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12월 13일 |
---|---|
쪽수, 무게, 크기 | 216쪽 | 330g | 145*210*20mm |
ISBN13 | 9788954649346 |
ISBN10 | 8954649343 |
발행일 | 2017년 12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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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16쪽 | 330g | 145*210*20mm |
ISBN13 | 9788954649346 |
ISBN10 | 8954649343 |
1부 율의 이야기 … 007 2부 철수의 이야기 … 069 3부 오수의 이야기 … 129 4부 남은 이야기 … 167 심사평 … 191 수상작가 인터뷰 | 정용준(소설가) … 202 수상 소감 … 213 |
‘알제리에는 네 명의 유령들이 산다.’로 시작된다는
마르크스의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 열심히 검색해봤다. 마르크스가 정말 이런 희곡을 썼는지.. 소설이 허구라는 것을 깜박한
죄로 머리가 아팠고 손이 고생을 했다. 이 희곡이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임을 알게 되자 비로소 작품의
내용이 머리에 들어왔다. 그전까지는 이 소설이 장편소설이 맞는지, 작가는
도대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헷갈리기만 했다. 가볍게 읽겠다고 선택한 소설이 머리를
쥐어짜게 만들고, 종국에는 묵직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소설은 4부로 되어있다. 각부마다 화자가 다르다. 화자가 하는 이야기도 다르다. 그들 사이에는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만이 공통분모로 있을 뿐이다. 누가 언제 왜 썼는지 모를 희곡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서로 겉돌던 4부는
연관이 되어 비로소 하나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율의 이야기. 율과 징, 태명이다. 은조와 현가라는
버젓한 이름이 있음에도 태명으로 불린다. 율의 태명은 징의 어머니가 지어주었고, 징의 태명은 율의 어머니가 지어주었다. 징의 이름은 율의 아버지가
지어주었고, 율의 이름은 징의 아버지가 지어주었다. 율의
어머니가 징의 아버지에게 징의 어머니를 소개해주었고, 징의 아버지가 율의 어머니에게 율의 아버지를 소개해
주었다. 복잡하다. 무언가 삼류 연애소설의 조짐이 보인다. 율은 아버지가 제주도 민박집에서 급체로 죽은 후 ‘율 수선’이라는 수선집을 차려 운영하고 있다. 반년이 지난 후 아버지가 죽은
제주도를 찾는데 그곳에서 정신착란증을 겪는 징의 어머니를 만난다. 징의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율. 징의 어머니 배낭에는 제본된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희곡집이 들어있었다.
철수의 이야기. ‘율 수선’의 율에게 반한 연극연출 지망생 철수.
그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연극계의 전설로 알려진 탁오수를 찾아간다. 그가 알기로 탁오수는
연출로, 극본으로, 이십여 년에 걸쳐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연극을 백 번 무대에 올렸고, 마지막 공연 뒤 연극계를 완전히 떠나 지금은 제주도에서 ‘알제리’라는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극본을 보고 싶다는 철수의 말에 연극과 관련된 대화가 오가고 철수는 술에 취한다. 다음날 ‘알제리’를 다시
찾은 철수는 탁오수로부터 ‘율 수선’의 영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영희는 탁오수 친구의 딸로 탁오수는 친구가 죽은 뒤 ‘율
수선’을 영희에게 맡겼다. 율은 제주도로 내려와 아버지의
후배인 탁오수와 함께 오 년째 ‘알제리’를 운영하고 있다.
오수의 이야기. 탁오수는 철수에게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르크스가 알제리에서 요양 중 썼다는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 고등학교 프랑스어 교사인 박선우가 1983년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헌 책방에서 그 희곡집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그 희곡집을 필사하여 국내로 가져와
20여부를 제본했다. 1984년 박선우와 그의 친구 여섯
명이 구성한 독서클럽 칠현회는 반국가단체를 조직한 혐의로 전부 구속되었다. 수괴는 박선우의 선배로 방송국
부장으로 있는 공산주의자 박재기였다. 증거는 제본된 마르크스의 저작 <알제리의
유령들>이었고, 박선우가 프랑스에서 본 그 책은 북한에서
발행된 한국어판이었다. 대공분실 지하실에서 50여일을 보낸
그들, 네 명은 실형을 선고받고, 네 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후 재심에서 그들 모두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남은 이야기. 율은 철수로부터 소포를 받았다. 영희가 쓴 소설 <알제리의 유령들>이었다.
지은이는 율과 징의 부모 네 명이었다. 징과 율의 가족을 둘러싼 과거사건이 그 책에는 쓰여
있었다. 가벼운 장난으로 시작된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 징의 아버지와 율의 어머니가 쓴 그 희곡을 율과 징의 부모들은 탁오수를 끌어들여 후배들을 골려 주기
위해 마르크스저작이라는 허구로 만들어냈다. 이 허구가 그들의 운명을 옭아맸다. 비로소 각 장의 이야기들이 서로 앞뒤가 맞아간다. 결국 각각의 이야기는
<알제리의 유령들>이라는 가상의 희곡의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장난으로 시작된 허구는 당사자들의 삶 만을 옭아매지는 않았다. 그들의 아들딸인 율과 징도 그 허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징은 이 땅을 떠났고, 율은 남아서 그녀에게 허용된 할 수 있는 일만 했다. 먼 옛날 소설 속의 이야기 같다. 사실 [알제리의 유령들]이란 소설 속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뒤섞인 사실과 거짓은 거대한 권력 앞에 서면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뒤늦게나마 밝혀내는 일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소설은 지나간 시절 우리모두에게 들려주는 때늦은 진혼곡같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진한 여운이 남는 묵직한 소설 한 편을 읽었다.
