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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사람

[ 양장 ]
박연준 | 난다 | 2024년 01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7 리뷰 14건 | 판매지수 7,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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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124*188*20mm
ISBN13 9791191859690
ISBN10 11918596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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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인생을 온전히 읽어내는 일, 고전 읽기] 시인 박연준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읽었던 서른아홉 권의 고전이 가르쳐 주는 삶의 가치.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부터 『어린 왕자』까지 서론아홉 개의 서로 다른 삶과 시인만의 독서 경험을 솔직하게 담았다. 무엇을 읽을지 모를 때, 어느 한 페이지를 펼쳐도 좋을 길잡이가 되어 줄 책. - 소설/에세이 PD 김유리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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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는 올바른 길이나 훌륭한 선택법이 나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계속 길을 잘못 가는 방법’이 나와 있을지 모르지요. 시행착오가 없는 삶, 그런 게 있을까요?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한다면 ‘잘못된 길을 열심히 걸을 때 우리가 얻는 가치’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중에서

관능은 어디에서 오는가? 관능은 생각의 뿌리, 뿌리를 둘러싼 흙, 돋아나는 가지, 꽃, 잎, 열매에서 비롯한다. 관능이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작용’을 뜻한다면 누군가는 ‘대관절 글에 그런 걸 배어나게 해 어디에 좋은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텍스트에 배인 관능은 놀라운 약동을 불러온다. 사랑을 사랑 너머로 데려가고 편견의 장막을 찢는다. 생각을 뒤집고 의식을 깨운다. 그의 글을 읽을 때면 꽃나무처럼 피어나는 기분이 든다. 생각이 뿔처럼 돋아나고 지난 사랑이 새롭게 보인다. 시를 끼적이게 하고 텍스트 너머에 대한 상상으로 이끈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사랑의 바이블」중에서

나는 무조건 눈물이 많은 사람의 편이다. ‘그거 병이여’ 누군가 핀잔을 준대도 뭐 어때? 눈물이 많은 건 사랑이 많다는 뜻! 나이가 들면 눈물도 마른다. 박용래의 ‘눈물 관련 일화’(차고 넘친다)를 읽거나 뾰족한 비석처럼 절도 있게 세운 그의 시들을 읽는 걸로 눈물을 대신하는 날이 더 많다.
---「박용래 시전집, 박용래―우는 사람」중에서

금홍이가 무서웠다는 대목에서 픽, 웃음이 나온다. 몇 번의 이별과 재회. 연인들의 유서 깊은 레퍼토리. 그들은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도망가면서 그리워한다. 기괴한 사랑. 그러나 기괴하지 않은 사랑도 있던가? 나는 모든 사랑은 속절없다고 섣불리 판단하고는 속절없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무리 하여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봉별기, 이상―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중에서

화가 칸딘스키는 예술 작품을 두고 “영혼이 거칠어지는 것을 막아주며, 마치 소리굽쇠로 악기의 현을 조율하듯 영혼의 음조音調를 맞추어준다”고 했다. 만약 우리 영혼이 세상을 부유하는 음표라면, 어둡고 깊은 영역까지 헤엄쳐본 음표가 더 우아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는 일은 우리가 내려가지 못한 영역까지 영혼의 음표들을 내려갔다 돌아오게 하는 일과 비슷하다.
---「사양, 다자이 오사무―이 세상의 공기와 햇빛 속에서 살기 힘듭니다」중에서

뒤라스는 사랑으로 ‘곤두선 슬픔’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 가장 독창적인 작가다. 누구도 뒤라스처럼 쓸 수 없다. 그의 글에는 음악이 흐른다. 음악과 함께 심오함, 재치, 말라비틀어진 시(건조하게 널어놓기에), 난해한 걸음걸이, 무엇보다 ‘조망의 시선’이 있다. ‘조망의 시선’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작가가 회상하는 대목을 쓸 때 마치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는 듯 쓸쓸히 관조하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많은 일들을 겪고 ‘지쳐버린 신’처럼 이야기한다. 매혹적인 언술이다.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사랑은 동사다」중에서

만약 꾸준히 독서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현명하다면 그 이유는 ‘침묵 속 경청’에 있을 것이다. 독서는 남의 말을 듣는 행위고 듣기는 침묵이란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다. 타인의 생각 속에서 기다리고 머무는 일이다. 혼자 책 읽는 사람을 보라. 침묵에 둘러싸여 얼마나 아름다운지!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침묵은 또다른 언어다」중에서

『화사집』은 1941년에 나온 서정주(1915~2000)의 첫 시집이다. 이 시집은 징그럽다. 아름다워서, 끔찍해서, 어두워서, 귀기가 서려 있어 징그럽다. 도깨비가 이쪽을 노려보며 내뱉는 독백 같다. 그는 귀신이 돕는 시인이다. 그가 신의 목소리를 흉내낼 땐 능글맞고 완벽하다. “꽃다님” 같다. 꽃 같은 뱀은 이 시집의 얼굴이다. 힘이 센데 목소리의 아름다움 때문에 힘이 ‘수평으로’ 누워 흘러가는 것 같다.
---「화사집, 서정주―죽고 나서, 시작하는 시」중에서

인간이 20대에 그토록 자신만만하고 격렬한 감정에 치우치고 사랑에 매달리며 위험을 겁내지 않는 이유는 자신에게 (아직) 반해 있기 때문이다.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20대조차 실은 스스로에게 반해 있다. 자기혐오란 자신에 대한 가치 기준을 높이 둔 자들이 빠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훌륭해야 마땅할’ 나, ‘사랑받아야 마땅할’ 나와 현실의 나 사이. 이 간극에서 자기혐오가 생긴다.
---「삼십세, 잉에보르크 바흐만―서른, 미숙과 성숙 사이」중에서

고독은 그가 입은 옷이다. 더럽혀질 일도, 빼앗길 일도 없다. 그는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고 가진 게 없지만 그득해 보인다. 불행은 혼자라서 겪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 부대껴 ‘나’라는 존재가 깎여나갈 때 불행은 온다. 행복처럼, 불행도 상대적인 감정이다. 내 앞에 있는, 혹은 없는 당신 때문에 고통과 번민이 생긴다. 혼자 무언가에 깊이 몰두해 있는 자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생각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혼자다」중에서

어릴 땐 요절이 근사해 보였으나 이젠 안다. 누구라도 인생을 끝까지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 귀하다는 것. 자기 일을 오랜 시간 해왔을 뿐인데 어느새 폭삭 늙어버린 모습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삶, 이런 삶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비범’을 간직한 채 평범하게(혹은 평범해 보이게) 사는 일이 아닐까.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다독임, 생을 향한 긍정 없이는 어려운 일일 테니까.
---「스토너, 존 윌리엄스―범상한 남들의 성스러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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