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하나가, 그리고 나중에 하사날리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이미 몸바사를 떠나 북쪽의 이 소도시로 이주한 뒤였는데 레하나가 기억하는 가장 먼 과거에도 이 가게와 동네는 아버지의 목숨과 같았고 그는 다시는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여행은 됐어, 아버지는 말하곤 했다. 악의나 탐욕에 이끌린 게 아니라면 누구도 일생 동안 몇백 마일 이상 여행해야만 해선 안 돼. 그리고 나는 내 몫의 여행을 다 했어.
--- p.95
보시다시피 이 이야기에는 ‘나’가 있지만 이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 파리다와 아민과 우리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 자밀라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는 여러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것, 그 이야기들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무질서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고 영원히 얽매는가에 관한 것이다.
--- pp.172~173
어떤 공황이 지척에 와 있었는지, 몇 년 뒤에 유럽 정부들 대부분이 지켜야 할 의무를 전혀 느끼지 않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일련의 조약들과 계약들을 남긴 채 보따리 싸서 고국으로 도망가리라는 걸 정말로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아민과 라시드 같은 젊은이들의 자아상과 미래는 식민지인들이 지금까지 기대해온 바와의 분리를 시작조차 못한 상태였다.
--- p.213
그들이 자신들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더 열심히 공부시킬수록 라시드는 더욱더 잘해내고 싶어했다. 그것은 보기보다 미묘했다. 잘해서 선생들을 기쁘게 하고 싶은 욕구 외에도 좀더 유혹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점점 더 복잡한 것을 이해하기 시작할수록 그 세계가 더욱더 자기 것이 되는 듯했던 것이다.
--- pp.220~221
모든 것은 어쩌면 순식간에 소멸하는지도 모른다. 긴 순간 동안 존재했다가 바로 사라져버리는, 단지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는 그 몇 안 되는 순간들이, 기억력이 지속되는 동안은 자신에게서 소멸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 pp.264~265
나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처럼 점점 혐오스럽고 불만족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을 통해 나를 보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싫어하는 게 당연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말하는 방식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서툴고 무지하고 말을 잘 못해서, 너무 필사적으로 환심을 사고 싶어하는 속셈이 빤히 보여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에게 이런 식으로 해명해봤자 우연히 마주친 사람의 무시하는 말이나 짜증스러운 말투, 지나가는 시선에 담긴 억눌린 적의를 피할 수는 없었다.
--- pp.300~301
그후로 몇 달 동안 나는 스스로를 추방당한 자, 망명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니 점진적인 과정이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내가 처한 상황을 표현할 말을 찾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지만 그 의미를 느낀 것은 훨씬 전부터였다. 돌아오지 말라는 아버지의 편지는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고 소리 없는 공황으로 마비시켰다.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 영국에 온 후 처음으로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여행의 가운데 부분, 오는 것과 가는 것 사이 단계에 있는 누군가, 집에 돌아가기 전에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중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 여행이 끝났을까봐, 평생 영국에서 고립무원의 이방인으로 살게 될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 p.310
시간이 흐르자 나는 견딜 만한 이방인다움에 젖어들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이 이방인다움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일종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곧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흑인과 백인이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그 거짓말을 점점 더 쉽게 하게 됐으며, 모든 백인과 모든 흑인 사이에는 동일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인종화된 세계라는 무감각한 개념을 따르게 되었다.
--- pp.310~311
내가 아직 의식조차 못한 야심에 필요한 일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그 기준이 대변하는 대부분의 것을 내가 혐오함에도 불구하고, 넘어서야 함을 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혐오했고, 그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혐오했으며,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승리감을 느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오래전 떠나온 머나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보다 내 논문의 주장을 펼치는 데 적절한 비판적 언어를 더 걱정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숙사 방에 혼자 있을 때 나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슬픔과 죄책감 때문에 울었다. 형의 짤막한 편지가 올 때마다 나를 향한 비난인 양 두려워했다.
--- p.316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바뀌었다. 그 무엇에도 익숙해질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 p.344
오늘 나는 이 잡설을 계속 쓸 이유를 발견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떠났고, 라시드도 떠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남은 우리는 너무 무서워서 살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 잡설 쓰기는 나 자신에게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하기 위한 행위가 될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한 방법이 될 것이다.
--- p.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