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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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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top2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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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680g | 153*224*30mm
ISBN13 9788984314238
ISBN10 898431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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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나자 주방장은 내게 설거지를 하고 남은 음식을 버리라고 했다. 음식쓰레기는 깜짝 놀랄 정도였다. 남은 음식을 부랑자들에게 주지 않고 버리는 건 고의적인 방침인 듯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나는 부랑자 중에 좀 잘난 체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눠보았다. 그는 칼라와 넥타이 차림의 젊은 목수로, 연장 한 벌이 없어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됐다는 이였다. 그는 다른 부랑자들과는 늘 거리를 좀 두었고, 스스로를 떠돌이 막일꾼이라기보다는 자유인에 가까운 사람으로 여겼다. 나는 구빈원 부엌에서 버려지는 음식쓰레기 얘기를 해주고 내 생각이 어떤지를 말해주었다. 내 말에 그는 당장 어조가 바뀌었다. 나는 내가 모든 영국 노동자 속에 잠들어 있는 주인 근성을 자극한 걸 알았다. 비록 다른 부랑자들과 함께 굶주려온 처지이지만, 그는 음식을 부랑자에게 주지 않고 버려야 하는 이유를 바로 알았던 것이다. 그는 제법 엄하게 타이르듯 내게 말했다.
“이런 데를 너무 좋게 만들어놓으면 온 나라의 쓰레기들이 다 몰려들게 돼요. 그런 쓰레기들을 떼어놓으려면 음식이 나빠야만 되고요. 여기 이 부랑자들은 너무 게을러서 일을 하려고 안 하지. 다들 그래서 저 꼴이 된 거라니까. 그런 사람들 격려해줄 것 없어요. 다 쓰레기니까.” --- pp.17~18

나는 이론적으로는 전적으로 버마인들 편이었고, 그들의 압제자인 영국인들을 전적으로 적대시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도보다 지독하게 혐오했다. 내가 알았던 것이라곤, 내가 섬기던 제국에 대한 나의 증오와, 도무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려던 악독하고 자그만 인간들에 대한 나의 분노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마음 한편으로 나는 영국의 지배를, 납작 엎드린 민족들의 의지를 영영 억누르는 거역 불가능한 압제라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총검으로 승려들의 배때기를 푹 쑤시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더 기쁠 일이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 pp.32~33쪽

헌책방에서 일하던 때 주로 느낀 것은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이었다(일해보지 않으면 매력적인 노신사들이 송아지 가죽으로 장정한 고서들을 마냥 열독하고 있는 천국 같은 곳으로 상상하기 쉽다). 우리 서점은 예외적으로 흥미로운 책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으나, 손님들 중에 10분의 1이나마 그 진가를 알았을까 싶다. 초판 밝히는 속물들이 문학 애호가들보다 훨씬 흔했고, 싼 교과서 값을 더 깎으려고 하는 동양 학생들이 그보다 더 흔했으며, 막연히 조카 생일 선물이라도 구하러 들르는 여성들이 제일 흔했다.
런던 같은 도시에서는 딱히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정신이상자들이 길에 나다니는 경우가 언제나 많고, 그들은 종종 서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왜냐하면 서점은 돈을 전혀 쓰지 않고도 오랫동안 서성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서점 일을 평생 하고 싶지는 않은 진짜 이유는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책에 대한 애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 pp.43~49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어떠한 사건도 신문에 정확히 보도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 바 있었는데, 그러다 스페인에 가서 처음으로 신문이 사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을 보도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일상적인 거짓말에서 은연중에 내비치기 마련인 최소한의 관련성조차 없는 보도였다. 나는 싸움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대단한 전투로 보도하는 것을 보았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완전히 침묵하는 것도 보았다. 용감하게 싸운 부대원들을 비겁자나 반역자로 몰아세우는 것도 보았고, 총성 한번 못 들어본 이들을 상상의 승리를 거둔 영웅으로 마구 치켜세우는 것도 보았다. 또한 런던의 신문들이 그런 거짓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도 보았고, 열성적인 지식인들이 일어난 적도 없는 사건에다 감정적으로 살을 붙이는 것도 보았다. 달리 말해 나는 역사가 실지로 일어난 대로가 아니라, 이런저런 ‘당의 노선’에 따라 일어났어야 하는 대로 기록되는 것을 본 것이다. --- pp.145~146

내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인류를 곤충 분류하듯 나눌 수 있으며 수백만이나 수천만의 사람들을 싸잡아 좋으니 나쁘니 하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습관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는(이게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신을 단일한 나라 또는 다른 집단과 동일시하되, 그것을 선악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습관을 뜻한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애국주의와 혼동해선 안 된다. 내가 말하는 ‘애국주의(patriotism)’란 특정 지역과 특정 생활양식에 대한 애착이며,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 믿되 남들에게 강요할 마음은 없는 것이다. 애국주의는 속성상 군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방어적이다. 그에 비해 민족주의는 힘에 대한 욕구와 분리할 수 없다. 모든 민족주의자의 변치 않는 목적은 더 많은 힘과 위신을 확보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억누르고서 섬기기로 한 나라 또는 다른 집단을 위한 일이다.
그(민족주의자)는 역사를, 특히 동시대 역사를 거대 세력들의 끊임없는 성쇠로 보며,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자기편은 상승세에 있고 경쟁 상대는 하강 국면에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민족주의를 단순한 성공 숭배와 혼동해서도 안 된다. 민족주의자는 제일 강한 쪽과 한패가 되기만 하면 된다는 원칙 같은 걸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일단 자기편을 선택하고 나면, ‘자기편’이 가장 강하다고 자신을 설득시키며, 사실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갈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힘에 대한 갈망이되, 이 갈망은 자기기만으로 완화될 수 있다. 모든 민족주의자는 극명한 거짓을 범하면서도 (자신보다 큰 무엇을 섬기고 있다는 의식 때문에) 자신이 옳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다. --- pp.180~182

