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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와 인간

바이러스와 인간

: 코로나19가 지나간 의료 현장에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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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5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300g | 135*200*13mm
ISBN13 9788967357733
ISBN10 8967357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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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중국에 직접 왕래하지는 않더라도 중국에 다녀온 사람과 접촉하는 것까지 치면 나는 일반인에 비해 감염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건너와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검사도 못 한 채 약만 받아갔던 중년 여성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이 모든 이와 접촉하는 사람이고, 바이러스에도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호흡기내과 의사가 아닌가. 물론 바이러스를 오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불편하지만(아픈 것과 오염된 것은 분명히 많이 다른데 말이다) 상황을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21

예민한 피부를 가진 나는 마스크를 쓰면 코와 뺨이 가렵다. 근질거리니 자꾸 벗었다 썼다를 반복하는데, 그렇게 얼굴에 손이 가면 차라리 안 쓰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난 진료할 때 마스크를 거의 쓰지 않았다. 내 진료실에 들어갔다가 나가는 바이러스성 환자가 하루에도 수십 명인데 난 어떻게 바이러스에 안 옮을 수 있었을까? 그 첫 번째는 모든 이에게 베풀어주시는 ‘중력’이라는 공평한 힘 때문이다. 중력은 크기에 상관없이 공평하게 작용한다. 몸살감기에 걸린 사람을 이부자리로 끌어당기는 그 중력이 바이러스에도 작용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인간도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코와 입에서 튀어나온 바이러스는 상승의 기회를 찾지 못한 채 추락하고 만다. 책상, 문손잡이, 핸드백, 쓰레기통 속 코를 푼 휴지 속으로 바이러스는 갇혀버리고 만다. 새로운 숙주를 찾아 침투하며 번성하고 싶은 원초적 본성을 지닌 바이러스에게 중력은 그야말로 쥐약이다. 숙주 없이 세상에 내팽개쳐진 바이러스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소멸하기 때문이다.
--- p.23

이런 때일수록 더 고차원적으로 지내보자고 몇 마디 적어본다. 피부! 바이러스는 절대로 피부를 뚫을 수 없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인가. 여러 층의 세포로 구성되고 맨 바깥층의 피부 세포는 죽은 채로 몸을 뒤덮고 있다가 스스로 탈락하여 자연으로 돌아간다. 스스로 돌아갈 때 함께 떨어져나가는 바이러스와 세균이 하루에도 수천억 개에 이른다. 눈빛! 눈빛으로는 절대 미생물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눈빛으로 누군가를 쏘아보면 싸늘한 감정만 되돌아올 뿐 절대 바이러스가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니 눈빛으로는 사랑스러운 감정만 전하자. 그리고 중력! 바이러스와 인간 모두 똑같이 중력장 안에 살아가는 미물들이다. 바이러스에 중력을 거스를 날개는 없다.
--- p.31

퇴근하는데 몸이 녹초가 되어버렸다. 선별진료소 당직을 맡은 날 체력이 쭈욱 빠지는 것은 육체적 노동보다는 달아오른 감정들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도 의사도 마찬가지다. 목소리 톤이 반음 올라갔던 지난 주에 비해 이번 주는 확실히 한 음이 통째로 올라간 느낌이다. 오후 들어서면서 인천 지역에 확진자가 늘었다는 소식이 한몫했을 것이다. 총 5명의 확진자가 있다고 한다. 환자 다섯 명에 목소리가 한 음이 올라갔다면…… 이렇게 계속 올라갈 수만은 없을 텐데 말이다. 언젠가 더 이상 우리 목소리가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이다. 날로 증가하는 확진 환자 수가 감소하기 시작할 때가 그 한 가지 경우이고, 또 하나가 있다면 목소리 톤을 올리는 것이 가져올 실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일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의 톤 역시 하나의 사회적 신호다. 누군가 톤을 높여 목소리를 내고 있으면 반드시 그쪽을 바라봐야 하고 필요하면 움직여야 한다. 톤이 극단적으로 올라간 ‘비명’ 역시 마찬가지의 신호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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