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베스트셀러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리뷰 총점9.2 리뷰 45건 | 판매지수 7,848
베스트
사회비평/비판 39위 | 사회 정치 top20 8주
정가
18,000
판매가
16,20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680g | 153*224*30mm
ISBN13 9788984314238
ISBN10 8984314234

이 상품의 태그

긴긴밤

긴긴밤

10,350 (10%)

'긴긴밤' 상세페이지 이동

달러구트 꿈 백화점

달러구트 꿈 백화점

12,420 (10%)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상세페이지 이동

공정하다는 착각

공정하다는 착각

16,200 (10%)

'공정하다는 착각' 상세페이지 이동

밝은 밤

밝은 밤

13,950 (10%)

'밝은 밤' 상세페이지 이동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19,800 (10%)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상세페이지 이동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레인보우 에디션)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레인보우 에디션)

12,420 (10%)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레인보우 에디션)' 상세페이지 이동

지리의 힘

지리의 힘

18,000 (10%)

'지리의 힘' 상세페이지 이동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16,200 (10%)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상세페이지 이동

가재가 노래하는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

14,400 (10%)

'가재가 노래하는 곳' 상세페이지 이동

지리의 힘 1~2권 세트 (리커버)

지리의 힘 1~2권 세트 (리커버)

38,700 (10%)

'지리의 힘 1~2권 세트 (리커버)' 상세페이지 이동

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

25,200 (10%)

'행동경제학' 상세페이지 이동

공간의 미래

공간의 미래

14,400 (10%)

'공간의 미래' 상세페이지 이동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5,120 (10%)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상세페이지 이동

내가 사랑한 화가들

내가 사랑한 화가들

15,120 (10%)

'내가 사랑한 화가들' 상세페이지 이동

[예스리커버] 명랑한 은둔자

[예스리커버] 명랑한 은둔자

14,400 (10%)

'[예스리커버] 명랑한 은둔자' 상세페이지 이동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는가

16,200 (10%)

'나는 왜 쓰는가' 상세페이지 이동

달까지 가자

달까지 가자

12,600 (10%)

'달까지 가자' 상세페이지 이동

멀고도 가까운

멀고도 가까운

15,300 (10%)

'멀고도 가까운' 상세페이지 이동

센서티브

센서티브

12,600 (10%)

'센서티브' 상세페이지 이동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15,120 (10%)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상세페이지 이동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스파이크 The Spike (1931/04)
교수형 A Hanging (1931/08)
코끼리를 쏘다 Shooting an Elephant (1936/가을)
서점의 추억 Bookshop Memories (1936/11)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Spilling the Spanish Beans (1937/07, 09)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Why I Joined the Independent Labour Party (1938/06)
마라케시 Marrakech (1939/12)
좌든 우든 나의 조국 My Country Right or Left (1940/가을)
영국, 당신의 영국 England Your England (1940/12)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Wells, Hitler and the World State (1941/08)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Looking Back on the Spanish War (1942/가을)
시와 마이크 Poetry and the Microphone (1943/가을)
나 좋을 대로 As I Please (1944/01)
민족주의 비망록 Notes on Nationalism (1945/05)
당신과 원자탄 You and the Atom Bomb (1945/10)
과학이란 무엇인가? What Is Science? (1945/10)
문학 예방 The Prevention of Literature (1946/01)
행락지 Pleasure Spots (1946/01)
“물속의 달” “The Moon under Water” (1946/02)
정치와 영어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04)
두꺼비 단상斷想 Some Thoughts on the Common Toad (1946/04)
어느 서평자의 고백 Confessions of a Book Reviewer (1946/05)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1946/여름)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 Politics vs. Literature: An Examination of Gulliver's Travels (1946/09~10)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How the Poor Die (1946/11)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Lear, Tolstoy and the Fool (1947/03)
정말, 정말 좋았지 Such, Such Were the Joys (1947/05)
작가와 리바이어던 Writers and Leviathan (1948/03)
간디에 대한 소견 Reflections on Gandhi (1948/가을)

