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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 1 부 바람의 눈 기러기 떼 여백 흰 밤 꽃을 보며 우렁이가 혀를 내밀고 달을 물고 곱구나 잉어 고니 무지개 동백冬柏 장엄莊嚴 은어 그 꽃 곤줄박이 제 2 부 독약 같은 새벽달 같은 꿈 황량한 황홀 유혹 못을 쥐고 벚나무 아래, 키스 자국 포옹 애인 둘 마네킹 볼레로 차가운 소곡 향기 파랑 눈썹 크로이첼 제 3 부 당신이 살아 숨 쉬어야 할 까닭 산수유 꽃을 보며 등대 꽃 한 송이 파도의 뼈 하지 겨울 풍경 이런 새벽 바다, 대침묵에 들어간 고래와 바위벽 시인 세한도歲寒圖 거품 우주 파도가 저처럼 빈 하늘을 두드리니 독작獨酌 제 4 부 벚꽃 잎 하르르 쏟아질 때 소금쟁이 한 마리에 온 우주가 아바타 이슬 집 적막한 허공 큰 바퀴가 달린 기관차 바다와 새 저 눈빛, 헛것을 만난 추석 무렵 가자미 허공으로의 도약 결에 관하여 항아리 피보다 붉은 오후 서정抒情을 향하다ㆍ초월에 대한 감수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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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문예바다가 생애토록 시를 써 온 우리 문단 유명 시인들의 서정시선집을 기획하여 그 세 번째로 조창환 시인의 『황량한 황홀』을 출간하였다.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조창환 시인이 그동안 출간한 시집들에서 54편을 가려 뽑아 묶은 서정의 진수들이다.
“시 쓰는 일은 물고기가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마음과 같다. 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세상에 관한 기록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세계에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초월에 대한 욕망이 없다. 눈앞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세상이 있음을 확신하는 태도, 그 다른 세상에 대한 꿈꾸기와 열망과 동경이 초월에 대한 감수성이다.”라며 시론을 피력한 조창환 시인의 작은 시집, 사회적 거리두기로 친한 벗과의 만남에도 악수가 조심스러운 이 시절, 벗에게 손보다 이 조그마한 시집을 내미는 것은 어떨는지. “울림이 깊은 사랑의 언어와 선명한 이미지의 감각적 묘사를 중심으로 한 시들을 추려 모아 조촐한 서정시선 한 권을 엮는다. 생명 존재가 지닌 아름다움과 애틋함과 사랑스러움의 발견과 초월에 관한 명상이 여기 묶인 시들의 배경음이다.” ― 「시인의 말」 오랫동안 나는 항아리에 담긴 것이 어둠인 줄로 알았다 항아리에 귀 대고 들으면 우웅 우웅 울리는 것이 어둠이 내는 소리인 것으로 생각했다 어둠은 깊고 따뜻하고 부드러울 줄로 알았다 가슴속에 항아리 하나 품고 평생을 어루만지며 사는 사람이 되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일찍이 포기했던가 깊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어둠을 껴안기 위해 나는 번쩍이는 도끼를 버렸다 그런데, 이제,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니 거기 담긴 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부서진 꽃, 흩어진 뼈, 몇 억 몇 천만 년의 고독과 침묵 그런 것들이 그르렁거리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항아리를 차라리 가슴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오늘부터 내가 항아리가 되었다 항아리가 된 나를 어둠의 깊이와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사랑하는 누가 와서 쓰다듬어 다오 내가 눈물로 그르렁거릴 때 그대는 우웅 우웅 운다고 말하며 부드럽게 어루만져 다오 ― 「항아리」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