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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_
1부 돌멩이가 살아났다 돌멩이가 살아났다 012 따라온 소리 014 봄날의 가로수 016 연못 공책 017 여름 숲 018 기차의 꿈 019 아빠가 다녀간 아침 020 그저 그런 날 022 할머니의 가을 024 하마터면 나도 026 지구별까지도 오는데 028 은설이의 사과나무 031 미루는 이유 032 2부 골목마다 사부랑삽작 눈부처 037 사부랑삽작 038 논 039 마실 040 시처럼 비가 내리는 날 042 봄 여름 가을 거울 043 숲이 고향 044 가을 하늘 045 꽃터 046 묻고 싶은 말 048 주남저수지의 여름 050 가을 052 3부 끄트머리엔 바다가 있겠다 바다가 있는 곳 056 멈춘 벽시계 057 할머니가 무서워하는 건 058 나 대신에 060 손가락 횃불 062 놀러온 고층 건물 064 편리하다 065 작은 고양이에게 066 타이어 목걸이를 한 바다악어 068 문이 열리고 070 깁스 푼 날 072 징검돌이 된 사람들 073 끝없는 잔치 074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076 4부 밑줄 지우면 큰일 나 선반 080 가지 082 상추 캉캉 083 안개 084 매실 방울 085 바퀴 086 나비와 신발 088 고양이 세수 090 달에 간다 091 배추는 수다쟁이 092 도망가는 스투키 094 용기도 보여요 096 선물 098 해설_이 모든 시선은 사랑하는것들을 떠받치기 위해 반듯하게 그어놓은 밑줄_김준현 시인·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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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화 그리기 시간에
뭘 그리지 뭘 그리지 하고 있는데 은설이는 상상하는 건 식은 죽 먹기래 자기는 머릿속에 사과나무가 있어서 그 사과 하나 따 먹으면 생각이 마구 솟아난다나 그런데 지금은 왜 가만있냐니까 어쩐지 이번엔 사과 농사가 흉년이라는 거야 그런 사과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하고 있는데 쓱쓱쓱 은설이가 마구 그리기 시작하네 그새 사과가 열렸대 주렁주렁 많이 열려서 이제 문제없대 은설아, 그 사과 나 한 개만 주라 아니, 한 입만 주라 응? --- 「은설이의 사과나무」 엄마를 빤히 보고 있으면 엄마 눈동자 속에 내가 있다 마주 본다는 건 서로를 담는다는 것 자꾸 담고 담다가 마침내 닮는 것 이렇게 서로를 가득 담고 있으니 엄마랑 나랑 닮을 수밖에 --- 「눈부처」 고양이가 담장을 뛰어올라요 사부랑삽작 납작하게 깔려 있던 햇빛이 잠깐 흔들리더니 이내 판판해졌어요 고 보드라운 발바닥으로 한낮의 골목을 한 번 흔들고 사라진 걸 고양이는 알까요? 골목마다 있어요 사부랑삽작 고양이만큼 있어요 사부랑삽작 --- 「사부랑삽작」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거울 겨울은 거울이야 봄 여름 가을 세상이 얼마큼 자랐나 무얼 품었나 고대로 보여주는 마알간 거울이 --- 「봄 여름 가을 거울」 큰물 지나자 하천의 풀들이 모두 한곳을 향해 누웠다 기껏해야 무릎께서 얄랑이던 냇물이 매일 가슴에 품고 달려가던 곳, 저 끄트머리엔 바다가 있겠다 --- 「바다가 있는 곳」 엄지가 고개 들 때 남은 넷은 몸을 접어 최고가 되었습니다 새끼손가락이 고개 들 때 남은 넷은 몸을 접어 약속이 되었습니다 늘 숙이기만 하던 셋이 꼿꼿이 일어섰습니다 엄지도 새끼손가락을 단단히 거머쥐자, 손은 미얀마의 봄을 부르는 횃불이 되었습니다 --- 「손가락 횃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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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본다는 건 서로를 담는다는 것
