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생존 시간 카드 속담 칠십 리 장화 천국에 간 집달리 역자 후기 |
역이세욱
관심작가 알림신청이세욱의 다른 상품
지금 그는 여전히 돌과 한몸이 된 채 그 담 속에 있다. 파리의 소음이 잦아드는 야심한 시각에 노르뱅 거리를 내려가는 사람들은 무덤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희미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몽마르트르 언덕의 네거리를 스치는 바람의 탄식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늑대인간' 뒤티유욀이 찬란한 행로의 종말과 너무도 짧게 끝아버린 사랑을 한탄하는 소리다.
--- p.35 |
이건 비열하고 부당한 처사이며 극악무도한 살인행위이다! 문제의 법령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런데, 쓸모없는 사람들, 곧 '부양을 받고 있을 뿐 그것의 실질적인 대가를 전혀 치르지 않는 소비자들'의 무리에 놀랍게도 예술가와 작가가 포함된다고 하지 않는가! 어쩔 수 없이 사정 때문에 화가나 조각가나 음악가에게 그 조치가 적용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작가에게마저 그것이 적용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분명 자가당착과 양식에서 벗어난 판단착오가 빚어낸 일이었다. 이는 우리 시대의 다시 없는 수치로 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유용성이란 증명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특히 나 같은 작가의 유용성은 아주 겸손하게 말해서 증명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한 달에 겨우 보름간의 생존만 허용되리라고 한다.
--- pp.40-42 |
사람들에게 6월35일에 관해서 이야기 했더니 내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기억 속에는 그 닷새의 흔적이 전혀 없다. 다행히 나처럼 불법적으로 삶을 연장했던 사람들을 몇 명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대화였다. 내가 느끼기엔 어제가 6월35일인데 다른 사람들은 어제를 32일이나 43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6월66일까지 살았다는 사람을 식당에서 만나기도 했다.
--- p.69 |
말리코른이 스스로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제가 상소를 한 사정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성 베드로는 제가 집달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홀어미와 그 자녀가 눈물을 흘린 것을 다 제 탓으로 돌리고 있스비다. 그래서 그 뜨거운 눈물을 제 영벌의 도구로 삼겠다는 것이이죠. 이건 부당합니다." 하느님은 엄한 표정으로 성 베드로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의 동산을 압류하는 집달리는 인간이 만든 법률의 도구일 뿐, 그 법률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마음 속으로 법률의 희생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뿐이다." --- p. 160 |
뒤티유월이 자기에게 독특한 능력이 있음을 깨달은 것은 마흔세 살에 막 접어들었을 때였다. 어느날 밤 그가 자신의 독신자 아파트 현관에 있을 때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잠시 벽을 더듬거렸다. 전기가 다시 들어왔을 때 그는 자기가 4층의 층계참에 나와 있음을 알아차렸다. 현관문은 안으로 잠겨있었으므로 그가 문으로 나오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 p.16 |
"아니, 이 달이 31일까지 있었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내온 가게 여주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신문기사의 제목으로 눈길을 돌렸다. '처칠 수상 6월 39일에서 6월 45일 사이에 뉴욕 방문' 가게를 나와 거리를 걷다가 두 남자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37일엔 오를레앙에 가야 해." --- p. 67 |
"레퀴예 과장, 당신은 깡패에다 상놈에다 개망나니요."
과장은 겁에 질려 입을 딱 벌린 채 한동안 그 머리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자리를 차고 일어나 복도로 후닥닥 뛰어나가서는 골방까지 줄달음질을 쳤다. 뒤티유욀은 차분하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손에 펜을 들고 여느 때처럼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과장은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우물거리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가 또다시 벽에 나타났다. "레퀴예 과장, 당신은 깡패에다 상놈에다 개망나니요." --- p. 19 |
"아니, 이 달이 31일까지 있었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내온 가게 여주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신문기사의 제목으로 눈길을 돌렸다. '처칠 수상 6월 39일에서 6월 45일 사이에 뉴욕 방문' 가게를 나와 거리를 걷다가 두 남자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37일엔 오를레앙에 가야 해." --- p. 67 |
"레퀴예 과장, 당신은 깡패에다 상놈에다 개망나니요."
과장은 겁에 질려 입을 딱 벌린 채 한동안 그 머리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자리를 차고 일어나 복도로 후닥닥 뛰어나가서는 골방까지 줄달음질을 쳤다. 뒤티유욀은 차분하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손에 펜을 들고 여느 때처럼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과장은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우물거리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가 또다시 벽에 나타났다. "레퀴예 과장, 당신은 깡패에다 상놈에다 개망나니요." --- p.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