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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되는 정신의 과잉
신종호
bookin(북인) 202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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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세계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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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마른 씨앗의 날들

귀로(歸路) · 13
벽 · 14
삼인칭의 밤들 · 16
마른 씨앗의 날들 · 18
물빛 뜨락 · 20
붉은 몸살 · 22
모래 울음 · 24
가을빛 목청 · 25
한파주의보 · 26
여름의 끝 · 28
세상에 없는 꽃 · 30
울산바위 · 32
탄탈로스 · 34
두 개의 원 · 36

2부 구름의 방

안개 · 39
집시의 강 · 40
바로크적으로 · 42
능소화 · 44
그냥 · 46
가볍게 · 48
그리움의 여분 · 50
어느 하늘로 · 52
구름의 방 · 53
낡은, 봄 · 54
소쩍, 쿵 · 56

3부 정육과 자본과 통로

적막 등짝 · 61
차가운 기호들 · 62
공공씨의 하루 · 64
정육과 자본과 통로 · 66
르네 마그리트 그림처럼 · 68
디오게네스의 주정 · 69
버려진/질 것들 · 70
테트라포드 · 71
시절 유감 · 72
얼룩과 얼룩 · 74
천상의 꽃 · 76
매복 같은 사랑 · 78

4부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

홍시 · 81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 · 82
연구개파열음 · 85
Domino · 88
꼬리의 모노드라마 · 90
마트료시카 · 92
잉여의 주먹질 · 94
편집증 · 96
Nothing의 사거리 · 98
거울, 뒷골목 · 100
시간의 짐 · 102
서해였다 · 104
불의 울음 · 106

5부 영혼의 서랍

멸치 육수 · 109
구석진 11월에 서서 · 110
수취인불명 · 112
베드로의 독백 · 114
영혼의 서랍 · 115
잃어버린 신화 · 116
북극의 밤 · 118
고드름 · 120
울음을 쥐고 태어난 · 122
미꾸라지 · 123
끝의 열매 · 124

해설 다시, 구름의 방으로 들어가다 / 우대식·126

저자 소개 1

1964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했다. 숭실대학교 국어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1997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2021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받았으며, 시집 『사람의 바다』(천년의시작, 2006), 『모든 환대와 어떤 환멸』(시인동네, 2017)을 출간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53*224*20mm
ISBN13
9791165121600

