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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 꽃이 피는 너에게 산청山淸의 눈보라 피리 구멍 봄꽃 해 봄비 봄날 유월 대낮 겨울 메아리 꽃이 피는 너에게 동백꽃 배꼽 나이 하현달 잔설殘雪 아무도 몰랐다 그의 미소 라일락 질 무렵 제2부 - 밤하늘이 시를 쓰다 밤하늘이 시를 쓰다 둥글다는 생각 징검다리 새벽 신발 전야前夜 독도 한반도 구름 늦잠 묵상默想 한 됫박의 반달 빗소리의 장례 반항일성反抗日性 시대 섬초롱꽃 종 오화해 사이 진눈깨비 나팔꽃 노랑지빠귀 날다 제3부 - 슬픔이 환해지다 이승 길 새 반딧불 그늘이 들어오네 빈 의자 운명처럼 태몽 슬픔이 환해지다 노년 편지 풍경風磬 첫사랑 비탈길 8월 중천 새를 기다리며 짚신 모항 제4부 - 시가 오는 봄날 시가 오는 봄날 청산 거울 앞에서 의자의 봄날 괘종시계 비단벌레 천둥소리 새벽이슬 해바라기 비밀 반딧불 연밥 경주 남산 폭포 장미 적막 문신 11월 제5부 -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랑에게 그늘의 이력 노래하는 그릇 고양이들 수평선 의자 연 가로등 침묵의 일기 그림자들의 얼굴 어깨 무덤 산울림 고래를 생각함 느티나무 미소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랑에게 그림자 꽃밭 귀 떡갈나무 숲 서정抒情을 향하다 - 양자의 언어와 서정의 향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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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오는 일이란 생명의 경외다. 시의 언어는 제 살던 의미의 굳은 제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와서 새로운 의미와의 만남을 갈구한다. “내 목을 쳐라. 나는 태어난다.” 알의 언어가 세계를 향한 선언이다. 이 선언에는 새로운 존재가 되고, 새로운 가치가 되고, 새로운 비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양자의 생리가 있다. 나는 이 알의 언어를 숭배한다. 이 숭배의 정신이 내가 시를 쓰는 나도 모르는 신비로운 영험의 상상력이다.
--- 「서정抒情을 향하다」 중에서 대나무가 되려거든 죽창이 되지 말고 피리가 되라던 할아버지 말씀이 뒷산 호숫가에 와 있었습니다 지난밤 잠을 설치고 마른 땀만 등 뒤로 흘리던 오동나무도 할아버지 말씀 곁에 와 있었습니다 동학 무렵이던가 대낮을 피해 사시던 할아버지가 가꾸신 뒤뜰 대나무숲이 호수 속에 물살을 이루며 흔들렸습니다 숲은 바람결에 흔들리면서도 할아버지가 겨울 들판을 휘저으며 부르짖던 함성 속에서 서 있었습니다 오늘 새벽 잠 못 이룬 집 앞 오동나무 곁에서 몇 개의 별들이 피리 구멍을 빠져나와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나무가 되려거든 죽창이 되지 말고 피리가 되라는 할아버지 말씀이 잠든 뒷산을 뒤흔들어 깨웠습니다 --- 「피리 구멍」 중에서 간밤 노숙의 꿈들이 죽어 떠나니 햇살을 들추고 오래 서 있던 나무 그림자가 앉아 본다 아직 살아갈 용기가 남아 있다고 --- 「빈 의자」 중에서 하동 송림 삼백 살 드신 적송 한 그루 저녁이 가까이 오면 섬진강 넓은 배에다 조용히 귀를 갖다 대는 해를 바라보며 웃는다 남해바다는 만삭이 될 것이다 --- 「태몽」 중에서 내일의 길목에게 가시관을 걸어주다 암흑의 길목에도 일출의 길목에도 그림자의 길목에도 사랑의 가시관을 걸어 주다 너는 더욱 어두워지고 슬픔은 더욱 환해지다 --- 「슬픔이 환해지다」 중에서 잠이 들지 않는 갯벌을 들여다보는데 칠산 앞바다 젖을 빨아 대는, 새벽에 깨어서 젖을 보채는 초승달에게도 슬며시 젖을 갖다 물려 주는, 보름달 우리들 엄니 --- 「모항」 중에서 왼편 가슴 아랫길 번개가 친다 길을 걷다가도 움찟움찟 멈춰 선다 당신이 다 타 버린 하늘에 풍등이 켜지고 있다는 통증인가 --- 「천둥소리」 중에서 나에게서 멀리 떠나라 태양 같은 말씀 들었다 이제 양지에 앉아서 너에게 말한다 멀리멀리 떠나 나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 「그림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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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나무』(종로서적, 1989) 이후 두 번째 시선집이다.
지나온 시의 길을 되돌아보니 너무 멀리 걸어왔다. 그 길들이 달맞이꽃처럼 슬프기도 하고, 목화꽃처럼 가슴 저리기도 하다. 땅 위의 길과 시의 길이 만나 함께 걸어가는 그곳까지 계속 걸어가리라. - 「시인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