조지 오웰 연보
역자 후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식사가 끝나자 주방장은 내게 설거지를 하고 남은 음식을 버리라고 했다. 음식쓰레기는 깜짝 놀랄 정도였다. 남은 음식을 부랑자들에게 주지 않고 버리는 건 고의적인 방침인 듯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나는 부랑자 중에 좀 잘난 체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눠보았다. 그는 칼라와 넥타이 차림의 젊은 목수로, 연장 한 벌이 없어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됐다는 이였다. 그는 다른 부랑자들과는 늘 거리를 좀 두었고, 스스로를 떠돌이 막일꾼이라기보다는 자유인에 가까운 사람으로 여겼다. 나는 구빈원 부엌에서 버려지는 음식쓰레기 얘기를 해주고 내 생각이 어떤지를 말해주었다. 내 말에 그는 당장 어조가 바뀌었다. 나는 내가 모든 영국 노동자 속에 잠들어 있는 주인 근성을 자극한 걸 알았다. 비록 다른 부랑자들과 함께 굶주려온 처지이지만, 그는 음식을 부랑자에게 주지 않고 버려야 하는 이유를 바로 알았던 것이다. 그는 제법 엄하게 타이르듯 내게 말했다.
“이런 데를 너무 좋게 만들어놓으면 온 나라의 쓰레기들이 다 몰려들게 돼요. 그런 쓰레기들을 떼어놓으려면 음식이 나빠야만 되고요. 여기 이 부랑자들은 너무 게을러서 일을 하려고 안 하지. 다들 그래서 저 꼴이 된 거라니까. 그런 사람들 격려해줄 것 없어요. 다 쓰레기니까.” --- pp.17~18

나는 이론적으로는 전적으로 버마인들 편이었고, 그들의 압제자인 영국인들을 전적으로 적대시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도보다 지독하게 혐오했다. 내가 알았던 것이라곤, 내가 섬기던 제국에 대한 나의 증오와, 도무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려던 악독하고 자그만 인간들에 대한 나의 분노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마음 한편으로 나는 영국의 지배를, 납작 엎드린 민족들의 의지를 영영 억누르는 거역 불가능한 압제라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총검으로 승려들의 배때기를 푹 쑤시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더 기쁠 일이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 pp.32~33쪽

헌책방에서 일하던 때 주로 느낀 것은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이었다(일해보지 않으면 매력적인 노신사들이 송아지 가죽으로 장정한 고서들을 마냥 열독하고 있는 천국 같은 곳으로 상상하기 쉽다). 우리 서점은 예외적으로 흥미로운 책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으나, 손님들 중에 10분의 1이나마 그 진가를 알았을까 싶다. 초판 밝히는 속물들이 문학 애호가들보다 훨씬 흔했고, 싼 교과서 값을 더 깎으려고 하는 동양 학생들이 그보다 더 흔했으며, 막연히 조카 생일 선물이라도 구하러 들르는 여성들이 제일 흔했다.
런던 같은 도시에서는 딱히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정신이상자들이 길에 나다니는 경우가 언제나 많고, 그들은 종종 서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왜냐하면 서점은 돈을 전혀 쓰지 않고도 오랫동안 서성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서점 일을 평생 하고 싶지는 않은 진짜 이유는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책에 대한 애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 pp.43~49

나는 꽤 어릴 때부터 어떠한 사건도 신문에 정확히 보도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 바 있었는데, 그러다 스페인에 가서 처음으로 신문이 사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을 보도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일상적인 거짓말에서 은연중에 내비치기 마련인 최소한의 관련성조차 없는 보도였다. 나는 싸움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대단한 전투로 보도하는 것을 보았고,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완전히 침묵하는 것도 보았다. 용감하게 싸운 부대원들을 비겁자나 반역자로 몰아세우는 것도 보았고, 총성 한번 못 들어본 이들을 상상의 승리를 거둔 영웅으로 마구 치켜세우는 것도 보았다. 또한 런던의 신문들이 그런 거짓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도 보았고, 열성적인 지식인들이 일어난 적도 없는 사건에다 감정적으로 살을 붙이는 것도 보았다. 달리 말해 나는 역사가 실지로 일어난 대로가 아니라, 이런저런 ‘당의 노선’에 따라 일어났어야 하는 대로 기록되는 것을 본 것이다. --- pp.145~146

내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인류를 곤충 분류하듯 나눌 수 있으며 수백만이나 수천만의 사람들을 싸잡아 좋으니 나쁘니 하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습관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는(이게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신을 단일한 나라 또는 다른 집단과 동일시하되, 그것을 선악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습관을 뜻한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애국주의와 혼동해선 안 된다. 내가 말하는 ‘애국주의(patriotism)’란 특정 지역과 특정 생활양식에 대한 애착이며,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 믿되 남들에게 강요할 마음은 없는 것이다. 애국주의는 속성상 군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방어적이다. 그에 비해 민족주의는 힘에 대한 욕구와 분리할 수 없다. 모든 민족주의자의 변치 않는 목적은 더 많은 힘과 위신을 확보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억누르고서 섬기기로 한 나라 또는 다른 집단을 위한 일이다.
그(민족주의자)는 역사를, 특히 동시대 역사를 거대 세력들의 끊임없는 성쇠로 보며,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자기편은 상승세에 있고 경쟁 상대는 하강 국면에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민족주의를 단순한 성공 숭배와 혼동해서도 안 된다. 민족주의자는 제일 강한 쪽과 한패가 되기만 하면 된다는 원칙 같은 걸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일단 자기편을 선택하고 나면, ‘자기편’이 가장 강하다고 자신을 설득시키며, 사실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갈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힘에 대한 갈망이되, 이 갈망은 자기기만으로 완화될 수 있다. 모든 민족주의자는 극명한 거짓을 범하면서도 (자신보다 큰 무엇을 섬기고 있다는 의식 때문에) 자신이 옳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다. --- pp.180~182

