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5년 03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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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77쪽 | 226g | 133*190*20mm |
ISBN13 | 9788956608556 |
ISBN10 | 8956608555 |
발행일 | 2015년 03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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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77쪽 | 226g | 133*190*20mm |
ISBN13 | 9788956608556 |
ISBN10 | 8956608555 |
구의 증명 작가의 말 |
사랑하는 구가 길바닥에서 죽자, 담은 따라 죽는 대신, 구를 꼭꼭 씹어 먹는다. 먹으면 만나질까? 구의 죽은 머리카락, 손톱, 살점을 뜯어 먹으면 소화되어 담의 살이 피와 살이 섞이면 그 몸속에서 구를 느낄 수 있을까. 구가 담을 먹은 이유는 또 있다. 검은 옷을 입은 그 사람들이, 그 빚쟁이들이 그를 찾지 못하도록, 그의 시체를 찾지 못하도록 구를 죽지 않은 것으로 해야 했다. 그들은 구를 죽였지만 구가 죽은 것을 모른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맞다가, 바스라지도록 계단을 구르고 뭉개지도록 차에 받쳐 너덜너덜 길바닥에 쓰러지고, 그렇게 끝내 자신은 한 번도 만저보지도 못한 부모의 빚에 깔려 희망없는 어둠속에서만 보냈던 푸른 청춘의 주검을 확인한 사람은 담이다. 담은 그들이 구에게서 내장을 파내 팔을 거라고 생각한다. 담은 구가 죽은 것을 모르게 해야 그들이 계속해서 구를 찾아 시간을 허비할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는 구가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한 부모 빚 때문에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할 돈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개고생을 하는데, 그러다가 힘들어서 담과 함께 도피 생활을 시작하자, 어디든 찾아가서 위협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끝내는 그를 죽음에까지 몰고 간다. 법이, 약자에게서라면 남아있는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법이, 실제로 자식에게 빚을 전가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 법이라는 것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끄트머리의 아주 희미한 빛도 내어주지 않았고, 구는 자신이 법적으로는 갚지 않아도 되는 부모의 빚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빚을 회피할 방법이 없다. 자식에게 빚을 전가할 수 없는 법이 유효한 곳은 돈이 주체할 수 없을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아도는 사람들만을 향해 환히 비추는 밝고 화려하고 넘치게 풍족한 곳이다. 구는 그곳에 없다. 구는 구가 속한 곳에 있다. 구는 왜 살아있는 부모의 빚에 쫓겨야 했을까. 사회는 왜 그런 불합리를 내버려두는 것일까. 언제가 되어야 우리 사회는 이런 소설을 읽으며, 뭐 이렇게 비현실적인 내용인거야? 하며 책을 내던질 수 있는걸까
참 오랜 시간 우리 곁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랑’. 오랜 시간 이야기의 주제가 되기에 진부할지도 모르지만, 사랑만큼 애절하고 절절한 게 또 있을까? 사랑만큼 달달하고 가슴 뛰는 게 또 있을까? 무수한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들이 전해오지만 사랑은 늘 어렵다. 누구나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 삶이 어려운 것처럼.
여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 진부하게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남자 구와, 여자 담이. 그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있다. 남자 구는 부모님이 쓰기 시작한 사채 빚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고, 여자 담은 태어났지만 누구의 자식인지 모른 채 이모와 단둘이 살고 있다. 상처를 가득 안은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마저도 힘겨울 때가 있다. 삶은 힘들어도 우리는 알콩 달콩 살아갈 거예요. 라는 결말을 주면 좋겠지만 이 연인들의 사랑은 그렇게 녹녹치 않다. 어린 나이에 구는...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었으니까. 그래서 담은 이야기 한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비극적인 사랑은 기억에 남고, 그 여운이 오래가지만 이젠 아픈 사랑이 싫다. 사는 동안 좌절하고, 아파할 시간들이 얼마나 많을까? 사는 동안 어려운 일이 또 얼마나 많을까? 적어도 사랑만큼은 아프지 않게, 어렵지 않게 이루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어쩜 사랑이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것인지도 모를 테니까. ‘하루가 멀다’하고 헤어진 남, 녀의 무서운 칼부림이 뉴스를 장식한다.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이별을 통보한 쪽에 앙심을 품고 덤벼든다. 사랑이 갖고 있는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일까? 사랑이 갖고 있는 무엇이, 사람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일까? 사랑하던 사람들이 떠나고 혼자 남은 담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지금의 인간은 미개하지 않은가.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며 계급을 짓는 지금은. 돈은 힘인가. 약육강식의 강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세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중략) 인간의 돈은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죽어 마땅한 사람도 기세 좋게 살아간다.’ (164) 사랑마저도 돈으로 지배 되는 이 세상. 그럼 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은 사랑도 할 수 없는 것일까
담은 구를 먹는다고 표현했지만, 그렇게라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담과 구. 하지만 세상은 이들의 사랑을 지키지 못했고, 그 둘을 갈라놓았다. 경제적으로 힘든 젊은 친구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고 한다. 그래서 구와 담의 사랑이 더 애절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적어도 포기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포기보다 더 아픈 이별이 존재했으니...
