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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나를 벗어나
임지훈
상상인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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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검은 은화
반점
내화벽돌
까치살모사
빛을 탕진한 자목련
크리스 보티
거미줄
해바라기의 후예
사라진 시대
맑은 수프
레몬 시폰
관음증
볼셰비키, 다수파
빨대
낟알
아이스 블루
코카인
사월

2부

플로럴 화이트
스프링 그린
라임 그린
파이어 브릭
로열 블루
다크 그레이
핫 핑크
다크 바이올렛
미드나이트 블루
레드
골드
골드 2
인디언 레드
로즈 핑크
화이트
다크 블루

3부

다크 레드
로열 블루 2
딥 핑크
골든 로드
페루
카키
스틸 블루
다크 레드 2
딤 그레이
앨리스 블루
다크 블루 2
스테이트 그레이
다크 오렌지
크림슨
카데트 블루
다크 그린
고스트 화이트
라이트 그레이
아즈레
레드에서 스틸 블루까지

해설 _ 색채의 향연, 혹은 색채의 상티망sentiment
황치복(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부산에서 태어나 동아대를 졸업했다. 대학신문에 단편소설을 연재하였고 동아문학상에 시와 수필이 각각 당선되었다. 해외플랜트 공사 관련 업무 차 중동 및 아프리카, 동남아, 유럽 등 50여 개 나라를 방문하며 사진과 시를 써왔다. 2006년 《미네르바》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미수금에 대한 반가사유』가 있다. 2018년 한국문인협회 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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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138쪽 | 204g | 128*205*10mm
ISBN13
9791193093382

책 속으로

늘 폭포처럼 쏟아지는 모래, 레몬 시폰 속으로, 그 환幻 속으로 쓸려 들어가 파묻혀야 잠에 빠져들 수 있다 레몬 시폰은 무게가 없고 향기가 없고 자세히 바라보면 색깔도 점점 희미해져 사라지고 있다

눈을 뜰 수 없었던 사막폭풍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적 있다 폭풍이 지나가길, 길이 다시 드러나길 기다린 적 있다 나는 환幻 속을 거닐 만큼 어리석거나 얇은 여자는 아니다 모래폭풍은 살아 있는 오늘처럼 한 가지 색깔로 몰아치고 있다 생애는 뭔가를 내놓아야 할 때가 찾아오고 만다 온몸에 힘을 주고 그 존재에 화인火印으로 지지듯 나를 인식시켜야 할 때가 찾아오고 만다

소유주를 위한 제사, 제祭를 마치면 모래폭풍이 가라앉고 카키가 빛을 머금고 허공에 떠 있다 그때 비로소 잠은 나를 거두어 준다 잠 속에서 카키에서 레몬 시폰으로 나의 색깔이 사막 본래의 건조한 영토를 넓혀가고 있고 나를 봉헌하듯 배꼽 위에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색깔엔 본래 주인이 없다

* 헥스표 #FFFACD, 투명에 가까운 연한 노란색.
---「레몬 시폰」중에서

오르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화물차, 과적된 바디 백, 차가 뒤로 밀리는 순간 터져버린 지뢰, 그가 떠올랐다 전쟁이 끝난 줄 알고 꽃처럼 피어난 그 사람, 짧은 봄의 폭발음에 갇혀 그는 공중에 자욱하게 흩어져 있다 그해는 봄비치고 너무 많이 쏟아졌다 난초의 꽃대처럼 꼿꼿한 도시가 휘어질 만큼, 모든 도시의 창문들이 포연에 흐려지고 있다 폭음에 예민하지 않은 도시는 없다
---「관음증」중에서

눈에서 몰려 나간 빛 때문인지 사진에서 떠나간 바람 때문인지 바깥을 잠근 채 혼자를 견딘 꽃이 피어나고 있다 피자마자 흩날리는 바람에게 밀려 까라지고 있다 꽃을 보면서 그가 원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생각하였다 크레파스처럼 출렁거리는 밤의 강을 보면서 그를 위해 어떤 색깔이라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리는 꽃잎의 궤도에서 눈을 떼고 밤하늘을 본다 별은 빛나고 있다 블루에서 다크 레드, 시간에 파리하게 질린 검은 은화의 색깔인 별도 있다

다시 꽃을 바라본다 마구 피어나던 내 속의 여자가 꽃으로 빠져나가 밤하늘에 나부끼고 있다 달빛과 고스트 화이트*가 밤하늘을 적시는 그 잠깐 동안 내 속으로 헤아릴 수 없는 여자가 들락거렸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를 이 봄은 어디까지 몰고 갈 것인지, 봄밤은 언제쯤 내게 색깔을 돌려줄 것인지, 밤은 허황되고 어두운 블루만 되쏠 뿐 말이 없다

* 헥스표 #F8F8FF, 드러나지 않는 흰색.

---「검은 은화」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모두
색깔을 벗고 사라졌다

바다에 나만 남았다

2024년 1월
임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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