우리 마음의 일부는 인간이 고귀한 동물이며 삶은 살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에 비해 적어도 이따금씩은 존재의 끔찍스러움에 아연실색하는 일종의 내적 자아도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묘하게도, 즐거움과 혐오감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는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인체는 역겹고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이는 아무 수영장에나 가보면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기는 갈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혐오의 대상이기도 한데, 예컨대 다는 아니어도 많은 언어에서 성기의 명칭 자체가 욕설로 쓰인다. 고기는 맛있지만 푸줏간에 가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궁극적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끔찍스러워하는 똥과 시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유아기를 지나도 세상을 여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며, 경이로움 못지않게 혐오스러움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를테면 코딱지와 침, 인도에 싸놓은 개똥, 구더기가 가득한 채로 죽어가는 두꺼비, 어른의 땀 냄새, 대머리에 주먹코인 노인의 흉한 몰골이 주는 혐오감에도 크게 끌리는 것이다. --- p.327

톨스토이는 부와 명예와 특권을 버렸다. 그는 모든 형태의 폭력도 포기했으며, 그로 인한 손해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강제의 원리를, 혹은 적어도 남에게 강제를 행사하고픈 ‘욕구’를 버렸다고 믿기는 쉽지 않다. 평화주의와 무정부주의는, 겉으로는 힘을 완전히 포기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은 그런 심리적 습성을 부추긴다. 이를테면 당신이 일반적인 정치의 추잡함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어떤 신조를 받아들였다고 할 때 그 자체만으로 당신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수록, 남들도 다 자기처럼 생각해야 한다며 괴롭히기 십상이다. --- pp.369~370

2~3년에 걸쳐, 장학반 아이들은 성탄절 거위구이 뱃속 채워지듯 학습으로 꽉꽉 채워져야 했다. 그리고 그 학습이란! 재능 있는 소년의 진로를 불과 열두세 살에 치르는 경쟁 치열한 시험에 좌우되도록 하는 일이란 잘 봐줘도 사악한 짓인데, 성적표에 기재된 과목과 과정을 전부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이튼이나 윈체스터 같은 곳에 장학생을 보내는 예비학교들이 지금도 있는 것 같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의 경우에는 솔직히 모든 게 일종의 신용 사기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는 인상을 심사위원에게 심어줄 것들만 배우고, 뇌에 부담이 되는 것들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었다. 시험을 잘 안 보는 지리학 같은 과목은 거의 무시됐고, ‘문과classical’인 경우에는 수학도 무시됐다. 과학은 어떤 식으로도 가르치지 않았고 여가 시간에 읽으라는 책들도 ‘국어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뿐이었다. 장학생 선발 주요 과목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중시됐지만 그나마도 일부러 겉만 번지르르하게, 그리고 부실하게 가르쳤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리스어나 라틴어 저자의 책은 단 한 권도 통독을 해본 적이 없었다. 번역 문제로 나올 만해서 골라낸 구절들만을 읽을 뿐이었던 것이다. 장학생 선발 시험을 보기 전 1년 남짓 동안,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출문제를 달달 외는 데 바쳤다. --- pp.383~384

나는 학생들 모두가 그녀를 미워하면서 두려워했다고 말해도 틀림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더없이 비굴하게 그녀에게 아양을 떨었고, 그런 감정의 표층을 형성한 것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충성심 같은 것이었다. --- p.404

지금 같은 시대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치고 진정으로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거나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다만 지금 우리가 정치적 충심과 문학적 충심 사이에 그은 선을 보다 선명하게 긋자는 것이다. 작가가 정치에 관여할 때는 일반 시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관여해야지 ‘작가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작가가 예민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와 관련된 지저분한 일을 기피할 권리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른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그는 찬바람 새는 회관에서 연설을 하고, 길바닥에 분필로 글을 쓰고, 투표를 호소하고, 전단을 나눠주고, 심지어 필요하다 싶으면 내전에 참가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단, 자기 당에 대한 봉사로 다른 건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당을 위해 글을 쓰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글이 당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당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정파 우두머리들의 지시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해’ 쓰는 것도 삼가야 한다는 뜻인가? 이 역시 결코 그렇지 않다! 원한다면 아무리 서투르더라도 정치적인 글을 써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다만 한 개인으로서, 외부자로서, 기껏해야 정규군의 측면에 있는 환영받지 못하는 게릴라로서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겨야 하는 전쟁이라 생각해서 흔쾌히 전쟁에 나가 싸우면서도 전쟁 선전문을 쓰는 것은 거부하는 게 온당하다는 것이다.
--- pp.444~445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인간과, 인간의 본성과, 인간이 만든 제도에 대한 놀라운 성찰
인습과 관성을 거부하는 삶을 통해, 시대를 초월하는 생각을 틔운 작가
조지 오웰이 쓴 가장 빼어난 에세이 선집

조지 오웰의 삶과 사유를 이해하기 위한, 단 한 권의 책!

