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이 보내는 사랑의 인사
도서1팀 김유리 (asalighter@yes24.com)
당신의 열세 살은 어땠나요? 기억이 어렴풋하죠. 중학생이라기엔 좀 어리고, 초등학생 저학년 동생들과 같은 취급 받기는 뭔가 억울한, 그런 열세 살. 『열세 살의 여름』은 그 무지개 같은 시절을 그린 만화입니다. 누구에게나 ‘열세 살’은 존재했기에 훌쩍 자랐어도, 아직 좀 어려도 읽을 수 있어요.
1998년 초등학교 6학년생 혜원이는 여름방학을 맞아 아버지가 있는 부산으로 놀러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우연하게 산호라는 남자 동급생 친구와 만납니다. 같은 교실에 있어도 이야기를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는 둘이 서로를 마주하게 된 첫 순간. 혜원은 처음으로 그를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다 서울로 떠나기 전, 불어온 바람에 놓쳐버린 챙모자를 산호가 바다에서 건져주게 되죠. 혜원의 얼굴은 빨개집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초등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2학기가 시작됩니다.
늦여름이 끝나가도 혜원은 단짝인 진아와 주고받는 교환일기에서조차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못합니다. 혼자서 끙끙 첫사랑의 열병을 무화과 익듯 보내게 되는데요. 설사가상으로 인기 많은 반장 우진이와 짝이 되어 오해까지 받습니다. 과연 혜원은 산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요?
20세기의 마지막 해를 기억하는 세대들에게 『열세 살의 여름』은 반가운 만화입니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포스터도 스치듯 지나가고, 비디오 대여점, 학교 앞 떡볶이 가게, 교환일기장, 방방이 혜원이의 공간에 등장하니깐요. 불과 20여넌 전에는 우리의 일상이었던 것들 말입니다. 이제는 찾으려 노력해야 볼 수 있는 희귀한 것들이 되었죠. 우리는 혜원이 되어 그곳을, 그것을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물론 이제 어른이 되어 보는 1998년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집을 지키고 있는 아빠의 모습은 대량실직자를 낳았던 imf의 여파였고, 떡볶이 가게가 어느 날 사라지고 편의점이 생긴 건 임대료 때문이라는 것을요. 우리는 만화 중간 중간에서 잃어버린 열세 살의 감성도 발견하지만,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혜원이의 계절을 함께 겪게 됩니다. 벌써 애틋한 단짝과도 멀어지게 되는 겨울이 맞이하죠. 그래서일까요. 혜원이가 마지막으로 연주하게 되는 피아노곡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 입니다. 풋풋한 짝사랑도, 오래 정들었던 초등학교 친구들과도, 이젠 더 이상 길 수 없는 머리와도 〈사랑의 인사〉 를 나눌 때입니다. 처음은 천천히 스며들듯 ‘평화롭게 연주하지만, 끝에는 좀 슬퍼지는’ 〈사랑의 인사〉 처럼 혜원과 함께 우리는 열세 살을 떠나 보냅니다.
열세 살이 그리워진다면, 그리고 그 시절의 간지러운 비밀을 조우하고 싶다면 꼭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열세 살의 여름』을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 읽고 난 뒤의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슬플 수도 있고, 짠할 수도 있고, 그저 환할 수도 있겠네요. 한 가지 감정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모든 감정이 처음이고 어설펐던 열세 살로 당신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