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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사람 나라 구경 _걸리버 유람기 소인국 표착 관광록 _7
왕사람 나라 구경 _걸리버 유람기 거인국 표착 관광록 _41 날사람 나라 구경 _걸리버 유람기 라퓨타 표착 관광록 _69 말사람 나라 구경 _걸리버 유람기 후이늠 표착 관광록 _101 해제 | 『걸리버 유람기』의 번역 계보와 세상 읽기 _김미연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_142 작가의 말 | 최남선의 『걸리버 유람기』를 이어 쓰며 _김연수 _157 |
金衍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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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알사람 사는 곳에서는 닭의 알을 먹을 때에 반드시 펑퍼짐한 쪽을 깨뜨려 먹는 것이 보통인데, 리리푸우트 나라에서 어느 임금이 반대로 뾰족한 쪽을 깨뜨려 먹으면서 한 나라 안에서도 펑퍼짐파와 뾰족파가 나뉘어 당을 만든 뒤 싸우니 그 싸움이 끊이지 않고 또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뾰족한 쪽으로는 닭의 알을 깨뜨려 먹지 아니하리라 하면서 급기야는 죽은 자도 수만 명이나 되었고 또 뿌레프쓰크 나라에서는 특사를 보내 이 일을 비난했는데 그래도 말을 안 들어 전쟁까지 하게 됨이오.
--- p.28 또 다른 방은 악취가 심해 기절할 정도였는데, 이 방의 연구원은 사람의 똥을 다시 원래의 음식물로 되돌려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얼굴과 수염은 온통 누런색이었는데, 그게 어디서 온 누런색이냐면……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나는 그에게 반갑다며 포옹을 당하고 말았다. --- p.84 그런 식으로 과거의 인물들에게서 진실을 들으며 나는 역사의 왜곡이 얼마나 심한지를 알고 역겨움을 느꼈다. 전쟁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겁쟁이에게 돌아갔고, 아첨꾼이 강직한 정치인으로 둔갑했으며, 갖은 음욕을 채우고 살았던 이중인격자가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내가 아는 위대한 업적과 혁명의 시작이 뜻하지 않은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간의 지혜와 지성에 대한 나의 실망감이 얼마나 컸던지! --- p.93 그곳에는 부정적인 것을 지칭하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해적들이 배를 빼앗는 바람에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하려 해도 도적이라는 말이 없으니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 나쁜 짓도 기껏해야 ‘착함 아닌 것’ 정도로밖에 말할 수 없는데 그건 후이늠에겐 없는 것을 뜻한다. (……) 내가 살던 나라에 대해 말해보라고 해서 말하려고 하니 권력, 정부, 법, 처벌, 차별 등 무엇 하나 ‘아닌 것’을 붙이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 pp.112~113 “주인님은 모르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동족을 죽이는 우리의 기술은 주인님의 갈기처럼 대단하고 걷는 모습처럼 훌륭합니다. 야후들을 죽일 수 있는 무기로는 권총, 소총, 기관총, 대포부터 핵폭탄, 수소폭탄, 대륙간탄도탄에다가 무인 드론에 자살폭탄까지 있으며, 갈기갈기 찢겨나간 시체 사이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손 치더라도 살아남은 야후들을 괴롭히는 기술인 약탈, 강간, 방화, 고문 등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러자 주인은 괴로워 미치겠다는 듯 외쳤다. “그만! 제발 그만! 사랑스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아 더는 못 듣겠구나.” --- pp.114~115 “한 줌의 이성으로 착하지 않은 짓에만 골몰하는 족속이라니. 하긴 이성을 제대로 사용했다면 정부와 법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지.” --- p.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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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언어와 그늘진 이성이 없는 곳, 완벽한 이성을 가진 후이늠의 나라
이렇게 어린이를 위한 모험소설 혹은 동화로 알려진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 외에 축약본으로도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걸리버 여행기』 속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2024년 도서전의 주제이기도 한 ‘후이늠Houyhnhnm’이다. 걸리버가 여행한 마지막 여행지인 후이늠은, 의심과 불신, 거짓말, 정욕, 무절제, 권력, 전쟁 같은 부정의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이며, 이곳에 살고 있는 완벽한 이성을 가진 종족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 『걸리버 유람기』는 백 년 전 최남선의 번역에 기초한 소인국과 대인국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오늘의 소설가 김연수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원작의 서사에 기대어 ‘지금 여기’의 시점에서 ‘라퓨타’와 ‘후이늠’의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간 작품이다. 하늘에 떠 있는 섬나라 라퓨타에는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제 생각에만 골몰하느라, 치기꾼에게 맞아야만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남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이들은 뉴스와 정치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다, 온갖 터무니없는 것들에 골몰하는 학술원의 행태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겨우 라퓨타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걸리버는 오 개월 만에 다시 여행길에 오르고, 야후를 부리는 후이늠의 나라에 도착한다. 들판의 야후들과 달리 품위 있고 당당한 말馬들의 나라인 후이늠은 ‘자연의 완성’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부정적인 언어와 거짓말, 권력과 전쟁 같은 부정의 말이 존재하지 않는 곳, 후이늠. 존경할 만한 주인의 보호 아래 걸리버는 이곳에서 그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야후’를 믿지 못하는 다른 후이늠들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걸리버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만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짜 『걸리버 여행기』 그리고 이때, 걸리버 앞에 홍길동이 나타난다. 김연수가 써내려간 『걸리버 유람기』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이 아마 홍길동의 등장일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걸리버와 홍길동의 만남과 두 사람이 나누는-정확하게는 홍길동이 전하는-이야기는 어느 순간 독자를 울컥하게 만든다. 거짓과 부정과 환멸로 가득 찬 인간세계에 지쳐버린 우리는 걸리버와 마찬가지로 크게 위로받는다. “우리는 모두 문학입니다. 문학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걸리버님도 여기서 죽으면 안 됩니다. (……) 인간의 비루한 모습에도 절망해 죽지 않고 계속 썼기 때문에 걸리버님과 저는 세계문학으로 영원회귀하게 됐습니다. 언어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계속 읽혀질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증언해야만 합니다. 어리석은 전쟁과 고통, 부조리한 차별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맞선 인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수백 년 뒤의 사람들에게도 전해야만 하는 것이지요.”(134p~135p) 이제 우리는 전혀 다른 오늘의 『걸리버 유람기』를 만났지만, 그것은 어쩌면 삼백 년 전 조너선 스위프트가 처음 하려고 했던 그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며, 백 년 전 최남선이 축약본으로나마 전했던 그것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학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읽자. 미친 것처럼 보일지라도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자. 우리 함께 야후 그다음의 세상을 꿈꾸자.(140p) 덧, 또한 이야기 사이사이 강혜숙의 그림은 조너선 스위프트와 최남선, 그리고 김연수가 삼백 년에 걸쳐 꿰어놓은 위트 있는 문장과 이야기의 힘을 더욱 돋보이게 해 독서의 즐거움을 한층 더 배가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