한겨레출판이 올해 1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펴낸 데 이어, 조지 오웰의 에세이 29편을 묶은 『나는 왜 쓰는가』를 출간한다. 오웰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동물농장』(1945)과 『1984』(1948)이지만, 오랜 세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생계를 꾸려간 오웰은 엄청난 분량의 에세이와 칼럼, 서평을 썼다. 『고래 뱃속에서』(1940)와 『사자와 유니콘』(1941) 두 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하긴 했지만, 그것 역시 일부였다. 생전에 다 묶이지 못했던 그의 에세이를 모은 책으로는 소설과 르포 이외의 중요한 글을 4권으로 엮은 저작집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이 가장 정통한 것으로 꼽히는데,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그 모든 텍스트가 번역되어 있지만, 한국의 경우엔 비교적 짧은 산문을 모아 놓은 단 한 권의 산문집이 있을 뿐이다. 『이번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그간 소문으로만, 혹은 일부 발췌 번역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좀더 풍부한 오웰의 명문(名文)들을 한국어 텍스트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모두 29편의 에세이를 골랐는데, 그 가운데 21편이 국내 초역이다.

남과 다른 길을 감으로써 남과 다른 눈을 얻다

오웰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감으로써 남들이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열 살 전후 무렵 부잣집 아이들만 다니는 예비기숙학교에서 학비 일부 면제 장학생 신분으로 교장 부부의 차별을 경험했고,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했으나, 대학생 대신 피식민지 버마의 경찰간부가 되었다. 유럽에 돌아와서는 런던과 파리를 떠돌며 부랑자 생활을 경험한다. 탄광 지역에 들어가 광부들의 삶과 그들의 생활 조건을 취재하기도 하고, 프랑코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의용군으로 스페인내전에 참전한다. 그 자신 사회주의자를 자처했으나, 책상머리 좌파들과 그가 보기에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러시아 편향의 주류 사회주의자에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문단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시골에 살면서 식료품 가게를 하거나, 2차대전 후 명사가 된 다음에도 한적한 섬에서의 은거를 택했다.
역자 이한중 씨가 오웰에 대해 “자신의 이력을 통해 패턴과 인습을 거부한 작가”라고 표현했듯이 그는 전 생애에 걸쳐 항상 조금씩 비켜나 있었고, 과감히 남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선택을 감행했으며, 그럼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특별한 눈을 가지게 된다. 이번 에세이 선집은 오웰이 맨처음 발표한 글인 부랑생활 체험기 「스파이크」에서부터 마지막 집필 원고인 「간디에 대한 소견」까지 오웰이 글을 쓴 순서대로 엮었으며 29편의 에세이를 통해 오웰 삶의 각 국면에 대한 세세한 이해, 정치적 입장, 현실에 대한 작가로서의 태도 등 인간 오웰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이해자, 조지 오웰

