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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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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9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469g | 136*193*12mm
ISBN13 9788927806776
ISBN10 8927806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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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안정희
사방이 모두 책으로 둘러싸인 사주를 갖고 태어나 부모님은 교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기대를 저버리고 책의 달콤한 꾐에 넘어가 사서가 됐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고 출판사와 도서관에서 일하다가 뒤늦게 떠돌이 유전자가 발현돼 머나먼 나라 멕시코로 떠났다. 2년 동안 그곳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라틴 아메리카와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며 한량처럼 살았다. 지난 10년간 그렇게 혼자서, 또는 누군가와 함께 떠났던 여행지는 40개국을 훌쩍 넘겼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천만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정신적 유랑에 최적의 장소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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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투어를 마치고도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들뜬 표정으로 넵스키 대로를 걸었다. 사위는 아직도 밝았고 백야를 즐기는 인파가 네바 강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들은 양 볼에 산들거리는 미풍을 맞으며, 길고 어두운 겨울 끝에 찾아온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곧 지나가버릴, 짧고도 찬란한 젊음 같은 계절을.
- 꿈꾸는 하얀 도시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中

이 마을엔 바이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햇볕을 토해내는 흰 칠을 입힌 담을 세우고, 붉은 꽃이 수놓아진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손님이 오면 쓴맛, 단맛, 오묘한 맛의 세 가지 차를 내어주고는 인생은 원래 쓰고 달고 복잡한 것이라며 등을 쓰다듬어 주고 손을 잡아주었다고 한다. 옛날부터 차와 말을 맞바꾸려는 이들이 이 마을에 자주 들르곤 했다. 4천 미터에 이르는 높고 험준한 길인 차마고도. 몇 굽이인지 셀 수 없을 만큼 깊은 산길을 걸어야 했던 차마고도의 마방들은 이곳에서 따뜻한 차 한 잔과 한 줌의 위로를 얻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 바이족의 삼도차 / 중국, 다리 中

“모나르카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야.”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내게 말했다. 죽은 영혼이 나비가 되어 이곳으로 날아오는 거라고. 마침 그날은 ‘죽은 자의 날’이라고 했다. 죽은 자들이 1년에 한 번, 가족과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다는 날. 나는 이름 모를 노인과 함께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모나르카와 함께 찾아온 영혼이 이곳에서 편히 머물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 안녕, 모나르카 / 멕시코, 시에라친쿠아 中

눈(雪)조차 머물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솟은 세 개의 탑. 천만 년 전 만들어진 봉우리들에 완전히 압도돼 있는 내 옆에서 준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탑이 바라보이는 너른 바위에 자리를 잡고는 나를 불러 앉혔다. 준이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를 들으며 산을 오르듯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를 막아줄 옷 한 벌과 한 끼 식사만 넣은 가벼운 배낭을 메고 이곳에 오른 것처럼, 많이 가지려 하지 말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겠다고.
- 파타고니아 라이프 / 칠레, 토레스델파이네 中

영화 「비포 선셋」을 보며 파리에 대한 로망을 키우던 나는 어느 해 크리스마스를 파리에서 보내기로 했다. 때마침 파리엔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베르사유 궁전의 나무들에 눈꽃이 열렸다. 파란 겨울 하늘 아래 사크레 쾨르 성당은 순백으로 빛났고, 노트르담 성당의 가고일은 눈으로 지은 망토를 덮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빨갛게 물든 샹젤리제엔 산타 차림의 사람들이 털모자와 벙어리장갑을 팔고, 거리 한 귀퉁이에선 바싹 마른 장작에 꿰여진 넓적한 연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나는 한 손엔 뱅쇼를 들고 다른 손으론 준의 손을 잡고, 셀린과 제시처럼 파리의 거리를 걸었다. 영화 속에서 흐르던 니나 시몬의 ‘Just in time’을 흥얼거리면서.
- 저스트 인 타임 / 프랑스, 파리 中
___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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