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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 어느 날이었다. 봄날처럼 따스하고 나른한 날씨였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몸에 겨울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거리에서 받은 전단지를 손에 쥔 채 계속 걷는 것처럼 사람들은 겨울이 걸쳐준 껍질을 벗을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노란 햇볕이 비추는 거리를 그렇게 코트 차림의 사람들이 걷고 있다.
--- p.5 강주가 처음 움직임 연구회 중부지구를 알게 된 것은 근처 구청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으며 걷다 본 연구회 간판 때문이었다. 작년 8월 말 여름이 끝나갈 무렵 강주와 친구는 건어물을 파는 중부시장 입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수많은 건어물 상가를 지나 상가에 진열된 건어물들과 당면과 해바라기씨 등을 지나며 열의 없는 표정으로 그렇지만 눈은 집중한 채로 열심히 쥐포와 멸치와 명란젓을 꼼꼼히 살피며 어 돌아올 때 살까 봐 쥐포란 것이 생각보다 비싼 것이구나 말하며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 pp.6~7 차분하게 말은 했지만 어쩐지 장황하게 느껴지는 소개를 하고 있을 때 중간에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등 뒤로 다가와 강주가 자신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움직이던 양팔에 자신의 팔을 붙이고 서서히 부드럽게 강주의 팔을 뻗게 했다. 강주와 남자는 등과 팔을 맞대고 각자의 팔을 움직였다. 남자는 천천히 조금씩 팔을 움직였고 왜인지 강주는 그것을 숨을 참지도 숨을 빨리 쉬지도 않은 채 평소의 호흡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처음에 입을 뗄 때만 해도 밤부터 아침까지 일을 해 정신이 없는 상태였는데 남자와 팔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느새 이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 p.11 그렇게 한참을 듣다가 피곤이 몰려와 벤치에 상체를 뉘인 채로 소리를 들었다. 스케이트보드 바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는 묘한 긴장감을 갖게 하는 소리라, 누운 몸 근처로 누군가가 계속 쉬지 않고 이 소리를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퀴가 구르는 소리 발로 보드를 멈추는 소리 넘어지는 소리와 보드가 날아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보드의 바퀴가 바닥을 지나가는 소리와 을지로4가역을 지하철이 거쳐 가는 소리가 동시에 스쳤고 열차는 머리에서 다리로 지나고 보드는 먼 곳에서 다리를 향해 곡선을 그리며 다가와 몸을 흔들 때 강주는 이것을 반복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 pp.19~20 두 번째 워크숍에서는 지난주에 일이 있어 결석하였다는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여자가 자기소개를 하였다. 희고 작은 얼굴에 밝은 갈색 머리를 한 여자는 작은 키와 몸집에 팔다리가 길었다. 계속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는 채로 단호하게 서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느샌가 옆에서 끈이 건네졌고 강주는 건네진 끈을 쥔 채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손에도 끈이 쥐여지고 여자는 끈을 쥐고도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이어나갔다. --- pp.22~23 강주는 성혜와 남매처럼 닮은 성혜의 남편에게 인사를 하였다. 이것도 성혜에게 한 것처럼 자기소개랄 것도 없이 유강주라고 하는데요. 몇 살이랬지? 성민이 친구니까 동갑이지. 천안에서 이혼하고 서울로 오셨다고 하셨죠? 아니 성민이랑 이야기가 섞였네. 이 친구는 결혼 안 했다고 했어. 강주는 이런 상황에서 늘 아뇨 저도 했어요 라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말았다. 저는 성민이보다 먼저 대학 졸업하자마자 결혼했는데 남편이 바람피워서 이혼을 했어요 같은 말이 늘 입천장에서 튀어나오려 했다. 그러면 저 사람은 좀 참지 그랬어 하고 말할까? 그냥 듣고 있을까? --- pp.3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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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한 채 반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살아가기를 하겠지.
그것까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박솔뫼 작가의 신작 『극동의 여자 친구들』이 위즈덤하우스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으로 출간되었다. 작가는 200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장편소설 『고요함 동물』 『미래 산책 연습』, 소설집 『우리의 사람들』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등을 펴내며 시공간을 인식하는 독특한 시선과 자연스럽게 흐르다 종종 어긋나버리는 특유의 리듬감 있는 문체로 독자와 평단의 관심을 꾸준히 받아왔다. 따스한 날씨지만 여전히 겨울 외투를 감싸게 되는 2월 말의 어느 날, 강주는 ‘움직임 연구회 중부지구’의 첫 워크숍에 참석한다. 강주가 움직임 연구회를 알게 된 것은 구청에서 근무하는 친구 성민을 만나 점심을 먹고 근처를 걷다 마주친 연구회 간판 때문이었다. 첫 워크숍에서 말로 자신을 소개하던 중 연구회 회원인 보훈이 강주의 등 뒤로 다가와 자신의 팔과 강주의 팔을 맞대고 서서히 움직인다. 강주는 자신이 평소에 그렇게 움직여본 적이 없음을 알고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연스러운 낯선 움직임에 자꾸만 집중하게 된다. 소설에서 강주는 계속해서 움직이는데, 중부시장 근처를 자신의 속도로 걷기도 하지만 때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동대문시장 안의 카페에서 시장 상인들의 속도에 맞춰 발을 빠르게 놀리기도 하고, 훈련원공원 벤치에 누워 바닥을 구르는 스케이트보드나 지하철의 진동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나의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이의 것이기도 한 움직임들은 강주와 그의 친구 성민, 연구회의 보훈 그리고 애리 등과 함께할 때 혹은 누군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칠 때 새롭게 다가오는 현실을 움켜쥐게 한다.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50권의 책으로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 위즈덤하우스는 2022년 11월부터 단편소설 연재 프로젝트 ‘위클리 픽션’을 통해 오늘 한국문학의 가장 다양한 모습, 가장 새로운 이야기를 일주일에 한 편씩 소개하고 있다. 연재는 매주 수요일 위즈덤하우스 홈페이지와 뉴스레터 ‘위픽’을 통해 공개된다. 구병모 작가의 『파쇄』를 시작으로 1년 동안 50편의 이야기가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위픽 시리즈는 이렇게 연재를 마친 소설들을 순차적으로 출간한다. 3월 8일 첫 5종을 시작으로, 이후 매월 둘째 수요일에 4종씩 출간하며 1년 동안 50가지 이야기 축제를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때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한데 묶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단 한 편’의 단편만으로 책을 구성하는 이례적인 시도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 편 한 편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위픽은 소재나 형식 등 그 어떤 기준과 구분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직 ‘단 한 편의 이야기’라는 완결성에 주목한다. 소설가뿐만 아니라 논픽션 작가, 시인, 청소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장르와 경계를 허물며 이야기의 가능성과 재미를 확장한다. 또한 책 속에는 특별한 선물이 들어 있다. 소설 한 편 전체를 한 장의 포스터에 담은 부록 ‘한 장의 소설’이다. 한 장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이야기 한 편을 새롭게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위픽 시리즈 소개 위픽은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입니다. ‘단 한 편의 이야기’를 깊게 호흡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작은 조각이 당신의 세계를 넓혀줄 새로운 한 조각이 되기를,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 당신의 이야기가 되기를, 당신의 가슴에 깊이 새겨질 한 조각의 문학이 되기를 꿈꿉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