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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용 책

일인용 책

: 신해욱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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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2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498g | 220*140*30mm
ISBN13 9788996997900
ISBN10 899699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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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 길이라기보다는 집과 가게들로 둘러싸인 또 하나의 내부 같다. 열려 있는 채로 은밀함을 간직한 기묘한 장소. 숨바꼭질과 보물찾기의 욕망을 무럭무럭 불러일으키는 장소.
---「다이달로스의 골목」중에서

거머리처럼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고향의 말. 가족의 말. 사무치게 그립기도 하고 끔찍하게 진절머리가 나기도 하는 유년의 세계. 발바닥의 세계.
---「고향의 말」중에서

나는 옆 사람이 지나간 세계를, 다른 느낌으로 이제 막 접어들고 있다. 나란히 앉은 채로 옆 사람은 앞에, 나는 뒤에 있는 셈이다. 선율이 선율을 뒤이어 따라가는 돌림곡처럼.
---「독서의 푸가」중에서

진짜 지름길이란 다만 질러가는 길이 아니라, 질러감으로써 내밀하고 충만해지는 길이다. 닿아야 할 곳에 나를 데려다주되 조급하게 미리 마음만 가닿지 않도록 몸과 마음의 시야를 함께 틔워주는 길이다.
---「지름길」중에서

다만 흰 봉투는, 안에 들어 있는 것의 차가운 상스러움을 얼마쯤 가려준다. 봉투라는 형식 자체가 조의를 표현한다. 아무리 성의 없이 전달된 봉투라도 봉투에는 지폐만이 아니라 위로의 마음도 미미하게나마 딸려 들어갈 것이다.
---「흰 봉투」중에서

나는 여전히 [물고기]라는 말의 어감에 끌린다. 뜻에 담긴 인간의 극성맞고 강퍅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발음을 하면 찰랑찰랑 가득한 고요가 느껴지니 어찌하랴. 뜻에 속박되지 않는 말소리의 무심한 저항감이라 할까.
---「물고기」중에서

엄마의 마음은 다르구나 싶었다. 아이들의 입장에 선 격려, 아이들의 손끝을 통해 찌르르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격려, L은 그런 말을 찾고 있었다. 눈으로 읽는 어른이 손끝으로 읽는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는 진심의 형식을 더듬으며, 이번엔 우리가 앞이 막막할 따름이었다.
---「점자에 담고픈 마음」중에서

수화란 [손으로 하는 말手話]이라기보다 [손에서 피는 꽃手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의미가 들어오지 않으면 의미 외의 것이 한결 다가드니까. 뜻을 모르는 외국어를 들을 때 가끔 그 소리의 특유의 결 자체에 귀를 맡기고 싶어지듯, 나는 포장마차 안에 가득 피어나는 무색무취의 꽃에 그저 눈을 맡기고 싶었다.
---「손에서 피는 꽃」중에서

수줍은 애정은 발길질로 표현하고 든든한 우정은 어른의 시선을 피해 스크럼을 짜는 것으로 이해되던 시절. 그 발길질 때문에, 그 스크럼 때문에, 설마 지구가 지금도 건재한 건 아니겠지.
---「중2 방위대」중에서

고뫄스. [뫄]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다시 입에 올려본다. 꿈틀거리는 것 같다. 희한하고 엉뚱한 생명체 같다. 새 말을 낳아 기운을 불어넣고 세상을 살아가게 만드는 이, 어찌 태초의 하느님뿐일까.
---「고뫄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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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처럼 자기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유연한 어조에 자신감이 가득하고 무심하게 흘리는 말에도 마음의 깊은 울림이 있다. 짧은 글들을 모아 놓았지만 한 편 한 편이 풍요로운 것은 지식을 나열하거나 지식에 의지해서 쓴 글이 아니라 깊은 지식을 지닌 사람으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뜻이 명확하면서도 시적인 산문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신해욱의 산문이 시적인 것은 시적 효과를 의도해서 쓴 글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와 지혜가 구별되지 않는 자리에 글의 터전이 있기 때문이다. 신해욱은 교훈과 위로를 말하지 않는다. 적실하고 순결한 말이 교훈이자 위로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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