 작가의 통렬한 상상력에는 우리의 고유한 한의 정서가 담겨 있다. K-컬처가 절정기로 치닫는 2022년, 『인어 사냥』은 활자를 뛰어넘는 창발성을 발휘하리라 믿는다. 한 분야에서 큰 인기를 얻는다는 건 행운인 동시에 불운일 수도 있다는 걸, 작품을 읽으며 깨달았다.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배우의 명성이 작가의 노고를 가리지 않길 바란다. - 이학준 (경일대학교 교수)
차인표 작가의 신작 『인어 사냥』을 독자보다 먼저 읽으니 명작을 훔쳐서 개인 소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경이롭고 감동적인 글이다. 또한, 작가가 표방하는 ‘글로 쓴 영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준 놀라운 작품이다. 기회가 된다면 당장 영화로 만들고 싶다. - 김지훈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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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인표 "소설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요"
    차인표 "소설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요"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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