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일찍 해미시 맥베스는 경찰서 문에 문의는 시노선의 맥그리거 경사에게 해 달라는 안내문을 내다 걸었다. 그는 랜드로버 경찰차를 차고에 넣고 문을 잠근 다음에, 타우저에게 목줄을 채우고 짐 가방을 들었다. 그때 경찰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마을의 누군가가 휴가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기로 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점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라면 스캐그에는 가지 않겠소, 해미시.”
해미시는 미신적인 공포가 무시무시하게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왜요?”
“내 눈에 죽음이 보이거든. 죽음이 보이고 곤란에 처한 자네가 보여, 해미시 맥베스.”
“영감님 헛소리나 듣고 있을 시간 없네요.” 해미시는 날카롭게 쏘아붙이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선 건너편에서 앵거스는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를 듣고서는 미소를 지었다. 나를 사기꾼이라고 했겠다, 해미시 맥베스? 뜨거운 맛을 봐야지! --- p.21∼22
“밥, 제발.” 아내가 소곤거렸다.
“제발 뭐?”
“알잖아요.” 그녀가 우려하는 눈으로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다 듣잖아요.”
“들으라지. 나는 당신처럼 이런저런 사소한 걱정에 사로잡혀 사는 교외의 그저 그런 인간이 아니야.” 그의 목소리가 높은 가성으로 올라갔다. “이웃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나 걱정하고 있지는 않는다고.”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쉬지 않고 주절댔다.
절제하고 자제한다는 자부심을 풍기는 엄격한 거너리 양이 결국은 건너편에 앉은 껑충한 붉은 머리 남자에게 입을 열고야 말았다. “저 작자 잔소리꾼이네요.”
“그러네요, 최악의 부류예요.” 해미시가 맞장구를 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거너리 양이 한결 누그러졌다. “해리스 부인 말이 맞아요.” 그녀가 말했다. “차가 입맛 떨어지도록 묽잖아요. 햄은 지방 덩어리가 대부분이고, 케이크는 극도로 불쾌해 보이고. 여기 싸구려네요……”
“스캐그 마을에 피시앤드칩스라도 파는 가게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해미시가 희망을 품고 말했다. “이따가 거기까지 걸어가 볼까 싶어요. 제 개가 피시앤드칩스를 좋아하거든요.”
“아, 개가 있어요? 종이 뭔가요?”
“타우저는 별게 다 섞인 놈이랍니다.”
거너리 양이 흥미를 보였다. “타우저! 요즘 세상에 개한테 타우저라는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더 따지고 들자면 로버도 그렇고.”
“약간 장난처럼 시작된 거예요, 그 이름을 지어 준 건요. 그러다 저 가여운 놈은 그 이름에 꼼짝없이 매이고 말았죠.”
“직업이 뭔가요, 맥베스 씨?”
잔소리꾼의 목소리가 잠깐 끊겼다. 식당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저는 공무원입니다.” 해미시가 말했다.
--- p.29∼30
브렛네 아이들은 튀긴 달팽이에서 구운 아기까지 끔찍한 메뉴를 상상하기 시작하더니, 킥킥거리다가 바닥을 구를 지경이 되었다. 도리스가 웃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여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해미시는 그녀가 더 젊었을 때는 퍽 예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 옆을 걷고 있는 앤드루 비거는 그녀와 함께 있어서 즐겁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넌지시 그들을 보던 해미시는 불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재앙을 불러 모으는 재료를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잔뜩 짓밟힌 아내, 고약한 남편, 다정하고 괜찮은 남자, 이 모든 것을 섞으면 무엇이 나오겠는가? 살인, 머릿속의 목소리가 말했다. --- p.48∼49
해미시는 절로 좋아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한 무리에게 행복한 휴가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정말 별로인 셰릴과 트레이시에게조차. 그들은 굽이 매우 높은 하이힐을 신고 뻣뻣한 황새처럼 춤을 추었다. 가면을 쓴 듯 새하얀 화장과 보라색 아이섀도 아래 가려진 얼굴이 생기를 띠었다.
이것이 그들이 함께 보낸 최후의 행복한 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의 마음속을 추호도 스쳐 가지 않았다. 밤이 가기 전에 그 자신이 살인으로 이어질 일련의 일을 촉발할 장본인이 될 거라는 생각도.
--- p.70
“밥 해리스는 혐오스러운 인간이었어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맞아요, 그랬지.” 해미시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갈 권리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트레이시.”
그녀가 겁에 질린 커다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화장하지 않고 젤을 바르지 않은 그녀는 어리고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지옥을 믿나요, 해미시?”
“그럼요.” 해미시 맥베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사후 세계의 지옥은 아니에요, 트레이시. 우리는 모두 지옥 속에 살고 있어요. 이런저런 식으로, 지금 바로.”
---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