책 속으로

새벽 허파에 나는 산다. 살아 있으므로 맛봐야 할 시간의 독(毒)이 복리(複利)로 증식하는 허공의 집. 밤이 던진 돌멩이들이, 깨진 하늘의 비명이, 바람의 차가운 이빨이 피곤의 두개골을 물어뜯는 불면의 옥상에서, 나는 비둘기들과 함께 꿈의 사체(死體)를 천천히 쪼아댄다. 덜 깬 잠의 가위로 피 묻은 아침과 비틀어진 창문 모서리에 걸린 생각의 창자를 싹둑싹둑 잘라내며 공간의 비린내를 온몸에 바른다. 하루가 더없이 상쾌한 그대들 앞에서, 냉소의 어금니를 꽉 깨물고 죽은 밤들의 내장을 울컥 게워내는 아침, 우울들이 새끼 독수리처럼 엎드려 운다. 불면의 손가락이 뚫어놓은 생각의 구멍에 돌을 던지는, 어제의 죽은 잠과 아파트 옥상에 떨어진 밤의 눈동자, 옹벽 속 녹슨 철근의 핏발처럼 콘크리트 기둥에 박혀 허둥대는 태양의 어깨, 다시 살아내야 할 아침의 비참(悲慘)이 일어선다. 나는 없고 타인의 살코기만 걸려 대롱거리는 생활의 푸줏간. 아, 꿈의 토막이 남긴 허기(虛飢)의 냄새여! 오늘도 나는 내일의 새벽처럼 다시 불행할 것이다. 벽의 질식과 깨진 거울들의 날카로운 자기분열, 설명할 수 없는 설명의 근지러움과 거울을 조각내는 거울의 자해(自害)가 한 움큼의 피로를 토해내는 네모난 돌무덤 속, 덜 깬 짜증의 입냄새를 풍기며 낯선 얼굴들이 승강기에 실려 때 묻은 작대기처럼 무의미하게 천정을 내려올 때, 어떤 이들은 청정(淸淨)의 귀를 핥는 혀의 유혹들에 몸서리치며 정신의 이빨을 꽉 깨물고 잠 묻은 아침놀의 틈새와 밤의 높이를 피로써 다시 읽어내려/올라가려 한다. 하여, 그들은 불행할 것이다. 씹다 뱉은 몇 개의 문장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정신의 대문을 열고 하얗게 뛰쳐나오는 회귀의 지친 방, 지옥의 들뜬 소식을 받아 적으며 책들의 갈피에서 책들의 무덤까지 잘린 날개와 부러진 발톱과 죽음의 각주(脚註)를 한입에 물고, 다시 돌아올 사냥개들처럼 그들은 또 불행할 것이며, 부릅뜬 눈알의 충혈과 재떨이에 수북이 쌓여 킥킥대는 냉소의 꽁초로 타자들의 비만을 증언할 것이다. 희망의 클로버를 입에 물고 흰 토끼처럼 깡충대는 자기 긍정의 나루터, 오독(誤讀)의 깊은 강을 건너온 몇 척 배들과 사상(思想)의 두 날개를 저으며 난독(難讀)의 바다를 횡단해온 새 떼들이 자기 부정의 닻을 내리는 밤의 창공. 기억되지 않는 기억의 몸부림으로, 빛을 버리고 어둠 속으로 잠수하는 하늘의 황금두더지들처럼, 이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북두칠성에 잠의 집을 세우는 꿈의 배관공들. 그들의 앞은 여전히 불행할 것이다. 높이로 추락하는 심연과 눈 감은 침묵의 별들이 고독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세속의 나루터에서, 친절을 버리고 불친절하게, 이해를 버리고 난해하게, 불행의 베개를 베고 자유의 낮잠을 자는, 어떤 높이들. 올라가는 철옹성들.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중에서

재래시장에 갔다. 순댓국집 알루미늄 쟁반에 놓인 돼지머리가 건너편 족발집 소쿠리에 쌓인 족발들을 보고 웃는다. 정육점 갈고리에 걸린 붉은 몸통들이 트로트 가락에 맞춰 춤을 추고, 해장국집 가마솥 속의 내장들은 뜨겁다고 툴툴거리며 누린 냄새를 토해낸다. 족발은 족발만의 행복으로, 돼지머리는 돼지머리만의 기쁨으로, 내장은 내장들만의 은밀함으로 자신들의 가격을 확인하는 시장의 소란. 서로가 한 몸이었을지도 모를 그들이 각자를 부인하며 족발로, 편육으로, 내장탕으로, 순댓국으로 각자의 죽음을 서슴없이 조각내 팔고 있다. 돼지는 없고 족발만 있는, 족발만 있고 몸통은 없는 진열대 앞에서 갑자기 나의 손과 발이 나를 남겨둔 채 딴 데로 도망간다. 놀란 머리는 방앗간으로 들어가고, 길 한가운데 홀로 남은 몸통은 억울하다며 지갑을 뒤적인다. 아줌마, 족발 얼마예요? 수십 개의 족발이 내 몸통에 자석처럼 달라붙는다. 전생에 나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족발과 돼지의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내 몸통이 스티로폼 상자에 형제처럼 가지런히 담겨 서로의 안부를 두런댄다. 우리는, 발려놓으면 다 똑같은 살덩이들이라고 속삭이는 몸통 없는 머리들이 검은 모자를 쓰고 비처럼 쏟아지는 나른한 주말 오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나는 대수롭지 않게 구름 속을 걸어간다.
---「르네 마그리트 그림처럼― 잡설 2」중에서

