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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때문에 / 굽은 못의 시간 / 한강을 건너요 / 가까이 가면 울음을 멈추는 / 면책 / 선 잘 긋는 애들이 연애도 잘해요 /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려고 담을 걸어요 / 낮에 끄덕 밤엔 갸웃 / 거품-빛이 내게로 온다 / 거품-빛이 구멍에 걸려있다 / 그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어 / 금가루를 밥에 뿌려 먹을 거예요 / 나는 누나를 생각하며 양재에 가는데 누나는 나를 생각하면 철학이 떠오른다니 / 그 시간 공이 하늘색과 같아진다 2부 나의 창고 / 물이 차오른다 / 세탁소 지하실에서 남의 옷을 입었네 / 정오의 택시 / 쪽문을 열어두세요 / 내 마음의 협궤열차 / 어두운 활주로에 나팔 소리 들리고 / 작은 님아, 다리 긴 작은 님아 / 돌아가자 / 눈 밝은 사람이 말하기를 / 동물의 방 / 나도 따라 울어버렸네 / 처음보다 끝을 잘 알고 중간은 잘 몰라요 / 리베로의 노래 3부 너무 멀리 보는 게 문제예요 / 가만히 있어도 가는 / 용두암을 놀리지 마 / 내가 없는 세계에서 / 동족에 대한 예의 / 빈 수레 끌고 구멍 채우러 가네 / 저편의 불빛 / 친애하는 어둠에게 / 베리 베리 블루해 / 잊으려고 뒤척이는 거야 / 나의 기쁨은 얇고 기다랄 거예요 / 저의 / 조율 / 새가 되면 날기 전에 먼저 할 일 / 이른 오후의 감사 4부 휜 / 고리 / 배웅 / 마마와 나와 나의 아이 / 오래오래 살겠습니다 /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 언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왔다 / 누가 뻐끔거리며 쫓아온다 / 봄밤은 너무 하얘 / 구석을 들추니 버들씨 흩날리네 / 일요일 자정 무렵의 달리기 / 흐이히히히잉 / 독서실에서 시를 씁니다 / 우리의 여행이 바다에서 끝난다면 해설 사랑의 누명을 받더라도 | 유종인(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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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 섬에 가는 시인들이 이상해요
서울 사람도 차도 빌딩도 그럴 만하니까 그런 건데 자연만 자연스레 자연인 것처럼 말해요 자란 곳에선 시가 잘 안 써지나 봐요 나도 여기 숨으려고 왔어요 ---「한강을 건너요」중에서 내가 같이 울어줄 이 아니란 걸 아는가 봐요 우는 얼굴 나는 잘 몰라요 내게 고백할 것 같았던 그 아이 마주칠까 피해 다니다가 그 아이 길에 앉아 울었다는 이야기 나 귀가 밝아 멀리서도 들었어요 ---「가까이 가면 울음을 멈추는」중에서 그럴 땐 애쓰는 걸 그만두고 옆에 걸터앉아요 고양이가 보는 곳을 그저 바라보다가 너무 멀리 바라보다가 담에서 떨어져서 우리가 괴물인 걸 알아도 괜찮아요 나빠지지 않으려고 애썼잖아요 애쓴 만큼 믿어요 아마 우린 아주 나쁜 괴물은 아닐 거예요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려고 담을 걸어요」중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서 언제든 울 준비가 되어있는 시인들은 모두 각자도생입니다 사회인이 되려고 필사적인 이들에게 나도 부끄럽지 않으려고 힘을 내서 몽상하고 사색합니다 ---「독서실에서 시를 씁니다」중에서 나는 얼음에 잔금을 새겨놓고 흩어진 돌멩이를 보고 흠칫했다 얼음 위 돌멩이는 모두 내가 던진 것 여기가 목적지가 아닌 것이 샘이 날 때마다 떠나는 새를 향해 돌을 던졌다 마음 깊은 곳으로 돌을 던졌다 ---「언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왔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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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누명에 걸린 사랑
부영우의 시는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고 듣는 게 아니라 어느결에 따라 부르는 랩으로 끌린다. 이런 시의 결이 있었구나 싶으니 이 또한 그가 가독성이 아니라 가창성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또 어느결에 오래된 새로움인 양 곁에 둘 요량이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치명적인 수단을 한끝 사이를 두고서 염두에 둔 듯한 농담의 우울과 활달한 슬픔을 숨결처럼 견지한다. 그러나 이것도 허사인 듯 다시 모든 상황의 감정들 사이에 둘러싸인 시인이란 존재의 몸부림, 그 말 부림을 숙명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말의 자식(子息), 아니 이 가져봄 직한 자의식은 공기처럼 외부의 장기(臟器)처럼 그를 둘러싸고 에두르게 된다. 모든 오늘처럼 “다음 주의 끝에도 이렇게 뛸 수 있으면 된” 그 마음과 몸이 시를 얼러내는 것이라고 믿기만 한다면 그런 믿음 속에서 자생(自生)하는 사랑이 비록 어처구니없는 세속의 누명에 걸리더라도 말이다. 굴레의 사랑이 아니라 그 굴레의 가시덩굴을 하나하나 걷어내 주는 언어의 손길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는, 또 다른 부영우로 옮겨가 새뜻하니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 허두(虛頭)로 했던 말을 다시 닫듯이 열어두고자 한다. “양재는 ‘어진 선비들이 모여 살았다’해서 양재(良才)였지만, 빛 또한 충분해서, 마음을 달래고 키우기에 괜찮은 곳”이라는 부영우는 어엿한 양언(陽彦) 같은 이가 아닐까 한다. 왜냐면 모든 면에서 부족함과 충만함은 그가 바라보는 지향의 눈그늘 밑에서 태어나는 것이기에 말이다. 예전부터 그리고 항차 무엇으로든 “우리는 부드러울 테니까”라고 말할 때 닫혔던 감각은 트이고 멀었던 시감(詩感)은 다가들며 누명에 씨인 언행들은 신원(伸?)이 되는 흐름을 깜냥껏 얻어 들게 될 것이다. 시인의 말 나는 양재가 ‘볕이 있는 곳’이라 해서 양재陽在인줄 알았다. 양재는 ‘어진 선비들이 모여 살았다’해서 양재良才였지만, 빛 또한 충분해서, 마음을 달래고 키우기에 괜찮은 곳이었다. |