몸으로 세상을 겪은 오웰이 여타의 작가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타고난 영민함과 밑바닥 삶과 극한의 전쟁 체험 등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묶인 적잖은 에세이들이 오웰의 자전적 요소를 띠고 있는데, 그렇게 인간에 대한 남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 사건들, 오웰 자신이 삶의 전환적 순간이라 했던 사건들이 이 책 곳곳에 담겨져 있다.
자신을 차별한 예비학교 교장 부부를 통해,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그들의 인정과 총애를 받으려 했던 인간의 이중성을 어린 시절 이미 깨닫기도 하고, 식민지 경찰간부 생활을 통해 민족?인종 사이에 놓여진 위계와 그걸 공고히 하는 제도의 폐해를 절감했다. 게다가 계급을 막론해 젠체하기와 위선, 허영과 속물근성은 인간이 벗어던질 수 없는 숙명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모순적이고 비이성적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직시함으로써, 자신 작품의 인물 속에 그러한 인간을 표현해냈다. 그가 좌파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보냈던 까닭도, 적잖은 당시 좌파들이 “자본주의만 전복하면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생각하거나 “진실이 알려지면 박해는 절로 패퇴하리라는” 혹은 “인간은 본래 선량하며 외부 환경 때문에 부패하는 것일 뿐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웰은 과연 왜 썼을까?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오웰은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라고 자신의 명확한 작가적 입장을 밝힌다.
문학이나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향한 이 똑부러진 일침은, 결코 정치적 신념에 복무하는 문학 작품을 쓰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글에서 그는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며, 『동물농장』이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고 선언한다.
오웰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형태에 대한 반대” 입장에 서 있으며, 피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피억압자의 정서를 글로 표현했다. 한때 파시즘에 맞선 스페인 혁명에 도움이 되고자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가 택한 것은 글과 문학이었다. 그는 모든 형태 전체주의(나치의 파시즘과 스탈린식 공산주의, 자본주의)에 반대했다. 혁명가로서 전체주의와 싸운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의 폐해를 문학으로 표현함으로써 전체주의에 맞섰다. 그리고 50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 전세계 독자들은 오웰이 던진 성찰의 ‘현실성’에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오웰의 문학적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회원리뷰 (45건) 리뷰 총점9.2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글쓰기의 목적...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초* | 2020.09.19 | 추천28 | 댓글10 리뷰제목
조지 오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 다닐 때가 아니었나 싶다. [동물농장]이나 [1984]와 같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에 자신이 살았던 시대 광부들의 삶과 사회상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르포르타주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며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리뷰제목

조지 오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 다닐 때가 아니었나 싶다. [동물농장]이나 [1984]와 같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에 자신이 살았던 시대 광부들의 삶과 사회상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한 르포르타주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며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래서 양차대전 기간 중 당시 사회를 위협하던 전체주의 풍토를 비판한 [동물농장]과 [1984]를 다시 읽었다. 그리곤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런 조지 오웰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것은 얼마 전에 읽은 [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을 통해서였다. 저널리스트로써 오웰이 작성한 기사와 칼럼, 기고문 등을 묶어 엮었던 그 책을 읽으면서 오웰의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웰이 살았던 시대는 파시즘과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뒤섞여 요동치던 시대였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조국인 영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산문 7편을 묶은 [코끼리를 쏘다], 식민지 인도에서 경험한 경찰간부생활을 토대로 제국주의를 비판한 [버마시절]을 읽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멈추어야 했지 싶다.

 

이 책 [나는 왜 쓰는가]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살았던 오웰이 쓴 수많은 글 중에서 29편의 산문을 선별하여 엮은 책이다. 특히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의 대표적인 산문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통찰을 주었던 글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외의 산문들 또한 오웰의 삶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오웰의 작품들을 읽기 전에 이 산문집을 먼저 읽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기 전에 멈추어야 좋았다고 생각한 것은, 최근에 나온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를 먼저 읽어서이지 싶다. 이 책에 실려 있는 29편의 산문 중 5편이 그 책에 실려 있다. 그래서인지 산문들을 읽어가면서도 중복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느낌은 책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물론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오웰의 대표적인 산문을 다시금 읽는 재미를 느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밋밋하게 이 책을 읽었다.

 

오웰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허영심과 같은 순전한 이기심,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미학적 열정, 후대를 위해 현재를 기록한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라는 네 가지로 구분한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는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적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적 목적에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글의 주제는 작가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며, 그래서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특정한 정치적 태도를 갖게 되고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예비학교에서 맛보았던 상류층아이들과의 차별, 이튼스쿨에서 실감한 계급차이,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등을 통해 갖게 된 제국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오웰로 하여금 정치적 목적을 가진 글쓰기를 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인 태도’(294쪽)라고 말하는 그는, ‘내 작업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300쪽)라고 고백한다. 이는 그가 저널리스트였을 때 기사나 기고문을 쓰는 이유가 ‘어딘가 존재하는 거짓말을 폭로하고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조명하기 위해’서였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만큼 글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불편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읽힌다. 오웰은 자신이 정치적 목적으로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무조건적으로 좌파를 옹호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반대했다. 피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믿었기에, 당시 지식인 계급이 지지했던 러시아식 공산주의에 비판적 시선을 보낸다.

 

오웰의 글을 읽다보면 흔히 비평가들이 말하는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지지했다’는 그의 사상을 찾으려는 생각이 글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때때로 강박관념이 되어 책읽기를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비평가들의 말은 어떤 작품을 읽고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먼저 오웰이 살아온 시대와 그의 삶을 이해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에 대한 이해가 먼저여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오웰의 자전적인 산문들을 모아놓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짐을 느낀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오웰읽기를 멈추어야겠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하기 싶다는 말처럼 한 번에 많은 것을 알려하다가 흥미 자체를 잃을 것 같아서이다.