그에게 던진 칼이 별이 되어 반짝입니다. 당신은, 그의 긴긴 죄들이 아름다워야만 한다며 피 묻은 칼을 뽑아 밤의 창공에 증거처럼 꽂아두셨지요. 고독의 망치가 그≠그녀의 뇌를 두들기고, 생각의 면도칼이 그≠그녀의 얼굴을 북북 긋고, 후회의 바늘이 그≠그녀의 등을 촘촘히 찌르는 좁다란 불면의 복도에서, 그≠그녀는 비루한 육체의 난간들을 철거하며 서로에게 불가능이 되었지요. 설명될 수 없는 그의 검은 인격과 묘사될 수 없는 그녀의 붉은 감각이 철제침대 위에서 삐걱거리며 잠깐의 절정으로 그≠그녀의 뜨거운 윤곽을 쏟아낼 때, 그는 숫돌처럼 누워 그녀 안에 숨은 애인들의 녹슨 얼굴을 서걱서걱 갈아대었습니다. 그≠그녀의 것이 아닌 몸과 타자들의 신음이 방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는, 의심과 초조와 질투의 큰 개들이 그≠그녀의 심장을 물어뜯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뜨거운 과잉 속에서 그≠그녀는 피할 수 없는 서로의 함정이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던진 그의 비난이 재봉틀에 드르륵드르륵 꿰매져 수놓아지는 아침, 꽃 모양 스티커로 봉합한 유리처럼 그≠그녀의 상처가 연분홍 커튼에 위태롭게 아른댑니다.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랑의 실패로 사랑의 전부를 또다시 사랑해야만 하는, 시시포스의 등짝 같은 반복에 매달린 그≠그녀의 힘든 사랑들. 겨울나무에 앉은 달이 바람에 마모되어 별이 되어가는 잔인의 터널을 지나서, 한두 개의 칼과 죄를 숨겨둔 사랑의 밤은 설국(雪國)보다 아름다웠다고, 그≠그녀의 당신이 새로이 증언할 것입니다.

---「삼인칭의 밤들― 사랑의 회고록 2」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유하고 시를 쓰고 끝없이 탈주하는 운명을 드러낸 신종호의 시들

1997년 『현대시』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종호 시인이 2017년 두 번째 시집 『모든 환대와 어떤 환멸』을 출간한 후 만 7년 만에 세 번째 시집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을 현대시세계 시인선 160번으로 출간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모든 환대와 어떤 환멸』에 대해 성귀수 시인은 “보통의 시인들이 좇게 마련인 청각영상이나 비유의 조화로움이라고 하는 보편적 미덕의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 보이며, 시집에 실린 각각의 시편들이 “성벽(城壁)을 때리는 투석용 화강암 덩어리 같다”라고 비유했다.

나아가 신종호 시인은 파편화된 상처들을 역치(易置)하거나 전치(轉置)함으로써, 독특하게 자각된 세계의 모순을 결코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러한 점은 세 번째 시집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에도 드러나고 있다.

신종호의 시집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을 보면 우선 시집 제목이 난해하다 느껴질 것이다. 그렇지 않겠지만 말 그대로 따라가면 정신은 과잉되어 있고 과잉된 정신은 해부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잉된 정신을 해부하는 것이야말로 시의 한 축이라 해도 그럴듯하다는 데에 이른다. 예술이 표상 혹은 재현으로서의 세계와 단절했을 때 필연적으로 어둠, 무의식, 죽음 등에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다. 신종호의 시는 그 운명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시종일관의 태도를 보여준다.

시인의 살아온 내력으로 회한, 옛날, 귀로를 말하는 경우에도 보편적 감성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생경한 어떤 측면이 늘 배치되어 있다. 범박하게 이야기하면 기표와 기의 세계에서 누락된 존재에 대한 탐구는 그의 시를 어렵게 만든다. 그는 이미 합의된 기호로서 아름다움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신종호 시인의 시에 끝없이 나타나는 그와 그녀, 나와 당신의 복잡한 수식적 관계는 기호의 혼돈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표와 기의의 합의에 포획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탐구의 형식이 그에게는 ‘시’라는 말이다.

