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0년 01월 08일 |
---|---|
쪽수, 무게, 크기 | 348쪽 | 585g | 148*210*30mm |
ISBN13 | 9788936471750 |
ISBN10 | 8936471759 |
발행일 | 2010년 01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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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8쪽 | 585g | 148*210*30mm |
ISBN13 | 9788936471750 |
ISBN10 | 8936471759 |
너새니얼 호손 - 젊은 굿맨 브라운 에드거 앨런 포우 - 검은 고양이 허먼 멜빌 - 필경사 바틀비 마크 트웨인 - 캘레바래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헨리 제임스 - 진품 샬롯 퍼킨스 길먼 - 누런 벽지 찰스 W. 체스넛 - 그랜디썬의 위장 스티븐 크레인 - 소형 보트 셔우드 앤더슨 - 달걀 F. 스콧 피츠제럴드 - 겨울 꿈 윌리엄 포크너 - 에밀리에게 장미를 |
창비세계문학 미국편은 11명의 미국문학 대가들의 걸작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들도 친숙하게 와 닿지만 그들의 작품들 중엔 이미 읽어본 것도 있다. 단편을 읽다 보면 목차를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먼저 눈길이 가는 작품이 있게 마련이다. 미국편 목차를 보니 “스콧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이 눈에 들어온다. 작품의 주인공 덱스트를 보면 개츠비가 생각이 나고, 그 위에 스콧이 겹쳐진다.
어릴 때 캐디 일을 하던 덱스트는 골프를 치러 온 꼬마숙녀 존즈를 보고 캐디 일을 그만둔다. 커가면서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한 존즈는 남자들에 둘러싸여 지내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자신의 매력을 한껏 발산시키며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난다. 덱스터는 그 나이에 성공한 축에 들며 존즈와 어울리는 한 명의 남자로써 지내다가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존재는 때로는 흥미로, 때로는 악의로, 무관심으로, 경멸로 대하며 빠져 나간다. 덱스트는 다른 여자와 약혼을 결심하고 그곳을 떠난다. 그후 존즈가 약혼을 했고, 또 파혼을 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덱스트가 약혼을 발표하려 할 즈음, 클럽에서 우연히 존즈를 만나게 되고 존즈는 덱스트에게 청혼한다. 전쟁이 일어나자 덱스트는 입대를 하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덱스트는 엄청난 성공을 한다. 어느날 한 사내가 찾아와 존즈에 관한 얘기를 한다. 존즈가 결혼을 했고, 남편이 아주 심하게 대하고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덱스트는 꿈이 사라지고, 무엇인가를 빼앗긴 것만 같다. 그러나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으니, 이제는 상처받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덱스트와 개츠비가 겹쳐진다. 데이지와 존즈가 겹쳐진다. 개츠비가 데이지의 사랑을 찾듯, 덱스트도 존즈에게 메달린 것 같다. 또 하나 겹쳐지는 게 있다. 작품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 세어가 겹쳐진다. 스콧이 소설 지망생이던 시절 사교계의 여왕 젤다를 한 파티에서 만나 이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할 때만 해도 개츠비나 덱스트보다는 사정이 나은 것 같다. 그러나 방탕과 허영과 사치에 찌든 그들 부부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난과 젤다의 정신분열증뿐이다. 결국 스콧은 모르핀 자살을 시도하고, 그것이 실패로 끝나면서 마지막 재기를 꿈꾸지만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숨을 거둔다. 개츠비와 덱스트가 또 다시 겹쳐지는 대목이다.
표제작인 “허먼 멜빈”의 [필경사 바틀비]는 세계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단편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배달불능우편물 취급소의 말단직원으로 있다가 행정부의 물갈이로 쫓겨나 필경사일을 하는 바틀비에게 자본주의의 삶의 원리, 삶의 집착은 의미가 없다. 배달이 안된 편지 속에서 용서와 희망과 희소식을 꺼내 들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들은 이미 절망과 재난에 질식 당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삶의 심부름에 나선 이 편지들이 그를 죽음으로 질주케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작품 말미의 글에 공감이 가는 이유 이기도 하다.
“헨리 제임스”의 [진품]과 “셔우드 앤더슨”의 [달걀]은 소시민의 애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세와 성공으로 불리는 미국의 꿈으로 인한 삶이 왜곡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별로 소유한 것이 없는 사람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단단히 붙든다. 삶을 너무 실망스럽게 만드는 사실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라는 작품속 주인공의 말은 그래서 더 가슴을 막막하게 한다. “살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는 여성문제에 대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남편과 오빠가 외과의사인 주인공은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주인공에게 일시적 신경성우울증이란 처방을 내리고,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그에 맞는 집을 얻고 처방에 따라 움직이도록 한다. 하루 종일 방에서 벽지만 바라보는 주인공은 누렇게 변색된 벽지 속에서 여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이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르고.. 자신은 정상이라고 생각 하면서, 서서히 미쳐간다. 환자를 위한다는, 그녀를 안정을 위해 완벽하게 처방했다는 그들의 독선에 그저 미쳐갈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이 안쓰럽기만 하다.
“찰스 체스넛”의 [그랜디썬의 위장]은 근대초기 상류계급의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흑인노예에 대한 정형화된, 어찌 보면 신념 같은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노예를 도망치게 하는 일 조차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그리고 방관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틀을 깨뜨릴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스티븐 크레인”의 [소형 보트]는 극한상황에서 인간들의 처연한 모습과 소중한 우애를 그리고 있다. 저자가 30시간이 넘게 표류했던 실제사건을 소설화 했다는 이 작품은 파괴적인 자연의 힘과 인간사이의 배려와 격려가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감동 있게 보여준다.