 

같은 산문을 두고서 역자들마다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비교하며 읽어가는 것은, 역자를 달리해서 책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2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8 댓글 10
글과 실천 - 오웰의 삶..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i******n | 2010.12.07 | 추천13 | 댓글18 리뷰제목
오웰이 영국의 3대 에세이스트라니, 그가 소설가, 사상가라는 선입관이 강한 것인지.  왜 글을 쓰는가? 라는 물음에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현실에 참여하기 위해서 아닐까 생각된다. 에세이 묶음인 이 책은 그가 펼쳐 놓은 글들의 향연이며, 조지 오웰의 사상을 크게 가난과 문학, 정치, 제국주의와 국수주의, 자연 같은 주제에 대한 묶음 선물 같다.   시작은 1931년에;
리뷰제목

오웰이 영국의 3대 에세이스트라니, 그가 소설가, 사상가라는 선입관이 강한 것인지 왜 글을 쓰는가? 라는 물음에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현실에 참여하기 위해서 아닐까 생각된다. 에세이 묶음인 이 책은 그가 펼쳐 놓은 글들의 향연이며, 조지 오웰의 사상을 크게 가난과 문학, 정치, 제국주의와 국수주의, 자연 같은 주제에 대한 묶음 선물 같다.

 

시작은 1931년에서 스파이크”, 끝은 1948간디에 대한 소견으로, 그의 17년간의 글 모음이고, 그의 생이다. 어린 시절의 사립학교에서의 모순에서부터 인도의 간디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29편의 에세이는 그의 성숙의 과정 또한 잘 보여 주는 것 같다. 젊었을 때 파시스트 맞서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 프랑스와 영국에서의 빈민 생활은 그의 삶이었다. 어떻게 보면 좀 감추고 싶은 그의 이력을 그는 당당히 더러 낸다. 거의 일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돈의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많은 글을 써 사람들에게 외쳤다. 그가 바라보는 미래가 “1984”의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의 감회, 정말, 정말 좋았지. 매질이 아프지 않았다는 건 일종의 승리였고, 오줌을 지렸다는 수치를 어느 정도 씻어 주었다. 인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끔찍했고, 나는 생각보다 못된 아이였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기에, 지난 일들은 새로운 사실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잊혀져야만 한다. 빈부에 따른 이중적 교육, 항상 당하는 건 가난하지만 재주는 있는 아이들, ‘네 부모는 그럴 형편이 못 될 것이라는 비꼼으로 좌절한다. 최상층이 정말 부러운 것은 젊을 때 부유하다는 점이었다. 두려워하는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내게 아버지는 언제나 하지마란 소리부터 하는 목소리 걸걸한 노인일 뿐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기록한 것이지만, “자기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과장과 자기 연민을 경계해야 한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의 일부가 된 스파이크, 노숙시절 당시의 그의 상황은 당신은 젠틀맨인가? 팔자 한번 무섭게 사납소, 나리.” 우선 배가 고프기 때문에 영혼 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환자가 인간이라는 인식은 거의 없는듯한 태도로 일 배우는 데만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이 묘했던 것이다. 사람은 물론 살고 싶어 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계속 살아가는 게 사실이다. 버마에서의 삶과 고뇌를 보여주는 교수형코끼리를 쏘다. 죽으러 가는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그가 느낀 것은 무얼까? 군중의 광기와 백인의 동양지배의 허위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사상을 밝히는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하다스페인 내전을 돌이켜 보다,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 했는가 이다. 언론의 자유를 감히 허용할 체재는 사회주의 체제밖에 없다. 정서의 돌변은 신문과 라디오의 최면 탓이다. 잔학행위를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이 순전히 정치적인 편향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진실은 적이 말하는 순간 거짓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결국엔 그런 거짓들이, 아니면 그 비슷한 거짓들이 역사가 되어버릴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다. 마라케시에서 차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사람들 피부가 갈색인 곳에서는 빈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는 제국주의적인 영국을 싫어했다. 하지만 그의 조국이었다. 좌든 우든 나의 조국영국, 당신의 영국에서 그의 조국 사랑과 번민을 보여준다. 다가오는 전쟁은 나에겐 여러 해 동안 악몽이었고, 저항하느냐 아니면 굴복하느냐의 선택에선 딱히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중산층에 주입되어온 애국주의가 마침내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민족이란 것이 정말 있기는 한가? 제국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 식민지 지배는 지속하는 모순이다. 영국은 부자와 빈자라는 두 민족으로 나누어나 애국주의는 대체로 계급간 반목보다 강하며, 어떤 유의 국제주의보다 언제나 강하다. 민족주의 비망록. 민족이라는 것 단일한 인종, 지리적 영역에만 속하는 건 아니다. 정신적인 탈골. 민족주의라는 자기편이 저지른 잔악행위를 반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에 아예 귀를 닫아버릴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모든 민족주의자는 과거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 잡혀 있다. 좌파지식인 대체로 부정적이고 불만 가득한 태도와 언제나 건설적인 제안이라곤 없다는 사실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자기 나라의 공통문화와 단절되며, 그들의 입은 파리식을 즐기고, 의견은 모스크바식을 즐긴다.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세계를 실제로 형성해가는 에너지는 민족적 자존심, 지도자에 대한 숭배, 종교적 신앙심, 전쟁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감정에서 솟아 나는 법이다. 웰스는 현대세계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온건하다. 간디에 대한 소견. 평가는 본능적으로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모든 유럽문명을 가능한 한 철저히 흡수하려는 생각했고, 좀 비인간적, 금욕과 자기의 선을 그음이 그의 실수였다. 우리는 하느님 아니면 인간을 택해야 한다.

