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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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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소설 결정판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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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272g | 128*198*20mm
ISBN13 9791191114010
ISBN10 119111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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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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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아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그는 기억했다. 말리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그리고 뜨거운 김 속으로 마르고 쇠약한 제 몸을 밀어넣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후텁한 공기 속으로 뭔가 차가운 것이 지나갔다. 그는 눈을 떴다. 욕실 안에 낯선 목소리가 앉아 있었다. 훗날 그는 그 순간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낯선 목소리 하나가 앉아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목소리는 그의 몸속으로 들어와 그의 것이 되지 못한 채 욕실 안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 「악어」중에서

열두 살의 나, 잔잔한 어느 호텔 수영장에 떠 있던 내 육체가 기억납니다. 나는 배영을 멈추고 두 다리를 물의 흐름에 내맡겼습니다. 검게 코팅된 물안경으로 창백한 태양과 위태로운 다이빙대가 보였습니다. 나는 한껏 숨을 들이마셔 허파를 부풀렸습니다. 가슴께가 수면 위로 떠올라 내가 더이상 가라앉지 않도록 해주었습니다. 두 귀는 물속에 잠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누군가가 내게 말했습니다. “너는 해파리야.” 나는 그때까지 해파리를, 투명한 몸을 흐느적거리며 물위를 떠다니는 그 이상한 바다생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한 마리 해파리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새의 울음소리를 완벽하게 흉내내는 폴리네시아의 원주민처럼, 자칼의 가면을 쓰고 행진하는 아마존의 어느 샤먼처럼, 인간은 어떤 순간 완벽하게 다른 존재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정말 인간은 삶의 전 순간을 오직 인간으로만 사는 것일까요?
--- 「밀회」중에서

그러면서 김부장은 또하나를 집어들고 천천히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또다른 미츠를 다시 입에 집어넣었다. 동규는 자기 속까지 미식거리는 느낌이었다. 벌써 네 개째였다. 그러나 김부장은 이런 일을 많이 겪어본 듯 태연했다. 김부장 앞의 식탁에는 비닐포장이 하나둘 쌓여갔다. 정확히 세보지는 않았지만 족히 여섯 개 이상은 먹어치운 것 같았다. 휘발유냄새 나는 수상쩍은 아이스크림을 하나둘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삼킬 수 있다는 게 실로 놀라웠다. 그쯤 되자 김부장의 안색도 처음 집에 들어설 때에 비해 확실히 어두워져 있었다. 아니, 어두워졌다기보다 결연한 기세가 엿보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미츠를 정말로 좋아하는 동규와 혜선이었지만 한꺼번에 세 개 이상 먹어본 적은 없었다. 이도 시렸고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금방 배가 더부룩해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음식과 달리 아이스크림은 그렇게 한몫에 많이 집어넣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 눈앞의 김부장은 마치 필름을 빨리 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예닐곱 개의 미츠를 먹어치운 것이었다. ‘이제는 그만!’이라고 동규와 혜선이 입을 모아 외치고 싶은 순간, 김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이스크림」중에서

“옛날에 내가 마코토 씨 좋아했던 거, 그거 알아요?”
말해놓고 보니 재난이었다. 평생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짓을 왜 긴자 한복판에서 저질렀단 말인가? 그는 내가 갑자기 자기 얼굴에 물이라도 뿌린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내 얼굴에서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두 손을 자기 무릎에 얹고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어쨌든 미안하게 됐습니다.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아니, 이 사람아, 내가 지금 사과받자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 마코토는 정말 내 용서를 받고야 말겠다는 듯,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뭐라도 말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 「마코토」중에서

출근길의 지하철에는 언제나처럼 사람이 많았다. 비에 젖은 우산들이 맹렬하게 비린내를 내뿜어대면 이에 질세라 승객들의 입에선 역겨운 군내가 풍겨나와 전동차 속의 공기는 탁해져갔다. 수경의 옆에 선 남자는 그 와중에도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채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남자는 자기가 들고 있는 축축한 우산이 지하철이 흔들릴 때마다 수경의 종아리를 건드리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수경은 애써 몸을 피해보지만 상황은 나아지질 않는다. 그녀는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러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려본다. 삶이란 별게 아니다. 젖은 우산이 살갗에 달라붙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자 한결 견딜 만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녀는 그 문구를 계속 되뇌었다. 삶, 젖은 우산, 살갗, 참고 견딘다. 삶, 젖은 우산, 살갗, 참고 견딘다……
--- 「로봇」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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