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10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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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312g | 133*200*20mm |
ISBN13 | 9788954648523 |
ISBN10 | 8954648525 |
발행일 | 2017년 10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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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312g | 133*200*20mm |
ISBN13 | 9788954648523 |
ISBN10 | 8954648525 |
MD 한마디
이름, 학력, 직업, 가족 뿐만 아니라 성별까지 속인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거짓말투성이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한 여자. 남편의 행세를 하다가 사라진 그를 소설가 '나'가 찾는다. 그러나 비밀없는 자가 과연 있을까? 틈을 헤집는 정한아 소설가의 싸늘한 신작. - 문학 MD 김유리
1. 난파선 _007 2. 우울증에 걸린 피아니스트 _033 3. 보그 _057 4. 구인광고 _079 5. 위조 증명서 _105 6. 노인과 바다 _139 7. 은신처 _164 8. 바다 밑바닥의 온도 _189 9. 가짜 거짓말 _208 10. 제로의 가능태 _236 작가의 말 _254 |
‘안나’라는 드라마를 보고 나서 원작이 궁금해져 읽게 된 책이다. 드라마는 매우 흥미진진했지만 전개 속도가 너무 빨라 아쉬웠다. 그래서 원작 소설을 읽어 봄으로써 생략된 내용도 알고 싶었고, 캐릭터를 더 자세히 이해해 보고도 싶었다. 영상화된 작품을 먼저 보고 책을 읽을 때 흔히 그렇듯, 이 작품 또한 유미라는 캐릭터가 드라마에서 같은 캐릭터를 맡았던 배우 수지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있음에도 소설은 매우 재미있게 읽혔다. 비슷한 듯 다른 소설의 설정을 발견하는 것도, 드라마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만나는 것도 숨은 스토리를 발견하는 것처럼 느껴져 재미있었다.
【 아버지와 엄마. 나는 그들과 한집에서 이십 년간 함께 살았지만 두 사람의 진짜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 평범하게 걷고 있는 길 위의 풍경처럼 그들의 결혼생활도 그랬다.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 (p. 133)
유미의 주변인들은 유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제대로 그녀의 정체를 아는 이는 드물었다. 그런데 유미처럼 큼직한 거짓말들을 내어놓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은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도 순도 100퍼센트로 솔직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소설 밖 우리의 관계도 어느 정도는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내 가족, 친구들, 가까운 사람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모습은 진짜 그들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내게 얼마나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었을까. 나는 또 그들에게 얼마나 나를 보여주었던가.
대학생은 아니지만 S 여대의 인기 기자가 된 유미. 피아노 전공자는 아니지만 피아노 학원에서 인정받는 강사가 된 유미. 대학교 졸업장은 없지만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이어 전공 강의까지 맡으며 인기 있는 교수가 된 유미.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거짓 위에서 시작했지만, 주변인들은 그녀의 능력을 칭찬했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했으며, 그녀를 당연하게도 진짜라고 믿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리 쉽게 유미를 진짜라고 믿었을까. 그 이유는 그녀가 가짜와 진짜 사이의 간극을 메운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이 진짜에게서 바랬던 모습이지만 찾기 어려웠던 것들을 유미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더욱 진짜로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글쎄요, 그 대답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소설을 쓰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말은 너무 가볍고 환해요. 소설가로서 문장을 만들며 이십 년을 살아왔지만, 저는 한 번도 그런 종류의 기쁨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행복은커녕 늘 불안함과 회의감에 젖어온 세월이었어요. 삶은 늘 곤궁했고, 그럴듯한 성취도 없었고, 애를 쓴 만큼의 반도 보상받지 못했죠. 그런데도 왜 이 짓을 계속하고 있느냐. 그건 제가 이 일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에요. 결국 세계 속에서 그 무기력함, 무능함을 자각한 사람이 아니고는 평생 작가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입니다. 】 (p. 198)
문인 협회의 한 소설가는 가짜 소설가 행세를 했던 유미에게 왜 소설을 쓰느냐고 물었고, 유미는 대답하길 꺼리다 ‘소설을 쓸 때 자신이 누구보다 행복하기 때문’(p.198) 이라고 대답한다. 소설가는 유미의 대답을 듣고는 진실되지 않다고 느꼈다며 위의 말을 이어서 늘어놓았다.