 

문학에서 톨스토이의 세익스피어의 비판과 우리에게도 현실이 되어 버린 서점의 추억시와 마이크에서 서정적이거나 수사적인 시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짐으로, 일반인 시에 거부감을 갖는 게 당연시 되고 말았다. 시 작품은 종이 위에 패턴보다는 소리로 여기도록 할 수 있다. 문학 예방에서는 지적인 자유 문제는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알릴 자유를, 아울러 강요에 의해 사실과 감정을 꾸며내지 않은 자유를 뜻한다. 우리시대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거의 다 조립식 장난감세트의 부속처럼 맞추어진 구절들로만 이루어진다. 우리가 누려온 자유주의적 문화가 사실상 끝난 경우, 문예 자체가 소멸될 가능성이 휠씬 높다.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것이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정치 대 문학. 대조효과를 보여 주는 것이 걸리버의 주된 역할이다. 스위프트는 행복의 가능성을 불신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과 그의 작품을 즐기는 것과 나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궁극적으로 문학작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느냐 말고는 없다. 톨스토이의 세이스피어 비판, 그는 왜 그런 공격을 했는가? 정치와 영어. 문장이 고약한 것은 비유가 상투적,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비유의 유일한 목적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상투적인 비유나 숙어를 쓰면 정신노동이 크게 줄어들긴 하지만 독자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문장의 깊은 뜻을 분명히 알 수 없게 된다. 정치적인 글에 특히 문제가 있다는 건 우리 시대의 엄연한 현실이다. 정치란 본래 거짓과 얼버무리기, 어리석음, 반목, 정신분열증의 집합체인 것이다. 정치적 언어는 거짓을 사실처럼 만들고 살인을 존중할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순진한 헛소리를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다.

 

과학에 대한 글로는 당신과 원자탄과학이란 무엇인가?” 에서 그의 통찰을 보여준다. 문명의 역사는 대체로 무기의 역사이다. 복잡한 무기는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들고, 단순한 무기는 약자에게 갈고리 발톱이 된다. 군사기술의 발전이 국가에는 유리하고, 개인에게 불리. 산업화된 나라에 유리, 후진국에는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과학은 단순히 하나의 방식이나 태도이다. 과학자의 양면성, 과학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모든분야에 대하여 더 현명한 접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나 예술가에 비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며 자국 정부 쪽에 줄을 서고, 권력지향적(친정부적)이다.

 

나 좋을대로. 장미에 대한 칭찬, 행락지. 등에서는 오웰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두꺼비 단상에서 어떻게 보면 오웰의 글이라 믿기 어려운 글, 자연의 찬미와 소소한 즐거움을 이야기 한다. 봄에 깨어나는 두꺼비를 보며 오래 굶주린 뒤라 대단히 영적인 모습인 것이, 흡사 사순절 막바지에 다다른 엄격한 가톨릭 신자 같다.” 중요한 건 봄이 주는 즐거움은 누구나 접할 수 있으며 공짜라는 점이다. 우리가 견뎌야만 했던 겨울들 때문에 봄이 다시 기적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실생활의 모든 즐거움을 다 죽여버린다면 우리 자신을 위해 준비해야 할 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어느 서평자의 고백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작가와 리바이어던. 평하는 일을 오랫동안 한다는 건 유난히 달갑지 않고 짜증스럽고 피곤한 노릇이다. 글쓰기는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동기는 순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에 있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형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기에 가장하고 싶었던 것이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 이었다.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왔다. 모든 좌파 이데올로기는 당장 권력을 잡는다는 기대를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발전시킨 것이다.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은 세계전체라는 차원에서 보면 자신들도 착취자가 되는 야만스러운 진실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피착취자라는 말에 넘어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작가 정치인들이 보았으면, 작가가 정치에 관여할 때는 일반 시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관여해야지 작가로서그래서는 안 된다. ‘어떤정치 이념을 받아들이면 문화적 성실성을 지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에 바탕을 둔 글로써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문제와 비전을 던져준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다. 이 글들이 쓰여진 것은 과거이고, 제법 시간이 지나가 버렸지만, 아직도 이런 이론의 함정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을 보면서, 역시 실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1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3 댓글 18
한 권으로 요약한 조지 오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안***스 | 2017.03.26 | 추천9 | 댓글3 리뷰제목
언어가 타락한 시대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쟁이 나도 평화인 줄 알고, 노예가 되어도 자유로운 줄 알고, 모르는 게 자랑인 줄 알며 살게 될 것이다. 하물며 비판은 못할지언정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일에, 그런 타락에 곡학아세하며 동조해서야 되겠는가? (477쪽) 오웰의 [1984]를 떠올리며 논평을 붙인 역자 후기의 한 대목이다. 우리 주군은 천사이기;
리뷰제목