시집 1부는 ‘사랑의 회고록’이라는 부제의 연작이다. 어쩌면 사랑 그리고 회고록 둘 다 낡은 인상의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 시어들이 품은 일상의 정념을 그리는 것이 이 연작의 목표가 아님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사랑의 부재(不在)는 사랑이라는 관념 혹은 행위에 대해 비극적 포즈를 보여주기도 한다. 시적 화자에게 사랑이란 사랑이라는 표상의 외부라는 것이다. 표상에 가려진 어떤 것 즉 들뢰즈가 말한 감각할 수 있지만, 감각밖에 할 수 없는 그러나 강밀하게 밀려들어오는 실체가 사랑인 셈이다. 표상 너머의 사랑에 대한 탐구가 사랑의 회고록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에는 기호에 관한 관심과 탐구는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구조주의적 관점 특별히 롤랑 바르트의 기호론의 관점에서 보면 언어라는 1차적 기호는 신화의 기표로 작용하며 특정한 계층의 세계관과 이데올로기를 보편화하게 된다. 그것은 롤랑 바르트의 말로 하자면 거짓된 자연스러움으로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언어는 다만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우리의 삶을 규율하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예술가들이 언어 기호에 끊임없이 의심을 눈길을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시가 「르네 마그리트 그림처럼」이다.

시 「르네 마그리트 그림처럼」의 배경은 ‘재래시장’이다. 족발집, 정육점, 해장국집, 방앗간 등의 풍경은 현실의 재현에 가까운 시적 소재들이다. 그로테스크한 동물의 육체성에 대한 묘사를 통한 보이는 연민은 다만 시 전면의 의미망일 뿐이다. 시적 화자가 내세운 르네 마그리트는 애초에 재현의 공간과 원리를 파괴한 클레나 칸딘스키와는 다르게 재현의 낡은 공간을 그대로 수용하고 재현의 원리를 구현한 듯 보이게 회화를 구성하고 있다. 두 화가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기 위해 보이는 것에 대한 묘사를 포기했다면, 르네 마그리트는 보이는 것과 보이는 것 속에 내재한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고 푸코는 말하고 있다. 재현의 원리에 해당하는 ‘유사’는 사물에 대해 고정된 인식을 우리에게 부여하지만 ‘상사’는 원본 없는 복제의 무한한 반복을 통하여 사물 속에 내재된 형상을 우리에게 새롭게 보여준다.

표제시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처럼 정신의 과잉을 해부하고자 하는 욕망도 동일성의 세계를 살아가도록 암암리에 강요받는 현실에 대항하는 혼돈스러운 정신의 자기 검열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신종호의 시를 읽으면 인간은 왜 투쟁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 우리의 싸움은 시의 운명과도 유사하게 패배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한다. 사유하고 시를 쓰고 끝없이 탈주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우대식 시인은 이 세계의 모순에 맞서 시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정신의 향방을 “동일성의 세계를 살아가도록 암암리에 강요받는 현실에 대항하는 혼돈스러운 정신의 자기 검열”이라고 설명하면서 합의된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즉 기표와 기의가 포획하지 못한 실존의 누락된 영역을 탐구하는 탈주의 사유가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들의 기류라고 설명한다.

신종호 시집 『해부되는 정신의 과잉』은 사랑의 부재와 불가능성, ‘나’라는 존재의 분열, 차이를 무화시키고 동일성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자본의 논리에 대한 성찰, 삶과 죽음의 교착에 대한 실존적 사유를 통해 자기 긍정과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모멸의 바람이 유령처럼 부는”(「꼬리의 모노드라마」) 이 시대의 어두운 뒤편을 포괄적으로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점은 시의 난해함이 난해함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난해함이 한 시인의 시적 개성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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