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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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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518g | 143*210*30mm
ISBN13 9791157955763
ISBN10 1157955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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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녀는 남편에게 등을 돌리고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서둘러 오가며 부딪치고 야단들이었다. 기관차가 증기를 내뿜는 소리가 그들에게까지 들려왔다. 리외는 아내의 이름을 불렀는데, 돌아보는 아내의 얼굴이 눈물에 젖어 있었다. “울지 말아요.”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눈물 젖은 두 눈에 살짝 경련하는 듯한 미소가 되살아났다. 아내는 심호흡을 했다. “이제 가보세요, 다 잘될 거예요.” 그는 아내를 꼭 껴안아주었다. 이제 플랫폼으로 내려온 그에게는 유리창 너머 그녀의 미소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제발 몸조심하도록 해요.”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중에서

쥐들의 사건을 가지고 그렇게 떠들어대던 신문도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쥐들은 눈에 띄는 거리에 나와 죽었지만 사람들은 방 안에서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문은 오직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만 문제 삼는다. 그러나 현청과 시청에서는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제각기 기껏 두세 가지 경우 정도만 알고 있을 때는 누구 하나 움직이려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두를 더해본다는 데 생각이 미치기만 하면 충분히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모두 합하면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불과 며칠 동안에 사망 건수가 몇 배로 불어났으니 그 해괴한 병에 깊이 마음을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진짜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리외와 같은 의사이지만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카스텔이 리외를 만나러 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밀려드는 죽음의 공포」중에서

오랑시의 봉쇄가 발표된 그 순간부터 페스트는 저마다의 일상을 누리던 생활에서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그때까지는 그 이상한 사건들로 생긴 놀라움과 불안에도, 시민들은 저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맡은 자리에서 그럭저럭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상태는 그대로 이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시의 출입문들이 폐쇄되자 그들은 모두가 같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으며 거기에 그냥 적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 개인적인 감정도 공포심이 더해지면서 저 오랜 귀양살의 주된 고통거리가 되었다.
---「‘드디어 봉쇄된 오랑시」중에서

페스트라는 저 꼭대기 지점에서 내려다보면 교도소장에서부터 말단 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을 선고받은 사람들이고, 아마 사상 처음으로 감옥 안에 절대적인 정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시당국은 그런 평등한 세계 속에 위계질서를 도입하려고 직무 수행 중에 순직한 간수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구상을 해보았지만 결국 헛일이었다. 계엄령이 발령되어 있었고, 또 어떤 각도에서 보면 그 간수들은 동원된 자들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죄수들이야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지만 군 관계자들은 그 일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일반 대중의 머릿속에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당연한 지적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
---「죽음의 묵시록」중에서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되어버린 두 손이 침대 가장자리를 살며시 긁적거리고 있었다. 그 손이 다시 올라가서 무릎 근처의 담요를 긁었고, 그리고 갑자기 아이는 두 다리를 꺾더니 넓적다리를 배 근처에 갖다 대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는 이때 처음으로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리외를 보았다. 이제는 잿빛 찰흙처럼 굳어버린 그 얼굴의 움푹한 곳에서 입이 벌어졌다. 그러더니 곧 한 마디의 비명과 호흡에 따른 억양조차 거의 없이 갑자기 단조로운 불협화음의 항의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한 마치 모든 인간들에게서 한꺼번에 솟구쳐 나오는 것만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살벌한 삶의 현장」중에서

멀리서 어두우면서도 불그레한 빛이 그곳에 불빛 찬란한 큰길과 광장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해방된 밤 속에서 욕망은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게 되었다. 리외의 발밑에까지 으르렁거리며 밀려오는 것은 바로 그 욕망의 소리였다. 어두침침한 항구로부터 공식적인 축하의 첫 불꽃이 솟아올랐다. 온 도시는 길고 은은한 함성으로 그 불꽃들을 반기고 있었다. 코타르도 타루도, 리외가 사랑했으나 잃고 만 남자들과 여자들도, 죽은 자들도, 범죄자들도 모두 잊혀졌다. 노인이 말한 대로였다. 인간들은 언제나 똑같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순진함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리외는 모든 슬픔을 넘어서 자신이 그들과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힘차고 더 긴 함성이 테라스 밑에서 발밑에까지 밀려와 오래도록 메아리치는 가운데, 온갖 빛깔의 불꽃 다발들이 점점 그 수를 더해가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희망의 날이 밝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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