그 밖에도 책에 수록되어 있는 심리공포물과 탐정추리물의 대가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또한, 남부사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 미국의 근대적 삶의 표리부동함을 짚어낸 것으로 알려진 “너 새니얼 호손”의 [젊은 굿맨 브라운], 그리고 “마크 트웨인”의 [켈레바래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가 실려있다.
'창비세계문학 - 미국' 편에 수록된 단편 소설은 모두 국내에 이미 번역 소개된 적이 있는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원문으로든 번역으로든 읽어 본 경험이 있는 소설은 고작 6편이더군요. 「젊은 굿맨 브라운」, 「검은 고양이」, 「필경사 바틀비」, 「에밀리에게 장미를」, 「캘레바래스 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 「진품」 이렇게요. 이 소설들도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읽어보니 예전에 이 소설들을 읽은 게 맞나 싶을만큼 새로운(?) 느낌이라, 괜시리 부끄러웠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11편의 단편 소설에서 「누런 벽지」, 「그랜디썬의 위장」, 「소형 보트」, 「달걀」, 「겨울 꿈」은 이번에 처음으로 접한 소설들입니다. 장편에 비해 단편 읽기가 가진 장점이 비교적 쉽게 작품 전체를 다시 읽기(read again)가 가능하다는 것이라서, 침대 곁 머리맡에 두고서 기회 될 때마다 한 편 씩 되새겨 볼 작정입니다. 특히, 「그랜디썬의 위장」은 얼마 전에 읽어 본 필립 로쓰의 『휴먼 스테인』의 주인공 콜먼의 비밀(?)과 비슷한 설정이어서 더욱 흥미가 생겼습니다. 위장(passing)에 얽힌 역사-사회적 배경에도 관심이 생겨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살펴볼 생각입니다.
이 리뷰 아닌 리뷰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필경사 바틀비」의 표현 하나를 붙들고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의 갈래를 내려놓는 것으로 만족할까 합니다. 어떤 표현인지는 소설을 읽어본 분들이라면 다들 짐작하시겠죠. 네, 바로 이 표현입니다.
I woule prefer not to.
역자인 한기욱은 해설에서 문장 하나를 옮기는 데에만도 몇 년 동안 고심했다고 밝히더군요. 그 고심이 헛되지 않게 이 책은 수려하게 읽힙니다. 그래서 이 문장을 두고 보태는 얘기가 번역의 1차적인 옮고 그름을 따지려는 게 전혀 아니란 걸, 미리 밝혀도 좋겠네요. 저는 소설을 읽고 길게 여운이 남는 부분을 번역에 대한 고찰을 발판삼아 더 밀고 나가보려는 것 뿐이랍니다.
관련 논의에 대한 배경지식이 얕아서 저는 바틀비의 이 문장을 두고 어떤 해석들이 그간 오갔는지 잘 알지는 못합니다. 대충 네그리와 하트가 『제국』에서, 최근에는 지젝이 『시차적 관점』에서 이른바 '바틀비의 정치학'을 두고 논의한 것 정도가 전부인데, 그것도 제가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꽤나 어려웠습니다.
저는, 일단, 'I would prefer not to'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지젝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래서인지 『시차적 관점』에는 이 표현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라고 다소 직역에 가깝게 옮겨져 있습니다. 그저 제 느낌(?)으로는, 이 번역이 직역투의 투박함 말고도 놓치는 게 있는 거 같은데, 그게 뭐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
어쨌든 이 표현은 '그렇게 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가 아니라는 얘기이지요. 이것이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는 1단계, 준비 단계로서의 부정, 저항, 또는 항의로 자리매김된다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는 꽤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수동적(?) 부정에 대한 상대의 반응 - 가령, 'Ah, then, what might you prefer?'같은 질문 - 에 대한 적절한 응대까지 예비하고 있으니까요. I prefer to .. 라고 말하면 되겠죠.
하지만, 이 표현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아가는 작업에서 극복해야 할 출발점이 아니라, 지젝의 견해처럼 새로운 대안적 질서를 형성하는 기준과 근거로 삼을 경우에는 prefer에 담긴 적극성과 능동성이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한보희가 이 표현을 '저는 안 하는 쪽으로 하겠습니다'라고 옮겨 놓은 것을 보았는데, 이 경우에는 이렇게 옮기는 게 좀더 적절한 듯도 싶네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저는요? 그야 당연히 모릅니다. 그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세웠다 부쉈다 지었다 지웠다 하는 게, 아니 그렇게 만드는 게 바로 이 소설의 힘일 테지요. 그러다보면 언젠가 이 소설의 가능성의 중심을 열어 뭔가 그럴듯한 번역을 얻을 지도 모르고요. 어설퍼서 꺼내놓자마자 부끄러워지지만 '그렇게 안 했으면 싶습니다', '그렇게 안 하는 게 더 좋습니다', '그렇게 안 하는 게 낫겠습니다' 등등.. 그만 할게요.
소설 하나하나가 남겨놓은 감상을 잘 묵혀 리뷰를 적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네요. 하지만 그 시간들을 품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좋은 소설이고, 그 소설들이 모여 있는 이런 선집은 새로운 상상력의 인큐베이터가 될 것입니다. 그런 기회를 준 이 책에 지금은 우선, 고맙다는 말을 먼저 남기고
곧 돌아오기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겠죠?
좋은 번역이란,
바로 이런걸 말하는게 아닐까요?
마치 국내 작가의 고전을 보는것 같았습니다.
외국 고전을 읽을 때, 고전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게
흔히 느끼는 번역인데요
이런 좋은 번역으로 좋은 작품들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자분이 평생에 걸쳐 번역을 해봐야 얼마나 많이 하겠습니까?
이런 책은 놓치지 말고 꼭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