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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사람아, 나도 저 흰 꽃이고 싶다 찔레 철새 모닥불 막차를 기다리며 대답 나뭇잎들은 쓴다 지하도 벚꽃 풀베기 배롱나무 꽃 중세의 성 창천蒼天 들녘에서 함박눈 거리에서, 광주에게 겨울 서시 사하라 슬픈 꿈 제2부 아잔타 가는 길 간이역 모래톱 숯불 사과 봄 둑 목련나무 아래서 카드를 대세요 사월 수채화 사랑의 기쁨 초원에서 웬 미친 여자를 보았어요 짧은 사랑노래 시월 포도주를 담갔다 진홍빛 기억 언저리 슬픔이 익다 아잔타 가는 길 제3부 휘파람을 날리며 밟고 지나가고 저 햇살길 따라서 가면 돌 언덕 위에 있다 - 도방일기 1 아니면 모레쯤 눈이 내리리라 - 도방일기 5 무장해제 - 도방일기 7 휘파람을 날리며 밟고 지나가고 그때 못 쓰던 詩, 서울역 하얀 풀꽃 밭이었니 맺힘, 저 저린 풀색 풀무치 한 마리 있지 그리고 가을입니다 우주의 문장 뜸이 드는 저녁 가을이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가는 저녁 어미가 울고 있네 제4부 초록 참회록 초록 참회록 손, 반역 봄 불현듯 왔다 가는 이별이십시오 겨울일기 1 - 나무 겨울일기 2 - 꽃가게 별 태풍주의보 비누 진달래 사랑이 아니고 이별입니다 범종梵鐘이 운다 갈대가 아니어라 손가락 열 개의 판화, 까미유 끌로델 제야에 서정抒情을 향하다 ? 통점으로부터 발아하는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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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문예바다가 어디로든 출구를 차단당한 길고 긴 이 코로나 시대에 독자들의 감성을 촉촉이 적셔 주리라 야심차게 기획한 우리 문단 유명 시인들의 서정시선집 그 열 번째, 안영희 시인의 『영원이 어떻게 꽃 터지는지』가 출간됐다.
문예바다 서정시선집 기획자이며 시리즈물 표지 디자인까지 담당했던 안영희 시인의 시 세계는 이른 봄 보드랍게 고른 흙에 씨앗을 넣고 때맞춰 거름과 물을 주며 가꾼 정형화되고 예견된 꽃밭이 아니다. 지상의 꽃과 나무들이 정원에서만 피고 자라던가. 한 번도 시인이 되겠다고 꿈꿔 본 적 없던 시인은 마흔을 넘어서면서 어느 날 문득 저층의 뜨거운 용암과 불길을 내뿜기 시작한 화산처럼 시 작업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안영희 시인은 유년기와 성장기에 겪은 생의 결핍과 아픔들이 자리한 어느 아물지 않은 통점이 건드려질 때 시가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무심코 지하철을 타고 가다, 산책길에 만난 개울가 자잘한 찔레꽃에서,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시가지의 불빛들에서, 포도주를 담그면서, 질그릇을 빚으면서, 개 밥그릇을 보면서, 파도가 달려드는 모래톱에서, 병실 창밖의 혹한을 견디는 나목들을 내다보면서 시인은 인생의 질곡을 이제쯤은 한 발짝 물러나 관조하고 있다. 시인이 판독한 슬픔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그것이 문득 독자들의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리라. 잠시 내 노래였던, 생애의 적막한 시편들을 흐르는 강물 위에 놓는다. 