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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새소설-1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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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52g | 124*192*11mm
ISBN13 97889544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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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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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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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이 이번 여행을 주저했던 건 엄마 때문이 아니라 강릉이어서였다. 강릉은 난주와 정은에게 말하지 못한, 미경의 한 시절이 켜켜이 쌓인 곳이었다. 미경은 강릉이라는 말에 성희 언니를 떠올렸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결국 다시 남편에게 가버린 사람. 강릉에 살았던 사람.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
--- p.42

남편의 잘못은 단 한 가지였다. 돈을 많이 못 벌었다는 것. 그래서 빚을 졌고, 그 빚을 못 갚게 되었다는 것. 그 전의 잘못은 코로나를 예측 못 하고 키즈 카페를 오픈한 것. 그 전의 잘못은 퇴직금과 대출을 모조리 끌어당겨 썼다는 것. 그 전의 잘못은 작은 회사를 다녀 박봉이었다는 것. 그전의 잘못이라면 학벌이 좋지 않아 돈을 많이 주는 좋은 회사에 못 들어간 것. 그 전의 잘못은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는 것. 그 전의 잘못은 공부를 많이 시키지 못할 정도로 부모가 가난했기 때문, 일까?
--- p.46

희망이나 열망이라는 단어 대신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 페이지에 안착하면 또 다음 페이지로 건너가야 한다는 숙제가 다시 주어진다 해도, 일단은 눈앞의 페이지부터 해결해야 했다.
--- p.64

정은이 막연히 떠올린 오십대는 모두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아무 데서나 큰 소리로 떠들고, 빈자리가 나면 어떻게든 먼저 앉으려고 엉덩이부터 들이밀고,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바지 지퍼를 내리는 사람들. 그들과 똑 닮아 버린 자신이 새삼스럽게 혐오스러웠다. 쪽팔렸고 울적했다. 연륜과 경력이 쌓인, 현명하고 우아한 시니어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이미지였다.
--- p.72

친정 엄마의 우울증이라든지, 아이의 친구 문제, 정은의 비상금 만들기 같은 문제들. 막상 달려들면 금세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었는데 엄두가 안 나서 주저하느라 일을 더 키우거나 미리 막지 못한 일들. 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조금 더 일찍 깨달았으면 지금쯤 더 많은 것을 이뤘거나 덜 잃었을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 pp.88~89

난주가 바란 건 혼자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결코 단 한 순간도 혼자이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난주는 시종일관 식구들에게 둘러싸여 집안일에 시달리고 싶었다. 끊임없이 식구들을 위해 움직이고 싶었다. 엄마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하는 어린 아들들과 아내가 아니면 양말 하나 찾지 못하는 철없는 남편을 둔 젊은 시절의 자기였음 했다.
--- p.134

미경은 끝을 내지 못했던 학생운동과 이뤄질 수 없었던 성희 언니와의 관계를, 정은은 일도 연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이 세상의 패자가 된 기분에 빠졌던 나날을, 난주는 두 아이를 키우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아줌마로 전락해버렸던 시절을 떠올렸다. 셋은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취하지 않는 밤이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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