우리 마음의 일부는 인간이 고귀한 동물이며 삶은 살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에 비해 적어도 이따금씩은 존재의 끔찍스러움에 아연실색하는 일종의 내적 자아도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묘하게도, 즐거움과 혐오감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는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인체는 역겹고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이는 아무 수영장에나 가보면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기는 갈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혐오의 대상이기도 한데, 예컨대 다는 아니어도 많은 언어에서 성기의 명칭 자체가 욕설로 쓰인다. 고기는 맛있지만 푸줏간에 가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궁극적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끔찍스러워하는 똥과 시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유아기를 지나도 세상을 여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며, 경이로움 못지않게 혐오스러움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를테면 코딱지와 침, 인도에 싸놓은 개똥, 구더기가 가득한 채로 죽어가는 두꺼비, 어른의 땀 냄새, 대머리에 주먹코인 노인의 흉한 몰골이 주는 혐오감에도 크게 끌리는 것이다. --- p.327

톨스토이는 부와 명예와 특권을 버렸다. 그는 모든 형태의 폭력도 포기했으며, 그로 인한 손해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강제의 원리를, 혹은 적어도 남에게 강제를 행사하고픈 ‘욕구’를 버렸다고 믿기는 쉽지 않다. 평화주의와 무정부주의는, 겉으로는 힘을 완전히 포기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은 그런 심리적 습성을 부추긴다. 이를테면 당신이 일반적인 정치의 추잡함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어떤 신조를 받아들였다고 할 때 그 자체만으로 당신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수록, 남들도 다 자기처럼 생각해야 한다며 괴롭히기 십상이다. --- pp.369~370

2~3년에 걸쳐, 장학반 아이들은 성탄절 거위구이 뱃속 채워지듯 학습으로 꽉꽉 채워져야 했다. 그리고 그 학습이란! 재능 있는 소년의 진로를 불과 열두세 살에 치르는 경쟁 치열한 시험에 좌우되도록 하는 일이란 잘 봐줘도 사악한 짓인데, 성적표에 기재된 과목과 과정을 전부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이튼이나 윈체스터 같은 곳에 장학생을 보내는 예비학교들이 지금도 있는 것 같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의 경우에는 솔직히 모든 게 일종의 신용 사기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는 인상을 심사위원에게 심어줄 것들만 배우고, 뇌에 부담이 되는 것들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었다. 시험을 잘 안 보는 지리학 같은 과목은 거의 무시됐고, ‘문과classical’인 경우에는 수학도 무시됐다. 과학은 어떤 식으로도 가르치지 않았고 여가 시간에 읽으라는 책들도 ‘국어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뿐이었다. 장학생 선발 주요 과목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중시됐지만 그나마도 일부러 겉만 번지르르하게, 그리고 부실하게 가르쳤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리스어나 라틴어 저자의 책은 단 한 권도 통독을 해본 적이 없었다. 번역 문제로 나올 만해서 골라낸 구절들만을 읽을 뿐이었던 것이다. 장학생 선발 시험을 보기 전 1년 남짓 동안,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출문제를 달달 외는 데 바쳤다. --- pp.383~384

나는 학생들 모두가 그녀를 미워하면서 두려워했다고 말해도 틀림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더없이 비굴하게 그녀에게 아양을 떨었고, 그런 감정의 표층을 형성한 것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충성심 같은 것이었다. --- p.404

지금 같은 시대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치고 진정으로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거나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다만 지금 우리가 정치적 충심과 문학적 충심 사이에 그은 선을 보다 선명하게 긋자는 것이다. 작가가 정치에 관여할 때는 일반 시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관여해야지 ‘작가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작가가 예민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와 관련된 지저분한 일을 기피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른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그는 찬바람 새는 회관에서 연설을 하고, 길바닥에 분필로 글을 쓰고, 투표를 호소하고, 전단을 나눠주고, 심지어 필요하다 싶으면 내전에 참가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단, 자기 당에 대한 봉사로 다른 건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당을 위해 글을 쓰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글이 당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당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정파 우두머리들의 지시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해’ 쓰는 것도 삼가야 한다는 뜻인가? 이 역시 결코 그렇지 않다! 원한다면 아무리 서투르더라도 정치적인 글을 써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다만 한 개인으로서, 외부자로서, 기껏해야 정규군의 측면에 있는 환영받지 못하는 게릴라로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겨야 하는 전쟁이라 생각해서 흔쾌히 전쟁에 나가 싸우면서도 전쟁 선전문을 쓰는 것은 거부하는 게 온당하다는 것이다.
--- pp.44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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