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5년의 「초고 파우스트」를 시작으로 1831년 「파우스트 2부」까지 집필기간만 56년. 만 83세의 나이로 영면한 괴테의 나이로 본다면 실로 엄청난 기간이 아닐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널리 알려진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긴 생애를 본다면,「파우스트」는 작가의 일생을 바쳐 집필한 작품이라고 여겨도 무방할 것이다. 괴테 본인의 모든 창의성과 예술 혼을 불태운 대작을 독문학 전공자도 아닌 본인이 함부로 논하기가 상당히 곤욕스럽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러운 「파우스트」의 감상을 몇 자 남길까 한다.
특별한 사전지식 없이 「파우스트」를 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책이 주는 중압감과 깊은 무게감에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희곡에다가 운문형식, 거기다 분량 또한 결코 만만치가 않다. 「비극 1부」를 읽으면서는 어느 정도 속력을 붙이며 글의 흐름에 쫓아갈 수 있었지만, 「비극 2부」에 와서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쉽사리 넘길 수 없었고, 나름대로 성실하게 집중하여 읽었던 시간들이 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비극 1부」는 널리 알려진 대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영혼을 넘겨버린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완성과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결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우주의 흐름과 신비의 향락을 맛보고자 했던 파우스트 박사는 개로 분했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게 된다. 1부는 인간의 이성적 분점에 시각을 맞추고 욕망의 충족에 대한 도입부로 해석된다. 더불어 사랑하는 여인 그레첸과 결국 비극으로 맺게 되면서 괴로워하지만, 신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남겨두며 그레첸을 구원하기에 이른다. 오묘한 비극과 희극의 갈림길이 아닐 수 없다.
1부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 최초의 악마성이 여지없이 드러나게 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 한다.’ 고 정의내린 주님과는 대조적으로 악마가 바라보는 인간상의 모습은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작은 악의 유혹에도 쉽게 홀려 이성적인 판단을 흐릴 수 있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1부에서는 학구적으로 고뇌하는 파우스트 박사의 허황된 환상과 메피스토펠레스의 끊임없는 방해공작에서 인간 능력의 한계성을 드러내지만, 파우스트 박사의 희망과 좌절이 교차되면서 분명한 하나의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비극 2부」는 좀 더 초지상적인 요소의 넓은 우주를 관찰하고자 하는 파우스트의 정치적인 행로가 이어진다. 천상의 신들과 이름뿐인 황제의 등장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메피스토펠레스와 합심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 또한 무한한 욕망의 다양한 세계관의 조심스레 추론해 볼 수 있다. 경제와 정치, 철학과 문화생활에 대한 노력까지 다양한 분야의 관심이 점층적으로 나타난다.
2부는 신화에서 나온 수많은 신들과 천상과 저승으로 배경이 오고가며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한 전개가 이어졌다. 더욱이 연극을 위한 희곡이 아닌 만큼 운문의 시적 은유와 상징성은 굉장히 난해하면서 심오했기에 괴테의 철학적 고뇌만큼 내 머리 또한 무거워 진 게 사실이다. 편한 해설을 위해 달아놓은 주석의 숫자만도 거의 700개에 가까우니, 내용을 쫓아가기 보다는 이해를 위해 몇 번씩 되풀이해서 읽는 노력이 필요했다. 「파우스트」는 편안한 독서를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시를 공부하는 자세로 그 뜻과 문장의 해설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 같다. 문학 고유의 상징을 느끼는 안목이 부족한 나이기에, 3번 이상 읽어본다면 「파우스트」를 읽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 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읽고는 절대 완벽하게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지만, 일주일동안 고정되어 있던 두뇌를 회전하면서 「파우스트」를 읽은 후의 느낌은 인간적으로 매우 성숙해진 느낌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게 되어 있지만, 선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찾아 가게 되어 있다고 했다. 태초의 본능과 욕망을 억제할 수 없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게 된다면 참상한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도 굳건히 이겨내며 결핍, 죄악, 곤궁, 근심의 혼령까지도 떨쳐버릴 수 있으리라.
책을 덮은 후, 눈이 먼 파우스트의 마지막 외침,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는 격정적인 그 한 마디가 오랫동안 귓전을 맴돌 만큼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원치 않으면 악마도 존재할 수 없다. - 본문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