*
이런 말은 좀 이상한 것 같지만
그냥 전부 가짜같이 느껴졌다
인물들의 태도 말 상황 이야기
어떤 부분이 좋다는건지
잘 모르겠다
*
너를 만나면 나는 너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게 될까. 너는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는 것. 나를 만나면 너는 나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게 될까. 나는 모르지만 너는 알고 있는 것. 나의 시간들. 너의 시간들. 그리고 모두의 시간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그것은 영영 누구도 알지 못할 이야기가 되는 걸까. 그러면 그것은 애초에 없었던 이야기가 되는 걸까.
처음 1부 율의 이야기를 보고 뭐지, 했다. 처음 이야기를 보고 그렇게 어리둥절하다니 말이다. 율과 징은 친구고 율과 징의 부모도 친구 사이로 친했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어느 날 율의 아버지는 책이 무섭다면서 집에 있는 책을 모조리 태우고 어딘가에 갔다 돌아온 율의 엄마는 두해 뒤에 암으로 죽고, 세해 뒤에는 징의 아버지가 암으로 죽는다. 율 아버지는 제주도에서 만두를 먹다 급체로 죽고, 징 어머니는 징 아버지가 죽은 뒤부터 기억이 오락가락했다. 율 엄마와 아버지가 자주 싸운 적도 있었다. 율과 징 이야기 같기도 하면서 율과 징 부모 이야기 같기도 하다. 두사람 부모는 왜 그렇게 된 걸까 했다.
다음 2부는 철수가 하는 이야기다. 뜬금없이 철수라니 했다. 읽다보니 율이 한 ‘율수선’이 나와서 철수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율인가 했는데 그건 율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철수와 율은 아무 상관없지 않았다. 여기에는 소설 제목과 같은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이 나온다. 글과 연극도 여러 사람을 잇는 것이구나. 책속에 나오는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도 알쏭달쏭하다. 어떤 두사람이 서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나오고, 율과 징 부모는 서로의 아이 태명과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걸 먼저 해서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에도 그런 게 있을까. 탁오수 친구 진정수는 딸한테 엄마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내가 딸을 낳다가 죽어서 딸한테 다른 이름을 지어주면 죽일 것 같아서였다. 이름 이야기 중요한 것 같은데 어떤 뜻으로 한 말인지 잘 모르겠다. ‘율수선’에서 일하는 사람 이름은 영희다. 영희가 진정수 딸이다.
3부는 마르크스가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을 쓴 이야긴데 정말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건 80년대에 진짜가 되어버린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장난으로 한 이야기가 진짜가 되던 때도 있었다. 율과 징 부모한테 있었던 일이 그랬다. 80년대에는 나라에서 읽지 못하게 한 책도 있었다. 그런 걸 읽으면 잡혀갔다. 읽지 못하게 하면 더 읽고 싶은 게 사람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말한 독서모임은 그런 뜻으로 만든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책이든 읽고 세상을 잘 보려 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그런 사람 많았을 거다. 지금이라고 없지 않겠다. 예전에는 읽고 말하는 자유가 덜했고 지금은 조금 낫다. 그런 시절에 거기에 맞서 싸운 사람이 있어서 지금과 같은 세상이 왔겠다. 지금도 여전히 말을 제대로 못할 때 있겠지만.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는 건 재미있다. 실제로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이어도 깊이 알아보면 상관있는 사람일 거다. 이 소설에서 중심에 있는 건 연극일까,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일까. 희곡이겠다. 나중에는 영희가 이 제목으로 소설을 쓴다. 그리고 이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이건 영희가 쓴 소설과 같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갑자기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 건 그걸 사랑해서다는 말이 생각난다. 뜬금없는 말을. 희곡 ‘알제리의 유령들’에 나오는 유령 넷은 율과 징의 부모 넷일지도 모르겠다. 알제리라는 술집에 갇힌 네 유령은 80년대에 겪은 일에 갇힌 율과 징의 부모 같다. 그게 아닐 수도 있지만. 율과 징이 부모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부모가 겪은 것과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주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나을 것 같다. 역사도 비슷하겠다. 알려고 해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
어떤 책이든 읽어도 괜찮은 시대에 살아서 다행이다. 이런 때는 어떤 게 괜찮은지 잘 알아봐야 할 텐데 그건 아직 힘들다. 어쩌면 그건 언제까지고 해야 하는 건지도.
희선
☆―
“모든 이야기에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네. 같은 곳에서 같은 걸 보고 들어도 한사람 한사람한테 들어보면 다들 다른 이야기를 하지.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일도 어떤 땐 사실이 아닐 때도 있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 채 겪었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거짓이 사실이 되는 경우도 있지. 누군가 그걸 사실로 믿을 때. 속았을 수도 있고 그냥 믿었을 수도 있고 속아준 것일 수도 있고 속고 싶었을 수도 있고. 한마디로 경우의 수가 아주 많아. 애초에 자네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거야. 그렇다면 애초에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니 판단을 안 할 건가?” (163~164쪽)
“자네가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다는 거, 알아내겠다는 거. 그게 바로 진실이네.” (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