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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시대의 아이콘이 된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커리어의 결정적 순간 챕터 1. KING OF MANCHESTER 01 토트넘의 손자, 맨유의 아들 칼럼│CLASS OF 92 칼럼│쿨 브리타니아의 상징, 왜 베컴은 한 시대의 아이콘인가 02 예술점수 만점, 7번의 계승자가 될 자격 칼럼│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빛나던 숫자 7 03 잉글랜드의 정상, 유럽의 정상, 세계의 정상 04 작별인사 대신 남긴 프리킥 챕터 2. GALACTIC SUPERSTAR 01 지단, 피구에 더한 베컴의 삼체문제 02 스타가 아닌 악바리로서 따낸 트로피 03 미국 프로축구를 일으키면서도 유럽을 곁눈질하다 칼럼│Sir Bend-a-lot 챕터 3. ENGLAND'S SAVIOR 01 열 마리의 사자와 한 명의 멍청한 베컴 02 베컴의 킥이 없으면 잉글랜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칼럼│잉글랜드 4-4-2 시대의 마지막 상징 칼럼│제2의 베컴이 감스트? 칼럼│세계 4대 미드필더 & 4대 스트라이커 03 선수 인생의 마무리가 아니라 사업가 인생의 시작 에필로그 : 인생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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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한가운데 있던 존재가 베컴이라는 걸 알고 나면 왜 미국 축구계에서 굳이 베컴을 지목해 영입하려 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위상을 잘 파악하고 있던 베컴이 왜 러브콜을 받아들였는지 이해하기 쉽다. 베컴은 잉글랜드 국기를 입고 미국인들도 보는 월드컵 하이라이트에 등장했던 세계적 스타였다. 그리고 쿨 브리타니아의 중심에 있던 ‘포시 스파이스’ 빅토리아와 결혼하면서, 이 가족은 스포츠와 팝을 아우르는 거대한 아이콘이 됐다. 거대한 문화적 자산을 만들어 놓고 베컴이 평범한 스타 선수처럼 유럽 지도자의 길로 돌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낭비였다.
--- 「쿨 브리타니아의 상징, 왜 베컴은 한 시대의 아이콘인가」 중에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에버턴을 상대했다. 다들 결별을 예상하고 있던 날이다. 완벽한 베컴식 작별인사, 프리킥이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 골도 범상치 않았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각도였기 때문에 슛은 어렵고 동료의 머리를 향해 올려주는 게 상식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베컴의 킥이 그대로 골망 안쪽을 철썩 때렸다. 흔히 말하는 ‘크로슛’은 운 좋아 들어간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 베컴은 의도적으로 골문 구석을 노려 골을 터뜨렸다. --- 「작별인사 대신 남긴 프리킥」 중에서 마지막 시즌이 파국으로 치달으려 할 때, 베컴과 카펠로는 가장 스포츠맨다운 선택을 했다. 베컴은 축출된 슈퍼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버리고 늘 제때 훈련장에 나타나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개인훈련을 했다. 또한 카펠로는 소신이나 고집 따위보다 무조건 승리가 중요한 인물이었다. 베컴 없이 비야레알과 헤타페에 2연패를 당하자, 카펠로는 승리를 위한 최선의 전력은 베컴을 복귀시키는 거라고 진단했다. 베컴은 2월 초 레알 소시에다드를 상대로 선발 복귀전을 치렀고, 왜 자신이 스타인지 확실히 증명해 냈다. --- 「스타가 아닌 악바리로서 따낸 트로피」 중에서 안첼로티 감독은 베컴에 대해 “위대한 미드필더에게 필요한 요소를 충분히 여러모로 갖추고 있었지만 오른쪽 측면에 주로 기용되면서 모든 재능을 개화시키지 못했다”라고 아쉬워한 바 있다. 선수 베컴의 입장에서 본다면 맨유의 애매한 윙어로 기용되며 재능을 낭비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뛰었던 팀 맨유가 4-4-2 전성기의 마지막 시대에서 그 최종 진화형으로서 전성기를 누렸을 때, 베컴이 일반적인 측면 미드필더 이상으로 많은 덕목을 제공해 준 건 4-4-2의 단순성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한 중요한 요소였다. --- 「잉글랜드 4-4-2 시대의 마지막 상징」 중에서 베컴의 실력은 펠레와 메시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서 갖는 비중은 못지않았다. 펠레 시절에는 그가 뛰는 경기만 화제를 모을 뿐 미국 축구를 근본적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반면 베컴을 시작으로 메시까지 이어지는 MLS 시대의 성장은 세계 축구계의 구조를 흔들 잠재성을 갖고 있다. 베컴은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걸 넘어 사업가로서 그 흐름을 이끌어가려는 야심을 갖고 메시의 회장님이 됐다. 선수 인생의 마무리가 아니라 사업가 인생의 시작」 중에서 |