책을 읽는 동안 답답했고 우울했다. 사랑할 수조차 없었던 구와 담의 이야기가 혹, 내 주변의 누군가가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사랑 이 아름답고 잔인한 것에 대해서...
소설을 보면 가끔 그게 진짜 현실일까 싶기도 하다. 별일 없이 사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힘든 사람이 있고 힘들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겠지. 《구의 증명》은 어떻게 보면 슬픈 사랑 이야기다. 슬프고 지독하다고 해야겠다. 그런 건 쉽게 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 일을 보고 내가 생각한 건 병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담은 죽은 구를 먹고 오래오래 살리라 생각하지만. 인류 마지막 사람이고 싶다고도 한다. 죽은 사람을 먹는 건 그 사람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겠지. 구는 부모한테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 구 부모가 많이 나오지 않지만. 짧은 말로도 상상할 수 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구 부모는 구한테 큰 빚을 물려주었다. 왜 그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구 부모는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지는 일을 되풀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현실에서도 일어난다. 부모 빚을 갚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해야 하는. 구는 돈도 빚도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런 구가 죽었다.
구와 담은 어릴 때 만나고 늘 함께 하고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잠시 헤어진 적이 두번 있지만 구와 담은 서로를 생각했다. 구한테는 부모가 있지만 부모한테는 빚이 많았다. 담도 형편이 좋지 않았다. 담은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이모와 살았다. 이모는 담을 위해 돈을 벌었다. 이모는 그걸로 사랑을 나타낸다고 여겼는데, 담은 그것보다 다른 걸 바랐다. 담한테 담을 생각하는 이모가 있었지만, 구한테는 그런 어른이 없었다. 구는 어른이 되기도 전에 일해서 돈을 벌었다. 그런 거 싫지 않았을까. 집을 나가 소식 끊고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구가 군대 갔다 전역하고 왔을 때는 부모가 온데간데없이 빚만 남았다. 구가 군대 가기 전에 구와 담은 잠시 헤어졌다. 잠시가 아니고 좀 오래였을까. 둘이 멀어진 건 함께 죽음을 봤기 때문이다. 서로를 걱정했지만 서로를 보고 그 일을 떠올리게 할까봐 만나지 못했다. 아이를 잃은 부모도 비슷할 것 같다. 서로를 보고 아이를 떠올리는. 함께 아이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텐데, 그 일 말처럼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담한테 이모가 있었지만 이모는 병으로 죽는다. 담이 혼자 살 수 있는 나이여서 다행이었을까. 구는 담이 혼자 이모를 보낸 걸 마음 아파했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자라서도 함께 하면 좋을까. 구와 담은 서로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가 부모 빚 때문에 힘들 걸 생각하고 담한테 자신을 떠나라고 했다. 담은 구를 떠나 잘살아도 못살아도 구를 생각하리라는 걸 알았다. 둘은 헤어지지 않았지만 사는 건 쉽지 않았다. 돈 받으려는 사람 때문에. 그 사람들을 피해 살아도 얼마 뒤에 둘을 찾아냈다. 구를 끌고 가서 엄청 때렸다. 구는 달아나다 차에 치였다. 구는 그렇게 죽었다. 구는 사는 동안 즐거운 때 있었을까. 담을 만나고 담과 함께 할 때는 즐거웠겠지.
밝은 이야기가 아니다는 건 알았다. 이걸 보고 난 어떤 생각을 할까 하기도. 상대를 얼마나 좋아해야 그 사람을 먹을 수 있을까. 돈을 받으려는 사람은 시체까지 이용한다는데 정말 그럴까. 담은 구를 땅에 묻거나 태울 수 없었다. 구를 따라 죽으려고 한 마음을 바꾼 건 다행인가. 담은 구를 먹으면 구가 자신 안에서 함께 살리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그런 담을 구가 바라본다. 보이지 않아도 구가 곁에 있다는 걸 담이 느끼면 좋을 텐데. 담은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죽은 구도 안됐지만 아직 살아있는 담도 안됐다. 담 바람처럼 오래오래 살아야 할 텐데. 죽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여전히 좋아하는 그 모습 부럽기도 하다.
희선
☆―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 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아주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20쪽)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야. 그 마음을 까먹으면 안 돼.
걱정하는 마음?
응. 그게 있으면 세상에 흉한 짓 안 하고 산다. (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