물결 따라 점점이 유등流燈이 되라고. ― 「시인의 말」 아무도 혼자서는 불탈 수 없네 기둥이었거나 서까래, 지친 몸 받아 달래 준 의자 비바람 속에 유기되고 발길에 채이다 온 못질투성이, 헌 몸일지라도 주검이 뚜껑 내리친 결빙 등판에서도 불탈 수 있네 바닥을 다 바쳐 춤출 수 있네 목 아래 감금된 생애의 짐승울음도 너울너울 서로 포개고 안으면 ― 「모닥불」 전문 * * * 우리는 왜 온전히 타지 못했을까 컥컥 숨차고 목이 아파 울었을 뿐 아무리 애 태워도 매운 연기만 피어올랐다 그때는, 무엇이 되기엔 너무 이른 준비 없는 열정, 생나무 가지들이었을까 햇빛과 바람의 거리 알 수 없는 눈보라의 골짜기 천만 개 밤을 헤매느라 그 피 삭고 물기 다 말려 꽃처럼 아름답게, 꽃보다 처절하게 불로 피어나는 몸 ― 「숯불」 전문 * * * 날 허락한 용문 행 기차 푸른 들판을 질러 덕촌2리 마을회관 앞까지 날 실어다 준 중원리 행 버스는 내 카드의 밥을 움푹 우움푹 덜어 먹는다 충전기에 카드를 넣으면 충전할 금액을 클릭하세요, 그러나 날 세상에다 내놓을 때 당신이 내게 충전한 금액이 얼마인지 나는 읽을 수 없고, 내 생의 잔량이 얼마큼인지 나는 가늠할 길 없으므로 살구꽃벚꽃매화꽃… 충전 탱탱한 생명들 꿈속처럼 천지간에 꽃잎 날릴 때에 혹은, 어느 깜깜한 밤 어느 낯선 비바람의 거리에 예비도 없이 나는 폐기될 것이다 빈껍데기가 되어 〈사용법〉 재충전 불가, 재생 불가함. 인 내 목숨은 한 장, 새로 발급하면 그만인 당신의 낱장 카드일 뿐이니까 ― 「카드를 대세요」 전문 * * * 우리들의 눈물에다 색색 물감을 풀기 시작하는 당신 ― 「봄」 전문 * * * 누가 지등紙燈을 걸고 있니 불 꺼진 기인 회랑에 누가 질주하다 넘어져 운 불과 바람의 사계 돌아봐, 돌아봐 하는 거니 부재인 듯 종일토록 머릴 박은 노동의 손을 씻으며 시나브로 지워지고 있는 이 저녁답 사람아, 나도 저 흰 꽃이고 싶다 가만한 향내 허기 지운 저 눈빛으로 문득 읽히고 싶구나 지친 귀로의 그대에게 ― 「찔레」 전문 * * * 새벽 산길을 가네 덜 떨친 잠과 더께 진 미혹의 유리창, 내 영혼 햇푸성귀 잎사귄 양 헹궈 올리며 샘물 찰박대던 새소리들 들리지 않네 나무들 울울창창하던 때 새들의 시간, 하고 내가 이름 불렀던 바로 그 시간대인데 없네, 지금 저 숲에는 그 이쁜 새들의 기척이라곤 없네 아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네 그대 떠나가 버린 빈숲, 우리가 그 누구의 생애에도 지, 나 가 는 철새임을 알지 못했네 ― 「철새」 전문 * * * 저물녘 성북천 둑길을 따라 걷노라면 돌담벼락에 찔레장미 자잘한 꽃송이들이 시나브로 내리는 어둠에 점점이 얼굴을 묻고 피어 있다. 유월의 흐드러진 장미덩굴 아래거나, 무심히 타고 가는 지하철 안이거나, 강 물결 위에 셀 수 없이 꽃등이 떠가던 이국의 어느 손 시린 새벽할 것 없이, 내 시들은 일순 쏘이듯이 싸아, 숨어 있는 내 안의 어느 통점들이 건드려질 때 터져 나온다. ‘어디에 그런 구석이 있어?’ 사뭇 편해 보인다는 내 겉모습만으로는 전혀 짐작도 못할 그곳으로부터 발아하고 떡잎을 올린다. 얼마나 깊은지 전혀 가늠이 안 되는 켜켜의 밀폐된 어둠을 익히며 한참을 들여다보노라면, 몇 길 폐우물 아득한 바닥에서 반짝! 얼굴을 드는, 덜 마른 백 년의 환부 같은. 그리고 모든 예술을 마지막으로 완성하는 물감색은, 슬픔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쉽게도 나가는 금, 어이없는 붕괴가 자재 자체의 결함 때문이었던 걸 그 오래 달려있었던 유일 자재, 사람이 바다모래였다는 답을 얻기까지 내 인생의 전성기를 다 허비해 버렸기로 입었던 옷 거기 벗어 두고…… 나무 사람 집 바위…… 그 모든 부서져 온 파편들을 삽질했네, 물을 부어 아울러서 내 안의 넘치는 눈물 내 안의 솟구치는 분노 머리 푸는 바람, 질주 열망하는 바람을 가마 불에게 먹였네, 사람을 지었다는 저 본래의 재료 地 水 火 風에게로, 처음에게로 ― 「파편들을 삽질하다 - 도방일기 6」 일부 세상살이에 유능해 사뭇 분주하고 유쾌한 사람들과 달리, 사람세상으로부터 비켜선, 흡사 면벽수행 같은 도예작업에 매료되어 무려 7년 동안이나 지상에서 뵈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는 동안, 흙과 불이란 본질의 한 세계가 수없이 나를 무릎 꿇리며 나를 길들이다가 어느 한 찰나, 외마디 탄성을 내지르는 뜨거운 발견자이게도 했다. ― 「서정抒情을 향하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