언어가 타락한 시대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쟁이 나도 평화인 줄 알고, 노예가 되어도 자유로운 줄 알고, 모르는 게 자랑인 줄 알며 살게 될 것이다. 하물며 비판은 못할지언정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일에, 그런 타락에 곡학아세하며 동조해서야 되겠는가? (477쪽)

 

오웰의 [1984]를 떠올리며 논평을 붙인 역자 후기의 한 대목이다. 우리 주군은 천사이기에 무결점 무오류인데 하찮은 것들이 공연히 덤터기 씌워 단죄하려는 것이라며 범죄자를 극구 옹호하는 모 인사의 언동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전제군주정 시대, 아니 신권정치 시대를 살아가는 신민의 의식에 머물고 있는 그들은 오히려 확신에 차 있다. 헌재 법정에서 국가의 상징물을 펼쳐보이는 퍼포먼스는 젠체하는 것이 아닌 천박한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다. 근대적 의식과 최소한의 교양도 못 갖춘 이들이 내뱉는 언어는 언어이되 말도 안되는 언어이다.

 

여기 실린 오웰의 글 중 몇 편은 100년도 넘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고민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에 아득해진다. 향후 100년 이내에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려는 시도가 승리를 거둘 것이라던 오웰의 예언은 틀린 셈이다. [동물농장]과 [1984]을 통해 탁월한 예지력을 보여주었던 오웰이 이 부분에선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오웰은 대여섯 살 때부터 작가가 되리란 것을 운명적으로 알았다 한다. 낱말을 다루는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 났고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글쓰기 인생에 일대 격변을 가져올 사태에 직면한다.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글을 쓰려는 동기를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순전한 이기심의 발로로 글을 쓰려는 시도이다. 허영심과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둘쩨는 미학적 열정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나누고픈 욕구에서 글이 나온 것이라 보았다. 셋째로는 역사적 충동을 꼽았다. 후세를 위해 글로써 남기려는 의도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고 타인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수단적 글쓰기인 것이다. 그 가운데 오웰은 넷째 동기, 곧 정치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는 스페인 내전 참가 이후 확고하게 굳어진 패턴이라 한다. 물론 그는 정치적 글쓰기를 하되 앞의 세 가지 동기를 아우른 포괄적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사악한 시절에 태어나 성직자와 인민위원 사이에서 방황하다 비록 팜플렛 저자가 되고 말았지만 자신이 쓰려 했던 이야기는 결말이 불행하고 묵직한 자연주의 소설이었음을 고백한다.

 

언어가 타락한, 아니 온 세상이 미쳐 날뛰는 시대이기에 언어는 부득이 정치적 수단, 계몽의 도구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며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가 오히려 자신의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고 믿는다.

 

맥없는 책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300쪽)

 

그러니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에 매달리는 사실에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그런 인생 역정에 여한이 없는 듯하다. 글쓰기라는 재능을 통해 자신을 오롯이 의식의 근대화와 인간화의 제단에 바친 셈이다. 제물을 받아든 신은 인류에게 상당한 분량의 선물을 내렸다. 그런데 오늘 여기 한반도까진 미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은 그런 오웰의 삶과 글쓰기의 정수를 담은, 한 권으로 요약한 조지 오웰이라 하겠다.

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9 댓글 3

한줄평 (40건) 한줄평 총점 9.8

혜택 및 유의사항 ?
평점5점
타인이 글을 쓰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구매했어요. ㅎㅎ 그런데 타인이 너무 위대하네요..
4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4
YES마니아 : 로얄 a***4 | 2018.10.13
구매 평점5점
조지오웰의 글은 주기적으로 읽어야 해요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s*m | 2019.04.18
구매 평점5점
글을 쓰는 이들이 많은 시대에, 조지 오웰의 생각을 듣고 싶네요. 기대가 됩니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c*****7 | 2018.11.29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6,2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