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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 조코비치 커리어의 결정적 순간
프롤로그 : 차이코프스키 서곡 1812, 그리고 조코비치의 투쟁 ANXIETY : 불안 01 지하 벙커와 폭격 02 피자집 사장님 03 음악과 테니스 04 사핀을 만나다 05 “나는 세르비아입니다” COLUMN | 테니스는 왜 고급 스포츠로 불릴까 JUMP : 도약 01 조커의 딜레마 02 식사가 잘못되었습니다 03 2011 04 2015 05 노박 슬램 TOPIC | 테니스 역대 최고의 시즌 BEST 10 COLUMN | 조코비치의 생애 최고 시즌은? FALL : 추락 01 그 여름의 미스터리 02 암흑의 2년 TOPIC | 조코비치의 5대 라이벌 COLUMN | 테니스는 왜 남녀 동일 상금 원칙을 고수할까 COLUMN | 원핸드 백핸드는 정녕 멸종할 것인가 REVIVAL : 부활 01 나달이라는 처방전 TOPIC | 조코비치의 5대첩 02 40-15의 전설 COLUMN | 왜 윔블던이 최고일까 COLUMN | 환영받지 못하는 챔피언 VILLAIN : 빌런 01 선심을 쓰러뜨리다 TOPIC | 테니스의 소문난 빌런 5명 02 쫓겨난 챔피언 COLUMN | 글로벌 스포츠 산업 테니스의 가치 COLUMN | 국내 테니스 저변과 가능성 G.O.A.T : 고트 01 NO. 23 02 16년의 추격전 03 “다 이루었도다” 에필로그 : 테니스계의 빛나는 이단아, 세상의 모든 권위에 도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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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통해 어느 지역에 미사일 폭격이 쏟아졌는지를 체크한 후, 그 지역을 찾아가 연습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들은 같은 곳을 두 번 연속 폭격하지 않으니까”라는 나름의 논리적 개연성이 있는 선택이었다. 죽음의 공포에 직면해야 했던 일상은 조코비치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흔히 라파엘 나달과 함께 테니스 승부사의 대명사로 통하는 조코비치의 강철 멘털은 아마도 유년 시절 죽음의 공포 속에 훈련해야 했던 고난과 역경, 시련을 통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지하 벙커와 폭격」 중에서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이냐면, 나달은 2001년을 시작으로 프로페셔널 커리어를 통틀어 클레이 코트에서 특정인에게 연패를 허용한 적이 없었다. 2005년 그가 흙신에 등극한 이후 81연승을 내달리다 로저 페더러에게 함부르크 마스터스에서 제동이 걸린 적 있었지만, 나달은 결코 클레이에서 두 번 연속 패배를 내주지 않았다. 그런데 2011년 그 ‘언빌리버블한’ 사건이 발생간 한 것이다. 조코비치는 클레이에서 열리는 마스터스 시리즈인 마드리드 오픈과 로마 오픈에서 두 번 연속, 그것도 결승전에서 나달을 꺾고 챔피언에 올랐다. --- 「2011」 중에서 연대기적으로 봤을 때 조코비치의 우승은 그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보다 더 위대한 의미가 있었다. 남자 테니스에서 47년 묵은 기록이 달성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4대 메이저 대회를 순차적으로 한꺼번에 우승한 47년 만의 위업, 바로 ‘노박 슬램’의 완성이었다. --- 「노박 슬램」 중에서 조코비치는 현역 선수 가운데 가장 서브를 잘 넣는 페더러를 상대로, 그것도 서브가 가장 위력을 발휘하기 좋은 조건인 잔디 코트에서 역전에 성공했다. 심지어 두 개의 챔피언십 포인트에 몰려 있는 벼랑 끝 상황이었지만, 역대 최고의 선수 1인으로 추앙받은 페더러를 좌절시킨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한, 대권 교체의 신호탄이었다. --- 「40-15의 전설」 중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 2016년 리우올림픽과 2021년 도쿄올림픽까지, 그토록 조코비치를 좌절시켰던 지난 15년간의 올림픽 잔혹사를 마침내 극복한 순간이었다.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위한 그의 집념과 헌신은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을 숙연하게 만들 정도였다. 조국 세르비아를 위해 금메달을 선물하고 싶은 진심이 전달됐고, 우승을 확정한 뒤 땅바닥에 엎으려 손에 파르르 경련이 이는 장면에서는 전율이 느껴졌다. --- 「“다 이루었도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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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우승 상금보다 중요한 한 가지!
흔들리지 않는 결의로 ‘신념’을 지키는 테니스계의 빛나는 이단아, 조코비치 책에서는 조코비치의 위대함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로 기술, 멘털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그가 대단한 이유는 오랜 시간 최정상의 자리를 유지했다는 지속성에 있다고 말한다. 여타 선수들과 비교해 보면 조코비치는 장기간 부상으로 결장한 적도 없고, 통산 세계 랭킹 1위를 428주 동안 지키면서도 큰 기복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조코비치가 커리어에서 마주한 고비란 ‘테니스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8년 1월 호주 멜버른에서 그의 첫 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을 실현한 후, 조코비치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바람과 달리 그는 체력전에서 페더러와 나달이라는 두 산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주저앉았는데, 조코비치는 그제야 본인이 글루텐에 민감한 체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동선수에게 식단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지만, 조코비치는 ‘글루텐-프리 다이어트’라는 식이요법을 감행하며 스포츠인으로서 다소 위험부담이 있는 해법을 실천했다. 그 과정이 분명 어렵고 고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동시에 조코비치의 가치관을 파악할 수 있는 일화이자, 그의 테니스 커리어를 한 차원 향상시켜준 터닝포인트이기도 했다. 그리고 코로나의 여파가 남아있던 2022년 1월 호주오픈 당시 조코비치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고비를 맞이했다. 조코비치는 평소 몸 건강에 대해 소신과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기 때문에, 코로나 백신 접종 역시 본인의 선택으로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대회 출전의 전제 조건이었고,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그는 멜버른 인근의 초라한 숙소에 격리되었다. 이 사건은 조코비치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조코비치는 백신 미접종 이슈로 4~5개 정도의 메이저 대회를 놓쳤기 때문에 많은 테니스 팬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선택에 따른 결과를 감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오히려 그 이후의 커리어에 집중했다. 흔히들 조코비치가 기록과 우승에 집착한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코비치의 이러한 일화들은 그가 대중들의 생각, 그리고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는 테니스에 흔들리지 않는 결의로 부딪히고 도전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영국의 귀화 제안에도 돈과 지원보다 자국을 선택했고, 기술에 대한 통설을 믿기보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계를 돌파했으며, 심지어는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앤디 머리를 전담 코치로 초빙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조코비치는 은퇴마저도 ‘언제’가 아닌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선수다. 그의 신념이 어떤 시선에서는 고집으로 비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조코비치의 서사에서 핵심은 언제나 마이너리티한 속성을 딛고 일어나 주류 집단에 도전한 소수자의 반란이자, 본인의 신념을 지키려는 결의와 투쟁으로 설명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