삶 역시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찰나의 순간 잠깐씩 맛보는 것일 뿐, 대다수의 시간은 이처럼 불안하기도 회의감이 들기도 하면서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가는 것 아닐까. 삶은 원래 이런 것인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나만 행복하지 않다 여기며 내 손안에 없는 행복을 좇았던 것이 유미의 문제였던 건 아닐까.
앞서 왜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유미의 대답은 그동안 왜 거짓말을 해왔는지에 대한 대답과도 연결된다고 느꼈다. 유미의 지난 행적들을 보면 그녀는 거짓말을 통해 특별히 높은 지위를 얻으려 했던 것도, 많은 돈을 얻으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행복을 잡으려고 매 순간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리석은 방법을 택했던 것 같다. 그것이 진실위에 놓인 행복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 같은 것이라 해도 말이다. 어쩌면 유미는 소설가처럼 자신이 이 일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 나는 늘 거짓말쟁이와 사기꾼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들이 꾸는 헛된 꿈, 허무맹랑한 욕망이 내 것처럼 달콤하고 쓰렸다. 나는 그들을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로 그들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착각, 혹은 간극 속에서 이야기를 쓰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 (p. 254, 『작가의 말』 중에서)
드라마로 먼저 만나고 소설을 읽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매우 재미있게 읽혔다. 두 작품은 유미라는 주인공이 같고 일부 비슷한 흐름이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드라마보다 소설이 더 씁쓸한 느낌도 들고,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느껴져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 두 작품은 결말도 전혀 다르니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원작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능하면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맞는 것일까? 생각할 때가 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나 어머니. 그 죽음을 정리하면서 이런 모습이 내 부모님이 맞는가? 싶은. 그런 책을 만나면 다시 내 인생을 뒤돌아보게 된다. 생각했던 내 지인의 모습과 또 다른 사람들이 증언하는 지인의 모습. 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가족이 생각하는 내 모습과 내 지인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 그리고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 세상 사람 모두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확실히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는 것 같다. 괜찮은 사람으로 나이 먹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까.
칠년 동안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소설가‘나’가 있다. 어느 날 신문에서 광고를 발견한다.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소설 일부가 실려 있다. 이 광고를 읽던 중 나는 충격에 빠진다. 그 소설은 바로 내가 데뷔하기 전에 문예공모에 제출했던 작품으로 공모전에 낙선한 뒤 잊고 지낸 것이다. 신문에 광고를 더 이상 싣지 말라고 연락하자 나에게 전화가 온다. 육 개월 전 실종된 남편을 찾고 있는 여자는 ‘진’이었다. 진은 그녀의 남편이 광고 속 소설을 쓴 작가 행세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남편은 거짓투성이의 사람이었다. 남편의 이름은 이유미. 서른여섯 살의 여자다. 진에게 알려준 이름은 이유상이었고, 그 전에는 이안나였다. 그리고 육 개월 전 이 책과 일기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설가인 줄 알았던 남편은 여자였고, 진을 만나기 전부터 거짓으로 살아왔다. 이유미는 대학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만 교지 편집기자로, 피아노과 교수로, 자격증 없는 의사로 활동했다. 세 남자의 부인이자 한 여자의 남편을 산 이유미. 소설가 나는 이유미가 살아온 인생을 추적하며, 자신이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란 예감에 사로잡히는데...
내가 나를, 내가 타인을 전부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점점 그런 부분에 자신이 없어진다. 20년 넘게 제일 친한 친구로 알았던 그녀의 진짜 마음을 알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벌써 10년 가까이 지났다. 그전까지는 적어도 내 친구는,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내 친구는 나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진짜 마음은 숨기고 아닌 척 곁에 있어 왔던 것이다. 이후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 당시 곁에 있던 다른 지인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사람을 오래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아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는 모양이다. 사람의 속마음이 다 보인다면 그 누구도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을 거라고. 적당한 하얀 거짓말이 그래서 필요한 거라고.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미를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왜 나는 그녀가 어리석게 느껴졌을까? 영원한 거짓말은 없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그로 인해 더 큰 아픔이 찾아온다. 만약 거짓말을 해명하거나, 하게 된 동기를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이 적절했다면 이유미는 편안했을까? ‘그들과 나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모른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하면서 그 자리에 함께 머물고 있었다. (250)’나를 모른다는 것. 나를 모른다는 것에 안도할 때가 있다. 그래서 이 글이 마음 안에 들어왔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그들도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그 공간이 편안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인생.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혹 우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인지 반성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