축구면 축구, 경영이면 경영, 무엇이든 제대로 해내는 이 시대의 스포츠스타
대체 불가능한 미드필더에서 메시의 회장님이 되기까지! 화려한 모습 속 인간적인 내면까지 겸비한 베컴, 그의 이야기 베컴에게는 메시나 펠레처럼 ‘G.O.A.T’, ‘축구황제’와 같은 강력한 수식어는 없다. 하지만 베컴은 '베컴'이라는 이름 두 글자가 수식어 그 자체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그의 존재감 자체가 아이코닉하다. 특히나 쿨 브리타니아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스파이스 걸스의 빅토리아와의 결혼을 기점으로 베컴은 축구 외의 다른 분야로까지 본인의 활동 영역을 넓히더니 이제는 심지어 미국 프로축구 구단 중 하나인 인터 마이애미의 회장으로서 성공적인 사업 수완까지 이뤄냈다. 베컴이 그의 본업뿐만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아마 그가 타고난 재능 중 하나가 바로 '성실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베컴은 항상 열심히 일하는 축구 선수이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으며, 각종 인터뷰에서도 공통적으로 '노력'과 '겸손'이 성공의 열쇠라는 말을 했다. 그가 1998년 월드컵 16강 아르헨티나과의 경기 당시 퇴장을 당하게 되면서 전 국민이 그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을 때, 맨유에서 퍼거슨 감독과의 갈등으로 구설수에 올랐을 때, 그리고 LA 갤럭시 이적 전 레알 마드리드 전력에서 제외되었을 때도 베컴은 한결같이 그의 자존심보다는 선수로서 가져야 할 덕목을 우선시했다. 성실하게 훈련하게 참여하고, 출장 기회가 생겼을 때만큼은 본인을 믿는 팬과 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베컴은 언제나 악바리 같은 면모를 보여주며 축구선수로서 본인의 역량을 100% 발휘해냈고 결국에는 그에게 비난의 말을 쏟아내던 이들까지도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맨유 선배인 에릭 캉토나는 ‘메르베유 말레르’, 불행의 치유력이라고 해석되는 이 개념이 베컴이 걸어온 길을 가장 잘 대변해 준다고도 말한다. 인생에 닥친 불행이 오히려 창작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로 주로 예술가들을 예로 설명되지만, 베컴은 이 개념이 스포츠 선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컴에게는 축구라는 본업에 충실하되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좇으면서 주변의 부정적인 관계와 평가마저도 긍정적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었다. 남자는 꾸미면 안 된다는 90년대 통념에 대해서는 메트로섹슈얼의 대표주자로 나서며 패션에 대한 창의성과 추진력을 보여주었고, 은퇴 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프로축구에 큰 관심이 없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신사업을 개척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결국 메시를 영입하여 MLS 성장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그는 이제 하나의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사업가로서 그 흐름을 이어 나가고 있고, 『데이비드 베컴 - 선수18』은 이렇듯 잘난 만큼 그에 맞는 삶을 가꿀 줄 아는 베컴의 히스토리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저자는 화려한 모습 이면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베컴의 정신력과 내면은 인간적으로 본받을 만하다고 평가하면서 우리 모두 무엇이 현명한 삶인지 고민할 때, 베컴의 준비성은 좋은 참고 자료가 될 만하다고 전한다. ‘선수選手’ 시리즈 우리 시대 각 분야의 진정한 ‘선수’들을 더 깊숙이 탐구하고,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합니다. 책을 ‘읽는’ 행위 이후에, ‘소장하는’ 팬시적 욕망에 다가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흠뻑 빠져 있는 ‘최고의 선수’들을 제보해주세요. 선수選手는 출판사와 저자, 독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책을 지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