기적을 울리며 달려오던 까만 기차, 머리칼이 쭈뼛해지는 엄청난 소리와 땅으로 전해지던 진동, 그리고 저 멀리까지 이어지던 오래토록 비었던 철길이 생각납니다. 그땐 시시한 하루하루였습니다. 농사일 돕고 학교 다니고 매일이 비슷했어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저 멀리 이웃마을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던 기차처럼 모든 것들이 저를 가슴 뛰게 만듭니다. 보리밭 위를 달리던 바람, 여름과 겨울,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냇가, 장독대 아래 채송화, 타작하는 날 짚단 나르며 맡았던 가을 냄새도요. 동시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마터면 이토록 고맙고 신기한 것들을 놓칠 뻔 했으니까요. -「시인의 말」 부분 「선반」은 동시집의 제목인 ‘밑줄 지우면 큰일 나’를 품고 있는 작품이다. 빵집의 선반=밑줄이라는 이 은유는 중요한 문장이나 단어 밑에 밑줄을 치는 일반적인 서술 행위로 연결된다. 그런데 빵집에 있는 빵 중 중요하지 않은 빵은 없다. 이를테면“밤식빵”은 맛있고“곡물식빵”은 별로고, 하는 식의 차등을 두지 않고, 나열된 모든 빵, 케이크, 잼 밑에 모두 밑줄이 똑바로 그어져 있다. 이“밑줄”은 도중에 끊을 수도 없고 선택적으로 일부만 그을 수도 없다는 점에서 끈끈한 연대의식의 한 발현에 가까워보인다. 지금까지 읽어본 이 책의 동시를 떠올려보면 이 밑줄이 시인의 올곧은 시선을 닮았고 모든 대상을 떠받치고 있는 시인의 마음을 닮았다. 그 마음이 「눈부처」에서 “마주 본다는 건/ 서로를 담는다는 것// 자꾸 담고 담다가 마침내 닮는 것”이라는 말에 내가 그어놓고 싶은 밑줄일지도 모르겠다. 황남선 동시가 품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온도는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대상에 밑줄을 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해설 「이 모든 시선은 사랑하는것들을 떠받치기 위해 반듯하게 그어놓은 밑줄」 부분 시인의 말 저는 작은 농촌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삼천포로 가는 기차가 저희 마을을 아래뜸, 위뜸으로 나누었다는 정도를 특별한 점으로 꼽을 수 있겠네요. 하지만 기차를 한 번 타보기도 전에 기차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철길은 그 후로 꽤 오랫동안 남아 아이들의 놀이터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습니다. 철로 위를 균형 잡고 걷기도 하고, 침목 두 개씩 건너뛰기, 가위바위보를 하며 누가 멀리까지 가나 시합도 했습니다. 염소풀 먹이러 다닐 때도 철둑길로 다녔고, 버스비를 아끼려 읍내까지 걸어가기도 했습니다.(한 시간 정도 걸어가면 100원어치 풀빵을 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찻길이 되어 사납게 달리는 차들뿐이지만 그땐 아무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기적을 울리며 달려오던 까만 기차, 머리칼이 쭈뼛해지는 엄청난 소리와 땅으로 전해지던 진동, 그리고 저 멀리까지 이어지던 오래토록 비었던 철길이 생각납니다. 그땐 시시한 하루하루였습니다. 농사일 돕고 학교 다니고 매일이 비슷했어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저 멀리 이웃마을 모퉁이를 돌아 달려오던 기차처럼 모든 것들이 저를 가슴 뛰게 만듭니다. 보리밭 위를 달리던 바람, 여름과 겨울,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냇가, 장독대 아래 채송화, 타작하는 날 짚단 나르며 맡았던 가을 냄새도요. 동시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마터면 이토록 고맙고 신기한 것들을 놓칠 뻔 했으니까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첫 동시집을 내놓습니다. 단 한 줄이라도 우주 친구들의 마음을 살랑 흔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글씨앗을 주신 부모님, 첫 독자 역할을 해준 민우와 민준, 오래 함께한 글동무들 고맙습니다. 보드라운 발바닥으로 자판을 눌러 준 구름이와 노을이한테도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제 부족한 글에 해설을 덧붙여준 김준현 선생님과 그림으로 생기를 불어넣어준 신은숙 선생님, 저의 첫 작품집을 다듬어준 브로콜리숲 정말 고맙습니다. 2023년 가을 황남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